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39화 (638/1,239)

0639 <-- 검은 보급로 -->

〈끝없는 황무지〉는 드워프 산맥과 남부 왕국의 인간을 나누는 곳이었다. 황무지임에도 수많은 야생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었고, 〈검은 보급로〉가 거대해지면서 몬스터와 마수의 개체 수가 갑자기 늘어난 상태였다.

이들은 마신장의 명령을 듣지 않고 있었고, 검은 돔에서 나오는 대량의 마수들과 싸우지는 않을 뿐, 검은 보급로 일부를 자신들의 영토로 삼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드낙은 〈황무지 지하 계곡〉으로 숨어들어 가 지성 종족의 흔적을 찾게 되었다. 지금까지 단서라고 할 것은 하피의 몸에 묻어있던 식물의 잿가루였다. 하지만 계곡에 들어와서 활동하면서 빠르게 증거들과 단서들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전에 하피들의 생태계를 눈에 새겼다. 이곳에서 전투가 일어난다면 하피와 전투할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이 시간을 버리는 꼴이지.’

밤에 활동하는 하피들은 해가 뜨기 전에 지하 계곡으로 돌아와서 잠을 청한다. 몇 시간 자는 게 고작이고, 금방 다시 활동하지만 실로 태평하게 지내기 시작한다.

‘하피 팔자가 상팔자네.’

가져온 시체를 뜯어먹거나, 하품하며 멍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하피도 있었다.

“끼악! 끼아악!”

교미를 하는 놈들도 보였다. 드낙은 이를 가장 탐탁지 않게 봤다. 공중 몬스터인 하피의 개체 수 때문에 만티코어와 와이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주력의 회복 속도를 고려하면 레우치터를 쓸 여건도, 그럴 마음도 안 생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드낙은 몇 가지 인위적인 지형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쏴아아악!

하나는 〈사각 폭포〉였다. 각진 통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고, 수원을 만들었다. 그 입구는 척 봐도 정(釘)으로 내려찍어 만든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하피들이 결집해서 살아가는 곳을 지정했다.’

만약, 이 지하 계곡의 지도를 만든다면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있고, 은신처를 바로 짚어낼 수 있었지만, 워낙 넓었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물론 지도 제작을 하기는 해야 했다.

운이 안 따라주면 결국 노력으로 성과를 내야 했다. 또한, 그늘진 곳에는 〈움푹 지대〉가 존재했다. 땅이 하피들이 딱 반 엄폐하기 좋게 되어있었고, 벽이 움푹 안으로 들어가고, 층층별로 툭 튀어나와있어서 많은 하피들이 쉴 수 있었다.

몬스터도 짐승의 행동을 자주 보이기 때문에 이 또한 의도된 것임을 드낙은 알 수 있었다. 강아지, 늑대가 반쯤 몸을 숨기는 걸 좋아하는 것과 같다. 사냥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실들이었다.

파악. 파아악.

‘첫 번째 증거.’

발로 흙을 헤집었다. 다른 흙으로 덮어두었던 바짝 마르고, 숯 조각이 나왔다. 불을 피웠다는 증거였다.

“이걸로 확실해졌네.”

세리안은 단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이 그늘진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그를 크게 신뢰하게 되었다. 그는 실로 훌륭한 척후병이었다.

“그래. 하지만 어디에 사는지 도통 안 보이네. 계곡에 사는 게 아닐지도 몰라.”

“그게 맞다면 지하 통로라도 있어야 해. 황무지는 이동하기 쉬운 상태가 아니니까.”

작열하는 햇빛 아래에서 그늘 없이 걷는다면 물과 식량이 많이 필요했다.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다. 땅을 파서 통로를 만들면 안전하고, 서늘한 상태에서 멀리 이동할 수 있었다.

물론 드낙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나, 한 가지를 짚어본다면 배설물로 떡칠이 되어있는 나무였다.

“하피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나무에만 배설물이 가득한데.”

조류 특유의 끔찍한 냄새 속에서 드낙이 성큼걸이로 똥 범벅이 된 나무를 확인했다. 세리안은 몇 걸음 뒤에 있었다.

‘왜?’

드낙은 단검으로 똥을 걷어내고 나무를 파냈다. 겉껍질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온도가 떨어져서 죽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나무 중간에는 짚이 엮어져서 묶여 있었다.

속껍질로만 된 나무의 안쪽을 후벼 파서 캐낸 드낙이 물기가 조금 있는 나무 속껍질의 냄새를 맡았다. 독특한 향이 강렬하게 풍겨왔다. 씹어도 봤는데 바로 뱉었다. 혀가 살짝 마비되었다가 빠르게 회복됐다.

‘향 때문인가.’

겉껍질을 잘라내면 향이 나는 나무는 하피들의 화장실이 된 지 오래였다. 몬스터인 하피들은 향이 강한 곳의 향을 지우려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자신의 영토를 매우 철저히 지키려는 모습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보였다.

〈하피 변나무〉의 의문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 그저 추측일 뿐이었다.

“여기도 식물을 태운 흔적이 있네. 주기적으로 구역별로 불을 내는 것 같은데···”

“숲을 유지하기 위해서?”

세리안의 말에 드낙은 반만 고개를 끄덕였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조금 더 수색을 진행했다. 곧 나무 밑에 만들어진 자연적인 입구를 쓰고 있는 굴을 발견해냈다.

팍. 팍!

발로 입구를 몇 번 걷어차자 땅이 깊게 꺼졌다. 일부러 겉에만 진흙으로 막아두고, 안에 공간은 텅텅 비어있는 채로 마른 흙이었다.

드낙이 지팡이로 쿡쿡 나무 밑에 난 구멍을 쑤셨다. 철컥하며 뭔가가 걸렸다. 지팡이를 빼보았지만, 아예 박살이 나 있었다.

“함정?”

세리안의 말에 드낙은 대답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해서 안쪽을 비추었다. 마력을 최대한 아끼는 모습이었는데 실로 구두쇠, 그 자체였다.

마법으로 밝혀진 〈나무밑 비밀입구〉에는 곰 덫이 설치되어있었다. 흉악했다. 덫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는데 곰 덫을 치우면 발동되는 화살 덫이 있었다. 이 또한 해체한 드낙이 함정을 끄집어냈다.

“바로 안 들어갈 거야?”

세리안이 착 가라앉아있는 붉은 생머리를 곱게 묶으며 들어가려다가 말았다. 드낙이 앞장을 안 섰기 때문이다.

“그래. 곰 덫을 봐. 강철이야. 강철.”

불의 마법으로 철구(鐵球)로 곰 덫을 둥글게 만들고, 얼음 마법으로 단번에 식혀서 식물을 엮어 밧줄로 묶어 짊어졌다.

임시로 좁게 만들어진 비밀입구의 진흙층을 발로 박살 내면서 생긴 진짜 비밀입구의 크기는 엄청났다. 아래 높이만 해도 2m가 넘었다. 마치 거인이 드나들 법했다.

‘이상해. 통로가 지나치게 크다. 하피의 시체를 운송하기 위해서인가?’

그렇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토막 내고 피를 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숲으로 만들어서 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고로 괴이쩍은 넓이와 높이를 지닌 비밀 통로였다.

“바닥을 눌러봐. 손가락으로.”

드낙이 바닥을 만지며 말하자 세리안이 허리를 숙여서 꾹 눌러보았다. 강철처럼 딱딱한 진흙이 만져졌다. 일부러 지반을 단단하게 굳히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다.

“기술이 상당해. 드워프일까?”

“드워프는 중요한 곳에서만 크게 만들지, 이런 의미 없는 곳에서는 지나다닐 정도로만 뚫어.”

드워프에 대해서 잘 아는 듯했다. 그야, 북부 출신 귀족답게 문무겸비가 당연해서였다. 드낙은 쉽게 드워프에 대한 것을 잘라냈다.

통로의 끝에는 사다리가 있었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돌을 박아넣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고, 매우 어두웠다. 마법으로 불을 밝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양도, 그림도 하나 없는 단순한 통로에 불과했다.

“어디로 갈까?”

세리안의 말에 드낙은 손가락에 침을 묻혔다. 조용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 어떤 바람도 불어오지 않았다. 결국 아무 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냥 가지는 않았다.

곰 덫을 둥글게 만든 철을 떼어내 땅에 심었다. 그리고 마법을 부여했다. 이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세리안에게 드낙이 입을 열었다.

“뭔가가 지나가면 발동되어서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올 거야.”

“아하.”

벽에 무슨 이정표가 있을 수 있었기에 항상 마법 불을 켜놓고 가야 했다. 한 800걸음을 걸었을 때, 갈림길이 나타났다. 드낙이 주위를 살피더니 바로 한쪽으로 움직였다.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바람이 크게 불며 그들의 앞으로 향했다.

“내가 건 마법이야. 갈림길 한쪽은 이렇게 돌게 하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벽을 짚은 채로 천천히 걷기 시작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감각으로는 결코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경사도를 지니고 있었다. 동시에 갈림길에서 확 틀게 하였다.

‘음흉하다, 음흉해.’

드낙과 세리안은 새로운 길로 몸을 돌렸다. 길은 평범해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바로 아래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이 되었다.

‘빙고.’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몇 가지 함정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쉬운 길이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지하의 통로는 실로 난해했고, 표식이 하나도 없어서 모조리 외워야 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이민자의 집중력과 정신력을 깎아만들기 위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교묘하게 왔던 길로 연결되는 통로도 많았기에 머리에 열이 차오를 정도로 표식에 순번을 두어서 기록하고, 이를 매번 확인해야 했다.

“쉿.”

전방에서 걸어가던 드낙이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세리안 또한 숨을 죽였다. 통로는 일직선이었으며 그 길이는 끝을 몰랐다. 칠흑처럼 어두운 구멍만 보일 뿐이었다. 그 길쭉한 일직선 통로에는 곳곳에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크기는 서로 달랐고, 심지의 길이와 굵기마저도 달라서 촛불의 불빛은 서로 제각각이었다.

눈을 현혹하기 충분했기에 드낙이 걸음을 멈춘 것이다.

“함정처럼은 안 보이는데.”

“그래도 〈중요한 곳〉처럼은 보이지?”

드낙의 물음에 세리안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자신의 힘을 생각하면 무식하게 뚫고 가면 쉽겠지만, 그는 결코 그런 마음이 없는 듯했다. 마법 불을 끄고 드낙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녀도 자연스럽게 15걸음의 거리 차이를 두고 움직였다. 상체를 낮추고 가는 게 제법 힘이 들었다. 하지만 자세를 풀지는 않았다.

‘이러고 한 놈이라도 안 나오면 헛수고하는 건데.’

칼을 뽑으면 피를 보는 냉혹한 전사인 세리안은 불만을 품기도 했다. 의미 없는 짓으로 여겨질 공산이 커서였다.

쿵쿵쿵.

“어이, 하얀 매! 조류 새끼가 빠져서 말이야, 네 시간이잖아!”

“나간다고, 나가.”

〈지하지킴이 아코스(Akos)〉가 두드리는 문에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밖으로 나섰다. 하피의 가죽이 양팔과 다리에 방어구처럼 묶여 있었고, 몸통은 블랙 아머 하피의 갑각류 피부를 뜯어서 가공한 것을 걸쳤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배낭은 제법 컸다.

삐그덕.

문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가 지각한 것을 알려준 사내는 딴 집을 두드리기 바빴다. 아코스는 고함을 질러서 감사를 표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

250cm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는 실로 곰 같았고, 지하에서 살아가며 등이 굽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

〈블랙 피닉스〉라고 불리는 3m짜리 장총을 지팡이처럼 사용했는데, 전방에 화약과 탄알을 집어넣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지금 시간은 바빠 뒈지겠다고! 아니면 너도 털이 늙었으니까, 나랑 맞먹겠다는 거야?”

“됐고, 보급품이나 주쇼.”

늙은 하프 드워프가 고함을 질렀다. 주름지고, 백발이 성성했지만 키는 아코스보다 더 컸다. 인간과 드워프의 혼혈 종족인 하프 드워프의 돌연변이 확률이 제법 되어서 아코스의 머리카락은 젊었음에도 백발이었다.

그의 이름은 하얀 매라는 뜻이기도 했다.

쿵!

조류 대변 냄새를 풀풀 풍기는 늙은이가 거침없이 추가 배낭을 올렸다. 땀에 푹 절어있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나무로 만든 큰 통도 올려놓았다. 그 통의 크기에 아코스가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전보다 왜 더 커졌습니까?”

“요즘 하피 새끼들이 똥을 얼마나 퍼질러서 싸는지, 식물의 재가 많이 필요해. 이때가 아니면 언제 화약을 대량으로 만들겠어?”

“젠장할 하피 놈들.”

아코스는 욕을 하면서도 둘 다 챙겼다. 나무통은 식물의 재를 담을 것이고, 보급품에는 비상식량과 손질이 잘 된 생존에 필요한 비품들이 들어가 있었고, 탄알과 화약이 든 가죽 주머니가 들어가 있었다.

“제가 마지막입니까?”

“아니! 말 시키지마!”

“수고하슈!”

소리를 치며 몸을 돌린 늙은 하프 드워프가 푹 묵힌 하피의 대변에 식물의 재를 치덕 댄 다음 통에 담기 시작했다.

〈지하 계곡 거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밧줄이 몸을 묶은 아코스가 끝없이 이어져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족히 100m가 넘게 올라가고 나서야 땅에 설 수 있었다.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동공이 보였고, 그 아래에 온갖 집들이 가득했고, 일하는 하프 드워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드워프와 인간의 세력 교차지점인 이곳에 하프 드워프가 있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역사 속에 잊혀 있을 뿐이었다.

배낭과 짐을 한 번 고쳐잡으며 아코스가 일하러 발을 놀렸다.

〈촛불통로〉에 들어선 아코스는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고, 배낭과 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3m짜리 장총이 양손에 들려졌고, 단번에 화약을 머금은 주먹만 한 탄알이 총구를 통해서 아래로 쑥 내려갔다.

어찌나 총구와 탄알의 규격이 잘 맞는지 내려가면서도 소리 하나 나지 않았고, 착 들러붙어서 내려갔다. 남부 왕국에서는 쓰기가 힘들고 귀한 동물 기름이 총구 내부에 잘 발라져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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