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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19화 (618/1,239)

0619 <-- 겨울의 악마 -->

수도에 도착하기까지 딱 3일 거리를 남겨두고부터 인간의 군세는 끝없는 악마 병졸들을 상대해야 했다. 낮과 밤 철저하게 시달렸다.

“끼에엑! 끼에에엑!!!!”

까마귀의 머리를 단 원숭이가 나무에 들러붙어서 입에서 피가래를 줄줄 흘리면서 고함을 질러대었다. 서로 다른 종의 경계선에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살덩이의 비틀림이 보였다.

실로 저급한 키메라였다. 보통 태어나면서부터 악마인 존재는 쓰지 않는 게 키메라였지만, 태생이 인간이었던 〈악마 게페락스〉는 이런 키메라 또한 자유자재로 뽑아낼 수 있었다.

“개새끼들!”

밤에 보초를 서는 병사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서둘러 몸을 숙였다. 뭔가가 투척되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피어오는 변냄새는 인상을 팍 찡그리게 하였다.

성전대(聖戰隊)가 아니었다면 인간은 진작에 질병에 걸린 이들로 곯아갔을 것이다.

오직 밤에만 활동하는 〈밤똥 원숭이〉는 인간 군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특수 병종이었다. 또한, 이들은 수도의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들이었기에 옷까지 입고 있어서 더욱 기괴했다.

촤악!

선명한 검의 궤적이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을 받으며 반짝였다. 밤똥 원숭이의 몸이 그대로 갈라졌다. 또한 나뭇가지도 뭉텅이로 잘려져서 바닥으로 후두둑 쓰러졌는데, 소리만 들어보면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와 흡사했다.

“더러운 새끼들.”

똥내가 풀풀 나는 원숭이를 죽인 드낙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남들보다 피로가 적게 쌓이는 드낙은 사방팔방을 휘젓고 다니며 악마 병졸들을 죽여야 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까다로운 건 역시나 인간 군대의 행군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고안된 키메라들이었다.

세리안조차도 낮에 신경을 긁는 키메라를 죽여서 밤에는 곯아떨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드낙은 홀로 활동하고 있었다.

“께껙. 께끽.”

어두운 나무 그물 속에서 자루에 똥을 담은 것을 다른 밤똥 원숭이들에게 주는 원숭이가 어깨춤을 절로 췄다. 그러다가 그대로 드낙에게 목이 잘려나갔다.

어두운 숲에서 드낙을 볼 수 있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세파리아스조차도 자리를 잡고, 수비태세를 취한 다음 역공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게 드낙의 암살자로서의 재능이었다. 그저 검은 문의 능력이 없더라도 본능적으로 나뭇잎이 적은 곳으로 발을 옮기고, 운이 그렇게 따라주고 있었다.

‘이대로면 끝이 없다.’

밤똥 원숭이들이 워낙 곳곳에 흩어져 있기도 했고, 확실한 목표도 없었다. 하나 있다면 밤에 인간들에게 와서 똥을 던지는 일이었다. 그걸로 규칙성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사냥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다.

‘이런 어둠 속에서 써야 할 놈은 딱 정해져 있지.’

드낙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주변을 살폈다. 숨을 깊게 뱉은 다음에 코로 깊게 주변의 환경을 탐색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주문을 읊어서 주변에 혹시나 있을 리스크를 확인했다.

그다음에 다시 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마력을 끌어올리며 혁대에서 물약을 꺼내서 바닥에 천천히 흘리기 시작했다.

치이익.

흙이 타면서 파이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액체가 자리 잡았다. 동시에 단번에 끓어오르며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는 곧 마법진이 되었다.

‘마력으로 주력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효율성과 증폭률이다.’

마력과 주력이 함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연금술의 액체. 그 속에서 발생하는 찰나의 증폭률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아쉬운 것은 그 시간을 늘리지 못해서 실제 증폭량은 적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1초를 유지하면 100의 이득이 생기는데 드낙은 0.1초밖에 유지를 하지 못했다. 유명한 연금술사를 죽이면 혹시 가능할지 몰랐다.

드낙이 이름 지은 〈더블 파워〉를 통해서 증폭량까지 챙기고 연금술의 부차적인 효율성을 통해서 더욱 많은 주력을 운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력의 회복속도가 느리기 때문이었다.

그그극···사아아아···

나뭇가지가 마법진으로 기울어졌다. 나뭇가지가 쓸리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마치 주력을 햇빛처럼 여기는 듯한 모습이다. 막대한 마력이 주력으로 변하면서 강력한 주력이 쌓여갔기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보통은 자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내 그 빛을 그림자가 집어삼켰다. 불완전한 레우치터는 아낌없이 그것을 받아먹었다. 팔뚝만 한 그림자가 점차 거대해져 가더니 이내 집채만 해졌다.

마법진에서 변환된 주력을 모두 먹어치운 레우치터는 드낙의 주위를 신나게 맴돌았다. 그는 레우치터에게 명령했다. 발로 죽인 키메라를 툭 찼다.

“이놈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라. 인간에게 들키면 안 된다.”

그림자는 대답하는 대신에 드낙의 머리카락을 헝클며 사라졌다. 장난기가 많은 놈이었다. 드낙은 레우치터를 따라갔다. 높낮이, 지형의 험함. 그런 것에 상관없이 일관된 속력을 지닌 그림자를 따라가는 건 범(虎)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드낙은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이미 훌륭한 중립신의 챔피언으로서의 힘을 지닌 게 드낙이었다.

후욱!

그림자가 단번에 나뭇가지 위에서 항문에 손을 대고 있는 〈밤똥 원숭이〉를 덮쳤다.

살덩이가 비틀리며 생기는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러지는 소리 같은 건 나지 않았다. 레우치터는 그림자. 물리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원시 저주〉를 통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레우치터는 물리력 또한 지니고 있었지만 드낙이 제작한 레우치터는 오직 그림자로서의 성능밖에 가지지 못했다.

“헥.”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까마귀의 부리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마치 영혼이 빨린 것처럼 허물어져서는 쓰러졌다. 나뭇가지의 끝에 발이 끼이면서 나무에 그대로 달라붙었고,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드낙은 놈에게 다가가서 맥을 짚었다. 심장은 뛰고 있었다.

“뭐야? 못 죽인 건가?”

황당한 표정을 지은 드낙이 원숭이에게 물을 뿌렸다. 아무리 정신을 잃고 있어도 물벼락을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법이었다. 하지만 키메라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작은 빛을 가진 반딧불도 이 어둠 속에서는 귀한 황금과도 같다.”

주문을 한 문장 읊으며 드낙이 작은 빛을 만들어내, 원숭이의 닫힌 눈썹을 손으로 들어 올려 눈동자에 빛을 투과시켰다.

‘변화가 없다. 죽은 건가?’

기괴했다. 마치 정신 공격처럼 보였다. 신기한 타입의 공격이라 드낙은 레우치터를 따라다녔다. 동시에 집채만 한 레우치터는 한 마리씩 쓰러뜨릴 때마다 조금씩 덩치가 작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주력을 통한 정신붕괴.’

그 모습을 본 드낙은 진실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초월의 힘을 많이 가지지 않은 〈밤똥 원숭이 키메라〉는 확실하게 초월의 힘에 무력한 놈들이었다.

드낙은 곧장 군영으로 가지는 않았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2시간 남짓이 지나서 원래 크기로 돌아온 레우치터가 드낙에게 돌아왔다. 그대로 드낙의 그림자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고생했다.”

드낙의 말에 그림자가 툭하고 튀어나오더니 다시 꺼졌다. 그 모습에 드낙이 피식했다.

‘천천히 지성이 생기고 있다. 장난 개구리 같은 면모를 지우고 싶지만 그렇게 하려면 없애버리고 다시 레우치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팔뚝만 한 본체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걸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시간에 주력을 투입해서 큰 힘을 지니게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주력〉을 골자로 생성된 존재인 레우치터는 주력의 느린 회복속력만큼이나 그 성장이 느렸다. 아무리 많은 영양분을 줘도 자라는 게 빠르지 않은 나무와도 같았다. 물론 그건 드낙이라서 그렇게 판단했을 뿐이지 고등한 오크 주술사가 봤다면 눈알을 뒤집을 것이다.

드낙의 이런 노력에도 인간 군대의 행군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중소규모의 악마 병졸들이 들이닥쳐서였다.

푸걱!

겐 쟝의 장창에 그대로 목젖 위가 정확하게 꿰뚫리며 깔끔하게 머리가 뜯겨 나간 키메라가 쓰러졌다. 퉁퉁 부어있는 인간의 머리에서 썩은 체액이 쏟아져 내려갔다.

형편없는 키메라였다. 부패조차도 막지 못할 정도로 그릇이 뭉개져 있으며 그저 돌진하는 것밖에 못 했으며 그조차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작은 개 정도의 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염을 제거해라!”

“예!”

하지만 시간을 빼앗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썩은 체액은 실로 혐오스러웠다. 계속 보급로가 이어져야 했기에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특히나 안에서 뭔가 구더기 같지만, 구더기가 아닌 좁쌀만 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어서 그 누구도 가만히 놔두자고 말하지 못했다.

드낙조차도 임시적으로 병사들을 동원해서 혼합 산액 독초액을 만들고, 병사들로 하여금 뿌리도록 명령했다. 소독을 위해서였지만, 독가스가 발생했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을 잘 보고 해야 했다.

“휴식시간을 20분 더 연장한다!”

“휴식시간 20분 더 연장!”

인간은 체력이 존재했기에 이렇게 습격을 받으면 휴식시간이 연장될 수밖에 없었다. 보병의 발걸음이 곧 군대의 이동속도나 다름없었기에 매우 치명적인 지연전이었다. 상대 또한 인명피해가 생기지만 악마에게 있어서 이런 하급 키메라는 별 것도 아닐 터였다.

‘불합리하다.’

겐 쟝은 실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군사학을 공부한 이에게 이런 지연전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상대가 죽든 말든 덤비면서 시간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모비딕, 이실레아의 정예 기병에 남부 또한 기병을 돌렸음에도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계속해서 보병의 발목을 잡는 게 키메라들이었다.

다행이라면 수도 근방을 주름잡던 악마 공중 병졸을 싹 죽여서 그나마 최악은 피할 수 있었다.

“괜찮나?”

피에 절은 모비딕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제법 지친 기색마저 보여주고 있는 모비딕이었다. 겐 쟝이 급히 경례하며 예를 차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노인들이 없는 게 이상합니다. 전에는 어린 아이들도 악마 병졸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는 하급 키메라고.”

드낙의 말에도 겐 쟝은 이해한 표정은 가지지 못했다. 물론 드낙 또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같은 인간이라도 하나의 개체가 쌓을 수 있는 업을 최대한 많이 쌓은 게 노인이었다. 허나 드낙은 악마가 아니었다. 어떻게 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모비딕을 쉬게 하려고 돌아오신 겁니까?”

“겸사겸사.”

마법으로 피에 절은 모비딕을 씻어주고 드낙은 몇몇 정보를 전파했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마을 터의 소멸〉이었다.

“언데드 건축물처럼 악마 또한 건물을 이용할 수 있소. 이 때문에 차라리 시간을 들여서라도 투석탄환을 최대한 많이 챙기는 게 좋을 것 같소.”

드낙의 말에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이미 인간 종족은 전략적으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도외시하며 보병의 속력을 방해하는 키메라를 막지 못해서였다. 동시에 드낙 또한 하나의 수단을 만들어야 했다.

‘악마에게 한 방 먹일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 군대 또한 무거운 질량을 투척할 준비를 해야 했고, 드낙 또한 시간이 필요했다.

흑마법사로 살아온 세월이 압도적으로 많은 악마 게페락스는 좋은 상황임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감정에 휘둘리기는 해도 결국에는 다시 침착해졌다.

겹경사에 실책을 범하던 게페락스는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수도의 압도적인, 확실한, 완벽한 생명체 확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내성부터, 직위가 높은 자로부터 착실하게 시작하여 빠르게 전염되듯이 아래로 흘러가 단 하나도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 병졸은 자식도, 배우자도, 부모도 상관하지 않고 악마 병졸로 만들었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노인들은 포획되어 내성으로 들어갔다는 점이었다.

그의 조커 카드임을 정황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내성에서 은밀하게 노인들을 모으는 한 편, 게페락스는 수도 밖으로 하급 악마 병졸들을 보냈다. 체구가 작은 어린아이부터 중대형 악마 병졸을 만들며 생긴 찌꺼기들. 동물로 만든 하급 키메라 등이 밖에 있는 인간들을 노렸다.

악마가 궐기해도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인간들은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노렸다.

산골 마을이라고 안심하는 인간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가져와 수도에 쌓았다. 수도 내의 건물에는 게페락스의 몸에서 빠져나온 〈근육 벌레〉들이 건물에 자리를 잡고 꿈틀거렸다.

남부 왕국이 자신하는 마법 마차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만든 게페락스만의 악마 병졸이었다.

서서히 피와 뼈(Blood and bone)의 테마로 바뀌는 수도의 모습을 보며 그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하급 병력으로 인간 본대를 지연시키고, 나는 중대형을 충분히 제작한다.’

그냥 돌격만 시켜도 인간이라는 저열하고 열등한 종족은 개박살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페락스는 돌격시킬 생각이 없었다. 함정에 빠뜨리고 최대한 안전하게 죽일 생각을 가졌다.

“쿠워어어어어!!!!”

악마의 영토에서 새롭게 태어난 중형 악마 병졸이 내성 앞 공터의 땅을 헤집으며 튀어나왔다. 〈미디움 이블 리자드(Medium Evil lizard)〉였다. 높이만해도 3m에 달했다.

입과 코에서 불을 내뿜으며 힘을 잃은 박쥐 날개를 등에 단 도마뱀같은 악마였다. 사타구니에서 계속해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와 뼈의 테마를 유지하기 위한 병졸이기도 했다.

신전의 기둥을 무기로 삼고 있었는데, 긴 뱀의 혓바닥이 기둥을 핥았다. 중립신이 손을 내뻗으며 인간들에게 자비를 내려주는 것이 새겨진 기둥에 혓바닥이 휘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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