0649 <-- 검은 보급로 -->
나무통은 뼈 탄알을 쏘아 올리고, 아래로 떨어졌고 고블린 전사들은 양옆으로 찢어져서 다른 곳으로 내려왔다. 떨어진 나무통은 다시 재활용될 것이다.
‘무식한 줄만 알았는데, 나름대로 생각을 했어.’
가장 멋진 부분은 천 보를 타격할 수 있음에도 불꽃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수와 몬스터를 상대로 쉽게 타격할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게 반지하, 분지 지형이었다. 자신들을 은폐할 수 있었고, 황무지에는 높은 언덕이 없으므로 발각되기도 힘들었다.
공중 몬스터가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이 또한 주술로 속이면 된다.
‘지휘하지 않는 마수와 몬스터는 지성종족의 밥이지.’
덩치 큰 황소가 사람 팔뚝보다 작은 독사에 물려서 죽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현실은 레벨이 높고, 능력치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이기는 세상이 아니었다.
높은 자도 언제든지 고꾸라질 수 있었고, 작은 빈틈으로 대신 중의 대신도 무너져내린다. 중립신의 죽음에 대한 내막 또한 약자가 강자를 쓰러뜨린 예였다.
세파리아스의 죽음 또한 약자가 곧추세운 검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여주는 예였다.
드낙 또한 허무하게 자궁이 된 악마 트롤의 몬스터 병사에게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현실이라는 곳이었다.
“지금 바로 검은 보급로를 약화할 수 있습니다.”
“아니다. 더 많은 하늘 송곳니 분지를 만들어라.”
“몇 곳을 원하십니까?”
“못해도 100곳을 운용해야 한다.”
100곳이면 나무통에 뼈 다섯 개를 쏜다고 치면 한 번에 500개의 뼈탄알을 쏠 수 있었다. 그 양의 힘. 그게 드낙에게 필요했다.
“그전까지는 철저히 숨겨라. 하늘을 나무로 가리는 게 매우 중요할 것이다.”
“토템을 통해서 막힘없이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드낙은 블러디 만티코어에 올라탔고, 만티코어의 허리를 감고 있는 복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액체화가 이루어진 수은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기괴한 아티팩트였다.
“우리 모두를 숨겨줄 수 있는 곳은 없지만, 우리의 모습을 숨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나 있다.”
드낙이 주문을 읊으며 은폐 마법을 사용하자 수은 복대가 이를 도와주었다. 은폐 마법같이 효율성이 나쁜 마법은 이렇게 아티팩트를 써야지 마력을 아낄 수 있었다.
특히 덩치가 큰 블러디 만티코어를 은폐하기 위해서는 많은 마력이 필요했으며, 운동성이 높은 물체 혹은 생명체를 이동하면서 생기는 은폐 마법의 불완전성은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박을 수밖에 없었다.
‘저 공중 몬스터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피는 밤에만 활동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다른 잡다한 공중 몬스터와 마수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반드시 쳐죽여야했다.
그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하프 드워프와 공조를 이어나가야 했다.
*
드낙이 도착하자마자 하프 드워프가 다가와서 그를 회의장으로 안내했다. 내부에서는 웅성거림이 끊이질 않고 들려왔다.
‘엄청나군.’
깃발도 달랐고, 복장도 조금씩 달랐다. 그런 하프 드워프 세력이 눈으로만 봐도 15개는 넘어 보였다. 황무지라는 특징상 지방 호족세력처럼 연합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들은 드낙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시선이 확 모이며 회의장은 단번에 조용해졌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계시오?”
드낙이 제국어로 말하자 하프 드워프들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제국어와 드워프 언어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알고 있어서였다.
‘그동안 우리를 속였구나.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로다.’
‘말을 할 줄 알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척을 하다니. 혹, 실수한 동족이 없길···’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전투 상황 조성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었소.”
“저도 막 그것을 고민하던 차였소.”
드낙은 주위를 둘러보며 앉을 곳을 찾았다. 수행원 몇몇이 의자 몇 개를 들고왔고, 그중 하나를 잡고 드낙이 아무 곳에나 앉았다. 높낮이가 없는 원탁이었기에 상석과 하석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원탁에 앉은 하프 드워프들은 모두 거점장들로 한 곳을 지배하는 이들이었다.
“그전에 우리가 이미 결정한 것들을 말해주고 싶은데, 괜찮겠소? 아무래도 동부왕도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울 지형을 결정했는데, 바로 이곳이오.”
황무지라고 해서 평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완만한 능선이 큰 곳이 있기도 있었는데 원거리 전투를 좋아하는 하프 드워프 입장에서는 이렇게 높낮이가 존재하고, 오르기에 부담이 없는 능선이야말로 최고의 전투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진형은 몇 곳밖에 없었으며, 그런 지형에 검은 보급로가 있는 곳은 더욱더 한정적이었다.
“지형은 좋지만···”
드낙이 지적한 진형을 훑었다. 검은 보급로에서 조금 거리가 멀다는 게 문제였지만, 마수와 몬스터의 어그로를 끄는 방법은 무궁무진했으므로 신경 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드낙은 깊은 고민을 했다.
‘흠.’
왜냐하면 드낙의 목적은 〈검은 보급로의 파괴〉가 진짜 목적이 아니었다. 이 검은 보급로를 파괴하고, 절단하는 이유는 드워프 제국을 노리고 있는 마신장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였다.
‘검은 보급로 전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로 인한 여파가 드워프 산맥에 닿았을 때는 이미 때가 지났을 수도 있다.’
드낙은 마신의 은총을 받은 마신장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다. 손해를 보더라도 이득을 보고 싶어 했다. 그걸 생각하면 이런 소극적인 하프 드워프들의 전투 지형 선택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놓고 말할 수는 없고···’
드낙이 드워프 제국의 구원을 생각한다면, 하프 드워프들은 검은 보급로의 파괴만 생각하고 있었다. 두 차이는 매우 컸고, 이걸 크게 내세워서는 안 되었다. 적당히 흘리며 마신장 토벌을 대의로 삼는 모습만 보여주는 게 옳았다.
“너무 멀지 않소?”
“끌고 오는 건 쉽소. 놈들은 지휘를 받지 않는 짐승 무리요.”
제법 크게 연기를 피우는 것만으로도 내달려올 놈들이었다. 혹은 생피를 뿌려놓는 것도 좋았다. 피냄새는 수십km 밖에서도 맡을 수 있는 게 몬스터와 마수였다.
‘역시 안 되나.’
드낙이 코를 비볐다. 그의 노림수는 검은 돔에서 빠져나와서 검은 보급로를 통해서 드워프 제국으로 향하는 마수 증원군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여기뿐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좋겠소.”
두 번 찌르지는 않았다. 드낙의 의도가 들킬 수 있거나 경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때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웅크리며 자기 생각을 숨겼다.
“낮 시간대 공중 괴물의 처리를 위해서 협력이 필요하오.”
“어떤 협력이오? 고블린들의 인력이 필요한 것이오?”
“아니오. 블러디 만티코어가 몰이를 해줬으면 하오.”
그러면서 하프 드워프들이 자신들의 전략을 이야기했다. 하늘을 향해서 블랙 피닉스를 쏘기 위해서는 공중 몬스터를 몰이할 존재가 필요했다. 날아다니는 탱크와 비견할 수 있는 내구력이 단단한 만티코어는 이에 가장 적합했다.
‘내가 방패. 저들이 창.’
탄알의 화망 속에서 살아남을 자는 없을 것이다. 특히 공중 괴물들은 내구력이 낮았다. 예외라고 한다면 날아다니는 주제에 체중이 무거운 와이번 같이 수준 높은 몬스터와 마수들이었다.
“대형 공중 괴물은 어쩔 셈이오? 여긴 와이번도 제법 있는데.”
하피들 때문에 와이번조차도 몰려다니고 있는 형국이었다.
“블랙 피닉스로 능히 무력화할 수 있소. 시간은 좀 걸리지만, 날개를 뚫으면 추락하며 큰 피해를 입을 것이고, 쉽게 다시 날아오르지 못할 터요.”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총도 맞아본 놈이 잘 안다고, 3m짜리 총열에서 쏴지는 주먹만 한 총알을 맞아봤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열병기가 지닌 힘은 초월의 힘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숨 쉬는 생명체가 소리보다 앞서 나가는 스피드를 지니는 건 매우 힘든 일인데, 열병기는 그런 걸 쏠 수 있었다.
육체를 벗어난 신에게는 무용지물일 수 있겠지만, 드낙에게는 위협적인 물건이었다.
“파괴력은 인정하지만, 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되어있지 않소?”
드낙이 떡밥을 던졌다. 그는 낮시간대 공중 괴물을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판단을 달리했다. 유연한 사고가 그에게 있었다.
‘공중 괴물이 건재해야, 하프 드워프들을 마수 증원군과 붙일 수 있다.’
마수 증원군이 몇이나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저지해야 했다. 그 마수 증원군은 드워프 제국을 침략하는데 쓰일 것이 뻔했고, 마신장의 영향력을 높여주는 강력한 카드 중 하나일 게 뻔해서였다.
드낙의 입장으로는 반드시 막아야 했지만 하프 드워프들은 결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검은 보급로만 무력화시키면 되었다. 그것으로도 드워프 제국이 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걸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고, 설득에 실패하면 하프 드워프에게 드낙의 노림수가 모두 까발려지는 것이기에 결코 설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낮 시간대 공중 괴물을 굳이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오. 왜냐하면 하프 드워프나, 드워프 제국이나 모두 지하에 있지 않소? 그런데 왜 공중 괴물을 처리하는데 아까운 화약을 쓰냐는 것이오.”
그 말에 하프 드워프들의 거점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에 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사실 공중 괴물을 기를 쓰고 잡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드낙이 입술에 침을 묻히며 말했다.
“차라리 그 화약을 모아서 고블린들이 목숨을 걸고 뚫어놓은 지하굴에 모아 넣고 한 방에 크게 터트려 검은 보급로의 일정 구역을 일소하고 혼란케 하는 게 어떻소.”
두 번째 떡밥이 던져졌다.
“한 방에 크게···”
솔깃해하는 거점장들을 보며 드낙이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빅 플레임〉 프로젝트요. 전쟁은 기세! 단 하룻밤 새에 모든 지상의 마수들을 처리한다면, 화약을 터트리는 작업만으로도 능히 검은 보급로를 처리할 수 있소. 큰 피해 없이 말이오! 이것은 마신장의 발목을 크게 잡을 뿐만 아니라 하프 드워프과 고블린들의 피해를 줄이는 일거삼득의 이득이오.”
드낙의 말에 거점장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된다면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마수와 몬스터들은 싸워야 했고, 승기가 이미 기울어진 상태로 싸우는 것과 같았다.
“좋은 생각 같은데. 어떻소?”
“하지만 공중 병력은 큰 변수가 될 수 있소. 빅 플레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공중 괴물의 기동성이 전황을 바꿀지도 모르오.”
그렇게 말하는 거점장을 보며 드낙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낮에 만티코어를 이용해서 공중 괴물을 몰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오. 많이 모일지, 적게 모일지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인데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소?”
“너무 위험한 작전임을 알지만, 동부왕이 가지고 있는 만티코어는 평범한 만티코어가 아니잖소? 능히 가능할 것이오.”
“그걸 정하는건 그대가 아니오. 위험이 높은 일을 하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소.”
드낙은 매몰차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저 적당히 위험이 높다고만 말하며 그것을 계속 고수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굳이 하프 드워프들을 깎아내리거나 날 높일 필요가 없지.’
찌른다고 이득을 볼 수 없으므로 손을 마주한 채로 가만히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권투 선수가 완급 조절을 하며 풀 라운드를 뛰듯이 드낙 또한 논쟁에 있어서 경중을 따지고 있었다.
‘항상 이기려고 하면 하프 드워프들은 날 적대할 것이다.’
이렇게 드낙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약간 미안한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하프 드워프들의 의견을 반반으로 갈라낼 수 있었다.
드낙이 적이 되는 게 아니라 드낙의 태도로 거점장들이 서로의 분열된 의견을 두고 싸우는 꼴이었다. 연합의 약점이기도 했다.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똘똘 뭉치지만 적이 약하면 내분이 일어나는 연합의 역린을 드낙이 정확하게 찔렀다.
티격태격하는 하프 드워프 거점장을 보며 드낙이 적당히 기회를 보다가 원탁을 치면서 일어났다. 이목이 단번에 집중되었다.
“낮에 활동하는 공중 괴물들을 처리하는 데 내가 도움을 주는 것이 미안해서 고블린을 통해서 빅 플레임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는 것인데, 이렇게 싸우고 있으면 내 배려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 되는 것이오!”
크게 화를 냈다. 다른 곳을 통해서 하프 드워프들을 이롭게 했는데, 그걸 몰라주고 싸우고만 있으니 당연한 결론이었다.
순식간에 하프 드워프들이 드낙의 편을 들었다.
‘황무지 속에서 살다 보니 정치력이 많이 딸리네. 얘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협력하면서도 뒤통수를 치며 야금야금 먹는 인간 기득권층에 비하면 양반 중의 양반이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자연스럽게 논쟁할 거리도 없었다.
“그럼 그렇게 준비를 하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오?”
드낙이 재차 확인하자 거점장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다수가 되지 못했다.
그 뒤에 드낙은 서둘러 고블린을 통해서 핏빛쥐에 연락을 넣었다.
“어서 가서 마수 증원군의 움직임을 파악해라. 최소 보름 전에 나한테 연락이 올 정도로 멀리 정찰을 해야 한다.”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전하겠습니다.”
고블린이 서둘러 움직였다. 드낙은 그 모습을 보며 자기 생각을 정리했다.
드워프 산맥으로 향하는 마신장의 증원병력은 아주 많을 것이고, 그들을 처리하려면 하프 드워프들이 강제로 싸우게 만들어야 했다.
‘하나는 정보를 통해서 내가 이 전쟁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핏빛쥐가 멀리까지 가서 정찰해야 하는 이유였다.
‘둘은 빅 플레임 프로젝트를 통해서 검은 보급로를 크게 터트려서 마수 증원군이 하프 드워프들을 반드시 처리해야 하게 만든다.’
하프 드워프의 위협도를 단번에 높이는 것이었다. 아주 먼 거리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의 폭발과 대량의 시체가 타면서 만들어내는 검은 연기는 마수 증원군이 악착같이 하프 드워프를 노리게 만들 것이다.
‘셋은 하프 드워프들의 퇴로를 막는다.’
낮 시간대의 공중 괴물을 남겨둔 이유였다.
이는 야수 기사의 군략서의 기본의 응용이기도 했다.
정보 수집을 통해서 전략을 수집하는 건 병법의 기본이며 이를 통해서 전략에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적의 퇴로를 막아서 싸우게 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드낙은 이를 비틀어서 동맹군인 하프 드워프에게 써먹어서 배수의 진을 치게 하였다.
또한 적이 싸울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했다. 검은 보급로의 일부분만 폭발시키는 것만으로도 대군인 마수 증원군의 지휘관은 머리를 돌릴 것이다.
‘덫과 함정을 팠다. 나머지는 때를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