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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28화 (627/1,239)

0628 <-- 에필로그 -->

드낙은 피해 보고를 받았다.

“생존 1200여 명.”

그 말에 모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과는 다르게 조촐하기 짝이 없는 병력이 피의 늪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추위를 느낄 정도로 위축된 인간들이 많았다.

수만의 군세가 단번에 이곳에서 갈려졌다.

생존자를 찾으며 기병 300명은 700명으로 늘어났지만, 말이 없어서 일반 보병이 된 기수만 500명이 넘었다.

다행이라면 기사가 500명이나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그중 절반이 남부의 기사들이었고 이들은 도망친 아라온 플래티넘에게 분노했고, 드낙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드낙은 결코 섭한 대접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병사는 고작 50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특히 헌신적이었던 성전대(聖戰隊)는 900명 중 단 10명만 남게 되었다.

‘모병제를 포기할 정도의 피해다.’

이 세상의 인간들은 필연적으로 모병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훈련을 집중해야지만 외적과 외종과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할 정도의 큰 피해를 봤다.

항상 죽음이 가까이 있기에 출산도 많이 하지만, 결국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영주님. 야전 보고서들입니다.”

“고맙다.”

그다음에 야전의 진행 과정에 대한 보고서 또한 획득하여 읽었다. 수많은 사람이 보고 경험한 것을 적은 보고서들이었다.

날 것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악마에게서 도망친 모비딕이 〈올드 카르마〉에 대항하던 모습을 봤다던가.

어느 중기병의 놀라운 모습 등.

인상적인 것들만 적혀져 있었다. 그 외의 것은 그저 죽었다는 말뿐이다. 개인의 시야는 결국 그 정도에 불과했다.

모두 읽고 이실레아와 길게이 그리고 겐 쟝으로부터 종합된 의견을 들었다. 모두가 서로의 공을 치하했다.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 부풀리기 바빴다.

원래 공이라는 것이 그러한 것이다.

병사의 코와 귀를 자르는 것뿐만 아니라, 애나 여자나 노인의 코와 귀를 잘라 전공으로 삼는 건 공을 부풀리기 좋았으며, 수급도 닥치는 대로 챙기고 보는 게 전쟁의 지휘관이었다.

그런 야만적인 짓을 하지는 않지만, 약탈하며 수급을 챙기는 건 알게 모르게 진행되기도 했다.

가장 공을 높인 건 기병대를 지휘했던 이실레아였다. 특히나 중반, 적의 허리를 기병대를 희생하면서 끊었기에 중앙군이 역공을 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싸움은 큰 패배로 이어졌을 터였다.

그다음은 변경백 칸이었다. 그와 그가 키운 7천의 정예는 정말이지 잘해주었다. 그가 죽은 것이 너무 애석했다.

“변경백의 시신은 찾아냈는가?”

“예. 천으로 두르고, 소금을 쳐서 관에 넣었습니다.”

“동부로 돌아가서 크게 대우해줘야 할 것이다.”

모두가 대답했다.

길게이와 겐 쟝이 공동 3위였고, 두갈드 부사령관은 신규로 등용되었기에 4위에 그쳤다. 공은 똑같았지만, 조직에 몸을 담은 햇수로 또 순위가 차이 났다.

그 외에도 죽은 기사들과 살아남은 기사들 새롭게 동부에 속하게 된 기사까지 모두 이름이 거론됐고, 확실하게 양피지에 적었다. 그리고 이를 강철로 된 함에 보관하여 운반토록 했다.

드낙은 그 강철함에 마법을 걸어 단단히 단속했다. 하도 인간에게 뒤통수를 당해서 철저함이 절로 보였다. 몇몇 이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자신의 라인에 속한 몇 명을 속속 집어넣을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던 것.

“1왕자를 쫓는다.”

드낙이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뒤에서 그를 호위하며 서 있는 세리안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는 건 어렵습니다. 지방에 남은 악마 군세는 남부가 알아서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머리가 없는 올드 카르마는 악마 게페락스가 죽으며 동시에 허물어졌지만, 다른 악마 병졸들은 아니었다. 머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또한 1왕자를 죽인다면 악마 병졸의 토벌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 혼란은 오래 유지될 터였다.

최하급 병졸인 〈헤드리스(Headless)〉만해도 인간의 머리를 집어삼키며 똑같이 그 희생자를 헤드리스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벌레 같이 움직여 몸속으로 들어가는 촉수가 머리 없는 악마 병졸의 본체였기에 특히나 병사들이 죽이기 힘들어하는 게 헤드리스였다.

팔다리를 찔러봤자 촉수가 살아있는 한 죽지 않기 때문이다.

“남부가 악마 군세의 손에 떨어지고 후속 피해가 속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부가 지방의 악마 군세를 처리한다는 선택도 하지 않았다. 동원 가능한 병사가 박살 났기 때문이다. 한다면 1왕자 아라온을 도와서 할 텐데, 놈이 자신들을 버리고 갔는데 도와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고로 방관하는 게 가장 적당해 보였다. 하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그는 중립신의 챔피언이며, 인간의 업을 훔치며 덩치를 키운 악마 군세를 토벌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지방의 지역유지에게 악마 토벌을 맡기는 한이 있더라도 아라온은 죽여야겠다.”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죽이고 싶었다. 그 말에 이실레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 또한 똑같았기 때문이다. 있는 시간 없는 시간 투자해서 독기에 물든 기병을 훈련해냈다.

그게 지금 남은 게 100기도 안 된다. 나머지는 남부의 기병이었다. 선두를 섰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전투가 끝나고 나서 마음이 풀어진 상태에서는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길게이가 가장 현실적인 답안을 내놓았다. 왕자를 포기하고 남부 사령관이 되었기에 남부라는 방파제가 필요한 게 그였다. 남부가 없으면 그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일왕자를 죽일 명분이 없소. 도망쳤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백금 왕가의 적통을 죽인다면 많은 이들이 욕할 것이오.”

계급은 절대적이다. 지나가던 도적이라도 무방비한 자가 귀족이라는 소리에 후환이 두려워서 가게 놔둘 정도다. 물론 북부의 경우 도적이 많아도 귀족=기사이므로 도망쳐도 도적은 머리채가 잡혀서 죽는다.

“길게이 남부 사령관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해보라.”

드낙이 분노를 참으며 일단 들어볼 생각을 가지자 길게이가 하나의 그림을 제공했다.

“동부가 악마를 토벌한 것은 맞고, 아라온 왕자는 도망친 것이 맞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에게 빚을 진 것이니, 이를 이용하여 조공을 바치게 만든다면 백금 왕가의 위신은 떨어질 것이며 동부는 새로운 태양으로 시민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겁니다.”

“그다음에는 새로 나라를 짓는다.”

“예. 악마를 토벌하지 않고, 도망친 일왕자는 죽이기에도 아까운 자입니다. 또한 명분과 적통성을 생각한다면 영주님께서 죽여서도 안 됩니다. 죽이는 순간 그를 두려워하여 죽인 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다시 저희가 불리해지기 때문입니다.”

드낙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대적으로 그러한 시대였다.

“이미 형편없는 짓을 벌였는데도 왕자긴 왕자라는건가.”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드낙이 원탁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제법 긴 장고(長考)가 이어졌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길게이가 안심했다. 다른 이들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적어도 남부의 일부분에는 인간이 계속 살아갈 것이다.

“후방 보급대를 당장 군대로 삼기보다는 뒤로 빠지는 게 좋겠지.”

“더 전투는 무의미합니다. 악마와의 야전은 이제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남부의 생존자들 또한 아라온이 도망갔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동부는 남부 왕국의 새로운 태양이자 별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라온은 평생 자신의 과오를 씻지 못한 채 그 이마에 낙인이 찍혀 살아가게 될 터였다.

그건 곧 남부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살아있는 동안 동부를 칠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남부 절반이 전란에 휩싸였기 때문에 그럴 여력도 없을 것이다.

“협상은 나 홀로 가겠다.”

“기병이라도 데려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드낙은 손사래를 쳤다.

“서둘러 동부로 회군하라. 마음이 병들고 지친 이들이 많다.”

두 번 묻는 자는 없었다. 그들 모두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동남 전쟁에 이은 악마 토벌이 적어도 끝이 났다. 지방에는 악마 병졸들이 득실거리겠지만, 드낙이 굳이 나서서 토벌할 정도는 아니었다. 1만의 남부군이 알아서 할 것이다.

중립신이 명령한다면 그들까지 죽이겠지만, 적어도 동부는 할 일을 모두 해냈고, 더 싸울 수도 없었다.

“원탁회의는 이것으로 빨리 끝내도록 하겠다. 모두 돌아가서 쉬어라.”

제장들이 일어나 군막을 나섰다. 홀로 남은 드낙은 눈을 감았다.

‘나라를 만든다. 그리한다면 조금 더 동부의 결속력이 강해지고, 나중에 있을 제국의 침략도 막을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겠지.’

밤에 드낙은 잠에 빠지지 않고, 곧바로 피의 늪으로 가서 레우치터를 불러와서 그 늪에 양손을 깊이 찔러넣으며 〈원시 저주술〉을 사용했다.

피의 늪을 제물로 저주력이 생겨나오며 레우치터가 이를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 나갔다.

꿀꺽!

레우치터가 거침없이 피를 마셨다. 피의 늪은 새벽이 오기 전에 그렇게 사라졌다. 드낙은 짧은 수면을 가졌다.

검은 연기가 그를 덮치며 지나갔다.

드낙의 눈에 그가 받아먹은 찌꺼기들의 인격체들과 중립신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붉은 피부를 지닌 악마의 육신이 머리가 잘려져서 무릎을 꿇고 있는 게 보였다.

“생각보다 잘 해주었다.”

중립신의 칭찬에 드낙이 짧게 대답했다.

“챔피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세파리아스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중립신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은 실로 소인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드낙에게는 당연한 처세술이었다.

“악마는 초월체다. 신을 죽인 것과 같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대에게 줄 보상은 그 육(肉)이 될 수 있다.”

“저보고 악마가 되라는 소리입니까?”

드낙이 의문을 느꼈다. 왜냐하면, 업(業)에 대해서 서서히 알아가면서 느낀 것은 중립신은 드낙에게 그 업을 매우 절제하여 조금 내어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불합리하지만, 인간보다는 강해질 수 있었기에 납득했다. 하지만 그 근거를 중립신이 스스로 부쉈다.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반문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다. 못해도 흑마법사가 천 년 넘게 힘을 모아서 만든 악마의 육신이다. 이대로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악마의 초월육체가 테라에 필요합니까? 그 정도로 엘프나 마신장이 강력합니까?”

차근차근 드낙이 하나하나 되짚었다. 이에 중립신이 대답했다.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오직 드낙이 홀로 판단해야 했다.

“완성된 테라라고해도 신이 없기에 외부차원에서 들어오는 적을 요격해야 할 존재는 필요하다. 그들이 모두 탐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엘프나 마신장을 토벌하려고 악마가 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저보고 외계의 방어를 맡으라는 소리입니까?”

중립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그대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 말에 드낙이 다시 그를 의심하며 말했다. 그간 계속 중립신은 드낙을 의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는 중립신님을 믿고 있지만, 사실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물론 어느 정도의 목줄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가 생각하는 것처럼 혹독하고 가혹한 것도 아니다.”

“어떤 목줄입니까?”

“당장은 말해줄 수 없다.”

“흐음···”

드낙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힐끔 세파리아스를 봤는데 그는 그 어떤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만약 초월 육체를 받지 않고, 악마가 되지 않겠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악마의 피가 흐르는 반인반마(半人半魔)의 힘이 주어질 것이다.”

검은 문이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드낙은 이내 흘흘 웃음소리를 냈다. 중립신의 노림수가 그에게는 보였다. 실로 간악하고 음흉했다.

욕심에 눈이 멀었다면 악마의 육체를 손에 넣으며 초월자가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중립신을 의심한다면 악마의 육체를 포기하고 반인반마가 될 것이다.

‘모두 함정이다.’

덫을 본 사냥꾼의 눈을 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똑같았다. 반인반마가 되어도 중립신을 의심하여 큰 고기를 포기하는 꼴이니, 중립신은 드낙이 자신을 의심하고 신뢰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반대로 악마가 된다고 해도 중립신은 종류만 다를 뿐, 신의 반열에 오른 드낙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목줄은 최소 날 죽이는 것이겠지.’

죽음보다 심한 일을 당할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드낙은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었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그간 계속 의심스러웠습니다. 대체 뭘 꾸미고 있습니까? 왜 그렇게까지 날 버리거나 죽이려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시는 겁니까?”

정면으로 치고 들어갔다.

드낙은 그간 있었던 앙금을 드러냈다. 여기서 중립신의 반응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이에 중립신이 입을 뗐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내 제안은 그 어떤 거짓도 없다. 정말이다.”

밀랍같이 생기 없는 모습을 취하고 있는 중립신의 무표정한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며 웃음을 지었다.

인간이 짓는 미소가 아니었기에 그것은 실로 드낙에게 기괴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드낙은 중립신이라는 인격을 지닌 신이 어떤 신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기에 인신(人神)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업을 가질 수 있는 신이기에 인신(人神)이라 불리는 것뿐이었다.

존재에 대한 정의 자체가 잘못되어있었다.

결국 서로 종족이 달랐기에 서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음을 드낙은 그 이상한 웃음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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