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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44화 (643/1,239)

0644 <-- 검은 보급로 -->

드낙은 가장 먼저 마신장에 대한 위험을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으로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신장의 크기는 최소 15m에서 20m에 달하며 산의 오우거라고 불릴만하다. 그런 자가 드워프 산맥을 노리고 나아가고 있으니, 그 최후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그 글에 거점장, 안도르(Andor)가 웃었다.

[덩치 큰 마신장이 드워프를 어찌 이길 수 있나.]

이에 드낙이 조금 더 상세하게 들어갔다. 남부왕국에서 마신장이 어떤 행보를 보였고, 검은 돔의 존재는 무엇을 뜻하며, 검은 보급로를 통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야기했다.

그제야 안도르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검은 돔〉은 남부 왕국의 온갖 공물을 받아먹은 곳이고, 〈검은 보급로〉는 야생 몬스터와 마수들의 시체가 쌓아올려진 길이었다.

생각만 해도 오싹한 마수 군세가 산맥으로 들어갈 것이다. 드워프들이 사는 지하를 넓히고, 수많은 곳에서 전투가 일어날 터였다.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알겠나?]

그 글을 본 안도르가 미간을 손으로 긁었다. 드낙은 이어서 대의를 논했다.

[남부 왕국은 눈앞의 평화에 눈이 멀어 마신장에게 수많은 것들을 공물로 바쳤고, 그로 인해 마신장은 대군을 이끌고 드워프 산맥을 노리게 되었다. 그 업을 통해서 마신은 마신장을 이 세계에 수없이 거느리게 될 기회를 얻었다. 이를 막지 않으면, 신마대전이 펼쳐질 것이다.]

그 결과는 세계의 멸망 내지는 모든 것의 파멸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고, 세계의 판도를 봤을 때, 엘프가 될 공산이 매우 컸다.

최전방에 자신들이 놓여있음을 깨달은 하프 드워프들의 표정을 읽은 드낙이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걸 알게 해줘야 한다니까.’

하프 드워프들이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드워프 언어였는데, 실로 능숙했다.

“저 인간의 말을 믿을 수 있나?”

“때때로 검은 보급로를 질주하던 수천, 수만의 마수들을 생각한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검은 돔〉의 존재는 실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물을 통해서 마신의 은총을 집약시킨 검은 돔은 이미 마경(魔境)이나 다름없었다. 생태계를 만들고, 그곳에서 마수를 양산하여 배출시킬 수 있는 병사 양병소였고 드낙조차도 군대가 없이는 단기간에 파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검은 보급로를 치기에는 화약과 군대가 많이 필요한데···”

“그렇게 많은 군대를 일으킬 수 없다. 식량 문제가 심각해질 터다.”

황무지였기 때문에 하프 드워프들의 식량 사정은 항상 좋지 못했다.

“모든 걸 오픈하고 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할지도···”

“드워프 제국이 무너지면 다음은 우리 차례다. 지하에 숨어도 마수들의 생태계를 생각하면 마주칠 수밖에 없다.”

침공을 쉽게 예견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마친 하프 드워프들은 호쾌하게 나갔다.

인간에게는 거점장이 작아 보이는 직책으로 볼 수 있었지만, 하프 드워프 세계에서는 영주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조류 배설물을 통해서 화약의 가장 중요한 자원을 모으고 있는 〈지하 계곡 거점〉의 거점장은 매우 큰 영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도와주겠다. 하지만 당장은 힘들다. 필요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이를 도와줘야 한다.]

드낙은 당연히 동의했다. 다른 자들과의 교역에 비해서 드워프가 너무 호탕하게 나왔기 때문에 표정이 벌써 밝아졌다.

[식량이 필요하다. 황무지에서 대군을 움직이려면 많은 식량이 필요하다.]

[받아들이겠다. 충분한 양의 식량을 주겠다.]

동부에서 끌고 오는 건 미친 짓이었다. 동부에서 남부 왕국의 수도까지는 한 달 하고도 보름이 걸리기 때문이다. 거기서 황무지까지는 다시 두달이 걸리니 왕복만 해도 반년이 걸렸다.

‘핏빛쥐를 써야겠다.’

정확히는 고블린들을 표면에 내세울 생각이었다. 말린 과일부터,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말린 물고기, 밀 등을 보낼 수 있었다.

[못해도 3만 군대를 유지할 정도의 식량을 줘야 한다. 정말로 가능한가?]

[가능하다. 하지만 남부는 악마와 오크 때문에 군대는 동원할 수 없다. 지하 세계에서 협약을 맺은 고블린들로부터 식량을 내어줄 생각이다.]

그 글을 읽은 거점장은 턱을 매만지며 웃었다.

[벌레도 상관없다. 식용벌레는 하프 드워프들도 잘 먹는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그렇다면, 식량 보급 사정이 아주 좋아지기 때문이다. 역시 황무지 지하에 살다 보니 벌레까지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먹는 듯했다.

확답을 받았기에 하프 드워프들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자원이 필요하다. 이를 도와주면 더욱 빨리 검은 보급로를 처리할 수 있다.]

[어떤 걸 원하나.]

[숯과 동물의 배설물이다.]

하프 드워프들의 흑색 화약은 황을 쓰지 않았다. 〈드워프의 손길〉로 점화지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흑색 화약을 씀에도 연기가 적은 이유 또한 드워프의 손길 덕분이었다.

‘어렵지 않은 요구다.’

개체수가 제법 되는 지하 세계의 힘을 빌리면 금방이었다.

[고블린 같은 것들의 배설물도 괜찮나?]

[기왕이면 초식동물의 배설물이어야 한다.]

그 말에 드낙이 코로 깊은숨을 내쉬었다.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드낙이 손사래를 살짝 치며 글을 써서 그들에게 내밀었다.

[숯은 가능하지만, 배설물은 어렵다.]

하프 드워프들은 그 판단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만든 함정이기 때문이었다.

‘뭐든지 내어질 수 있다고 하면 거짓이 섞여져 있다는 것이지.’

황무지까지 초식동물의 변을 가져오는 일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이를 거부하는 대신 숯은 가능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하프 드워프들은 드낙의 신뢰도를 한 단계 더 높이 샀다.

마지막으로 하프 드워프들이 제안했다.

[우리만 전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쪽도 군대를 동원했으면 한다.]

[남부 인간은 악마와 오크와의 전쟁으로 전쟁 수행능력을 잃었다. 정예병이 한 명도 없다.]

[질이 낮은 병사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블랙 피닉스와 브라운 드레이크를 사격하는 동안 지켜줄 방패만 되어주면 된다.]

드낙이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세리안에게 물었다.

“어떻게 봐?”

세리안은 냉철하게 보이는 걸 말해주었다. 판단은 드낙이 할 것이다.

“네가 말한 화약을 대량으로 소비하면 지하에서 살아가며 숫자가 적어 보이는 하프 드워프들로서는 전쟁 후 배신당할 수 있어. 그러므로 인간들도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함께 전쟁을 수행하면 그것만큼 관계가 좋아질 수도 없어. 그들은 함께하는 전쟁을 통해서 관계도를 높이고 싶어하는 듯한데.”

그 말에 드낙이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착한 거 아닌가?’

판타지 세계에서 뒤통수만 맞고 다녔기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서로의 관계를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하프 드워프들의 외교는 직설적이며 받아들이기 아주 좋았다.

‘당연한 요구다.’

자신만 피를 흘리면 상대는 그 전쟁을 가볍게 볼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 함께 참전하겠지만 남의 백성이 죽는 것과 자신의 백성이 죽는 건 큰 차이였다.

‘전쟁을 자국 영토에서 하지도 않으면서 병력도 쓰지 않는다? 하프 드워프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이라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하프 드워프들의 요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남부를 다시 압박하는 수밖에 없는데.’

드낙이 깊게 고민했다. 남부를 두 번 죽이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동부는 너무 멀었고, 마법 기차나 증기 기관차를 개발하기 전에는 불가능했다. 화력을 통해서 앞으로 나가는 기차를 드낙이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장장이나 건축가들을 갈아 넣어야 했다. 당연히 시작조차 안 했고, 명령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동부가 안정화가 이루어지고 나서 추진해야할 것들이었다.

‘어쩔 수 없지. 돈으로 끌어모으는 수밖에.’

전쟁 용병을 모집하는 수밖에 없었다. 차마, 강제 징용하지는 못했고 돈 없는 이들에게 돈을 주며 모병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 무기나 방어구를 만들어주실 수 있나? 그렇다면 많은 숫자의 병력을 방패로 삼게 해줄 수 있다.]

[철만 있으면 된다.]

풍족한 남부의 자원을 생각하면 가능한 일이었기에 드낙은 이를 수용했다. 남부는 자신들이 없는 장소에서 그 운명이 정해졌다.

협의를 마치고 드낙이 세리안을 대동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그는 같은 토굴에 자리 잡았다. 침대는 따로 두 개가 있었고, 하피 날개로 만든 털가죽이 침대에 놓여 있었다.

거꾸로 뒤집어서 단단히 접어놓은 털가죽을 펼쳐서 침대에 깔았다. 식물 향이 강하게 풍겨왔다. 따로 특수한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털가죽 같아 보였다.

세리안은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전투에선 웃으면서 다녔지만, 항상 전투는 피곤했다.

드낙 또한 잠자리에 들었다.

‘하프 드워프들의 드워프 제국에 대한 자신감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중립신이 다급해 하는 것과는 다르게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드낙은 조급함이 들었다. 하프 드워프의 판단보다 중립신의 판단이 더 가치 있게 여겨졌다.

눈을 감은 드낙을 향해 검은 연기가 그를 덮쳤다.

〈검은 꿈〉에 접속하자마자 드낙은 중립신을 찾았다. 검은 연기가 눈을 스쳐 지나가며 밀랍처럼 생기 없는 중립신의 모습이 바닥에서 쑥 튀어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어 혹은 드워프 언어를 배우고 싶은데.”

“둘 다 가능하다. 내가 받을 업은 제국어는 100명분. 드워프 언어는 300명분이다.”

“인간 1명의 평균적인 업을 말하는 건가?”

그 말에 중립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비싸게 느껴져서였다. 하지만 중립신은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핏빛쥐가 업을 쌓고, 그 업의 아주 일부분이 드낙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수수료 장사가 얼마나 엄청난 노다지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로 중립신의 판단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드낙은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니, 언어 하나에 300명 업은 너무 한 것 아닌가?”

“핏빛쥐로부터 얻는 업을 생각하면 이 정도 가격이 가장 합당하다.”

드낙이 제법 고민을 했다. 하지만 별 방도가 없었다. 그만큼, 언어를 공부하고 터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제국어만···”

드낙은 업이 사라지는 기묘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의 탈력감과 정신이 마모되는 기괴한 감각이었다. 공포스러웠지만, 이내 그런 공포도 무뎌져 갔다. 제국어가 습득되면서 오는 방대한 정보량 때문이다.

‘캬. 미쳤네.’

영업 사원이 된 중립신은 드낙에게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많은 업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서로 검은 꿈으로 연결되어있었기에 업이 다른 존재로부터 이동하면서 생기는 손실을 극단적으로 줄여줄 수 있었다.

드낙과는 그 어떤 소비도 없이 업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기에 중립신은 드낙과의 능력 거래에 힘을 많이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손해보다 득이 많았다.

“하프 드워프들로부터 파생된 능력이 혹시 있을까?”

“없을 수가 없지.”

중립신이 손을 휘적거렸다. 검은 문이 몇 개 생겨났다.

〈하프 드워프의 손길〉 -2, 300명분

〈하프 드워프의 우월인자〉 -3, 500명분

〈하프 드워프의 육체 내구력〉 -2, 800명분

“허미.”

드낙이 입을 떡 벌렸다. 자신이 얼마만큼의 업을 모았는지 몰랐기에 절로 가격이 높아 보였다. 한 종족의 업을 받아먹고 있는 자의 분위기를 전혀 풍기지 못했다. 이에 중립신이 조언해주었다.

“그대가 지닌 업은 생각보다 많다. 물론 신격을 얻기에는 부족하지만, 평범한 업은 아니지. 격 자체도 악마의 피를 먹은 반인반마이기에 반신급에 아슬아슬하게 도달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큰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런 말에도 드낙은 업을 아낌없이 소비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다만, 끝없는 성장은 계속 도모해야 했기에 안 할 수도 없었다.

‘싸게 해달라고 해도 그렇게는 안 해주겠지.’

드낙의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꿰뚫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는 하나하나 모두 확인했다.

‘하프 드워프의 손길.’

앞으로 밀면 계속 앞으로 향하게 미증유의 운동력이 발생하도록 만들 수도 있고.

점화지점을 낮춰서 낮은 온도에서도 확 타오를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는.

물체의 성질을 변환하는 힘이었다. 드워프라면 더 다양한 방식의 능력이 부여 가능했겠지만 하프 드워프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제작은 별로···’

드낙은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든지 인간을 갈아 넣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릴 수 있어서였고, 당장 하프 드워프를 통해서 얻을 수 있어서였다.

‘하프 드워프의 우월인자.’

인간과 드워프의 좋은 유전형질을 제법 많이 쥔 하프 드워프의 힘이다. 드낙의 자손이 더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날 수 있고, 재능 또한 더 높을 수 있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중요했지만 당장 드낙에게 이득을 주는 건 아니었다.

‘호랑이의 자식이 호랑이가 될 수 있도록 하게 해주는 거긴 한 데.’

너무 비싸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드낙은 절로 고민에 빠졌다. 긴 고민을 하기까지 했는데, 그 모습에 살짝 떠진 중립신의 눈이 반짝였다. 그도 그럴 것이 드낙은 아랫사람에게 책임과 권리를 이양하면서 오는 이점을 맛봤기에 쉽게 이 능력을 포기하지 못했다.

자신을 대리할 수 있는 적당한 힘을 지닌 자손.

그것만큼 드낙의 구미를 당기게 하는 게 없었다.

드낙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집 잘하네.’

하프 드워프의 우월인자를 획득하면 자연스럽게 하프 드워프의 손길도 획득하는 게 옳은 선택으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왜냐? 드낙의 자손이 하프 드워프의 손길을 획득할 확률이 확 높아질 수 있었다.

어느 분야든지 닥치는 대로 혈족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거대한 사회 구축이 가능했다.

그걸 드낙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하프 드워프의 육체 내구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오크를 뛰어넘는 단단함. 엘프와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지닌 둔탁함. 생체 강철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력이 상당히 높아지는 능력이었다. 이는 악마 게페락스의 변화의 힘과도 잘 어울렸다.

결국 드낙은 3가지 모두를 구매했다.

한 묶음으로 잘 뭉쳐져 있어서였다.

인간 평균 8, 600명의 업이 순식간에 드낙에게서 중립신으로 향했다.

‘그래도 얻은게 많다. 나중에 큰 도움이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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