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1 <-- 수도 야전 -->
휘이이이! 쾅!
건물이 묵직한 바위에 그대로 지붕이 무너졌다. 내부에 숨어있던 중형 악마 병졸인 〈미디움 이블 리자드(Medium Evil lizard)〉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일어나며 전해를 밀어낸 다음 다시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 위로 건물과 뒤섞여져 있는 피와 살점 그리고 뼈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며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인간의 투석기는 실로 강력한 무기였다. 〈마법〉이라는 이름 앞에 색이 바래졌지만 그런데도 전쟁 물자로 여겨질 정도로 위력은 막강했다.
소형 발리스타에서 쏘는 〈주먹돌〉조차도 생명체인 이상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처럼 인간들의 공성 병기는 악마와의 전쟁에서 매우 강력했다.
이 때문에 게페락스는 수도에 중대형 악마들을 숨기고 저들이 진입하는 걸 기다렸으나, 생각보다 피해가 막심했다.
쿵···! 콰자자작···
수도의 중규모 원형 극장의 한쪽 부분이 무너지며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게페락스의 눈에 그대로 담겼다.
‘미친놈들. 어물쩍거리길래 뭐하나 싶었더니···’
닥치는 대로 질량 탄환으로 쓸 것들을 싹쓸이한 듯했다. 세리안 불파겐의 강력한 장력이 깃든 거인의 단궁을 통한 저격으로 〈호른 윙헤드(Horn Wing Head)〉가 인간을 정찰하는 족족 죽였기 때문에 게페락스가 지닌 정보의 양은 제한되어있었다.
당연히 밤이 되었음에도 계속해서 공성 병기를 날리는 인간들은 게페락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제법 큰 건물마저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밖으로 나가서 싸워야 하는 건가.’
내키지 않았다. 여전히 진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될 수 있으면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고 싶어서였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보유한 적이 처음이었기에 더욱 알뜰~살뜰! 소모를 줄이고 싶었다.
자정이 넘긴 시간, 게페락스가 내성에서 날아올랐다. 고함을 지르거나, 적 인간들에게 공포스러운 말도 하지 않았다.
새까만 어둠 속에 칠흑 같은 박쥐 날개를 폈다. 달빛이 선명하게 그를 비추었고, 이내 인간들의 진영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개미 같은 횃불이 펄떡펄떡 뛰는 광경은 〈악마 게페락스〉가 미소를 짓게 하였다.
*
인간들의 전략은 단순했다. 질량 탄환을 모두 소비한 다음, 진입하여 악마 군대를 토벌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700m까지 물러났으며, 수도를 포위하지도 않았다.
모두, 악마 군세가 섣불리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거리를 멀게 두고, 똘똘 뭉친 인간의 군대를 상대하기 위해서 굳이 밖으로 뛰쳐나온다? 어차피 질량 탄환은 수량이 정해져 있었다.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흑마법사로 살아오며 흙을 구워서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던 게페락스의 삶을 몰랐다. 그에게 있어서 이번 기회는 매우 중요한 기회였고, 그저 버티면서 중대형 악마가 피해를 입는걸 좌시하지도 않았다.
또한 게페락스는 인간으로 살아온 악마였다. 인간에 대해서도 잘 알았고,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 또한 마친 상태였다.
“크아아아!”
거친 울음소리가 수도에서부터 들려왔다. 명중률이 형편없는 투석기 공격으로 무너진 성벽으로 그림자가 우글우글거렸다.
댕댕댕댕!
댕댕댕!
댕댕댕댕!
관측병이 서둘러 종을 울렸다. 막힘없이 4번 울리면 가장 위급한 위기 상황을 뜻했는데 실수로 2번째 종을 울릴 때는 3번을 울렸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자잘한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맞아? 아니야?”
“맞아!”
하지만 계속해서 4번씩 종을 울리는 모습에 병사들이 너도나도 빨리 움직였다. 드낙 또한 군막에서 뛰쳐나왔다. 그의 손에는 연금술로 만든 물약이 있었는데, 마주력(魔呪力)의 연습을 하고 있었다.
초월의 힘 하면 옛날부터 사족을 못 썼던 드낙이었다.
‘야전(夜戰)이다!’
드낙이 서둘러 모비딕에게로 향했다. 시야가 제한된 상태라면 무조건 자신의 역할이 매우 컸다.
현재 인간 군세는 1진과 2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진에는 소형 발리스타를 쏘며, 1차 방어진을 형성해있었고, 사각진에 너비가 적고 길쭉한 형세였다.
반면 2진은 중대형 투석기를 쏘며, 2차 방어진을 형성해있고 원형진에 규모가 컸다.
“후우퇴하라! 소형 발리스타의 〈탄성 고무줄〉을 반드시 회수하라!”
1진은 바로 후퇴를 결정했다. 시야가 제한되어있는 야전에서는 2개의 무리로 나누어진 인간의 형세는 매우 조건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가면서도 소형 발리스타의 탄환을 출렁거리며 쏘는 탄성 고무줄을 끊거나 회수해야 했다.
지휘관은 회수를 명령했지만, 절반 이상의 병사들이 그냥 무기로 잘라버리고 도주하거나 소형 발리스타의 엉뚱한 곳을 무너뜨리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병사 1명의 목숨보다 중요한 게 소형 발리스타의 핵심 부품이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절로 〈남부군〉의 수준이 보였다. 반면 변경백의 군사는 가장 늦게 후퇴를 하게 되었다. 드낙은 날아오르며 하늘에 떠 있는 악마를 볼 수 있었다.
‘놈.’
덤빌 생각을 하지 않고, 인간 군대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드낙 또한 섣불리 덤비지는 않았다. 대신 다시 군영으로 돌아갔다. 무너진 성벽이 있어도 길목이 정해져 있었기에 병목현상이 일어나있었다.
“아직 시간은 있다! 야전 전략은 어떻게 하기로 했는가!”
드낙이 고함을 지르며 제장들을 찾아다니며 소리를 질러대었다. 이에 이실레아가 가장 먼저 드낙에게 소리를 쳤다.
“기병이 나가야 합니다! 악마 군세는 항상 포위를 펼쳐서 주변 정보를 차단시키고 학살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변경백 칸이 1진으로 향한 대신에 후방에 있는 2진에는 이실레아가 있었다. 발룬을 통해서 기병을 다루기 때문에 1진에 있을 필요도 없는 게 그녀였다. 허나 남부는 이에 반박하고 나섰다.
“시야가 제한된다면 기병이 오히려 잡아먹힐 수 있소!”
“말에서 내린 기수를 어디에 써먹는단 말이오!”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소란을 듣고 모인 지휘관급 인사들이 시끄럽게 논쟁했다. 결국 모비딕이 내려앉았다. 똑같은 곳을 활강하는 게 와이번은 힘들었고, 계속 높이가 내려가서였다.
쿵.
내려앉자마자 드낙이 외쳤다.
“가만히 멈춰있는 기병보다 달리는 기병이 백배 낫다! 서둘러 보내라! 양익으로 나가든, 하나로 나가든 서둘러 나가라!”
이내 그들은 서로 나누어서 가기로 했다. 동부의 기병은 이실레아가 맡았고, 남부의 기병은 다른 자가 맡았다. 두갈드 부사령관은 숫자가 많아진 보병을 다루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아야 했고, 변경백은 이미 남부와 척을 졌기에 남부 기병을 맡지 못했다.
야밤을 타고 기병이 두 개로 나누어져서 내달렸다. 그들은 서로를 알기 위해서 기수가 횃불을 깃발에 부착해서 내달렸다. 횃불의 불빛은 작았지만, 주변이 어둠이 더욱 깊었기에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드낙은 홀로 모비딕을 타고 올라갔다. 세리안은 1진에 있었으므로 그곳에서 활약할 것으로 보였다.
‘이실레아의 말대로다.’
드낙은 인간을 포위하려고 양쪽으로 내달리는 악마들과 앞으로 천천히 우직하게 나서고 있는 악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드낙의 눈이 좁아졌지만, 달빛만으로는 모든 이들을 파악할 수 없었다.
‘악마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마력을 쓰기도 힘들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광역 마법을 통해서 악마 병졸을 줄이는 게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자신이 중요한 드낙은 그러지 못했다. 공중에 떠 있는 악마에게도 쉽게 접근하지 않았다.
놈이 드낙을 악마 군세가 있는 곳에 떨어뜨리면 그는 심각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붙어놓고 악마를 노려야 했다.
투구덩!
소형 발리스타를 포기한 1진이 2진의 원형진 내로 들어오는 사이에도 중대형 투석기는 계속해서 쏘아졌다. 그물을 바위에 덮고, 기름과 불을 붙여서 쏘았다. 투석된 것 중에는 돌 이외에도 나무도 있었다.
콰자작!
나무가 땅에 부딪치자마자 사방팔방으로 파편이 되어서 튀어나오겠다, 불이 붙어있는 나무였기에 주변이 확연하게 들어왔다.
“구어어어어!!!!!!”
기름이 붙어있는 나무 파편이 박히자 악마 병졸이 괴로워하면서도 계속 앞으로 뻗어 나갔다. 염소의 머리가 척추에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뿔이 공룡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등을 지닌 악마 병졸은 불이 붙자마자 홀로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3층 건물이 두 개는 붙어있는 엄청난 덩치를 지닌 놈이 〈매드 고트(Mad Goat)〉였다. 하지만 그런 대형의 몸을 지녔음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염소가 필요했으며, 키메라였고 반시체라 불이 잘 붙는다는 점이었다.
또한 잘 흥분한다는 점도 마이너스였다.
“께게게겍!”
등에 들러붙은 염소머리가 하나같이 입을 나불거리며 울음소리를 냈다. 불붙은 작은 나무에서 시체 기름을 통해서 불이 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반시체였기에 감각이 어느 정도 살아있었기에 끔찍한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내 그대로 고꾸라졌다. 거대한 캠프파이어처럼 매드 고트의 언덕 같은 덩치가 활활 타올랐다. 뼈가 재가 될 때까지 타오를 것이다.
인간들의 공성 병기가 활약하면서 동시에 포위 또한 진행됐다. 기병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악마 병졸들은 보병들을 포위하는데 신경을 쓰다가 일정 거리에 다가오면 그들을 노렸다.
물론 숙련된 기병은 거기에 어울러주지 않았다. 원거리 수단을 통해서 일단 관심을 끌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중형급 악마병졸이 너무 많다!’
이실레아는 기병들을 이끌며 이를 악물었다. 악마 군세는 지나칠 정도로 중형만 가득했다. 대형의 경우도 그 숫자가 수십은 되어 보였다.
‘얼마나 많은 힘을 수도에서 얻은 거지?’
절로 두려움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실레아는 더욱 고함을 지르며 기병들을 독려했다. 중기병은 한켠에 물러나 돌격의 때를 기다렸고, 경기병은 돌아다니며 포위가 이루어지는 걸 최대한 막았다.
그 덕에 포위망은 완벽하게 자리 잡는데 시간이 걸렸고, 자연스럽게 정면의 악마 군세가 이를 감당해야 했다.
[돌격하라.]
결국 게페락스가 투석기 공격에 못 이겨 천천히 나아가는 정면의 악마 군세에게 공격을 진행시켰다. 악마 게페락스가 직접 만든 악마 병졸들은 그저 생각만으로도 그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악마 군대는 그렇게 어느 정도 이루어진 포위공격을 실행했다. 완전하지 않았기에 게페락스가 인간 기병에게로 날아갔다. 적기병을 홀로 막기 위함이었다.
화르르···
구름을 뚫고 불의 창이 게페락스를 노렸다. 게페락스는 궤도를 변경했지만 추적해서 오자 그것을 손으로 쥐었다.
치이이익!
살이 타들어 갔지만, 이내 마력이 다하여 〈추적하는 불의 창〉이 사그라들었다. 타들어 가던 손이었지만 탄 부위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육체의 힘이 신과 맞닿은 게 악마였다. 물론 그 정도가 되려면 대악마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게페락스도 트롤보다도 더 재생력이 뛰어났다.
“드래곤 나이트.”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냐?”
드낙이 안장 위에 발을 올리는 묘기를 부리며 적혈 대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 소리쳤다. 제법 높은 곳이라 바람이 거세서 소리를 질러야 했다.
“지금이나, 나중이나 어차피 죽여야 할 놈!”
게페락스가 단번에 드낙을 향해서 쇄도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살의에 반응하듯이 드낙의 정수리로 별의 힘이 내려꽂혔다.
그건 그저 빛무리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중립신이 수정한 별들의 힘은 더욱 직접적인 보조를 드낙에게 보여주었다.
살성의 붉은빛과 예성의 하얀빛이 동시에 터져 나오며 기괴한 빛무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저주성의 검은 점들이 튀어나왔다. 그 빛들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게페락스는 경악하며 몸을 뒤로 빼며 재빠르게 물러난 상태였다.
‘별이 저정도까지 도와준다고? 무슨 경우냐, 대체!’
인간은 가질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 드낙에게서 느껴졌다. 모비딕이 거칠게 포효하며 게페락스를 쫓았다. 긴 목이 순간적으로 아래로 향하며 쑥 내려앉으면서 드낙이 아래로 향했고, 게페락스가 위에 있게 되었다.
적혈대검이 휘둘러졌다. 게페락스의 손톱이 길게 늘어나서 대검을 강하게 막았다.
캉!
서로 흔들리며 지나쳤다.
꽈릉!
천둥 소리와 함께 게페락스의 앞에서 검은 불꽃이 일어나며 새까만색의 번개가 드낙에게 쏘아졌다.
화르르!
이글거리는 화염구가 번개를 막으며 동시에 터져나갔다. 악마의 힘이 깃든 초월의 힘과 마력이 서로 부딪치며 상쇄 효과를 만들어냈다.
불꽃축제를 연상하는 빛이 연달아서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상쇄가 된 마력과 흑마력이 가루가 되어서 빛을 내는 눈처럼 지상으로 떨어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