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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34화 (633/1,239)

0634 <-- 에필로그 -->

[불파겐 자작이 왕자로 왕자를 쳤다.]

초봄이 기웃기웃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동부에 무성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바로 드낙이 남부의 끝자락에서 만든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폼포스 왕자가 아라온 왕자를 쳤지만 되려 드낙은 아라온 왕자를 올리며 폼포스 왕자를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

그 때문에 한 번 피바람이 풀었다. 아라온 왕자가 폼포스 왕자의 편을 든 관리들을 가만히 둘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문은 드낙의 이미지를 단번에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땅이 녹으며, 지방에서 악마 군세를 대부분 토벌한 드낙이 호수 마을에 도착했다.

‘많이도 변했네.’

인간의 저력이 느껴졌다.

호수 마을은 이제 3차 확장까지 끝나고, 하나의 도시가 된 지 오래였다. 외성벽의 밖에 목책이 세워지고, 비계가 세워진 곳에는 성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스핀이 담당하고 있는 석지 마을은 포도 나무와 산딸기 수풀이 가득했다.

주류 사업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었고, 마을은 토성이 되어있었다. 곳곳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순찰을 도는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둑들이 산딸기 수풀과 나무를 통째로 훔쳐가기 때문이었다.

“와아아아!!!”

와이번이 저공 비행하자 아이들이 내달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드낙은 거기에 가볍게 손을 흔들어줬다. 〈호수 성채〉의 내성에 내려앉은 드낙에게 병사들이 서둘러 다가왔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일단은 쉬어야겠다. 모비딕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줘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드낙은 바로 쉬러 갔다. 아무리 반인반마(半人半魔)가 되었지만 쉬고 싶은 건 인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실로 느긋하게 걸었는데, 도착도 하기 전에 시종과 집사가 시녀들을 대동하고 드낙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독을 푸는 데에는 이번 겨울에 공사를 마친 목욕탕이 어떻습니까. 내성과 외성에 각각 한 곳씩 건설이 되어있습니다.”

“좋지.”

불파겐 마탑과 함께 있는 대중 목욕탕은 호수 성채에도 지어져 있었다. 그 편의를 한 번 맛본 인간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뜨뜻한 물에서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세상 편해지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목욕을 제법 오래 하고 나오자마자 동부 최고위 인사들이 도착해있었다. 3명의 사령관과 베바란스 총관부터 게제라스 법관까지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이에 대해서는 총관이 대답했다.

“도렌 은행장은 이번에 새롭게 농지를 받은 이들에 대한 씨앗 대출을 문서로 만드는데 힘을 쓰고 있으며···”

하나같이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봄이 시작되었기에 자연스럽게 바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들이 드낙이 오자마자 도착한 게 이상했다.

‘녀석들···’

드낙은 이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속으로 자연스럽게 웃었다.

‘아직 논공행상을 하지 않았거든.’

안달이 날 만했고, 뒤처질 수 없었다. 그런 계산이 깔렸기에 계속 이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길게이마저도 남쪽에 내려가지 않고, 호수 성채에서 지내고 있을 지경이었다.

“내가 많이 늦었나 본데. 벌써 다 정해놓았나? 논공행상 말이야.”

“예···일단은···어느 정도 협의를 봤습니다.”

모두 서로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에 드낙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물론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정반대였다.

“그런가. 그거 잘됐네. 3일 뒤에 정해놓은 것을 다 가져오게. 원탁회의소에서 내 한 번 확인해볼 테니.”

“확인···말씀이십니까?”

가장 많은 뇌물을 받는 이실레아가 반문했다. 이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인하고, 딱딱 정해야지 않겠어? 커흠!”

드낙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그대로 그들을 지나갔다.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왠지 모르게 싸하다.’

모두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대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무슨 대책을 세운단 말인가? 기껏해야 독대를 통해서 흥정을 하는 것이지만, 이실레아가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모두 주저하게 되었다.

그녀만큼 잘하는 자가 없는데 그녀가 땅굴을 파고 숨어들어가 조용히 있으니, 다른 이들도 몸을 사리는 것을 택했다.

그 사이에 드낙은 레이시아부터 시작해서 인연들과 하나씩 약속을 잡아서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북부의 외척들과도 다시 관계를 맺었다.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다시 남부 왕국을 하나로 만든다.’

아라온은 그냥 넙죽 엎드렸으니, 이제 북부와의 막혀있는 물꼬를 열어야했다. 상업은 언제나 중요했다. 어린 나이에 홀로 지냈던 몇몇 부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짧은 3개월이었으나, 가문을 끔찍이도 생각했기 때문에 책임감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던 나날들이었으며, 그 끝에는 자신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무력감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걸 드낙이 해소해주었으니, 눈물을 쏟아내는 게 정상이었다. 케이샤 킹슬레이의 경우에는 만나지 못했다. 제국 쪽에서 사업하던 그녀였기에 제국 내전이 일어나며 혼란해지자 토치라이트 가문이 있는 〈횃불 성채〉로 잠깐 출장을 나간 상태였다.

‘어지간히도 돌아다니네.’

그렇게 3일을 편안하게 지내며 북부와의 인연을 다시 시작한 드낙은 원탁회의소로 향했다. 그곳에만 500명이 넘는 인원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동남 전쟁에서 얻은 이득이 실로 엄청났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얽히고 설켜있었다. 노획물 한 수레도 아귀다툼과 눈치싸움이 일어날 정도였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장물이라는 것은 무조건 얻으면 이득이었다. 비단 상인뿐만 아니라 동부에 있는 단체라면 누구나 장물을 원했다. 거기에는 귀중품과 화폐도 있어서였다.

돈이 있어야 뭘 할 수 있으므로 이실레아는 물론이고, 겐 쟝 마저도 달려들어서 진흙탕이 된 지 오래였다.

‘이 노획물에 대해서 확실하게 해야 한다.’

문인인 베바란스 총관은 당연히 노획물이 저들의 손에 가지 않고, 영지에 귀속되는 비율을 높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건 법관인 게제라스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특히나 드낙은 사업을 많이 해서 돈을 아랫사람들에게 베풀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하고 싶었다.

게제라스 법관이 먼저 입에 침을 묻히며 밑밥을 깔았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이 노획물의 배분입니다. 상벌로 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이해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말에 절로 이실레아와 겐쟝을 비롯한 기사들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베바란스 총관은 고개를 더욱 빳빳이 들어 올렸다. 무력이면 드낙이다. 힘으로 짓눌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호랑이의 그림자를 받는 여우가 바로 총관과 법관을 비롯한 관리들이었다.

‘딱 봐도 무인이랑 문인의 싸움이 되었네.’

드낙이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더 원만하게 끝났을지도 몰랐다. 영토를 지닌 무인이 승리했을 터였다.

‘내가 변수가 된 격이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영토를 지닌 무인(武人)과 그렇지 않은 문인(文人)의 싸움이 된 것이 동남 전쟁 노획물 하사 비율이었다.

‘상인은 내쳐졌나 보네. 입에 풀칠을 해놨나. 입뻥끗도 못 하네. 호되게 맞았나 보다.’

이윤을 조금 남기고 문인과 귀족들에게서 다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장물의 이점이었다.

‘흠. 노획물인가.’

드낙이 머리를 굴렸다. 평등하게 주는 건 쉬웠지만 공평하게 주는 게 어렵다는 걸 단번에 파악했다.

“양이 상당한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가?”

“변경백 영지에 있던 마을들과 성들을 싹 돌았기 때문에 쌓인 밀만 해도 300만 포대가 넘습니다.”

드낙이 입을 떡 벌렸다. 그 정도로 이득을 취할지 몰라서였다. 전쟁은 정말이지 승리자에게 모든 것이 몰방 되는 수단이었다. 그 뽕 맛은 사람이 죽어도 전쟁을 벌일 정도였다.

“놀라시긴 이릅니다. 단지 식량만 봤음에도 그 정도입니다. 병사들에게 화폐를 지급했음에도 돈 또한 창고에 가득합니다.”

그 말에 이실레아가 입을 열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이번 전쟁에서 죽은 이들만 1만6천이 넘습니다. 장례식부터 시작해서 가족에 대한 보상금까지 생각한다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재화는 절반도 안 됩니다.”

모병제 사회의 단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깎는다면 병사들의 정신무장이 약해질 터였다.

‘뭐든지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지.’

물론 똑같은 모병제 사회였던 남부를 생각하면 결국 적이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었다. 괜히 모병제를 징병제로 바꾸었다가 병사의 질이 달라지면 그 책임은 오로지 드낙 책임이었다.

‘지금 바꿔도 소용없지.’

전세금 받고 야반도주하는 격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기로 했는가? 내가 통째로 바꾸기보다는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주고 싶은데.”

그 말에 겐 쟝이 길쭉한 양피지를 자신의 시종에게서 받아서 원탁 위로 올렸고, 게제라스 법관 또한 관리에게서 양피지를 받아서 올렸다.

“서로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아니, 아직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나?”

드낙의 말에 모두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다만 오직 게제라스 법관만이 드낙의 말에 대답했다. 벌써 법 만드는 걸 포기하고 싶어서인지 아주 당당했다.

“조금만 비율이 달라져도 나누다 보면 큰 차이가 나서 하나로 합칠 수가 없었습니다.”

게제라스가 각을 세우니, 당연히 귀족과 기사 쪽에서도 변명거리 하나는 만들어야 했다. 이실레아가 절로 입술을 움직였다.

“장원 기사와 보기사들의 숫자가 많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동부의 간부급 인원은 제국의 군단과도 견줄 만 할 정도로 풍족한 인원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말에 게제라스 법관은 반박하지 않았다.

‘미치겠구만.’

드낙은 일단 2개의 양피지를 확인했다. 저급한 종이는 아직 민간에서만 쓰이거나 쉽게 파손할 수 있어서 파수꾼이나 정찰병에게 사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는 두툼하고, 금가루나 은도금 혹은 보석이 박힌 양피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편이었다.

그게 안 되는 영지는 수작업으로 양피지의 겉 테두리에 공예를 통해서 멋지게 장식하기도 했는데, 불파겐 영지의 경우 여성 노동력을 위해서 공예를 하는 게 기본이며 특히 은광산과 구리 광산의 존재 이유로 양 끝에 구리 도금과 은으로 된 용을 부착하는 식이었다.

“흐음···”

문인들의 경우에는 후방 보급에 힘쓴 자들의 명단이 올라가 있었고, 하사 받아야 할 노획물의 양이 적혀져 있었다. 모두 직접 쓴 것으로 실로 빽빽했다.

‘양심적으로 썼는데? 너무 많이 남잖아.’

드낙의 눈이 빠르게 아래로 향했다. 이름은 읽지도 않고, 받는 것의 양만 보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마지막, 노획물의 절반을 영지 세금으로 보관한다는 문장이었다.

‘이것 때문에 싸움이 났구만.’

관리들은 영지의 세금을 쓴다. 그게 그들의 힘이다. 특히나 게제라스의 경우에는 기사와 귀족들을 견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자였다. 노획물 또한 철저히 제도적으로 사용하는 걸 원했다.

드낙은 굉장히 빠르게 문인들의 양피지를 통과했고, 기사들이 제출한 양피지를 확인했다. 거기도 문제가 여럿 보였다. 가장 먼저 죽은 이들에 대한 보상금이 너무 컸다.

‘전방에 나선 이들이 공이 더 높은 건 맞지만, 너무 몰빵이네. 후방 보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건만.’

전투와 보급. 이 두 분야에 확실한 차별이 존재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검을 든 자들답게 목숨 걸고 싸운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게 너무 심했다.

‘하긴, 사령관이란 사령관은 다 전방으로 투입되었으니까.’

여기에 노획품을 영지 세금으로 돌린다는 문구도 있었지만 고작 15%에 불과했다. 드낙이 양피지를 손에서 놓았다.

드낙이 자신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고민했고, 시간은 조용하게 흘러갔다.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모두 촉각을 곤두세웠다.

“가장 먼저 노획품의 65%는 영지 세금으로 회수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죽은 병사들에 대한 장례식과 보상을 마련하겠다. 나머지는 전쟁에 힘쓴 이들에게 보상하겠다.”

기사들의 표정이 확 밝아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세금이 자신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사용되기 때문임에도 그랬다. 반면 문인들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었다.

‘이거 참···똑똑하다고 해야 하나.’

길게이가 조용히 수염을 손으로 비비며 생각했다. 둘 다 떨떠름한 표정인 이유는 영지 세금은 관리들의 소관이라서였다. 결국, 병사 보상금과 장례식에 쓰이는 돈은 관리들이 정하게 될 것이다.

반면 기사들과 귀족은 거기에 대해서 자신들의 돈을 쓰지 않게 되었다. 서로 비슷했다. 특히 드낙이 서로의 이득을 쥐여주는 게 아니라 서로의 것을 다른 이에게 떠넘긴 게 중요했다.

독특한 방식이었고, 드낙이 쓸만한 방식이었다.

“노획물을 받는 것에는 분명 차등을 둬서 줘야겠지만, 전방과 후방은 달라야겠지?”

“예.”

드낙이 귀족들을 보며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누구도 후방에서 보급을 담당하고 싶지 않게 되겠지.”

“물론 그렇습니다만, 후방을 원하는 자도 많습니다.”

“실력 있는 자는 전방에만 서고 싶어한다는 말이다.”

드낙이 덧붙여 말하자 모두 수긍했다.

“거기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겠지. 65%를 제외한 나머지 노획물에 대한 것은···”

드낙이 좌중을 둘러보았고, 이내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두갈드 부사령관. 그대가 맡아줬으면 하는데.”

가장 말석에 있던 두갈드 부사령관이 벌떡 일어났다.

“제, 제가 말씀이십니까?”

“이번에 새로 중용된 자이니, 그대의 실력을 내가 봐야 하지 않겠나. 명단을 만들어서 나에게 가져오게.”

“마, 맡겨만 주신다면 문제없이 해결해보겠습니다!”

그가 크게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장성급 인사가 신병처럼 고함을 질렀으니 실로 그의 마음이 드낙에게 닿았다. 반면 이실레아와 겐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굴러들어온 돌이 가장 중요한 것을 채갔기 때문이다.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고~.’

그러든 말든 드낙은 속으로 흥얼거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 며칠 내에 영지의 모든 것을 다 한 번씩 확인할 것이니, 미리 준비해두도록 하게. 새로운 봄이 왔고,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으니,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 아닌가.”

드낙이 그렇게 말하며 원탁회의소를 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웅성거림이 단번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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