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8 <-- 겨울의 악마 -->
〈플라이 레더 캐틀(Fly Leather Cattle)〉의 무서움은 압도적인 숫자와 조류의 속력 그리고 골족(骨足)에 있었다.
아무리 큰 매도 60cm를 넘기기 힘들다. 체중은 1.5kg에 불과하다. 날개 때문에 크고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텅텅 비어있는 뼈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매가 내려찍는 발톱에 토끼의 머리가 그냥 몸과 분해된다.
조류는 날아야 하기 때문에 체중이 적어야 했고, 자연스럽게 속력을 이용하는 내려찍기가 중요한 사냥법이 되었다.
플라이 레더 캐틀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악마 병졸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맹렬한 공격성을 지니고 있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내려찍는 놈들이었다.
그런 놈들을 상대로 함께 돌진하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었음에도 드낙은 돌파를 강행했다.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돌격해! 돌격!”
드낙의 말에 모비딕이 하늘로 그대로 솟구쳐올랐다. 엉뚱하게 보일 수 있었는데, 플라이 레더 캐틀을 향해서 돌진하는 게 아니라, 하늘로 높이 오르고 있어서였다.
“말을 안 듣는데!”
세리안이 소리를 내질렀지만 드낙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능숙하게 모비딕을 타고 다녔던 드낙이었다. 이 정도도 못 믿어주면 드래곤 나이트가 아니었다.
1천이 넘는 플라이 레더 캐틀은 모비딕보다 높은 곳에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모비딕으로 비스듬하게 내려가며 속력을 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바로 돌격할 수는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각이 안 나오는 듯했다. 드낙은 제국 전신 갑주에 내장된 〈육법 태엽식〉으로 새겨진 〈추적하는 불의 창〉을 놈들에게 쏘아 보내며 개체 중 빠른 놈들을 골라서 노렸다.
모비딕을 쫓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선두에 놓인 플라이 레더 캐틀은 개체 능력치가 높은 놈들이 분명했기에 대인 마법으로 하나씩 죽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치이이익!
깃털에 불꽃이 붙고, 살이 타들어가면서 불의 창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플라이 레더 캐틀의 날개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 뒤로 몇몇 놈들까지 이어져서 피해를 입었는데, 앞놈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있어서 정말 허무하게 당했다.
날개가 뚫린 플라이 레더 캐틀은 왼쪽으로 틀어지더니 미친 듯이 회전하면서 몇몇 놈들과 부딪치다가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그 과정에서 트림 소리만 울렸다. 목 위로 덜렁거리는 바짝 마른 아래턱에서 침이 주륵 흘러나왔다. 그게 끝이었다.
“한 번은 스쳐 지나가듯이 부딪치며 지나갈 것 같다!”
압도적인 장력을 지닌 〈셔토이언트의 단궁(Chatoyant`s Shortbow)〉으로 제법 재미를 보던 세리안은 활을 집어넣고, 강철이 흐르는 강을 쥐어 허벅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사이렌의 귀걸이(Siren`s earring)〉를 만지작거렸다.
“소리 물결의 귀걸이를 쓸 테니까, 모비딕이 놀라지 않게 청각을 보호하게 해줘!”
“아니, 쓰지마! 혹시 보고 있을지 모르니까! 아껴둬!”
그 말에 세리안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드낙의 말은 실로 겁쟁이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쓰면 안 될까! 우리는 강해! 다른 놈들은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다고!”
‘그건 네 생각이고요.’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죽었던 역사를 알게 된 드낙은 세리안의 말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동시에 모비딕의 노림수 또한 깨달았다.
‘악마 공중 병졸의 고도가 높다. 이래서는 돌파해도 힘들 수밖에 없다.’
솟아오르듯이 돌파를 해야 하는데,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중력과도 싸워야 했다. 모비딕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일 터였다. 안 그래도 다른 날 것들과는 다르게 체중이 대단히 높은 게 모비딕이었다.
드낙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놈들보다 높은 곳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은 스쳐 지나가듯이 부딪쳐야 했다.
“후우우···”
드낙이 심호흡하며 〈적혈대검(Red blood Two-Handed Sword)〉을 양손에 들었다. 길이만 2.2m가 넘는 이 무식한 대검은 판타지 세상에서 살아가는 기사에게 꼭 필요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세리안과 대련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은 강철이 흐르는 강은 세파리아스의 오만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 아니면 무기는 가려서 써야 하는 게 맞았다.
명필이 붓을 안 가린다는 말처럼 검 한 자루만 있으면 중립신과도 동등한 입장에서 행패를 부릴 무인 정도는 되어야지 무기에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절대 안 부서지는 메리트. 탄력적인 파괴라는 비전. 그 간지가 만들어낸 마에 끼여서 살았다. 진작에 중병기를 들 것을···’
드낙은 자신을 자책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드낙 잘못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100명이면 100명 모두 세파리아스의 무력에 매료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 인식을 부수는데 세리안의 역할은 매우 컸다.
꺼억! 꺼어억!
목에서 트림 소리를 내며 거센 날갯짓이 귀를 파고들어 왔다. 정말 산만한 놈들이었다. 모비딕의 긴 머리가 홱 돌아가며 그대로 한 놈의 목을 물어뜯고 비틀며 다시 목을 움직이며 그대로 놈들을 향해 투척했다.
퍼버벅!
공룡처럼 목이 긴 와이번이었기에 플라이 레더 캐틀 수 마리가 휩쓸려서 떨어져 내렸다.
푸다다다닥!
모비딕이 위로 솟구쳐오르고 있었기에 다른 놈들 때문에 시야가 차단된 플라이 래더 캐틀은 무식하게 와이번의 아래로 지나가기도 했다가 뒤늦게 깨닫고 다시 오르기도 했다.
당연히 오르다가 똑같이 와이번을 시야에서 놓치고 그냥 지나가는 놈과 서로 부딪치기도 했다. 뭉툭한 다리뼈가 목이 쑥 박혀서 서로 연결이 된 채로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는 플라이 레더 캐틀도 있었다.
세리안의 〈호른 윙헤드(Horn Wing Head)〉 암살이 빚어낸 혼란이기도 했다. 시야가 좋고, 특히나 무게가 가벼워서 상대보다 무조건 좋은 위치를 만들 수 있는 호른 윙헤드는 플라이 레더 캐틀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다.
그게 죽었으니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꽈릉!
천둥소리가 울렸다. 〈브루드의 자벨린(Brood`s Javelin)〉은 쏘아지고, 다시 수거되기를 반복하며 악마 병졸들을 쓰러뜨렸다. 특히 세리안의 판단력이 얼마나 소름 끼칠 정도로 효율적인지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딱 대검의 리치에 닿을 놈들만 죽이고 있네. 이런 씨?’
물론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수거의 능력이 있는 자벨린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먼 거리를 오가면 그만큼 수거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렇다고 가까이 있는 적을 자벨린으로 치는 것도 우습다. 그러니 적정 거리에 있는 놈을 자벨린으로 죽이고 수거하는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공교롭게도 그게 딱 2~3m의 거리였다. 강철이 흐르는 강이 닿지 않는 거리이기도 했다. 물론 노골적이었기에 드낙은 경고를 했다.
“내 쪽이 아니라 다른 쪽을 노려!”
“모비딕이 향하는 방향을 도와야지!”
서로 티격태격거렸다. 세리안은 전투의 방향성을 드낙이 결정한 것에 대해 불만을 지녔기 때문에 드낙이 적혈 대검에 피를 묻히는 걸 온힘을 다해서 막기 시작했다. 오히려 방금의 경고로 불이 댕겨져 버렸다.
“쿠아아아아!”
모비딕은 산액 브레스를 쏘면서 자신에게 들러붙는 놈들이 많아지는 딱 그 순간에 가장 큰 공격 수단을 뿌려버렸다.
순식간에 플라이 레더 캐틀들의 날개가 가장 먼저 녹았고, 몸이 녹아갔다. 마치 번데기처럼 몸체만 남아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펄럭!
모비딕이 날갯짓을 멈추고 날개를 빳빳하게 폈다. 순간 드낙과 세리안은 무중력을 느꼈다. 그건 찰나에 불과했지만 세리안에게는 실로 기묘한 감각이었다.
쐐애액!
날개를 편 채로 몸을 돌리며 방향을 잡은 모비딕이 날개를 접으며 그대로 혜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왔다!”
세리안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반면 드낙은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숨을 참아 무호흡의 상태로 육체를 긴장감으로 가득 채워 넣었다.
와이번의 몸에 플라이 레더 캐틀이 부딪치며 형편없이 날아갔다.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붙일 수 없는 공중에서 모비딕의 체중과 내구력은 날아다니는 탱크나 다름없었다.
부딪치는 족족 자세가 틀어져서 날갯짓을 해도 괴상한 곳으로 움직이게 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 속에서 드낙은 거침없이 검을 놀렸다.
모비딕이 날개를 바짝 접었기 때문에 마음껏 휘두를 수 있었다. 나중에 가서는 대검에 부딪히는 운동성이 만들어내는 짜릿함과 무호흡에서 오는 답답함이 맞물려서 이내 흉성을 터트렸다.
“우아아아아!!!!”
악마 공중 병졸들의 무리 정중앙을 돌파하고 있었기에 세리안 또한 무리 없이 강철이 흐르는 검을 휘둘러 사정없이 플라이 레더 캐틀을 죽일 수 있었다.
놈들은 남은 단 한 마리까지도 드낙에게 덤볐다. 마법을 사용해도 크게 사용하지 않았기에 전투 시간은 1시간이나 걸렸다. 생각보다 악마병졸이 잘 덤볐기에 그나마 짧게 끝낼 수 있었다.
피에 절은 드낙은 양손으로 적혈 대검을 들어 올려 검면을 올려다봤다. 미약하게 빛을 내는 붉은빛의 균열은 실로 아름다웠다.
‘나중에 가서는 베어지는 감각조차도 없었다. 이거라면 그 어떤 놈도 베어버릴 수 있다.’
대량의 피가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드낙은 자신할 수 있었다. 오우거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팡!
그런 드낙의 생각을 깨며 세리안이 피가 묻은 강철이 흐르는 강을 허공에 터트렸다. 분무기를 뿌린 것처럼 피가 미립자처럼 흐트러졌다.
“손수건으로 닦아봐. 뭐라도 남을걸?”
그 말에 세리안은 자신만만하게 닦았지만 역시나, 새하얀 손수건의 색이 변해있었다. 드낙보다는 좋았지만 세파리아스만큼 완벽하지 못했다.
그걸 본 드낙이 아주 만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이 완벽하지 못한 모습만큼 자신을 변호하기 좋은 것이 없었다.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보며 1천에 달하는 악마 공중 병졸들을 처리한 드낙은 본대 또한 악마들에게 한 번 습격당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정찰하던 놈들입니다. 하지만 숫자가 괴이하게도 많았습니다.”
이실레아가 피에 절은 모습으로 보고를 올렸다. 금방 막 전투가 끝난 상태였다. 드낙과 세리안 둘 다 서둘러 악마 병졸을 구경하러 갔다. 그만큼 독특한 모습을 지닌 게 악마 병졸이었다.
“미쳤군.”
드낙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린아이나 아기를 뭉그러뜨려서 만들어진 찌꺼기나 다름없는 형태를 지닌 악마 병졸이었다.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는 악마 병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실레아는 뒷말을 아꼈다.
쓸모없는 자원을 떨이로 대충 털어버린 것이다.
*
〈제국 미완성 영혼 마탑 깊은 지하〉
〈통달의 대마법사〉라 불리는 아웃버스트가 이글거리는 마그마 지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절반은 영혼으로 일그러진 몸을 지녔고, 남은 몸은 밀랍처럼 새하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검회색의 연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척 봐도 악한 존재로 보였다. 인간이 영혼을 다룬 대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실패를 규모를 키워서 성공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아웃버스트였다. 그리고 그 키는 흑황제 〈제넬루 바르시아〉가 가지고 있었다.
거대한 지하 마법 설비로 만들어진 지하 마그마 지대의 초고온의 마그마를 통해서 수많은 것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생산에서 마법사의 존재는 클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 회백색의 영혼이 풀풀 흘러나오는 〈영혼 속박 마법사〉들은 충실한 부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그 결과물은 청동(Bronze) 인형, 마그마 지대가 아니면 현재 제련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알루미늄(Aluminum) 인형 마지막으로 마법 중갑옷들이었다.
영혼관이 삽입된 갑옷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들어가졌다. 눈에서 붉은빛이 감돌았다. 영혼을 뽑아 올릴 때, 끔찍한 상황에 몰린 인간의 혼은 붉은빛을 지니고 있었다.
철컥.
철소리를 내며 일어난 〈영혼 제국 병사〉는 곧장 무기를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알루미늄 인형은 그 형체가 곧지 않았고, 이동되는 곳에서도 형태가 뭉개졌다. 고온지대를 벗어나고 나서야 그나마 내구력을 지니게 되었고, 전신갑주에 딱 맞추게 스며들어 갔다.
이는 곧 〈영혼 제국 기사〉가 되었다.
이들이 착용하고 있는 중갑옷과 전신갑주는 모두 마력을 흡수하는 일종의 대(對) 마법사용으로 되어있었다. 다른 마법은 오직 방어막 마법과 강화 마법 그리고 대인 마법이 전부였다.
그만큼 〈마력 흡수 처리〉는 용량을 많이 차지했다.
척! 척! 척!
미완성된 마탑을 끝도 없는 영혼 병사들이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6곳이 넘는 곳으로 나누어서 뻗어 갔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흑황제가 실로 잔혹한 웃음을 지었다.
‘제국인들의 피는 제국을 모두 집어삼킬 것이고, 그 영혼은 이 마탑으로 모일 것이다.’
흑황제는 서서히 때가 오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열등한 인류를 하나로 만들어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엘프를 멸망시키겠다.’
“엘프의 완성된 영혼으로 나는 신이 된다.”
마도 사회에 돌입한 제국은 발전 한계에 도달했고, 자연히 완성된 엘프의 영혼이라는 점을 다시 짚어넘어갔다. 그게 〈영혼 마법〉의 시작이었다. 만약, 인간이 영혼적으로 완성된다면, 엘프처럼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바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아웃버스트는 육체의 반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류 전체를 하나의 영혼으로 만들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