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41화 (640/1,239)

0641 <-- 검은 보급로 -->

드낙은 정신을 잃은 아코스를 포박한 뒤에 그가 지닌 것을 모조리 뒤졌다. 가장 먼저 장총을 집어 들었다.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지만, 총열이 비대한 저격총 같았다.

‘평범한 사람은 쓸 수도 없겠는데.’

무게가 엄청났다. 거인이라 불릴 정도로 근력이 높은 사람이나 쓸 법했다. 총열 내부에 작은 마법 빛을 보냈다. 매끈한 총열 내부가 보였다. 아주 제대로 만든 것 같았다.

‘무지막지하게 총알을 집어넣고도 안 터질 정도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엄청난 공을 들인 물건이었다.

‘한 정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 같은데.’

이 세계에는 공장이 잘 없다는 걸 봤을 때, 장총의 퀄리티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공장에서 만든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완벽했다. 기계가 만든 것처럼 어느 것 하나 모난 것이 없었다.

총열 밑의 길쭉한 철에 구멍이 나 있고, 그 홈에 갈고리에 걸린 엄지손가락만 한 나무통을 집어 들었다. 윗부분에 홈이 나 있고, 쉽게 뜯을 수 있어 보였다.

뜯어서 내부를 확인한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약이다.’

흑색화약, 무연화약에 대해서는 무지한 드낙이었기에 화약을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특이한 걸 볼 수 있었다.

‘흰 가루가 묻어있네.’

손바닥에 털어내서 만져봤지만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손에 묻은 땀이 가루에 묻으며 땀이 흡수되었음에도 바짝 말라 있었다. 수분을 흡수하고 바로 기화하는 성질을 지닌 물질이 〈하얀 가루〉였다.

습도가 매일, 매시간 높을 수밖에 없는 지하에서 화약을 쓰기 위해서는 물기를 머금고, 바로 배출해내는 하얀 가루가 필수적이었다.

조류의 배설물과 식물의 재(숯)으로 섞어서 만든 화약은 특히나 습기에 약했다. 괴이한 것은 황이 섞여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는데, 총은 쏴봤어도 화약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걸작이라고 불려도 부족한 장총을 내려놓고, 나무로 된 자잘한 화약통을 드낙이 만지작거렸다. 화약을 나무통에 보관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나무는 재활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왜 이렇게 번거롭게 만들었을까?’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현대의 탄알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사람이 초기 총기에 대해서 전문가적 지식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정전기를 대비한 나무 화약통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총알을 확인했다. 뭉툭한 것이 정말 무식해 보였다.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 저지력을 위해 둔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물론 다른 탄알도 존재했다.

“돌이네.”

척 봐도 탄알로 쓸 수 없는 돌로 된 탄알이었다. 무쇠로 둥근 형태를 띤 총알과는 다르게 갈아서 쐐기로 만들어져 있었고, 뒷부분은 원통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대의 총알을 크게 키운 형태였다. 뒷부분 원통의 바닥에는 구멍이 다섯 개 뚫려 있었는데, 쓰면 그냥 내부에서 파열될 것 같았다. 화약이 터지면서 그 폭발에 원통이 박살 나기 때문이다.

〈쐐기 원통 탄알〉은 현대인의 눈에 자살 탄알로 보였다.

그 외에 눈여겨볼 것은 바로 수류탄이었다. 내부를 손으로 무식하게 똑 부러뜨렸다. 흑색화약의 낮은 점화점을 생각했을 때, 정신 나간 짓이었지만 무연화약 세대에서 살았던 드낙이었다.

그런 걸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내부에 파편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드낙이 볼을 괜히 긁었다. 창피했기 때문이다.

‘병신같은 수류탄이네.’

“이거 봐.”

세리안이 그를 부르자 드낙의 시선이 그녀로 향했다. 그 손에는 굵직한 권총이 들려져 있었는데, 그 구조가 실로 기괴했다.

“뭐야, 이게?”

드낙이 권총으로 손을 가져갔지만 세리안이 손을 뒤로 뺐다.

“그냥 보기만 해.”

“안 뺏어가. 그냥 좀 보자.”

드낙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전투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세리안의 능숙한 손놀림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세리안은 제법 재미를 본 뒤에 드낙에게 권총을 내어주었다.

자신이 기술에 있어서는 아직도 우위가 있다는 걸 각인시킨 것이다. 반면 드낙은 권총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현대인에게 총기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물건이었다.

‘총열이 여섯 개네.’

권총의 앞부분은 총열이 여섯 개였고, 뒷부분은 리볼버 권총과 비슷하게 되어있었다. 여기에도 방아쇠가 없었고, 대신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손잡이를 통해서 격발하는 방식이었다.

철컥.

‘와씨. 총열이랑 같이 돌아가네.’

울퉁불퉁한 6개의 장전 부분을 돌릴 때마다 총열도 돌아갔다. 장전을 미리 다 해두면 6발을 쏠 수 있었다. 권총이라고 하기에는 총열 부분이 30cm로 길었다. 명중률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던 중에 아코스가 눈을 떴다. 고통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만큼, 마력을 사용하는 〈중급 연금술〉의 효능은 뛰어났다. 괜히 귀족들이 연금술사를 통해서 신전을 견제하는 게 아니었다.

“콜록.”

목을 꼴깍 삼키려고 목젖이 움직였지만, 바짝 말라 있었기에 기침 소리가 나왔다. 아코스의 모든 물품을 확인하고 있던 두 사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정신을 차렸네.”

세리안이 제국어를 사용했다. 반면 드낙은 남부 언어를 사용했는데, 아코스에게는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드낙은 악마 게페락스처럼 정신파동을 사용할 수가 없었는데, 아직 반인반마로서의 격(格)이 높지 않았다.

더 많은 업을 받아먹어야 했다.

결국 세리안이 중간에서 통역을 도맡았다.

“일단은 무례하게 그쪽의 영토에 들어온 것을 사과한다고 전해줘.”

세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코스에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우리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할 거야. 알았어? 먼저 선수를 친 건 너라는걸 잊지 마. 우린 정당방위를 한 거고.”

“크윽···남의 땅에 와놓고···”

아코스가 실로 굴욕적인 표정을 지었다.

“말했어.”

“오케이. 그럼 이제 협상을 시작하자. 검은 보급로를 처리하는 데 도움을 원한다고 전해줘.”

가장 먼저 드낙은 자신의 목표를 말했다. 서로에게 있어서 처리해야 할 것이었으므로 협동의 주춧돌이 될 수 있었다.

“검은 보급로라고, 알지? 그거 처리하는 데 힘을 좀 보태줬으면 하는데.”

“너희는 누구냐?”

세리안이 드낙보고 말했다.

“뭐하는 놈들인지 묻는데?”

“난 동부왕 드낙 불파겐이고 넌 호위기사라고 말해.”

세리안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코스에게 말했다.

“내 옆에 있는 분은 남부 왕국의 새로운 왕조를 연 드낙 불파겐 동부왕이고 난 그의 호위기사다.”

“정신 나간 연놈들!”

이런 황무지에 왕이 왔다는 말에 아코스가 욕지거를 내뱉었다. 세리안이 바로 싸대기를 때렸다.

짝! ···짝!

한 대 맞고 바로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약간의 시차를 두고 입이 열어지는 타이밍에 바로 세리안의 싸대기가 한 번 더 작렬했다.

“아니, 왜 뺨을 때려?”

“정신 나간 연놈들이라고 말하는데 그럼 안 때려?”

“말로 해야지.”

“포로에 대한 대우는 햇빛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잘 먹혀.”

“그건 네가 해서 그렇고···”

드낙과 세리안이 티격태격했다. 아코스는 그들의 행동으로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 동시에 세리안이 말한 것이 거짓이라고 믿게 되었는데, 호위기사가 동부왕이라는 자에게 하는 모습이 실로 무례했기 때문이다.

이 거짓을 파고들기로 아코스가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크게 호통을 쳤다. 상대 또한 강하게 나오며 자신을 속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거짓말을 하느냐! 왕과 호위 기사가 티격태격하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나는 이 지하 계곡 거점의 지하 지킴이다! 지금 풀어주고 사과한다면, 돌아갈 길을 알려주고 황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겠다!”

“뭐라는 거야?”

드낙이 묻자 세리안이 짧게 대답했다.

“너보고 너무 경박해 보인다고, 왕처럼은 안 보인다는데? 너무 젊고 내가 또 존경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하네. 사기꾼이라는데?”

그 말에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세리안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그냥 죽이자. 적당히 정보를 얻었으니까, 다시 만나면 될 거 아냐?”

“그게 쉽냐?”

“우리 정도면 쉽지.”

세리안의 말만 들은 아코스의 어깨가 움찔했다.

드낙 같은 소시민이 수틀리면 도망치는 것과는 다르게 세리안이나 세파리아스는 수틀리면 다 죽인다는 선택지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깔끔하고,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죽이자, 살리자를 반복하며 대놓고 싸우는 모습에 아코스가 순식간에 태세전환을 했다. 그건 세리안의 잔인한 손속 때문이었는데, 진짜 당장에라도 죽일 것 같아서였다.

세파리아스였다면 활화산처럼 달구어 죽였겠지만, 세리안의 경우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기분을 들게 했다. 어느 쪽이든 버티기 쉬운 게 아니었다.

죽여서 새로 시작해서 나오는 이점을 이야기하는 세리안과 일단 포로를 얻었으니, 좋게좋게 하는 게 좋다고 여기는 드낙에게 아코스가 소리를 질렀다.

“저, 거점장을 만나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거점장?”

“예. 사실 제가 거부한 것은, 제가 말단이라서 말입니다. 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거점장님에게 이야기해보시는 게···”

세리안이 이를 드낙에게 전하며 자신의 의견을 뒤이어서 말했다. 여기에서는 남부 왕국어를 사용했다.

“···저렇게 말하는데 내 생각에는 딴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아. 죽이는 게 맞아. 조금 악감정도 가지고 있잖아? 손목 벤 놈에게 앙금 하나 없는 게 말이 안 돼.”

“일단은 해보자. 수틀리면 그때 다시 제압하면 되고.”

“오히려 그렇게 하면 일이 커지는데?”

그 말에 드낙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속을 뛰어넘는 상당한 폭연 속도를 지닌 화약은 실로 위협적이지만, 그런데도 드낙은 할만하다고 느꼈는데, 12문장의 풀 캐스팅 방어 마법으로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고, 상대의 근접전 능력이 기사급이 아니라서였다.

“충분히 제압할 수 있어.”

세리안은 그 말에 쾌활하게 웃었다.

“갑자기 좋은 생각처럼 들리는데.”

두 사람은 아코스를 무장해제 시키고, 앞세웠다. 드낙의 길잡이 능력은 진짜 대단했던 것이 〈촛불 통로〉를 넘어가면 바로 거대 동공과 거점이 있는 100m 높이의 사다리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어서였다.

“와.”

세리안이 방대한 지하 공간에 감탄했다. 몬스터지만 일단 조류의 특성도 지닌 하피들의 배설물을 통해서 화약을 만들기 때문에 〈지하 계곡 거점〉은 작업장의 역할을 함께 수행해야 해서 몇만 평이 넘었고, 최소 1, 500명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잠깐. 멈추십시오.”

“멈추래.”

아코스의 말에 세리안이 멈췄다. 그녀로부터 반보 뒤에 있던 드낙도 멈췄다.

“왜?”

세리안의 반말에도 아코스는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사다리를 보시면 알겠지만, 다분히 방어적인 목적이 큽니다. 〈사다리 관문장〉이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사다리에 동족이 아닌 자가 있으면 〈갈색 지룡(Brown Drake)〉을 쏩니다.”

“브라운 드레이크?”

“블랙 피닉스보다 큰 무기입니다.”

아코스가 턱짓으로 드낙이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장총을 가리켰다. 이에 세리안이 그 말을 드낙에게 전했다.

“어떻게 하자는데? 정중하게 물어봐.”

드낙의 말을 세리안이 아코스에게 번역해서 전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려가서 사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무장을 해제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널 인질로 삼으면 될 것 같은데. 아니면 마법으로 사다리 말고 뛰어내려서 착지하면 돼.”

“라카토스 관문장은 원칙을 철같이 보고 행합니다. 전면전을 펼칠 것이고, 사상자가 나오면 타협은 없습니다.”

이에 세리안이 드낙으로 눈을 돌렸다.

“어쩔래?”

“내려보내. 만약 일이 틀어져도 충분히 힘을 보여주면 될 거야.”

적의 능력을 어느 정도 파악한 드낙은 전과 달리 거침없이 나왔다. 특히 집단은 피해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매우 짙었다. 몽골 군대도 아군의 피해가 커지면 꽁지 빠지게 도망을 많이 쳤다.

그들 무리가 모두 친구, 친척,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는 바이킹도 마찬가지였다.

“폐쇄적인 집단이라 특히나 서로에 대한 애정이 두터울 거야. 우린 그걸 노리면 돼. 물론 적당히 힘을 보여줘서 협박하는 거지, 그들을 죽여서는 안 돼.”

실로 뱀 같은 생각에 세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특히 짜증 나는 건 더럽게 행동하면서도 상대를 생각하는 물렁물렁한 생각을 해서였다. 무인 같지 않았다. 약자를 생각하는 건 실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약자도 악한 마음을 품고, 살의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드낙처럼 행동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세리안에게 드낙은 모순적인 존재였고, 강자임에도 약자의 입장에 서 있는 자였다.

‘어디까지 그 모순이 이어질지.’

상황에 따라서 순식간에 태세 전환해도 이렇게 여유로울 때는 항상 저런 기질이 나왔기에 세리안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뒤통수 맞기 딱 좋은 자였다.

“허튼 짓하지말고. 언제든지 쓸어버릴 수 있어.”

“알겠습니다. 말씀 잘 전하겠습니다.”

아코스가 그렇게 말하며 사다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긴 사다리를 내려가더니 대기하고 있던 하프 드워프들에게 말을 전하는 모습이 두 사람에게 보였다.

댕댕댕댕.

균일한 소리를 내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런 씨···”

드낙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나름대로 대우를 잘 해줬는데도 자신들을 적으로 인식해서였다. 반면 세리안은 벌써 칼을 뽑았다.

“역시 정복하고 지배해야지. 연합하면 전투 때 문제가 일어나. 이게 맞아.”

약한 놈은 짓밟아서 아래에 두고 써먹는 게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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