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7 <-- 검은 보급로 -->
쿵!
쿵···!
육중한 무쇠기둥이 땅에 때려 박혔다. 나무로 된 기구를 이용해서 제국 영혼 병사들이 도르래를 돌려서 들어 올리고, 일정 높이까지 올라가면 그대로 무쇠기둥이 아래로 떨어지며 망치질을 해대었다.
5m가 넘는 무쇠기둥이 땅속에 들어가 1m만 튀어나올 정도로 깊게 땅을 팠다. 그 상태에서 제국 영혼 기사가 작은 밀랍으로 만든 인형을 땅에 내려놓고, 그대로 발로 밟아서 부수었다.
화아악!
마법 불꽃이 솟구쳐오르며 영혼 기사의 갑주를 타고 오르며 턱밑까지 올랐다가 마치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땅으로 빨려 들어가버렸다.
“매몰하고, 은폐 작업을 실시하라!”
“예.”
영혼기사의 우렁찬 말에 영혼병사는 흐물거리듯이 대답하며 자연물로 주변을 둘러싸고, 흙과 낙엽으로 툭 튀어나온 무쇠기둥을 덮었다. 그리고 그곳에 식물을 심어서 완전히 은폐시켰다.
〈영혼 거점(Soul Strongpoint)〉은 영혼 마법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마력에 약한 영혼 병사와 기사를 보호하는 기능이었다.
〈통달의 대마법사 아웃버스트〉는 날이 갈수록 영혼 병졸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고 있었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실험했고 드낙이 상대했던 제국 기사와 현재의 제국 기사는 차원이 달랐다.
제국의 곳곳에서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제국의 군사학은 중요 거점을 선별했고, 그 외의 것에는 자원을 투입하지 않았다. 동시에 〈흑황제 제넬루 바르시아〉 또한 매우 은밀하게 일을 진행했다.
SS를 건설하는 데에는 영혼 제국 기사 1명과 제국 병졸 100명으로 매우 소규모로 진행됐다. 또한 영혼 병졸들이 점령한 곳에서 건설이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서 흑황제의 전술논리는 오로지 수비적으로 진행됐고, 궐기를 한 제국인들은 당연히 수도를 탈환하기 위해서 덤벼들었다. 회전에서 수비하고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다고 여겼다.
화륵.
제국 9군단의 깃발이 제국 영혼 기사의 불타는 손에 의해서 잿가루가 되었다. 곳곳에 시체가 가득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민병대의 깃발 또한 많았다.
이는, 9군단에게 대의가 있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빛을 움켜쥐며 울부짖어도 어둠이 이길 수 있었다.
이들 시체에서 나온 영혼은 모두 영혼 거점의 힘에 잡혀서 지하로 흘러 영혼 마탑으로 향했다.
시체는 버려졌고, 옷과 갑옷은 해체되어서 수레에 실렸다.
그 흉험한 모습을 관측하던 엘프 원정대가 마력을 뿜었다. 영혼 진지에서 이를 간파했고, 그 즉시 연결된 제국 기사에게로 땅을 통해서 위치가 그 몸으로 전송됐다. 수많은 제국 기사들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하늘 이동(Move the sky)〉을 준비하라.”
척! 척!
영혼 병사들이 일시에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는 4륜 마차를 조작해서 넓게 펼쳤다. 그곳에 병사 11명이 올라탔다. 그리고 단번에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플라잉 엘프에 대한 관측은 제국에서도 종종 있었다. 제국의 마도 기술로는 하늘을 지배할 수 없었지만, 영혼 마법은 이를 대처할 방법을 만들 수 있었다.
‘인간, 그 자체가 변하면 된다.’
1.5km밖에서 마법을 통해서 관측을 끝낸 엘프 원정대가 있는 곳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엘프들의 혁대에서 황금으로 엮어 만든 패가 단번에 튀어나왔다. 능숙하게 튀어나오는 패에 손을 올리자마자 방어막이 펼쳐졌다.
기이잉!
황금으로 엮어 만든 패가 엘프의 마력을 받아들이며 길쭉한 줄이 되어 곡선을 그렸다. 그곳에서 시작된 방어막이 좌우로 펼쳐지며 돔을 만들어냈다.
“고위 집정관님. 하늘에서부터의 공격입니다. 형태는 물리형태이며, 약간의 마력을 통해서 공중에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요격은?”
“가능합···아니,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 중! 100, 500, 800, 1천!”
“회피해야 합니다!”
엘프 부관들이 말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만큼 빨랐다.
“폭격을 막고, 집행자와 법정자는 2명의 부관을 데리고 동과 남으로 흩어져라!”
“예!”
7인의 엘프 원정대(Elda Andawaita)는 가장 먼저 방어를 생각했다. 〈황금 방패의 패(Golden shield card)〉의 방어력을 맹신했다.
콰과광!
질량체가 떨어져 내렸고, 엘프 원정대에 소속된 엘프들은 비웃음을 지었다. 명중률이 형편없어서였다.
‘1천이라고 해도 맞는 건 수십에 불과하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폭격은 금방 끝났다.
“인간답게 형편없군.”
“저희에 비하면 그 양도 하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엘프가 주문을 읊었다. 간단한 바람 마법이 흙먼지를 걷어냈다. 하지만 이내 눈을 추켜들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질량체로 여겨졌던 것들이 일어서고 있어서였다.
꺾여진 팔다리가 제자리를 찾고, 입에서 회백색의 연기가 나풀거리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덜그럭거리는 고개가 바로 잡히며 한 바퀴 회전해서 앞으로 향해졌다. 투구 속에 그늘진 눈동자에 탁한 회색빛이 감돌더니 사라졌다.
“불완전한 영혼을 힘으로 삼은 것 같은데.”
엘프 법정자의 눈에 새겨진 주문이 기묘하게 움직이며 그 현상을 잡아냈다.
“산개하여 후퇴하라.”
고위 집정관의 말에 모두 아까 말했던 대로 움직였다. 엘프들의 간편한 복장이 마법 현상을 일으키며 전신갑주로 변했다. 동시에 가려진 혁대에서 종이, 다양한 금속 재질의 패 등이 튀어나오며 엘프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며 수많은 마법을 토해냈다.
파지지직!
번개가 장창을 들이미는 병사를 직격했다. 하지만 마치 파뢰침처럼 번개가 빠르게 땅으로 흡수됐다. 그 모습에 고위 집정자의 눈이 크게 떠졌지만 손에 쥔 날카로운 외날도가 그대로 병사의 목을 쳤다. 실낱같은 이음새의 속을 긁으며 지나갔고, 푸른 피가 쏟아져 내렸다.
엘프 원정대 7명은 영혼 병사 426명과 영혼 기사 52명을 격살했지만, 천(千)의 군세에 집어삼켜 졌다. 교전 비율 1:73. 끔찍한 제국의 패배였다. 하지만 이 전투의 승리자는 제국이었다.
위대한 패배였지만, 그것을 기려주는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엘프의 완전한 영혼마저도 땅에 빨려 들어갔다.
이는 영혼 마탑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 토양이 될 것이다. 양적으로 팽창하는 영혼 마탑의 제어를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엘프들의 영혼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전을 통해서 수많은 전투 가능한 제국인을 죽여서 혼으로 만든 흑황제의 다음 표적은 엘프들이었다.
*
카가가각!
적혈대검을 타고 강철이 흐르는 강이 불똥을 튀면서 흘러갔다. 드낙이 대검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파지법을 달리하여 대검을 회전했다. 그 까다로운 방어 속에서 세파리아스는 검에서 손을 놓으며 칼손잡이의 끝을 검지와 중지로 함께 쳐서 롱소드가 하늘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탁.
다시 검을 잡은 세파리아스가 횡으로 베었다. 드낙이 회전하며 들어 올린 적혈대검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였고, 그의 발차기가 대검의 면을 올려쳤다.
횡으로 베어지며 부딪쳤고 이어지는 수직공격.
서로 다른 방향을 모두 제어해야 했기에 드낙의 발이 멈췄고, 세파리아스가 호통쳤다.
“뭐 하는 거냐! 나보다 신체능력도 좋은 놈이, 우뚝 선 나무처럼 있느냐? 넌 덤비고, 움직여야 한다! 인간의 싸움법을 버려라! 전투 스타일에서 넌 괴물이 되어야 한다!”
“알고 있다고!”
드낙이 외쳤다. 하지만 그에게는 신성력이 없었다. 고로, 신체 회복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트롤의 피도 진짜 트롤의 피가 아니라 희석되어 인간 맞춤형이었다. 반인반마의 피로 증폭이 되었지만 몬스터급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목숨이 10개는 넘었지만, 순식간에 10번에 달하는 생명력이 소모될 수 있었다. 특히나 세파리아스를 상대로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고로, 드낙은 그와의 대련에서 수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드낙이 거칠게 발을 놀렸다. 자연스럽게 그 돌진력이 대검에 쌓였고, 세파리아스가 공세를 멈추고, 수비로 전환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승부가 났다.
콱!
세파리아스의 발이 드낙을 밟았고, 드낙이 힘으로 부딪쳤다. 세파리아스의 몸이 그 힘을 이용해서 살짝 올라갔다. 그걸 축으로 세파리아스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았다.
‘미친.’
드낙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강철이 흐르는 강이 뱀처럼 꿰어지며 대검을 타고 내려가며 굽어져 드낙의 사타구니를 그대로 긁어냈다.
“꺼읍.”
드낙이 바르르 떨었다.
뻑!
세파리아스의 주먹이 드낙의 턱을 올려쳤다. 살짝 붕 뜬 드낙이 뒤로 고꾸라졌다.
“발을 거칠게 놀려도 네가 제어하지 못하면 역공을 받을 뿐이다.”
“너처럼 받아치는 놈이 세상천지에 어딨다고.”
“세상은 넓다. 하나 정도 있을지도 모르지.”
세파리아스가 허공에 검을 휘두르며 파공성을 내며 이물질을 검신에서 걷어냈다. 그리고 능숙하게 품에서 흰 손수건을 꺼내 닦았다. 그 어떤 것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세리안도 조금은 묻어나오던데.”
“그 애는 똑똑하지만 요령이 없다.”
“난?”
“넌 재능이 없지.”
드낙이 코로 숨을 깊게 들이쉬며 주제를 돌렸다.
“근데 좀 살살해주면 안 돼?”
“얻어맞으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빠르다. 특히 너는 그렇다. 육체와 정신에 쐐기처럼 꽂아넣어야 한다.”
“에이, 그러지말고···내 장인어른 아니냐? 사위를 아끼고 사랑해줘야지.”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대꾸했다.
“그냥 세파리아스라고 불러라. 너 같은 놈을 인정하기는 싫으니까.”
뜻밖에 강하게 안 나오는 세파리아스를 보며 드낙이 움찔했다. 그리고는 매우 심각한 눈을 하다가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너가 부활을 한다는 게 세리안의 아이로···?”
“무, 뭔 미친 소리냐!”
세파리아스가 눈에 띌 정도로 펄쩍 뛰었다. 프라이드가 높은 그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드낙이 지껄여서였다. 남들은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자기애가 지나칠 정도로 강한 세파리아스에게는 죽어도 하지 않을 짓이었다.
“아, 아냐? 근데 왜 그렇게 약한 소리를 하냐?”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딸과 살을 섞었으니까. 적당히 넘긴 것이다. 머저리 같은 놈아.”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파리아스도 인간은 인간이었다. 딸에 대한 감정이 없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래도 의심을 지우지는 못했다.
“근데···너한텐 이득 아냐? 내가 지금까지 능력들과 업을 받아먹은 몸인데?”
“그 주둥아리를 한 번 더 놀리면 나에게서 무력을 하사받을 생각 따위 하지 마라.”
경고에 드낙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프라이드가 세다고 느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만약 드낙이라면 옳다구나 하고 아기로 탄생했을 것이다. 적이고 아군이고 원수고 사위고 나발이고 일단 부활하고 볼 것이다.
“꽉 막힌 양반이네. 이거.”
“천박한 놈. 어떻게 그런 의심을 할 수가 있는 건지. 넌 자존심도 없느냐?”
세파리아스가 드낙을 욕했다.
“아니, 무조건 이득이니까···”
드낙의 꾸준한 말에 세파리아스가 검은 연기 속으로 그냥 사라져버렸다.
검은 꿈에서 남은 시간을 홀로 수련한 드낙이 잠에서 깼다.
세계의 서쪽.
〈황무지〉에 도착한 지 하루가 지났다. 끝없는 지평선이 보였고, 뭔가 신기루처럼 산들이 보이는 괴이한 땅이 해가 뜨며 자연스럽게 보였다. 드낙보다 먼저 일어난 세리안은 모비딕의 몸에 물을 뿌려주고 있었다.
드낙이 만든 마법 아이템이었다. 본 목적은 수원확보였지만 어찌나 와이번을 아끼는지 알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좋아?”
“드래곤이니까.”
세리안이 모비딕의 검은 비늘 중에 빠질 것 같은 걸 냉큼 손으로 떼어냈다. 모비딕이 으르렁거렸지만, 그녀에게는 위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블러디 키메라는 날아다니는 탱크였고, 본래라면 대장쥐에게 하사되어야 했지만, 마신장이 두려운 드낙이 마음을 바꾸었다. 대신 악마의 피를 11인의 위원들에게 내어주었다.
‘마신장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날아다니는 탱크가 필요해.’
악마의 피를 받아먹어서 3개월의 공정 없이 바로 키메라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제법 강력한 전력이었지만, 드낙은 황무지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숨겨야 했다.
멀리서도 확연하게 볼 수 있는 검은 선 같은 것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서였다. 그 선은 서쪽에 있는 〈검은 돔〉으로 연결되어있었다.
마법으로 확인해본 결과 그것은 시체였다. 큰 건축물처럼 쌓여있었다. 그게 선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시체가 검게 보이는 이유는 검은 이끼와 검은 식물들이 들러붙어 있어서였다.
그 기괴한 것을 조사한 드낙은 이내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검은 보급로〉.
‘흑마법사들이 만들었고, 마신장이 키웠다.’
처음에는 그저 이끼와 식물이 지력을 빨아먹는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이 시체가 쌓이면서 거대해져 있었다. 동시에 먹을 것이 꼬이니 야생 몬스터까지 얽혔다.
자연스럽게 그 주변의 몬스터는 급증했다. 죽는 만큼 식량이 넘쳐나서 폭발적으로 새끼를 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방위선을 만들었다.
드낙조차도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 번 싸우면 만(萬)이 넘는 몬스터와 마수를 상대해야 한다.’
마신장이 시간을 들여서 만든 보급로는 실로 흉악했고, 드낙이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시작부터 꼬이네. 차라리 검은 돔부터 처리해야하나?’
탁트인 황무지를 가르는 검은 보급로보다는 숨을 곳이 있어보이는 검은 돔을 직접적으로 타격하는게 좋을지도 몰랐다. 그곳에 마신장이 없을게 분명해서였다.
‘드워프랑 합류하는게 더 나을지도.’
드낙의 고민이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