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4 <-- 수도 야전 -->
몸을 변화시키고 나서는 공중전에서 압도적으로 드낙을 밀어붙인 〈악마 게페락스〉가 땅에 떨어졌다. 자욱하게 먼지가 올라오며 잔여마력의 빛가루가 휩쓸렸다.
“크아아!”
그런 상태에서도 드낙과 모비딕은 거침없이 게페락스를 노렸다. 게페락스의 피를 머금은 적혈대검은 계속해서 날카로워져 갔다.
서걱!
악마의 손톱이 그대로 절단되며 팔이 양분되었다. 그곳에서 촉수가 쏟아져나왔지만 모비딕이 드낙의 머리 위에서 산액 브레스를 뿜었다.
“쿠에에에!”
애벌레처럼 펄떡 뛰는 이빨을 지닌 촉수 무리가 단번에 산액 브레스에 녹아버렸다.
쿵!
게페락스의 길쭉해진 목에서 다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튀어나와서 드낙을 짓밟았다.
“후아아아!”
드낙이 입을 쩍 벌리며 피를 토하듯이 고함을 내지르며 온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적혈대검을 내려쳤다. 집채만 한 다리가 단번에 쪼개지며, 한 타이밍 늦게 피가 쏟아졌다.
후우욱-!
땅을 붕괴시키며 게페락스의 옆구리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주먹이 드낙을 후려쳤다. 먼지 속이었기에 그 존재감을 먼저 느꼈음에도 속력이 빨랐고, 면적이 커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푸욱!
물론 곱게 당해주지는 않았다. 대검을 쑤셔 박았다. 고통스러운 게페락스의 울부짖음이 드낙의 귀를 때렸다. 생명력을 소비하며 마력을 보유한 다음 주문을 읊었다.
“태풍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티는 고목 나무처럼, 무겁게 나를 덮어주시오.”
시작의 문장부터 5문장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주문이 완성되자 드낙의 몸에 흙이 들러붙었다. 초월적인 힘이 깃든 흙은 대단히 무거웠고, 붕 띄워진 드낙을 단번에 무겁게 만들었다.
주먹에 박힌 대검이 아래로 쑥 내려갔다. 허공에서도 드낙의 무게 덕분에 그 살덩이를 가를 수 있는 힘을 얻어서였다. 땅으로 다시 떨어지는 사이에 드낙은 전황을 살폈다.
‘좋지 않은 곳에 떨어졌네. 주변에 인간이 없어.’
되려 악마 병졸들이 악마를 지키기 위해서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세상에 일기토 한다고 봐주는 게 있을 리 없었다. 당장 드낙만해도 모비딕과 함께 게페락스를 두들겨 패고 있었으니까.
‘중앙은 많이 뚫렸지만, 버티고 있다.’
마법전투로 빛가루가 가득한 평야에서 인간의 군대가 보였다. 중형 악마 병졸로 쌓은 언덕에서 결사항전하는 보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중앙을 관통하는 기병들의 시체 또한 볼 수 있었다.
중앙군이 제대로 된 방패 역할을 할 수 있게 죽은 기병들이었다. 전쟁은 그러한 것이었다. 단 하나의 전술적 승리를 위해서 수천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곳이다.
쿠웅!
묵직하게 바닥으로 떨어진 드낙은 코를 훔쳤다. 흙먼지가 들어와서 간질거렸다. 그러면서도 으슥하게 몸을 낮추고 움직였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기괴함. 흙먼지에 가려진 채로 바퀴벌레처럼 몸을 낮추고 왼손으로 땅을 짚으며 짐승처럼 빠르게 움직인 드낙은 단번에 게페락스의 뒤로 돌아가서 다리를 갈랐다.
“크아악!”
고함 소리가 들렸고, 드낙이 사타구니 사이로 뻗어 나가며 다른 다리까지 절단했다. 덩치가 4m까지 커져 있는 게페락스가 무너졌다. 모비딕이 넘어지는 게페락스의 팔 하나를 물어서 목을 털며 뜯어냈다.
“흙의 골램 소환.”
드낙이 제국 전신갑주에 있는 마법을 사용했다. 동시에 신성력이 터져 나왔다. 사라졌던 피가 새로 생성되었다.
게페락스는 중립신의 챔피언과 블랙 스케일 와이번과 동시에 싸우고 있었다. 드낙은 이 싸움에서 레우치터는 꺼내지 않았는데, 혹시 몰라서였다. 게페락스가 조커 카드를 뽑았을 때, 단번에 휘어잡을 수단이 레우치터였다.
[놈을 죽여라! 나를 도와라!]
초월자가 된 게페락스가 정신파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쓰러진 몸체가 하체가 되고, 허물을 벗듯이 뱃가죽이 쩍 갈라지며 몸이 하나 더 튀어나왔다. 악마의 뿔 2개가 선명하게 이마에서 돋아나서 매력적으로 뻗어나와있었다.
파지지직!
이글거리는 검은 불꽃이 게페락스의 주변을 확 가리며 벼락이 드낙을 노렸다. 드낙은 순식간에 적혈대검의 검면을 치며 뱅글 돌려 땅에 찍으며 그대로 한 걸음 물러났다. 파뢰침처럼 전격 마법은 적혈대검을 타고 흐르며 대지로 뻗어 나갔다.
다시 적혈대검을 뽑은 드낙이 모비딕이 물어뜯는 게페락스의 팔을 적혈대검으로 자르며 피를 대검에 묻히고, 검면을 어깨에 딱 짋어지며 그대로 돌진했다.
그 뒤를 모비딕이 쿵쿵거리면서 따라왔다.
4m짜리 몸체가 눕혀서 하체가 되었으니, 게페락스의 몸은 5m가 넘게 되었다. 또한 거미와도 비슷했다. 등이 쩌적 갈라지며 실제로 거미 다리가 튀어나와서 사정없이 드낙과 모비딕을 노렸다.
“후우웁!”
드낙이 숨을 들이켜며 숨을 참으며 단번에 적혈대검을 풍차처럼 돌렸다.
푸버버벅!
견갑골이 단번에 박살이 나며 검은색 체액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적혈대검에 피가 계속 농축되어져갔고, 이내 견갑골이 부서지는 소리조차 안 들리며 잘려나갔다. 한층 더 적혈대검의 절삭력이 강해진 것이다.
쿵쾅! 쿠와아아악!
앞발로 땅을 강하게 짚으며 모비딕이 꼬리를 바짝 세우며 산액 브레스를 쏘아 보냈다. 덩치가 큰 게페락스는 한 손을 뻗었다. 힘줄이 불끈 솟아나더니 피막이 손바닥에서 쫙 퍼져나갔다.
치이이익!
독가스가 강하게 올라왔다. 그 사이에 다리 아래로 근접한 드낙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뒤를 노리고, 사타구니를 지나가며 다른 다리를 잘라낸 수법을 겪었는지 피부 곳곳에 눈동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꾸이이익!”
멧돼지 소리를 내는 늑대의 아가리가 튀어나와서 허공을 마구잡이로 물고 있었다. 적혈대검으로 가르자마자 앙상하지만 길쭉한 손이 튀어나와 드낙을 잡아채려고 했다.
‘어딜.’
닥치는대로 베면서도 드낙은 게페락스를 죽일 수 있을지 의문마저 생겼다. 그만큼 피해가 없어 보여서였다. 아무리 죽여도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었다. 반면 게페락스는 벌써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팽팽했지만 결과를 알 수 없는 건 둘 다 똑같았다.
‘이거 못 이기겠다. 보통 신성력이 아니다.’
한 방 맞추기도 힘든 게 드낙이었다. 그런데 신성력이 사용된 양을 보면 이미 사제 50명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몸집을 키워서 짓누르려고 해도 적혈 대검의 절삭력은 덩치 차이를 극복하게 하였다. 드워프들이 만든 무기는 실로 강력한 아티팩트나 다름없었다.
전설적인 대검을 쥔 데스나이트가 사령마력이 빠방하게 축적된 네크로맨서의 보조를 받는 격이었다.
악마 게페락스는 바로 빤스런을 칠 각을 잡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전술은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건 배우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는 것이고, 배운 사람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수틀렸을 때, 가장 좋은 게 도망치는 것이었다.
등에 나와 있는 수백 개의 수미터짜리 거미 다리로 땅을 폭격하듯이 찌르면서도 독수리의 날개가 서서히 튀어나오고 있었다. 등으로 딱 가리고 있어서 모비딕과 드낙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바로 악마 게페락스다!”
상체의 두 다리는 드낙을 견제하기 위해서 어느새 여섯 개가 되어있었고, 끝도 없이 소형 악마 병졸들이 피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라며 드낙을 향해 덤벼들고 있었다. 게페락스의 고함에 드낙이 오른발을 뒤로 일보 후퇴시키며 단번에 왼발을 살짝 들어울리며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서 몸을 한 바퀴 돌며 적혈대검을 360도 휘둘렀다. 악마가 뭘 하려는 것처럼 보여서 발을 빼려고 한 것이다.
푸쏴아악!
게페락스의 몸에서 튀어나왔던 소형 악마병졸들이 죽어 나갔다.
“크아아!”
후방에서 드디어 도착한 중형 악마 병졸인 〈미디움 이블 리자드(Medium Evil lizard)〉가 신전기둥을 드낙에게 내려치려고 했지만 모비딕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닭처럼 살짝 날아올라서 굵직한 발톱으로 그대로 미디움 이블 리자드를 옆으로 후려치며 넘어뜨렸고 단번에 목을 물어뜯었다.
물어뜯은 모비딕의 아가리에서 산액이 줄줄 흘러내리면서 미디움 이블 리자드의 목을 녹였고, 단번에 목을 틀어버리며 살점을 뜯어냈다.
펄럭!
양 날개를 펼치며 모비딕이 포효하며 주위를 살폈다.
“저 새끼 튄다!”
드낙이 악다구니를 쓰며 소리를 지르자 모비딕이 달려가며 날아오르려고 했지만 도착한 중형 악마 병졸들이 막아섰고, 모비딕은 결국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산액 브레스를 쏴야 했다.
“레우치터!”
하체를 버리고, 상체만으로 날아오르며 등에 붙은 거미 다리며, 덩치 큰 상체도 살덩이와 뼈로 변해서 무게를 줄이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악마 게페락스에게 검은 기류가 그 어떤 것보다도 빠르게 날아갔다.
드낙의 척추에 보관 중이던 주력이 그 속력만큼이나 빠르게 소모되어갔다. 드낙의 보조가 없으면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크으으윽!”
드낙은 동시에 피를 소모해서 대마력(大魔力)을 단번에 뽑아냈다. 끝도 없이 흑마법을 써대는 악마 게페락스가 반드시 레우치터를 흑마법으로 떨쳐놓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광역 마법은 주문 읊는 시간 때문에 안 된다. 평범하게 간략화된 마법도 악마의 힘을 생각하면 상쇄될 공산이 크다.’
드낙의 손에서 검은 불꽃이 쏟아져나왔다. 〈대악마 아카타베루〉에게 바쳐진 마력은 새로운 힘으로 거듭났다.
작은 마력으로 흑마법을 사용할 때와는 다르게 절로 대악마의 그 흉험함이 몸속을 헤집었다. 그건 〈쾌락〉처럼 느껴졌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세뇌였다.
이미 한 번 세뇌를 당해본 드낙은 절로 주변을 둘러보며 확인했다. 다른 사람보다도 더 그런 흉험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중형 괴수들이 서로 싸우는 통에 흙먼지만 자욱하게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인비저블 쉴드(Invisible Shield, 보이지 않는 방어막)〉.”
레우치터의 주위로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생성되었다. 흑마법으로 만들 수 있는 방어 마법이었고, 강력한 마력이 쏟아부어 졌다. 동시에 게페락스의 흑마법이 레우치터를 노렸다.
“〈이블 스피릿 도그 파이트(Evil spirit Dogfight)〉.”
검은 화염을 두른 악령들이 레우치터를 노렸다. 그 숫자는 가히 천이 넘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그들을 막아섰다. 이에 뒤를 힐끔 본 게페락스가 경악했다.
“어째서 흑마법 계열의 방어 마법을?!”
보이지 않았기에 당한 것이다. 레우치터는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며 단번에 독수리의 날개를 훑고 지나갔다.
“흐어억.”
끔찍한 탈력감이 날개를 타고 흐르며 등뼈까지 마비시켰다. 영혼 내지는 정신이 잘린 듯한 감각이 악마 게페락스의 뇌를 흔들었다. 그대로 게페락스가 추락했다.
그 사이에 드낙은 흙의 골램을 더욱 세워서 후방에서 들이밀어 지고 있는 중형 악마 병졸들을 막아 세우며 혁대를 풀어서 바닥에 던져 물약을 모두 깨버렸다.
마력이 깃들게 할 수 있는 중급 연금술로 만들어진 물약이 달빛에 비치며 은빛으로 반짝였다. 그 웅덩이에 손을 푹하고 찔러넣은 드낙이 순식간에 마법진을 그려서 마력을 주력으로 변환시키며 레우치터에게 주력을 계속 보내주기 시작했다.
쭈우우욱!
추락하는 게페락스는 끝없이 몸을 변환시켰다. 곳곳에 날개가 튀어나왔는데 그건 박쥐의 날개이기도 했으며 새의 날개이기도 하였고, 나비의 날개, 몸에 착 달라붙은 채 퍼덕이는 잠자리의 날개이기도 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날개들을 레우치터는 남김없이 무너뜨렸다. 그럴 때마다 게페락스는 날개를 몸에서 떼어내 버리며 또 다른 날개를 돋게 했다. 이내 몸 자체가 얇고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레우치터의 카운터를 치기 위함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그의 몸은 마치 피육으로 만든 천막과 같았다.
“쿠워어어어!”
흙의 골램이 악마 병졸들을 막기 시작하며 하늘로 날아오른 모비딕이 이제 다시 날아오르려고 하는 게페락스를 이빨로 물고 늘어졌다.
넓적하게 변한 입에서 온갖 저주가 퍼부어졌다. 그것은 하나의 힘이 되어서 모비딕의 속력을 늦추었고, 바람을 흔들리는 저주를 남겨 모비딕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굼떠졌다.
파아앗.
동시에 지상에서 태양처럼 황금빛이 터져나갔다. 드낙의 신성력이 더는 빛을 감출 수 없을 만큼 사용되고 있어서였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넝쿨이 낮게 날고 있는 게페락스를 잡아당겼고, 그 넝쿨에서 또 하나가 뻗어 나가서 악마 게페락스를 계속해서 붙잡기 시작했다.
“크으으, 아아악!”
게페락스가 마법을 사용해도 레우치터가 그걸 지나가며 상쇄시켰다. 그의 몸은 주력으로 만들어졌기에 초월의 힘을 그저 관통하는 것만으로도 상쇄시킬 수 있었다.
드낙은 마력을 주력으로 변환시키면서도 마법을 사용하여 게페락스를 지상으로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쿵!
이내 레우치터의 공격능력을 의식하여 자신의 몸을 피막처럼 펼치며 60m보다도 더 넓게 변한 게페락스가 다시 한 번 지상에 추락했다. 모비딕은 거리를 벌리며 산액 브레스를 부채꼴로 쏘고는 그 근처를 배회했다. 악마 게페락스가 다시 한 번 날아오르게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피막에서 게페락스가 쭉 늘어지며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그 앞에 드낙이 딱 섰다. 키 차이는 2배가 넘었음에도 드낙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중립신이 신성력을 확실하게 밀어주고 있는건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지상에서의 게페락스가 잘 싸우지 못해서였다.
흑마법사가 무술을 연마할 리가 없었다. 드낙의 몸을 레우치터가 휘감으며 오고갔고, 드낙의 뒤에 모비딕이 날개를 펼치며 긴 목을 구렁이처럼 비틀어 게페락스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실로 섬뜩한 광경이었다. 그 어떤 초월자조차도 블랙 스케일 와이번과 원시 저주 존재 그리고 중립신의 챔피언을 상대로 홀로 싸우는 것은 부담되는 일이었다.
반면 악마 게페락스 또한 패색이 짙은 얼굴은 아니었다.
“좋다. 끝까지 한 번 해보자.”
게페락스의 몸에서 팔과 다리가 튀어나오고, 그 팔과 다리에서 다시 팔과 다리가 튀어나오며 증식하기 시작했으며 손에서 길쭉한 손톱이 끝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혈대검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몸이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3218년을 존버한 힘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깊이는 그 세월에 준할 만 했다.
“노쇠한 몸을 지금 내 앞에 보여라! 〈올드 카르마(Old Karma)〉!”
지축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