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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606화 (605/1,239)

0606 <-- 동남 전쟁 -->

동부와 남부의 협정은 빠르게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이미 수도에서 메시지 마법이 도달해있었고,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부 본대는 동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사절단을 먼저 불파겐에게 보내었다.

자신들이 쫄리기 때문에 사절단을 먼저 보낸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드낙은 변경백의 영지를 요구하기로 했다. 두 사람의 조언을 모두 절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다.

“변경백의 영지를 내놓으시오. 그렇다면, 화친을 맺겠소.”

“무리한 요구요.”

“하지만 지금 백금 왕가는 들어줄 수밖에 없소. 한시, 한때가 아까울 지경이니.”

“······”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드낙의 말에 메시지 마법 너머로 일왕자가 침묵했다.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낙의 평판과 그 행보를 보면 블러핑을 할 자로는 보이지 않아서였다.

한다면 한다. 안 한다면 안 한다. 또는 항상 뒤통수를 맞는 게 그였다.

“그렇다면 노획품을 일정 부분 반환하시오.”

일왕자의 말에 이곳에 있는 자들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들어주려고 하고 있어서였다. 사절단 중 몇몇은 턱밑까지 튀어나오는 말을 속으로 삼키기에 바빴다.

그건 이실레아도, 겐도 마찬가지였다. 드낙이 폭주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였다.

‘노획품을 반환하기는 싫은데.’

드낙은 잠시 고민했다. 앞으로 동부를 자신의 입맛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재물이 필요해서였다.

“그렇다면, 변경백의 영지를 주인 없는 땅으로 만들고 싶소. 서로를 위해서요.”

처음 일왕자가 말했던 화합과 비슷한 결과를 냈다. 서로 상종하지 말자는 뜻이기도 했으며, 이건 북부의 단교와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교보다는 완화된 조치였다.

‘나쁘지 않다.’

아라온 플래티넘(Araon Platinum)은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척박한 채로 유지된다면, 전쟁의 규모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열악한 도로 상황에서 대군을 동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곳보다 몇 배는 전쟁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변경백의 영지를 지나는 동안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 반면 그것을 막는 입장에서는 큰 이득으로 돌아갔다. 가만히 있어도 보급을 불사르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였다.

“좋소. 변경백의 영지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곳〉이 될 것이오.”

바로 협정서를 작성했다. 그것으로 동남전쟁이 끝이 났다. 악마 게페락스가 억지로 전쟁을 중단시킨 것과 같았다.

‘조금만 잘못되었어도 큰일이 날 뻔했다.’

메시지 마법을 끈 아라온 왕자는 얼굴을 문지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드낙이 변경백의 영지에서 일전(一戰)을 벌인다고 생각했다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마에게 승세가 기울었을 터였다.

“서둘러 돌아간다! 목적지는 수도다!”

그가 발악하듯이 소리쳤다. 수도는 지금 최소한의 치안병력 이외에는 그 무엇도 없었다. 반드시 지켜야 했다. 비단 남부왕이 있어서가 아니고, 가장 발전된 곳이라서가 아니었다.

수도의 몸집만큼, 인간이 쉽게 모일 수 있는 곳이 바로 수도였다. 악마의 입장에서는 손쉽게 인간이 모일 수 있는 수도의 탈환이 가장 중요했다. 그곳을 찍어 파괴한다면, 인간은 하나로 뭉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모인다고 해도 뭉치기 전에 악마에게 의해서 박살 날 수 있었다.

남부 왕국의 수도를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악마 준동을 쉽게 막냐, 못 막냐로 갈릴 것이다.

반대로 악마 게페락스 또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항상 대군의 시작은 수도에서부터 출정식을 열기 때문이다. 군사학이 부족해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큰 고비가 될 것이 분명했지만, 그런데도 성공한다면 남부는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악마에게는 반드시 후려쳐서 점령해야 할 곳이었고, 남부인에게는 반드시 지켜서 힘을 모아 악마를 토벌할 시발점이 되는 곳이었다.

“서둘러 움직여라! 군막은 군막 표시가 된 짐마차에 실어라! 할 일 없는 자는 베테랑 병사가 인솔하라!”

일하지 않는 병사가 많이 보였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동부의 경우에는 부사관급 인사인 〈보기사〉가 있었지만, 남부는 그런 게 없었다. 중간에서 중재하고 관리하는 무관의 중요성보다는 기사단으로서의 기사가 많았다.

“군막 해체라도 도와!”

“예!”

관리직은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기에 기사 따로, 병사 따로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오직 인증받고, 검증받고, 확인된 기사만이 병사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숫자는 매우 소수에 불과했다.

“마법 마차는 대기다! 대기! 누가 움직이나!”

무가 가문이 아닌 플래티넘 가문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기병들이 남기고간 군막을 보병들이 처리했다. 기동성이 높은 기병은 최단시간 내에 수도로 돌아가서 방위에 힘써야 했다. 각개격파가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악마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왕자 또한 서둘러 말에 올랐다. 말은 결코 빨리 가지 못했는데, 전력질주를 해도 교체할 말이 없었기에 적당한 속력으로 가는 게 최선이었다.

“성전대(聖戰隊)에 대한 소식은 따로 없던가?”

동시에 신전에도 기대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게 신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암울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는 사제들을 잡으면서 수도가 상당히 어수선해졌다고 합니다.”

“뭐라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아라온 왕자에게 관리들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남부에 잔류하고 있는 사제들은 하나같이 그 성정이 악하고, 부패해있었다. 악마와 싸우기보다는 도망치는 길을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그들이 모은 재물을 다 쓰기도 전에 죽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소란은 남부 전역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반면, 동부는 남쪽 국경선에 잔류하게 되었다. 겨울에 하루를 가만히 대군이 있는 것은 엄청난 소비를 감당해야 했음에도 드낙이 밀어붙였다. 곧, 자신들이 남부로 향하게 되어서였다.

물론 이 정도의 명령을 진행하려면 그 내막 또한 알려줘야 했다.

원탁회의는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그만큼 남부 본대의 지휘관급 인사는 많았고, 보좌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중에서 이실레아, 겐, 길게이가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장수들이었다.

“남부에서 악마가 준동했다. 남부 또한 성이 함락되면서 깨달았을 것이고, 허둥지둥 물러갈 수밖에 없었겠지.”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그만큼 악마가 이 세계에 나타난 일은 드물어서였다. 그저 이야깃거리로만 남아있을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엘프와 드워프들 때문이었다.

마신(魔神) 성현(Seong-Hyeon)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마신장(魔神將)조차도 그들을 피해서 숨어 사는 게 일반적인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악마들도 쉽게 이 세계에 오지 않았다.

두 종족의 화력을 생각하면, 적당히 흑마법사로 인신공양이나 받아먹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악마 아카타베루는 이곳에 현신하지 않았고, 흑마법사인 게페락스가 스스로 악마가 되었다.

“남부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도 남진하여 악마 토벌에 힘을 보탠다.”

굳이 그들에게 나서서 가겠다고 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까지 그들이 자신들끼리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어서였다.

인정에 눈이 돌아가서 내려간다고 한들, 인간과 인간끼리 싸우게 될 뿐이었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는 순서대로 일을 진행해야 했다. 그게 비록 상황에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래야만 했다.

무식하게 일을 진행해서 일을 해결한다고 해도 그 뒤는 피로 점철된 지옥이 펼쳐질 뿐이었다.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서 악마의 토벌보다 사후처리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먹을 공과 상은 자신을 뛰어넘어 주변에도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었다.

“난 잠시 북부에 다녀오겠다.”

“갑자기 무슨 일이 또 있습니까?”

“불파겐의 후예가 나타났다는 첩보를 받았다.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 말에 모두 입을 조심했고, 누구도 말을 내뱉지 않았다.

“변경백의 주변 영지는 험한 지형이 많기에 야수들이 제법 있고, 몬스터도 있을 터다. 이를 토벌해서 보급에 보탬이 되도록하라. 현재 남부 상황을 보면, 우리를 신경 쓰지도 못하고 있을 터다.”

“예.”

드낙의 명령에 모두 대답했다. 그 길로 드낙이 모비딕에 올라탔다.

쿵쿵쿵!

모비딕이 육중한 체중을 이끌고 땅을 내달리며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올랐다. 이실레아는 가장 먼저 호수 마을에 연락을 보냈다.

“케이슨 성기사 앞으로 이 서한을 전해라.”

성전대의 궐기를 요구하는 요청서였다. 악마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고, 성까지 함락된 상태라는 추측이 적혀져 있었다.

“이럇!”

기수 다섯과 말 15필이 그 길로 한 무리를 이루며 내달렸다. 엉덩이가 박살 나도 말을 바꾸며 내달릴 생각이었다. 혹은 중간중간 말을 말과 교환하여 달릴 수도 있었다.

운이 좋다면, 쉬지 않고 내달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드낙은 모비딕을 타며 북부로 향했다. 잔류하는 동부군대가 보이지 않자, 다시 내려앉았다. 길 위에서 내려앉아서 주술을 부려, 주력으로 만들어진 표식을 찾았다.

“저쪽이다.”

숲으로 들어가 나무를 부수며 모비딕이 거침없이 직선으로 움직였다. 잘 숨겨진 공터에 길이 보이는 곳을 등지고 있는 나무에 토템이 딱 붙여져 있었다.

“핏빛쥐 있느냐?”

나무의 밑에 나 있는 구멍에서 핏빛쥐의 머리가 쏙 튀어나왔다.

“뜨, 뜨낙! 우리들의 창조주를 뵙습니다!”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핏빛쥐들이 뚫어놓은 곳으로 향하는 비상로 중에 하나였고, 최소 1마리의 핏빛쥐가 지키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인간이 모이지 않은 곳에 핏빛쥐가 있을 리가 없었다. 현재 핏빛쥐의 주적은 인간이었고, 그들을 깎아내려 드낙이 인간을 버리도록 만들고 싶어 하고 있었으며, 이는 11개의 리전이 모두 동의하는 대원칙이기도 했다.

“불파겐의 후예에 대한 추가 정보가 더 나왔나?”

“예. 며칠 전에 작은 마을의 의뢰를 받은 용병단을 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왜?”

“의뢰금 이상을 마을에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도와주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의외의 선행에 드낙이 어리둥절했다. 도저히 불파겐이라고 믿을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런 드낙의 생각을 짐작했는지 핏빛쥐 파수병이 추가로 이어 말했다.

“이번이 벌써 3번째입니다.”

“3번째라고?”

“예. 하자가 있는 용병단을 습격하여 여행자금을 마련하고, 동시에 고문을 통해서 정보를 습득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창조주께서 걸으신 행보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드낙은 그 말을 듣고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미친년이다.’

확신할 수 없다고 고문과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났기에 전장으로 나서서 동원되는 일반사람의 심리와는 철저하게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필요하기에 죽이는 것과 살기 위해서 죽이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드낙조차도 전쟁이나 전투 이외에는 뒤통수를 맞고 나서야 사람을 죽였다. 혹은 살기 위해서 죽였다. 그러나 불파겐의 후예는 〈정보 획득〉을 목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용병일을 해서 돈을 벌려고 했던 드낙과는 또 다르게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취하고 있었다.

‘피로 만들어진 여행길이다.’

오싹함마저 들었다. 하지만 드낙은 세파리아스를 위해서라도 세리안과 마주 해야 했다. 그는 드낙에게 줘도 안 되는 것들을 많이 내어주었다. 그건 알게 모르게 정이 들게 했고, 미운정이 스며들게 하였다.

드낙도 세파리아스에게, 세파리아스도 드낙에게 미운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처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니까.’

남자 녀석을 도와주는 일 따위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처럼 말하며 드낙이 다시 모비딕에 올라탔다. 핏빛쥐로부터 근처 위치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주위를 돌면서 사람 하나를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세리안과 가까운 곳으로 가면서 핏빛쥐들로부터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리가 가까우면 그만큼 최신 정보를 얻기 마련이었다.

“야간에 모닥불을 놓고 살육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정황상 불파겐의 후예를 겁탈하거나 수작질을 하려고 한 것인데, 그것보다 먼저 공격해서 자세히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살인마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항상 자질구레한 〈이유〉가 존재했다. 하지만 드낙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거 세팔이 찬스 써야 할 것 같은데? 보자마자 덤비는 거 아냐?’

짐승같은 세파리아스의 모습이 절로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게 여성화되어서 또 하나의 불파겐을 이미지했다. 그리고 그런 자가 자신을 돕는다고 예상도 해보았다.

‘그냥 계륵인데.’

모비딕이 거세게 길에 내려앉았다. 짐마차는 뒤집어있고, 곳곳에 죽은 용병들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시체를 대거로 목을 베며 확인사살과 화폐를 수거하고 있는 세리안 불파겐의 모습이 드낙의 눈에 보였다.

세리안 또한 적혈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드낙을 올려다보았다.

‘세파리아스와 다르다.’

드낙은 그 착 가라앉아있으며 감정 하나 담겨져 있지 않는 녹색 눈동자를 보며 확신했다. 이 불파겐의 후예는 결코 세파리아스와 비슷하다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극점에 존재하는 대척점이었다.

그렇기에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비슷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분노해서 쳐죽이나, 냉혈한처럼 쳐죽이나 하는 건 죽이는 일이었다.

“드낙 불파겐. 내려와라.”

그녀의 말에 드낙은 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 은근히 자신감도 있었다. 수백년전의 불파겐 후예다. 혈통도 흐려졌을게 분명하고, 드낙은 가진 힘이 많았다.

“모비딕. 물러나 있어.”

와이번을 뒤로 물리는 드낙의 모습에 세리안이 코웃음을 쳤다. 실로 오만하게 보여져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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