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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10화 (609/1,239)

0610 <-- 세리안戰 -->

드낙과의 근접전을 한 대가는 혹독했다. 오른 팔뚝은 호랑이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살점이 사라져 있었고, 왼쪽 어깨는 움푹 들어갔다.

회복 물약을 통해서 몸을 회복하고 있는 세리안의 시야의 한쪽 구석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오싹함이 그녀의 손끝, 발끝에서 시작되어 척추를 타고 흘러 뇌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킨 그녀의 오른 팔뚝은 아직도 살점이 뜯겨 나간 채였다. 회복 물약이 흐르며 빠르게 회복시키고 있었다. 최고로 좋은 제국의 회복 물약이었지만, 드낙의 손에 뜯겨 나간 살점의 크기가 너무 컸다.

스틸레토가 머리에 꽂힌 채로 상체만 일으킨 드낙이 스스로 그것을 뽑아서 세리안에게 내던졌다. 그건 세파리아스가 자신의 딸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눈빛이 사라지고, 어중간한 눈빛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초점이 맞춰졌다.

“아그그···제법인데.”

드낙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세리안의 한 수를 칭찬했다.

“어···떻게.”

그 모습을 본 세리안은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가설이 그녀의 머리로 들어왔다. 머리를 손으로 만지며 왼손으로 무릎을 받치며 일어나는 드낙에게 그녀가 물었다.

“넌, 흑마법사의 손에 만들어진 키메라인가?”

“그럴 리가. 키메라의 존재는 〈초월의 힘〉으로 만들어지기에 오우거의 적발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엘프의 기술로 하프 트롤이 된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인간의 그릇은 정해져 있다. 트롤의 힘을 어찌 인간의 그릇에 담을 수 있을까. 신이라도 힘든 과제를 어찌 엘프가 빚어낼 수 있는가.”

“그럼 대체 무엇이냐? 어떻게 머리가 뚫리고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냐.”

드낙이 귀찮게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세리안을 비난했다.

“불파겐의 서열 정리가 생사결이었던가?”

“넌 불파겐이라고 할 수 없다.”

“개소리. 그렇다면 내가 전수받은 오거 야크트는 무엇이냐?”

“거짓된 사냥술이겠지. 애초에 비전이라고 말한 것부터가 그 불완전함을 말하고 있다.”

“그건 숨기기 위해서···”

드낙의 말을 세리안이 끊었다.

“난 불파겐의 적통한 후계자다. 그런 나에게까지 숨길 이유가 없지. 사냥술이라고 말했어야지.”

그 말에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는! 빌어먹을···’

짜증이 확 쏟아 나왔다. 그녀가 먼저 사냥술이라고 말했기에 이 오해를 풀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오해를 풀 생각 또한 드낙에게는 없었다.

“봐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웃기는 소리. 나한테 한 번 죽었으면서.”

세리안은 드낙의 말을 받아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회복 물약을 천천히 오른 팔뚝에 흘려보냈다. 상처를 치료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눈치가 좋은 드낙은 그걸 알면서도 놔두었다.

한 손에는 적당한 기술을. 다른 손에는 괴물의 육신을 가진 상대가 지닌 강점보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세리안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적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죽여? 난 안 죽었는데? 무슨 개소리지? 죽은 사람이 말도 하네.”

드낙이 빈정거렸다.

“네놈···!”

그녀가 욱했지만 이내 냉정함을 되찾았다.

“목을 잘라도 살아있을 수 있는지 보자.”

대검을 양손으로 잡은 세리안이 심호흡을 하며 다시 대검을 어깨에 짊어졌다. 피를 흠뻑 머금은 적혈 대검의 검신은 균열이 난 붉은 빛이 은은하게 나오고 있었다. 척 봐도 흉흉했다.

‘가장 까다로운 건 적혈대검(赤血大劍) 하지만, 그 장점을 이용하면 세리안을 이길 수 있다.’

일반 오우거의 2배 덩치를 지닌 마신장을 잡으려면 적혈대검에 대한 언급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세파리아스는 그에 대한 걸 말해주었다. 그게 없으면 숟가락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아서였다.

세리안이 이류 수준에 불과한 드낙을 아티팩트로 속여서 한 방을 먹인 것처럼, 드낙 또한 이 심리를 이용해야 했다.

‘필요한 비전은 있다.’

검은 꿈에서 심심한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 허무맹랑하지만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드낙은 제법 함께하기 좋은 제자였다. 수많은 비전을 생각할 수 있어서였다. 그덕에 드낙은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중 절반이 나사 빠진 것들이 많았다. 드낙에게는 소용없는 것들이었다. 특히, 생명력을 마력으로 전환하지 않았기에 제국 전신갑주를 통해서 숨긴 채로 신성력을 뿜어내고 있는 드낙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인간 같은 하위 종족을 상대로는 패배할 수가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생각을 버려야 했다.

오크의 신체로 두개골마저도 강해진 것이 드낙이다. 그것을 꿰뚫는 것은 보통 무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수많은 아티팩트를 두르고 있다. 사지 한두 개는 자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싸움에 임해야한다.’

좋게좋게 패배를 인정할 자가 아니었다. 드낙이 생각을 고쳐먹었듯이, 세리안 또한 남다른 각오를 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는 못 막는다. 단기전으로 가야 한다.’

상대에게는 〈일류의 흐름〉. 호흡을 방해하여 승기를 잡는 것조차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생명력이 높다는 것은 지구력 또한 좋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드낙이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흉포한 기세는 전과는 완벽하게 달랐다. 그에 질세라 세리안 또한 배에 힘을 주며 함성을 내질렀다.

리치가 긴 세리안의 적혈대검이 휘둘러졌다. 롱소드가 이를 막았다. 동시에 드낙이 체중을 기울였다.

〈크니에 뷜데스 포이어(무릎의 사나운 불꽃, Knie Wildes Feuer)〉.

무릎에 체중을 강하게 실었다. 오른발이 앞으로 나가며 땅을 찍자마자 순식간에 좌로 움직였고, 왼발이 이를 받아치며 순식간에 우로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세리안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했다. 그건 〈상대를 죽이는 비전〉 같은 게 아니었다.

단순히 2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이었다.

무릎에 큰 부하가 생기는 행위였기에 평범한 인간은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비전이었다. 1승이 아니라 2걸음을 위해서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자는 없다. 고로, 세리안은 허를 찔릴 수밖에 없었다.

“그아아아아!!!!”

세리안의 견제 없이 순식간에 좌우로 움직이며 불꽃처럼 두 걸음을 앞서나간 드낙의 괴성에 그녀의 양어깨가 위로 올라가 상단세를 취하며 그대로 드낙의 목을 노렸다. 드낙의 롱소드가 단단하게 막고 있었지만, 그 힘의 방향을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았다.

대검의 리치를 뚫고, 안으로 들어온 상대에게 보이는 것은 오직 대검수의 몸뿐이다. 고로 그런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신체로 죽여서는 막힐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대검으로 죽여야 한다.

〈푸브 스타체르(발 찌르기, Fub Stachel)〉

강철이 흐르는 강이 마치 지렛대처럼 대검을 받쳤고, 대검의 앞부분이 아래로 향하며 드낙의 왼쪽 어깨를 갈랐다.

무가 썰려지듯이 제국 전신갑주가 잘려나가고, 살을 가르며 뼈를 부수며 그대로 팔을 잘라냈다.

피가 쏟아져나왔다. 동시에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세리안이 대검을 손에서 놓고, 왼쪽으로 발을 옮겼다. 드낙의 왼팔이 썰려졌기에, 왼쪽으로 움직이는 게 아주 효율적이었다.

상대의 팔이 잘렸으므로 공격할 수 없어서였다. 당연히 드낙은 그녀를 죽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세파리아스에게 대련으로 3할의 승률을 자랑할 수 없다. 드낙은 생각하는 것보다 자신의 육체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

〈푸브데스 페르센스 판겐(바위의 발잡기, Fub des Felsens fangen)〉.

육중한 바위에 끼인 사람처럼 세리안이 출렁거렸다.

“끄흑!”

끔찍한 고통의 소리를 냈다. 발로 강하게 그녀의 발을 밟은 드낙이 그제야 멈췄다.

드낙은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세리안과 박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마 대검의 손잡이까지 도달한 상대를 대검으로 자른다는 미친 비전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수비를 하면 양손에 먹힐 뿐이다!’

오른손으로 정권을 내질러서 세리안의 배를 노렸다.

‘정면으로 가드할 수 없다!’

저 힘을 정면으로 부딪칠 수 없었다. 세리안이 왼손바닥으로 드낙의 정권을 옆으로 후려쳐서 궤도를 변경했다. 하지만 단번에 반대로 휘둘러졌다. 아무리 힘의 방향이 달라도, 세리안이 보낸 운동량을 순간적인 힘으로도 능히 이겨낼 힘을 지닌 게 드낙이었다.

꽝!

〈롤레온의 방패(Rollleon’s Shield)〉가 움직이며 휘둘러지는 드낙의 팔을 막았다. 굉음이 일어났다. 드낙의 오른손이 그대로 세리안의 투구에 있는 뿔을 잡았고, 세리안은 스틸레토로 드낙의 옆구리를 푹 하고 찔렀다.

콰드득!

제국 전신 갑주가 박살이 나며 그대로 스틸레토가 깊게 찔리며 빠져나왔고, 피가 쭉 하고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드낙은 막을 생각도 안 했다. 그대로 투구의 뿔을 잡아당겼다. 세리안의 왼손이 투구의 턱걸이를 풀며 투구만 드낙의 손에 빠져나왔다.

콰드득!

빠져나온 쟝의 스틸레토가 다시 한 번 폐를 깊이 찔렀다.

“으아아아아!!!!”

세리안이 미친 듯이 드낙을 다섯 번 찔렀다. 그 사이에 드낙은 롤레온의 방패를 무식하게 부숴버렸다. 단단히 고정되어있는 방패의 가죽이 뜯겨나가며, 세리안의 몸이 왼쪽으로 휘청거렸다.

“후웁!”

세리안이 숨을 참으며 전신에 힘을 불어넣으며 반 바퀴 돌더니 오른발로 드낙의 사타구니 아래로 집어넣어 발 하나를 고정했다. 오른손으로 목을 두르고, 왼팔뚝에 손을 걸쳐서 단단히 조였다.

“흐으!”

목을 꼴깍 삼킨 드낙이 오른손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오른팔을 잡았다. 동시에 밟고 있던 발을 빼며 세리안을 잡아당겼다. 땅에 패대기칠 기세였다.

꽈악!

드낙의 머리채가 잡혔고, 세리안이 드낙의 위로 뱅글 돌며 무릎으로 그의 턱을 올려쳤다. 드낙이 잡아당기고 있었기에 그 파괴력은 드낙의 힘과 견줄만했다.

스스로의 힘에의해서 한 대맞은 드낙이 순간적으로 기절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세리안의 오른팔을 쥐고 있는 팔은 힘이 빠질 생각이 없었다.

푹푹푹! 푹푹!

박자를 타며 쟝의 스틸레토가 이미 찔렀던 드낙의 폐를 다시 한 번 다섯 번 찔렀다. 제국 전신 갑주는 파괴되고, 균열이 나서 무너져내린 지 오래였다.

“크아아아!”

1초 남짓 안 되는 시간을 기절한 드낙이 다시 세리안의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세리안은 슬라이딩을 하며 아래로 향하려고 했지만 드낙의 힘에 의해서 그대로 딸려 나왔다.

그 사이에 신성력과 트롤의 피로 재생된 왼팔이 세리안의 오른쪽 어깨를 단단히 쥐었다.

섬뜩할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촤악!

피가 쏟아져나왔다. 오른팔을 잃은 세리안은 이를 꽉 깨물며 드낙의 복부에 스틸레토를 수없이 찔러대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인간인 그녀는 출혈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드낙의 목젖이 껄떡 껄떡 움직였다. 하지만 폐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쇳소리만 빠져나왔다.

무릎을 꿇은 드낙을 보며 세리안이 바닥을 기었다. 혁대에서 회복 물약을 꺼내 오른팔이 뜯겨 나간 곳에 부었다. 조금 남은 건 마셨다.

으드득.

이를 물며 한쪽 무릎을 세웠다.

“크흐으으으으!”

마지막 라운드에 쓰러진 복서가 일어나려고 발악을 하듯이 이를 악 다문 채로 소리를 질렀다. 꽉 닫힌 문 앞에서 소리를 지르듯이 발악했다. 목젖에 핏줄이 돋아났다.

일어난 세리안이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을 움직여 대검에 왼손을 기대었다. 몸을 기울여 박혀있는 대검을 비스듬하게 만들고, 반대로 향하여 기울어진 대검의 아래를 민 다음에 다시 검면으로 움직여 어깨를 걸치며 대검을 짊어졌다.

“허억. 허억.”

신은땀이 턱을 타고 땅으로 떨어졌다. 입술이 새파랬다. 하지만 세리안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폐에 피가 가득 차서 숨조차 쉬기 힘들어하는 드낙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드낙의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손이 강철이 흐르는 강을 쥐었다. 하지만 더 이상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근육에 산소가 없었다. 심장을 노리지 않고, 세리안이 폐를 노린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왼팔을 그렇게 빨리 재생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지. 이놈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밖에 보지 못한다고. 평생 노력해도 일류에 도달할 수 없는 무인(武人)이라고.”

더듬더듬 말하며 세리안이 드낙을 모욕했다. 그가 가진 열등감을 말했다.

범인(凡人)은 평생을 노력해봤자 천재와 나란히 설 수 없다.

범인(凡人)이 만든 온갖 것들도 천재의 한마디보다 못하다.

범인(凡人)이 100일을 노력해서 만든 정성이 천재의 하루와 같다.

“죽어라. 그래도 너의 진짜 모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 노력은 실로 존경스럽다.”

평범한 사람이 천재의 오른팔을 뜯어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마지막에 가서야, 승리자라는 위치에 올라서고 나서야 세리안은 그를 칭찬할 수 있었다.

드낙은 이를 듣지 못했다. 입에서 허파가 빠진 소리만 낼 뿐이었다.

휘청.

세리안이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을 뻔하자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세를 잡고, 드낙의 목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목이 잘리면 아무리 잘난 재생력이라도 끝이었다.

내려쳐지는 대검과 동시에 주변의 분위기가 변했다.

모든 생물이 범(虎)을 앞에 둔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곳에 폭군이 군림하듯이, 모든 것이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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