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3 <-- 수도 야전 -->
푸화아악!
“그아아악!”
마법으로 만들어진 용암이 중형 악마 병졸를 그대로 뒤덮었다. 진짜 용암만큼은 아니지만, 맞은 중형 악마 병졸은 사지를 비틀며 발악했다. 끔찍한 고통이 〈프로미넨트 머슬 워리어(prominent Muscle Warrior)〉의 피부가 없는 붉은 근육을 태우며 뼈를 새카맣게 만들었다.
“크아아!”
퍼억!
그가 쥔 무기가 사정없이 휘둘러져서 함께 달리는 아군을 휩쓸었다. 체격이 비슷했기에 넘어지며 뒤엉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위로 마법이 떨어져 내리며 더욱 혼란을 부추겼다.
포위하려는 악마 군세를 막기 위해서 양측면에 마법 마차의 화력이 크게 투입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적이 원하는 싸움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적이 만들려는 그림을 망치는 게 전쟁에서 매우 중요했다.
전방에는 깊이 파둔 땅과 그 앞에 둔 장애물이 있었으며 방패와 창병이 고슴도치처럼 있었다. 2~4m의 창은 충분히 방패병의 희생으로 악마 병졸을 저지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푸휴우우!
마법 마차에서 수많은 마법이 쏟아져 나갔다. 몇몇 마차는 지붕을 뒤로 젖혀서 마법 회로를 하나로 연결하여 다수 마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 위력은 마치 광역 마법과 비슷해 보였지만 범위만 넓을 뿐 대단하지는 않았다.
펑펑 터지기도 하고, 그저 거대한 불이 타오르는 소리, 얼음이 강렬하게 귓가를 때리며 부서져 내렸다. 또한 하늘에서 마법과 흑마법이 부딪치면서 생기는 상쇄 효과로 빛가루가 바람처럼 휘날렸다.
두두두두!
마법 화력이 집중되면서 만들어낸 악마 병졸들의 혼란 속에 말을 탄 채로 내달리는 경기병들이 소수의 중형 악마 병졸을 경기병이 활과 투창을 쏘며 관심을 끌었다.
“하이야!”
그 뒤에서 중기병 수십기가 지나가며 닥치는 대로 랜스로 하체에 사정없이 라이트 랜스를 내던졌다.
휘익, 푸거억!
그간 수많이 제작한 물 먹인 목재 렌스는 정확하게 푹푹 들어갔다. 엄청난 관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종종 질이 나쁜 라이트 랜스는 끝이 완전히 쫙 갈라지면서 폭발하듯이 터져나가기도 했다.
그만큼 중기병의 랜스 투척은 강력한 수단이었다. 평범한 사람조차도 2명, 3명 연달아서 꿰어놓는 게 랜스가 지닌 관통력이었다.
기병이 좌우에서 활약하며 곁가지를 치듯이 포위를 지연시키고, 마법 마차가 거침없이 양익의 악마 병졸들을 쳐부쉈다.
적이 포위를 원했기 때문에 그것을 막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적이 원하는 곳에서 싸우지 말 것.
적이 의도하는 상황과 구도를 완성하게 하지 말 것.
적이 원하는 시간에서 싸우지 않는 것.
그중에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개는 인간이 먹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야전은 악마들에게 좋았지만, 평지는 인간들이 원하는 싸움이었고, 하루를 버티다가 불리하다고 생각한 게페락스가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적이 의도했던 포위 공격 또한 마법 마차라는 큰 자원의 화력을 집중시켜서 막아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구우워어어억!”
“히히힝!”
앞에서 도망치는 경기병들이 좌우로 파리처럼 놀았다. 독특한 것은 경기병들은 가는 방향을 먼저 단궁을 쥔 채로 한껏 뻗은 상태로 달렸다는 점이다. 상대 경기병에게 확실하게 자신이 가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량으로 따지면 툭 튀어나온 방향 지시등이나 다름없었다. 그 덕에 〈하우스 키메라(House Chimera)〉의 시야에서는 정말 똥파리들이 와글와글 거리며 도망치는 것으로 보였다.
쾅!
그 모습에 집을 하나 통째로 집어삼키며 융합된 키메라가 주먹을 쾅쾅 쳐대었고, 그 뒤로 중기병이 지나가며 랜스를 수십 대 쑤셔 박았다. 몸을 돌렸지만 이미 중기병은 말을 돌리고 도망 줄을 놓은 지 오래였다.
쿠웅···!
허무하게 하우스 키메라가 땅에 쓰러졌다. 버둥거리는 놈의 눈을 향해 경기병의 화살이 정확하게 내려꽂혔다.
우와아아아!!!!
양익의 싸움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승리를 거머쥔 기병의 거센 함성소리가 전장을 흔들었다. 특히나 기병들은 마법 마차의 화력에 녹아버린 양익의 악마 병졸들을 철저하게 포위하여 하나씩 죽어갔다. 완벽한 전술 승리였다. 하지만 결국 야전(夜戰)이 문제였다.
어둠은 예로부터 인간의 적이었다. 마법 화력은 과잉으로 양익에 완전히 소모되어야 했다. 보이지 않았기에 일단 모두 쏟아부은 것이다. 이는 〈악마 게페락스〉의 노림수는 아니었고,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었다. 과잉 화력이 쏟아부어 지는 게 당연했다. 또한 악마 군세의 포위 전략을 쳐부수는 게 먼저였다.
“막아라아아아!!!!”
장애물을 물컹거리는 점액 소형 악마 병졸, 〈레서 스티키(Lesser Sticky)〉로 무력화시키며 중앙이 허무하고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방패병만 골라서 쏙쏙 빼먹는 〈빈지 텐타클(Binge Tentacle)〉의 길고 큰 촉수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것은 병사 선에서는 결코 막을 수가 없는 진격이었다. 완벽하게 전방을 카운터쳤다. 하지만 인간 또한 한가지 비수는 가지고 있었다.
“근접 화공 실시!”
“근접 화공 실시!”
불은 인간의 가장 큰 힘이며, 기름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하고, 희귀한 힘이었다. 이런 힘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닥치는 대로 쏘는 건 옳지 않았다. 확실하게 적이 보였을 때, 써야만 했고 야전에서는 적을 타격할 때 근접에서 쓰는걸 즐겼다.
수비하고 있는 적을 타격할 때는 닥치는 대로 쏴야했지만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근접에서 쓸 수밖에 없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마력이나 신성력을 쓰는건 미친짓으로 여겨졌고, 그렇다고 횃불이나 자연적인 불을 쓰기에는 그 빛이 너무 작았다.
기습적인 함정과 장애물 무력화를 감행한 중형 악마 병졸들을 상대로 너무 일찍 패를 꺼내 들어야 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기사 전력은 아직 써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 투입해야 했고, 지금은 아니었다. 악마 병졸들이 장창병과 방패병에게 주춤거릴 때 투입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사들의 체력 소비가 너무 컸다.
“크아아악!”
몸을 타고 시체 기름에 단번에 불이 들러붙었다. 인간의 살덩이로 만들어진 악마 병졸은 불에 취약했다. 병사들의 표정이 단번에 살아났다. 하지만 그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검은불꽃으로 전신이 타오르는 〈블레이즈 위저드(Blaze Wizard)〉를.
밤의 어둠 속에 숨고, 중형 악마 병졸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블레이즈 위저드들이 검은 불꽃을 전신에 태우며 흑마법을 사용했다.
휘오오오오!
혹한의 바람이 불었다. 얼음가루가 기체 기름에 붙은 불을 단번에 꺼트렸다. 시체 기름마저 꽁꽁 얼게 하였다.
“적에게 마법사가 있다!”
병사들이 너도나도 소리를 질렀다. 기껏 아끼고 아꼈던 화공조차도 통하지 않아서였다.
촤악! 촤악!
항아리에서 기름을 퍼서 밖으로 던지고, 불이 붙은 장작을 투척해서 불길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악마 병졸들을 저지하기 위한 불의 저지선은 허공에서 철퍽하고 떨어지는 진흙더미에 집어삼켜 졌다.
“두려움에 떨어라!”
검은불꽃에 타오르는 블레이즈 위저드가 양팔을 쩍 벌리며 중형 마수의 위에서 소리를 질렀다.
“으헉!”
눈앞에서 불길이 사라지니 기가 확 오른 중형 악마 병졸이 앞으로 뛰쳐나갔고, 등자가 없는 블레이즈 위저드는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근접 화공마저···”
기사들이 신음소리를 냈다. 왜냐하면 상대 중형급 악마 병졸이 주춤해야지만 자신들이 난입할 수 있어서였다.
“마법 마차는?”
“전량 모두 마력을 소비했다고 합니다. 양익을 이루던 병사들이 전방으로 투입되고 있습니다!”
전령이 기사의 말에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든 고슴도치 같은 장창병으로 찌르고 찔러서 적들을 주춤하게 만들어야 했다. 거기가 바로 중앙에서의 승패를 결정할 터였다. 하지만 끝도 없이 중형 악마 병졸들은 밀려들어 왔다.
뒤에서도 밀고 있었기 때문에 가고 싶지 않아도 엉덩이가 밀려져서 인간들을 향해서 덤벼야 했다.
“끄아아악!”
병사들은 희생되기만 했다. 기세를 탄 악마 병졸들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장창에 찔려도 짓밟았고, 방패가 막아도 후려쳐서 날려버렸다. 양익의 악마 군세 수천이 마법 화력에 의해서 녹아버리고, 나머지가 기병에게 당했음에도 중앙의 악마 군세는 기세등등했다.
등에 화살이 수백 발 꽂혀있어도 치명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불에 붙어도 블레이즈 위저드들이 막아섰다.
〈악마 게페락스〉는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는 이곳에서 승리를 원했지만 동시에 공멸(共滅)하는 것도 감안해두고 병졸들을 움직였다.
신성력이 터져나가는 것도 전술상 허락되지 않았다. 기사들을 위해서 남겨둬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방은 죽어도 괜찮을 인간들을 세웠기 때문에 개죽음당하는 상황에서도 그 어떤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직 세리안 불파겐만 신이나서 중형 악마 병졸들을 하나씩 사냥하고 있었지만, 개인은 전쟁터에서 한계가 있었다. 그녀가 1마리를 5초 만에 격살해도 그 5초 동안 인간은 다섯 걸음이나 되는 공간을 악마 병졸들에게 허락했고, 그만큼의 시체가 쌓였다.
인간 군세의 총 3만9천의 병력 중 9천 명이 개죽음을 당하고 나서야 결국 기사들이 나섰다. 방법이 없어서였다. 그것도 많이 늦은 때였다.
본래 전술상으로는 함정으로 속도를 늦추고, 장애물로 틀어막고, 근접 화공으로 곳곳을 길목처럼 놓아서 전투 상황을 적게 만들어서 병사와 기사 전력이 합심하여 악마 병졸을 처리하는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하나도 아니고, 3개 모두 막혔기 때문에 중앙은 끔찍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다만 희망이 있다면 양익의 수천에 달하는 중형 악마 병졸이 오기도 전에 녹아버렸다는 점이었다.
“와아아아!!!!”
인간의 좌측. 악마 병졸의 우측.
거대한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동부 중기병 2천. 남부 중기병 3천. 동부 경기병 3천, 남부 경기병 1만.
총 1만 8천의 기병이 전력을 오롯이 보존한 채 허리를 끊기 위해 나왔다. 경기병들조차도 단궁을 버린 채 라이트 랜스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복장은 경장비를 입고 있어서 원거리 타격에 매우 취약해 보였다.
‘때맞춰서 왔다!’
“지금이다! 역전의 때가 왔다!”
마법 싸움으로 주변에 빛가루가 많은 상황이라 더는 어둠이랄 것도 없었다. 그리고 소리만으로도 중앙을 도울 원군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희망적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돌파를 명령한 이실레아와 남부의 지휘관은 죽을상을 짓고 있었다.
‘내 피 같은 기병들을 이런 죽음에 내몰아야 한다니. 개자식들.’
동부 기병 중, 이실레아가 직간접으로 키운 기병은 절반이 넘었다. 이들은 가히 〈정예 기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독기로 무장한 기병들이었다. 그녀의 거칠었던 자유기사의 삶이 절로 녹여진 훈련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중앙이 싼 똥을 치우기 위해서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걸 내비치지 않았다.
전술상 반드시 허리를 끊어야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중앙이 악마 병졸의 기세를 막지 못하고 대치조차도 안 되고 있어서였다. 그냥 죽기만 할 뿐이었다.
“인간을 위하여!”
“몬스터와 악마를 몰아내자!”
“괴물이 이 땅에서 사라질 그날까지 우리는 끝없이 말발굽을 이 대지에 울릴 것이다!”
와아아아!
기병들이 고함을 내질렀고, 그에 화답하듯이 중앙의 병사들 또한 악을 내질렀다.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뛰어들 준비를 했다. 기병이 악마 병졸의 허리를 끊는다면, 단번에 중앙군과 상대하는 악마 병졸들은 〈다수-〉소수〉가 되기 때문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는 생겨난 시체를 통해서 버틴다.’
수비를 버리기 때문에 인간도 많이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다. 전투는 오직 죽음밖에 없었다. 더 우월한 진형도, 더 대단한 덩치도 무의미했다.
“가자! 가자! 가자!”
“으그르으으!”
선두에 선 정예 중기병들이 이를 악 다문 채로 소리를 내며 그대로 중형 괴수들을 지나가며 적당히 기울인 헤비 랜스를 처박으며 지나갔다.
푸버버벅!
“끄어어엉!”
중형 괴수가 뒤로 넘어갔다. 놀라운 기마 능력으로 쫙 갈라진 기병들이 끝없이 돌진했다. 다리 사이를 지나갔다. 1만 8천의 기병의 돌진은 긴 뱀처럼 악마 군세를 돌파해나가면서 허리를 끊으며 스스로 중앙군의 방패가 됐다.
“이글거리는 화염! 선명한 죽음!”
블레이즈 위저드들의 마법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병이 브로치에 걸린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푸화아악!
방어막에 화염이 들러붙으며 터져나갔다. 곳곳에서 방어 마법이 펼쳐졌다. 기병을 한 번 더 살려주는 효과를 지닌 마법 브로치는 동부 마탑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남부의 기병들은 족족 죽어야 했다.
죽음의 길이 만들어지는 사이에 중앙군이 내달렸다.
“돌격하라!!!”
“으아아아!!!!”
방패병이 내달리고, 장창병이 긴 창을 쥔 채로 종종 걸음으로 빠르고 방패병에게 달라붙었다. 그 양옆으로 마법 마차와 중대형급 투석기를 지키던 동부의 정예 보병들이 붙어서 돕기 시작했다.
역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