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11화 (610/1,239)

0611 <-- 세리안戰 -->

검은 꿈은 중립신과 드낙을 이어주는 다리이며, 힘을 회복하고 있는 중립신의 입맛대로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힘을 소비하기가 싫어서였다.

‘세리안의 고집이 너무 세다.’

세리안의 기지로 두개골에 스틸레토가 박힌 드낙은 그 한 수만으로도 이대로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세파리아스가 항상 노래를 부르는, 죽음보다 가치있는 것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거지 같은 신념.’

그러지 않은 드낙은 그런 신념을 동경하지만 반대로 싫어하기도 했다. 고통으로 굴복할 여자가 아니었다.

고로, 그는 다른 수법을 사용해야 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 편하게 가자.’

장비 같은 여자를 호위로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리고 드낙은 정직한 놈들은 가지 않는 길을 얼마든지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세파리아스 또한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없군. 어째서 살아있는 것이냐···’

마음이 떨렸다.

수십만 명을 고통스럽게 지배했지만 그 또한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임산부의 뱃속에 마약을 집어넣어 운반시키는 마약상인도 자식 앞에서는 천사처럼 행동하듯이 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을 넘어 자신의 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만히 있는 게 이상했다. 동시에 중립신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향상심에 대한 불확실성의 대두.’

마신장은 물론이고, 제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위협을 했음에도! 드낙은 향상심을 불태우기 보다는 쉬는데 바빴다. 그 짧은 여유를 흥청망청 써버렸다. 돈을 구하러 다니거나, 〈대장쥐〉를 위해서 만티코어를 키메라로 만드는 도중에 동남 전쟁을 일으켰다.

이것저것 손대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필멸하는 존재임에도 쓸데없이 시간을 쓰고 있는 드낙은 확실히 이곳의 인간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비를 많이 하는 존재였다. 파괴하기보다는 멍하게 뒹굴거리는 류의 인간이었다.

‘세리안 불파겐은 그런 그를 보완할 수 있다.’

찌꺼기로 삼아 드낙에게 힘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현실에서 옆에 있는 게 더 이득이었다. 무력을 일부 담당할 수 있어서였다.

자기 아버지만 연관되지 않는다면, 제어가 가능하다고 세파리아스가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의 제어란 적어도 드낙의 목에 칼을 박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 이상의 신뢰는 있을 수가 없었다.

‘보험은 항상 필요하지.’

전략은 항상 변화할 수 있어야지 전략이었다. 세파리아스를 검은 꿈에 남겨두고 있는 이유 또한 그러했다. 그 흉험함은 실로 간악했지만, 중립신에게는 그저 선택지에 불과했다.

“확실하게 해야 한다. 세리안은 너와는 다르게 잘 속지 않아.”

“헛소리하지마. 난 힘에 미친 것처럼 연기하는 건 누구보다 잘해.”

통나무를 끌어안고 한 번 죽을 정도로 힘에 취한 모습을 잘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드낙은 연기를 통해서 세리안과 반반을 가기로 세파리아스와 정했다.

“팔 하나만 뜯어내라. 무인(武人)이라면 그것만으로도 패배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오른팔을 뜯은 것만으로도 인간은 치명상이고, 패배였다. 팔 하나만 없어도 휘청거리고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투불능은 곧 패배이며, 죽음이다.

초월적인 각오가 없다면, 그 상태로 걷는 것만으로도 능히 영웅이라 불릴만했다.

폐가 짓눌러 숨만 조금 안 쉬어져도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나약함이었다.

“난 마법으로 한 번 질식해서 너와 스왑한다.”

물론 드낙 또한 세리안에게 피해를 입은 척을 해야 했다. 폐에 피를 채우는 것은 상식적으로 마법을 사용해서 억지로 만들어내야 하는 현상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성력과 트롤의 피가 알아서 해치워버릴 것이다.

그렇게 판은 만들어졌다.

드낙의 목적은 단순했다. 앞으로의 싸움에 자신을 지킬 든든한 호위를 곁에 두는 것에 있었다. 인간의 몸이라도, 불파겐의 후예는 그의 호위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삼국지의 장비나 다름없었다.

세파리아스의 목적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피가 흐르는 정도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직접 키운 딸이 이 세상에서 세력 하나 제대로 갖추기를 원했다.

중립신은 드낙을 도울 인간을 하나 곁에 두는 것으로 만족했다. 동시에 차선책인 〈세파리아스 챔피언 계획〉을 보강할 수 있었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써서 검은 꿈의 시간을 늘렸다.

현실에서의 1초가 검은 꿈에서 수십 분이 되도록 제어했다.

중력으로 끔찍하게 일그러진 검은 연기가 진득한 액체처럼 주변 공간을 흐르고 있었다.

눈을 뜬 세파리아스가 옆으로 기울이며 어깨를 움직였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지는 대검은 목을 반쯤 잘라내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3kg 내외의 k2소총을 휘둘러도 사람의 두개골이 함몰이 될 정도인데 사람 키보다 큰 대검이었다. 그 단단한 인간의 목을 그저 밀어 내려치게 하는 것만으로도 반을 자를 수 있었다.

키긱.

그 힘을 세파리아스는 단지 어깨의 움직임만으로 흘러낼 수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기도 했다.

푸욱.

동시에 검신을 잡아서 폐쪽에 상처를 냈다. 피가 쏟아져나왔다. 또한 마신장의 적발이 폐에 새겨진 마법을 제거했다.

드낙과는 달랐기에 세파리아스는 오로지 육신의 힘으로만 마법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몸을 일으킨 세파리아스를 마주한 세리안이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짰다. 오른팔이 잘리고도 두 발로 서있는 것도 놀라울 따름인데, 무기를 다시 한 번 휘두르기까지 했다.

카가극.

세리안의 독특한 파지법의 움직임에 대검이 입체적으로 궤도를 변경했지만, 강철이 흐르는 검은 강을 흐르듯이 대검의 움직임에 맞추면서 부드럽게 흘러가며 대검이 땅에 박히게 만들었다.

그 기묘함.

마치 차에 치이고도 멀쩡히 일어난 사람을 본 것처럼.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아기를 아무런 상처 없이 받아낸 일화처럼.

현실에서 종종 보이는 그 기묘한 일들과 비슷한 모습이 세파리아스의 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검을 거둬라. 세리안.”

그런 검술을 보여주고 이름을 불러주었다. 세리안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내가, 너의 아버지다.(I am your father.)”

“믿을 수 없어···그는 죽었어.”

그런 말에도 세파리아스가 인자하게 웃었다.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맨손으로 황소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잡을 수 있을 때야말로, 상대를 내려다볼 수 있을 거라고. 그전까지는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말이다.”

세리안이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려 왔다.

“아직 멀었구나. 검으로 세상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하거늘.”

그녀가 씩 웃었다.

“그런 미친 소리를 여전히 하시는군요.”

세파리아스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잘린 오른팔을 고쳐주고 싶었지만, 그건 드낙의 몫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 회복 물약 덕분에 출혈은 멈춘 상태여서 급한 게 아니었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곳에 인간은 도달할 수 있어.”

그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오로지 그 같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닿을 수 없는 곳을 봤기 때문이다.

세리안을 껴안으며 머리카락을 쓸었다. 거친 자신의 적발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가지런한 붉은 머리카락이었다.

그 온기를 느끼는 것도 잠시였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없었다.

“그가 실패하지 않게 밑에서 받쳐주는 말이 되어라. 그리한다면 내가 다시 부활할 날이 올 것이다.”

“···저에게 스틸레토를 던져주신 건 아버지셨나요?”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지.”

세파리아스는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비유적인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는 절 이기지 못했어요. 다시 한 번 싸우면 제가 확실하게 이길 수 있어요.”

“그놈의 고집. 넌 그건 날 안 닮았으면 한다. 그리고 스틸레토가 없었으면 너의 패배다.”

“재생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어요.”

“투정부리지 마라. 난 곧 돌아가야 해. 이 몸은 드낙의 것이다.”

세리안은 세파리아스와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투정을 부렸지만, 세파리아스는 그것을 받아주지 못했다.

“넌 언제나 내가 관련되면 분노에 몸을 맡기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라.”

모든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딸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죽이겠다고 제가 말했는데도 그는 절 죽일 생각을 가지지 않았어요. 그런 어리석은 남자를 어째서···”

세리안은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에 빈틈이 많은 녀석이지만, 함께 할수록 제법 그 관계가 오래가는 친구다.”

그 말에 세리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파리아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홀로 군림하는 자였기에 함께 하는 자가 없었다.

쪽.

세파리아스가 세리안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어깨를 밀며 다시 눈을 맞추었다.

“그를 가르쳐라. 제대로 된 무력을 손에 넣게 해.”

“어느 정도로요?”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섬뜩하게 속삭였다.

“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역시면 역시나.

뭔가를 꾸미고 있는 말에 세리안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세파리아스는 눈을 감았다. 초월적인 육신을 지녔기에 주변의 분위기마저 바뀌게 하는 인간이 사라지고, 드낙이 눈을 떴다.

세리안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른팔을 잃었음에도 놀라울 정도의 균형감각을 보여줬다.

“저라는 검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대의 검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드낙은 손을 뻗었다. 황금빛의 신성력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장비를 호위로 두는 것만큼 편한 것도 없지.’

싸우기 귀찮은 놈이 있으면, 세리안에게 생포를 시키게 한 다음에 목만 쳐도 될 것이다. 그런 광경을 생각한 드낙이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인재를 영입하는 건 제법 재미가 있었다.

“적혈대검 내놔.”

“예?”

세리안이 빡친 표정을 지었다.

“그냥 달라는 게 아니니까, 그런 표정은 짓지 말고.”

드낙은 가장 먼저 적혈대검부터 빼앗았다. 대신 강철이 흐르는 검을 내어주었다. 그녀는 그럼에도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가신의 물건을 탐하는 주군이 어딨습니까?”

“응.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거야.”

발룬조차도 이실레아에게 〈대여〉해준 것이 드낙이었다. 또한 마신장을 죽이기 위해서는 적혈대검이 필요했다. 대검의 길이만 해도 225cm에 달했다. 드낙의 팔과 합치면 3m가 넘는 리치를 지니게 된다.

체중. 키. 육체의 연장선인 무기의 길이.

이 삼박자가 파괴력을 가장 키우기 좋은 3요소였다.

적혈대검을 빼앗은 드낙이 대검을 어깨에 걸쳤다. 제법 폼이 났다.

“모비딕!”

와이번을 불러 올라탔다. 세리안을 한 손으로 잡아당겨서 뒤에 태웠다. 그녀가 모비딕에 올라타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비늘을 하나 뽑는 것이었다. 마법사에게 의뢰해서 작은 아티팩트로 만들어도 유용할 터였다.

“가자.”

모비딕이 내달리다가 날개를 펼쳐서 그대로 날아올랐다.

드낙이 데려온 불파겐의 후예에 대한 소문은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에게로 쫙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마다 들려오는 드낙의 괴성 때문이었다.

“형편없네! 이걸 못 맞추면 손가락 잘라야지.”

세리안이 대검을 휘두르는 드낙을 도발했다. 그녀는 드낙에게서 〈호위장(扈衛將)〉이라는 직책을 받았다. 직급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서 바로 정하지는 못했다. 그런 드낙의 나약함은 세리안에게 있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종류의 나약함이었다.

힘을 갖추고 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휘두르지 않고, 남에게 맡긴다.

황당한 짓거리였다. 실무는 밑에 사람에게 맡기고 골프치기 바쁜 회사 총수의 마인드였다.

‘에휴!’

물론 그녀가 발악해도 드낙의 방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워커홀릭형 인간이 아니라 나태백수형 인간이었다.

최소한의 미래가 약속되어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빈둥거리는 족속이었다. 작은 행복에 만족한다고 칭찬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단점에 불과했다.

밖으로는 공명(功名)을 떨치며 부귀(富貴)를 드높여 재산과 지위를 높이는 게 인간의 행복이라고 여기는 이들뿐이었다.

안으로는 수신(修身)하여 끝없이 무력과 지력을 갈고 닦는다.

문무겸전(文武兼全)이 매우 심한 것이 남부 왕국의 수신이었다. 즐길 거리가 적은 세상이었기에 드낙은 그저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세리안은 더욱 드낙과 새벽대련에 힘을 쏟아부었다.

‘어렵다.’

드낙은 대검이라는 무기를 가볍게 보고 있었다. 실제로 대검은 드낙의 근력을 생각하면 가벼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리안을 잡을 수 있는건 또 아니었다.

“내려치기를 왜 해? 모든 생명체는 좌우로 피하기를 좋아해. 긴 무기는 시각적으로도 위협적이기 때문에 뒷걸음질 치는 상대는 그렇게 교육받은 상대뿐이야.”

아무리 힘이 대단해도 판단력이 인간 상위 50%에 머무는 드낙으로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했다. 물론 판단력이 구려도 그간 쌓은 탑이 있었기에 이류 수준은 될 수 있었다.

그곳보다 더 높이 가려면 혹독함밖에 없었다.

땀을 흘리고 있는 드낙에게 이실레아가 임시 연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신을 쥐고 있는 것이 남부에서 소식이 온 듯했다.

“일왕자가 드디어 뜻을 굽혔나 보지?”

그 말에 이실레아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남부의 피난민들이 미친 듯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드낙의 눈이 좁아졌다. 겨울에 남쪽에 대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피난민을 감당할 여력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부로 돌릴 수도 없다.’

오크 대침공으로 박살이 난 것이 북부였다. 남에게 겨울을 견딜 양식을 줄 여력이 없었다. 동부의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찬스임에도 절로 조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