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0 <-- 검은 보급로 -->
〈촛불 통로〉에서의 전투 시작은 당연히 〈지하지킴이 아코스(Akos)〉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만큼 처음 지하를 탐험하는 상대는 수많은 것을 확인해야 했고, 집중력이 곳곳으로 퍼져있었다.
반면 아코스는 매번 다녔던 길이었기에 자그마한 변화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의 홈그라운드에 들어선 이물질을 파악하는 게 수월했다. 평범한 사냥꾼은 방심하게 되는 게 홈그라운였지만, 재능있는 사냥꾼에게는 이점밖에 없는 게 홈그라운드였다.
허나, 드낙 또한 〈깊은 숲의 사냥꾼〉으로 활동했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재능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드낙을 뛰어난 사냥꾼으로 만들었다. 고로, 서로서로 알아차렸다.
서로 몸을 숨겼다. 가장 먼저 공격한 것은 압도적인 원거리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아코스였다. 3m가 넘는 장총인 〈검은 불사조(Black Phoenix)〉의 중간 부분을 왼손으로 단단히 잡았다.
검은 불사조는 현대의 총과 비슷하면서도 크게 달랐는데, 방아쇠가 없다는 게 특이했다. 대신에 총열의 밑에 길쭉한 쇠가 하나 더 있었다. 아코스가 혁대에서 갈고리를 뽑아서 잡아당겼다.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나무통들이 작은 갈고리가 걸린 채 주르륵 딸려왔고 이를 구멍이 길쭉하게 뚫린 부분에 한 번에 걸었다.
완숙된 사수의 실력이 절로 보였다. 그리고 나무통을 하나를 손으로 뜯어냈다. 갈고리와 나무 윗부분에 미리 깎아놓은 부분이 똑하는 소리와 함께 덜렁거렸다. 윗부분이 열린 나무통을 총열의 뒷부분에 있는 구멍에 쿡하고 찔러넣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나무통에 있던 상당량의 화약이 총열 뒷부분에 들어갔다. 그리고 총열 아래에 있는 길쭉한 〈당김 쇳길〉에 있는 손잡이 달린 쇳대를 아코스가 힘을 주며 단번에 당겼다.
툭! 쾅!
하프 드워프라고해도 철에 초월의 힘을 담을 수 있었기에 당김 쇠 길을 지나가는 쇳대에 추가적인 힘이 부여되며 알아서 움직였고, 그대로 총열 뒷부분을 후려쳤다.
안쪽의 부품이 그 충격에 앞쪽에 대기하고 있는 화약을 쳤고 화약이 폭발하며 탄알이 총열을 지나가며 발포되었다. 폭발과 함께 총열 윗부분을 막고 있던 나무통도 위로 튕겨져올라갔다.
상대가 맞은 걸 확인하기도 전에 아코스가 장총에 다시 탄알을 집어넣고, 당김 쇳길에 걸린 갈고리에 부착된 엄지손가락만 한 나무통을 뜯어내서 총열 윗부분에 쿡 찔러넣으며 화약을 다시 집어넣었다.
이 모든 게 전방을 주시한 채 안 본 상태로 단 3초 만에 이루어졌다. 1분에 20발을 쏠 수가 있었다. 물론 그것보다 더 무식한 짓도 가능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한 것이 검은 불사조였다.
탄알을 여럿 한 번에 집어넣는 정신 나간 짓도 가능했다. 다만, 화약이 든 작은 나무통을 당김 쇳길에 걸칠 때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쾅!
폭음이 들렸다. 드낙이 회피기동을 하기도 전에, 정확하게 말하면 소리가 닿기도 전에 이미 드낙은 피격을 당했다. 어둠 속에 숨어있었음에도 당했는데, 〈촛불 통로〉의 모든 구조를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숨을만한 곳을 노렸고, 반반의 확률로 때려 맞혔다.
운이 나빴다.
“큭!”
엄청난 저지력이 드낙을 덮쳤다. 대량생산을 위해서 뭉툭한 구조로 된 탄알이었고, 무게도 무거웠다.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하프 드워프들의 사회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단번에 날아간 드낙이 벽에 처박혔다. 입고 있던 제국 전신갑주 또한 크게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세리안이 몸을 더욱 낮췄다.
“뭐야?”
소리보다 먼저 당하는 모습을 전사의 눈으로 봤기 때문에 의문밖에 남지 않았다. 벼락의 마법조차도 소리를 앞서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건 실로 기괴한 현상이었다.
“총이야. 총!”
갑주의 상체를 벗으며 드낙이 말했다. 함몰되었기에 입고 있으면 뼈가 짓눌리고, 심하게 움직이면 뼈가 장기를 찔러 내출혈을 낼 공산이 컸다.
“총?”
그렇게 소리를 내기도 전에 종유석이 부서지고, 촛불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도 없는 곳이었지만 숨기 좋은 곳이었다. 탄알의 덩치를 생각하면 엄폐물이 제대로 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엎드려!”
“뭐?”
세리안이 어처구니없어했다.
“마법을 써서 죽여!”
“죽이면 정보를 못 얻잖아!”
그렇게 말하며 드낙은 총이 발사되는 시간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중없었다. 상대가 움직임이 없자 완급조절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어떨 때는 10초 이상 조용히 침묵하기도 했다.
상대는 수비태세를 취하며 지원을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지하 동굴의 특징상 폭음과 폭음을 통한 진동은 멀리까지 뻗어 나가기 때문이다.
이 진동과 강렬한 폭음을 드낙 또한 듣고 있었기에 결국 먼저 덤벼야 하는 건 그였다.
‘근접하면 이길 수 있다.’
“내가 먼저 달린다. 넌 그 뒤를 따라나서.”
“알았어.”
드낙이 주문을 읊었다.
“굳건한 땅. 쌓아올린 돌. 무너지지 않는 신념···”
상대의 저지력이 너무 커서 방어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마력을 쓴다면, 아낌없이 쏟아부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마력을 토씨 하나까지 아꼈다.
현대인의 총에 대한 막연한 공포 때문에 12문장에 달하는 풀 캐스팅을 통한 대지 방어 마법이 만들어졌다. 층층이 쌓아올린 방어막이었고, 전방에 방패처럼 자리잡혀 있었다.
각 층은 서로 다른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고, 형태 또한 고체와 액체가 번갈아가기 때문에 질량과 충격에 대해서 강력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었다.
드낙이 튀어나오자마자 총알이 방어막을 후려쳤다. 큰 충격과 공기가 떨렸다. 그 흉악함이 피부로 전해져왔다.
‘와리가리!’
드낙이 이리저리 좌우로 움직였지만 아코스가 쏘는 족족 맞았다. 사기적인 사격 실력이었다. 동시에 3초마다 한 발씩 쏴지는 탓에 마력 또한 빠르게 소모되어갔다. 드낙이 두들겨 맞는 사이 세리안은 기회를 엿보며 드낙의 후위에서 움직였다.
‘마법 능력이 대단한데.’
아코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500m에 달하는 긴 거리가 어느새 반절로 줄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중근거리고 자신 또한 당할 수 있었다.
치이이익!
혁대에 걸린 심지를 그대로 땅에 긁었다. 심지 끝에 함께 있는 부싯돌 조각들이 마찰하며 불똥을 토해냈다. 화약이 든 통에 긴 심지를 묶어서 앞에 여럿 투척했다. 상대는 250M의 거리에 있어서 그가 던진 거리는 불과 20M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괴하게도 〈시간 불꽃(Time Flame)〉은 계속 데굴데굴 굴러가서 200M 언저리에 안착했다.
드워프의 〈힘〉이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드낙이 멈추며 몸을 낮추었다.
파편 수류탄에 대한 강력한 공포심이 그에게는 있었다. 반면 세리안은 그를 닦달했다.
“뭐해! 갑자기 멈추고?”
“수류탄이야. 아주 흉악한 물건이지.”
드낙의 말은 반만 맞은 말이었다. 화약의 강력함 때문에 통 안에는 파편이랄 것이 없었고, 그냥 화약만 가득 차 있어서 사정거리가 매우 조약했다. 시각적으로는 매우 대단해 보여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 덕에 아코스는 탄창을 갈 듯이 총열 아래에 또 하나 있는 긴 강철, 〈당김 쇳길〉에 화약이 든 나무통을 다시 많이 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콰과광!
통로가 터져나갔다. 흙먼지가 자욱해지자 드낙이 달렸고, 그 뒤에 있는 세리안이 드낙에게 소리쳤다.
“우직하게 밀어! 내가 너보다 앞서 나간다!”
“뭐? 미친!”
드낙이 세리안의 맹렬함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끈기 있게 가면 쉽게 이길 길을 세리안이 더 쉽게 가려고 위험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더는 못 참겠다.’
반면 세리안은 이미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기에 콧김을 뿜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쾅 소리가 나는 장총이 불을 뿜었다. 뿜는 족족, 흙먼지 속에서 진흙이나 흙이 강하게 튀는 그림자를 볼 수 있었는데, 상대가 직선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줬다.
후두두둑!
단번에 장총을 아래로 두며 총열의 입구에 탄알 10발을 집어넣고, 한 방을 준비했다. 화약이 담긴 나무통도 3개를 썼다.
산탄총처럼 쓸 생각이었다. 명중률이 형편없어지기 때문에 못해도 50m까지 상대가 와야 했다.
‘그사이에 자리를 옮긴다.’
〈시간 불꽃(Time Flame)〉을 여러 덩어리 더 던지고, 몸을 바싹 낮춰서 손으로 땅을 짚고 움직였다. 총열에 모래가 들어갔지만, 신경 하나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드워프의 힘으로 만들어진 강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내구력이 강인했다.
인간과 드워프의 우월인자가 대부분 우성인자가 되어버려서 탄생한 하프 드워프는 250cm에 달하는 덩치에 맞게 드워프의 힘 또한 제법 가지고 있었다.
콰과과앙! 다시 한 번 근거리에서 폭발하는 시간 불꽃을 보며 아코스가 사격 자세를 잡으며 자신이 방금 있었던 곳에 총열을 조준했다.
“우아아아아!!!!”
적과의 거리가 50걸음 남짓해지자 드낙이 고함을 내질렀다. 상대를 위협하게 하기 위함이고, 세리안이 적에게 피해 없이 닿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거친 음성에 아코스의 총구가 고함을 꾸역꾸역 내뱉고 있는 드낙에게로 향했고, 단번에 발포되었다.
천둥 소리가 울렸다.
방어 마법이 단번에 찢기며 부서졌고, 운동성이 많이 감소한 탄알이 드낙의 전신을 두들겼다. 그대로 날아가는 드낙이 고통에 일그러진 눈을 했다.
총기는 진짜 사기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한계 또한 존재했다. 귀신처럼 세리안이 거리를 좁혀왔다. 설렁설렁 드낙의 뒤를 따라가며 보존한 체력을 단번에 썼다.
순식간에 30걸음을 좁혀온 상황에서 아코스가 총구를 그녀에게 겨누었다. 자연스럽게 좌측으로 움직였다. 사수의 주눈(主眼)이 오른쪽 눈이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눈으로 왼쪽을 겨누어야 했기에 명중률이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디테일한 모습은 지식으로 싸움을 배운 기사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쾅!
묵직하고 넓은 총열에서 불이 뿜어졌다. 촛불 통로에 있는 촛불 때문에 위치가 혼란스러울 수 있었지만, 세리안은 그것으로 단번에 아코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불꽃은 빛이며, 눈에 담기는 것이었으므로 순식간에 몸을 놀려서 피해냈다.
총알이 공기를 찢고 지나갔고, 뒤이어서 폭음이 귀를 때렸다.
“우! 우! 악!”
달구어진 총열을 장갑이 낀 손으로 거침없이 잡으며 회전하여 손잡이를 둔기처럼 쓰는 아코스가 악을 내지르며 다가올 근접전을 대비하며 몸을 긴장시켰다.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충격을 미리 몸에 전달하기도 했다.
“항복해라. 사수!”
세리안은 드낙을 위해서 외쳤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제국의 언어와 남부 왕국의 언어는 확연하게 달랐다. 또한 언어가 통했어도 아코스는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드낙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상대의 체격이 자신보다 한참 작아서였다. 여자치고는 장신이지만 250cm의 거인에게는 애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후웅!
공기를 가르며 검은 불사조가 휘둘러졌다. 3m짜리 장총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중병기였다. 세리안은 대각선으로 진행하며 휘둘러지기도 전에 검으로 부딪쳤다.
“우오오오!”
아코스가 힘으로 밀어냈다.
그녀의 양발이 살짝 들려졌고, 단번에 밀려났다. 연타하려는 모습을 아코스가 보였다. 3m에 달하는 무기 사정거리는 실로 압도적이었고, 뒤로 밀려난 세리안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붕붕, 붕!
양옆으로 휘두르고, 세리안의 자세가 무너진 것처럼 보였을 때, 아코스가 강하게 장총을 내려쳤다. 동시에 세리안이 비전을 사용했다.
〈리제 스트레이크(Riese Streik, 거인 치기)〉
그녀가 무식하게 검을 막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어림도 없는 소리였고, 쥐가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꼴이었다.
‘검과 함께 내려찍어주마!’
모두 페이크였다. 검이 힘에 짓눌리며 검신이 그대로 세리안 쪽으로 쭉 밀렸지만 그녀는 그 힘에 편승하며 검에서 손을 놓았다. 강철이 흐르는 강이 그대로 땅에 내려꽂혔다.
한 자루만 들고 다니는 오만함의 대가, 드낙과는 다르게 무장이 많은 게 세리안이었다. 쟝의 스틸레토가 혁대에서 튀어나오며 반바퀴 회전하며 그대로 세리안의 손에 잡혔다.
“웃!”
아코스가 뒷걸음질 치며 장총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손목에 그대로 스틸레토가 박혔다. 엄청나게 정교한 검술로 정확하게 손목의 연골이 찔렸고, 단번에 살짝 돌리며 뺐다. 손목이 그대로 덜렁거렸다.
“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거인이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손목 하나로 전투불능 상태로 빠지기에는 덩치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간 세리안의 모습에 아코스가 주먹을 휘둘렀다. 휘둘러지는 아코스의 팔뚝을 주먹 쥔 손으로 내려쳐서 떨구고, 스틸레토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동시에 강철로 뒤덮인 발로 무릎에 있는 오금을 차서 찔렀다.
“꺼읍.”
아코스가 바들바들 떨었다.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머리채를 잡은 세리안이 주먹으로 옆쪽으로 턱을 내려치듯이 후려갈겼다.
퍽! 퍽! 퍽!
드낙이 그 모습에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그만! 그만! 안 돼, 안 돼!!!”
“이 정도로 안 죽어.”
그의 외침에 세리안이 머리채를 휘둘러서 그대로 아코스를 뒤로 넘기며 땅에 떨어진 강철이 흐르는 강을 주워들어 목에 겨누었다. 목에서 피가 슬슬슬 흘러내렸다.
창백한 표정으로 드낙이 다가가서 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죽었나?”
세리안의 말에 드낙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걸 묻고 앉았냐? 살아는 있어.”
“네가 빨리 안 말해서 죽은 줄 알았잖아.”
“죽었으면 뭐라고 변명할 건데?”
“‘덩칫값 못하네.’라고 말하려고 했지.”
드낙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손속이 너무 잔인했다. 무협지에서 자주 보이는 살인멸구가 으뜸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싸이코패스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한 마디 딱 해야겠어. 뭐든 죽이면 다 되는 줄 알아. 미친년인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