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602화 (601/1,239)

0602 <-- 동남 전쟁 -->

“그, 그게 정말인가!”

〈변경백 칸〉이 경악했다. 남부 기병들의 패잔병들에게서 드래곤 나이트의 위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3개의 후퇴 루트에는 반드시 보급 경로가 있었고, 〈물의 전투요새〉가 하나쯤 포함되어 있어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 척박한 동부와 남부의 경계선에 있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투요새는 강제로 보급 당한다고 말해질 정도로 병사들에게 믿음을 주는 곳이었다.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식초향 같은 게 강한 발효술이 있어서 굶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이름 그대로 〈물의 전투 요새〉는 마력기관 자체가 물을 생산하도록 설계되어있었기에 메말라 죽을 수도 없었다.

고로, 다른 전투 요새보다 공격력이 떨어졌다. 척박한 곳에 병사를 주둔시키고, 물을 다른 곳에서 수송해오는 비용이 사라졌지만, 그만큼 포기해야 할 것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격력이 작은 물의 전투요새로는 드래곤 나이트를 격추하지 못한다.’

변경백의 영지는 남부가 군대를 모아서 올 때까지 버티는 게 주목적이었기에 다른 건 풍부해도 단 하나는 부족해야 했다. 반란을 생각해서 약점을 짊어져야 했다. 〈마법 마차〉의 숫자가 0개였다.

〈선봉기사 워런(Warren)〉이 다급히 발언했다.

“주군! 이대로라면 남부 본대와 합쳐지기 전에 각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퇴하여 병력을 보존하는 게 먼저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지는 약탈당할 것입니다! 버텨야 합니다! 주군!”

다른 기사가 반대했다. 이곳에는 방계란 존재하지 않았다. 귀족은 오직 변경백의 가문뿐이었다. 이 또한 백금 왕가의 제한이었다. 변경백 영지는 북부의 침공을 대비하여 우좌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임무 또한 있었기에 방계에 제한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남부에 전쟁의 화마가 뻗치지 않게 하는 것에 있다. 영지가 불타도, 싸움은 이곳에서 펼쳐야 한다. 전쟁은 반드시 이 영지에서 끝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죽음밖에 없다. 모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남부는 전쟁을 치른 지 수백 년이 흘렀다. 이 정도의 기개를 지닌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우리가 누구인가!”

“남부 최강입니다!”

“그렇다면 백금 왕가로부터 이어받은 이 직위가 지닌 책무를 다해야 한다.”

변경백 칸이 상석에서 일어나며 검을 뽑아서 팔을 하늘로 높이 추켜올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물의 전투요새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하자! 우리가 지금까지 특권을 누렸던 세월, 나의 선대의 선대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방패이기 때문에 이곳에 있다!”

스르릉!

수많은 이들이 검을 들어 올렸다. 모두 죽음을 각오했다. 그리고 그들의 각오로 모든 병사들의 목숨까지 결정되었다.

하루 뒤, 물의 전투요새로 메시지 마법이 관통되었다. 남부 왕국의 메시지였다.

“나는 이번 전투의 총사령관이 된 아라온 플래티넘(Araon Platinum)이라고 하오.”

“일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총력전 전략을 위해서 후퇴하시오. 칸 변경백. 최대한 많은 병력을 살려 〈남부 대평야〉로 오시오. 가질 수 없는 물자는 모두 파괴하도록.”

“명을 받듭니다!”

죽음을 각오했지만 그런데도 살길이 트이자 변경백은 냉큼 받았다. 7천의 변경백의 군대가 서둘러 물의 전투요새에서 도망쳤다.

드낙이 토성에서 얻은 노획물에 재물욕에 미쳐서 이실레아를 별동대로 운영하며 변경백의 영지를 약탈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남부왕국, 최남단.

땅끝마을, 불톤(Bulthon).

악마가 된 게페락스는 모습을 숨긴 채 칠일장을 돌아다녔다.

“열 개에 동화 10닢! 질 좋은 가죽과 교환도 가능합니다!”

겨울이라 가죽을 구하는 보부상의 모습도 있었다.

악마라고해도 이 세상을 뒤엎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버텨야 했다. 버티고, 또 버티며 힘을 키워야 했다. 이제 그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함께 힘을 모은 흑마법사들을 잡아먹어 치운 건 바로 게페락스, 자신이었다.

“징발이다! 징발!!!”

보부상이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며 소리를 지르며 허둥지둥 도망쳤다. 그 말을 들은 이들이 너도나도 짐을 챙겼다. 단번에 혼란이 일어났다.

‘징발이라니?’

게페락스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여기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것이라서다. 거리가 멀면, 그만큼 손실이 심하다. 고로, 전쟁의 여파는 땅끝 마을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가져가도 인력이나 운반하기 쉬운 화폐, 식량 정도다. 영향력을 생각하면 징발은 할 수 없는 행위다. 중앙의 힘은 이곳까지 뻗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남 전쟁의 여파가 내 상식을 뛰어넘었다고? 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얻는다고?’

동남 전쟁이 일어났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남부를 흔들었고, 인신공양을 모았다. 동시에 다른 흑마법사들의 뒤통수를 치며 악마가 된 것이 게페락스였다. 그에게 있어서 동남전쟁으로 얻을 이득은 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여겼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럴리가! 내가 그렇게 운이 좋을 리가 없다!’

믿을 수 없었으므로 서둘러 게페락스가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지나자마자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불파겐이 시민을 학살하며 남침했다! 상인들의 모든 물품은 대의를 위해서 쓰일 것이다! 도망치는 자는 죽는다! 움직이지 마라!”

활을 당긴 채 말을 탄 기수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기수들을 제외한 병사들은 짐마차에 상인들의 재산을 징발했다.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인은 주저앉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땅끝마을의 7일장에 오는 상인은 대부분 보부상이었기에 빼앗기면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7일장을 급습해서 다 빼앗고 있다니. 철저히 계획된 움직임이다. 그 정도로 남부는 국력을 동남 전쟁에 쏟아부은 것인가!’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이정도로 남부의 수도에서 먼 곳에까지 전쟁의 영향력이 뻗쳤다.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동남 전쟁이 심각하구나.’

최전방 혹은 전쟁에 휘말린 영지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결코 이런 곳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자원이 적은 북부는 종종 있는 일이지만, 남부는 아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다.’

게페락스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면서도 쥐새끼처럼 몸을 숨겼다.

초월자가 되었지만, 흑마법사로서 살아온 경험은 그를 음습하게 움직이게 하였다.

밤을 기다렸고, 기어코 술집에서 정보를 다시 한 번 모았다. 그리고 오늘 칠일장에서 허탕을 친 보부상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만큼 진실에 근접한 이를 이런 땅끝 마을에서 얻기란 힘든 일이다.

“어디에서든지 닥치는 대로 징발을 한다더라.”

“철동네라고 알고 있지? 은퇴한 대장장이들이 사는 곳인데, 수백 년 된 용광로도 그냥 가져가 버렸다고 하더라.”

그들은 조심스럽게 속닥거렸다. 하지만 인간의 가죽을 벗은 초월자인 게페락스의 귀를 속이지는 못했다.

“···내 지인이 마을의 농기구를 모아서 수리를 하러 갔었는데, 병사가 반항하던 대장장이를 죽였다고 하더라, 즉결처형이라고.”

게페락스의 눈이 커졌다. 겨울이라 정기적으로 철동네에 가는 건 이 인근의 특징이었다. 노쇠한 몸 때문에 믿음이 안 가도 싸게 수리할 수 있었기에 저 말은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미친놈들···! 대장장이를 죽였다고?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절로 술이 당겼다. 3일을 그렇게 남부의 상태를 재확인한 게페락스는 지금, 또 한 번의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고,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동시에 남부의 판단을 추측할 수 있었다.

‘기술자를 죽이다니, 그 정도로 철저하게···이건 〈쉐도우 위스퍼〉를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불파겐의 정보단체로 북부에서부터 유명세를 탄 괴소문은 진실일 가능성이 컸다. 동시에 그들을 속이려면 진짜로 칼을 뽑아야 했다.

‘칼을 뽑아들었다. 드래곤 나이트를 상대로 전쟁이다. 또한 반드시 한 번은 싸운다는 뜻이다. 오히려 타당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솔직히, 그 결단력에는 칭찬한다.’

동시에 남부왕의 결단을 게페락스는 더듬고 핥을 수 있었다. 그가 살아온 세월 덕분이었다.

‘동부는 허를 찔릴 수밖에 없다. 못해도 겨울임에도 3만 이상의 병력과 부딪쳐야 할 것이다.’

그것도 모두 정예병으로. 이 정도의 소란이다. 보급은 햇병아리들이 맡고 있을 공산이 컸다. 사람 또한 징발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첫수에 모든 것을 건 것이 남부의 상황이었다. 이 또한 불파겐이 알게 될 것이고, 그건 불파겐의 목줄이 될 터였다.

‘정보력이 좋다고 판단력까지 좋아지는 건 아니다. 이건 이끌릴 수밖에 없다.’

동부가 가벼운 마음으로 남부를 후려쳤다면, 남부는 기회가 된다면 불파겐을 죽일 마음까지 지닌 듯했다. 소모되는 자원과 망가지는 평판을 생각하면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게 화친할 수도 있지만, 수만의 사상자가 나오는 건 불 보듯 뻔하다.’

동쪽으로 향하는 남부의 전력은 곧 남부 후방이 텅텅 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무주공산(無主空山)을 획득하면서 얻을 이득을 게페락스가 생각했다.

‘남부의 밀집된 인구를 잡아먹는다면.’

수천 년 묵은 구렁이가 새파란 혀를 날름거렸다. 견적을 수초 만에 낼 수 있었다.

‘남부를 집어삼킨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가 그렇게 숨어다니는 흑마법사로서의 행동 원리를 포기한 이유는 그는 더는 흑마법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가죽을 벗고, 난 악마가 되었다.’

초월의 힘을 다루는 인간이 아니라 초월자, 그 자체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홀로 드래곤 나이트라 불리는 불파겐 자작과 붙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히려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이런 기회를 잡을 생각을 가졌다.

일을 벌일 때 퇴로만 3개 이상을 생각하는 흑마법사 게페락스는 더는 없었다. 이제 악마 게페락스로 새롭게 나아가야 했다.

지위가 바뀌면 그에 따라 사람도 바뀌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게페락스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운이 좋군.’

이렇게까지 운이 좋았던 적은 실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겹경사는 지금까지의 삶 동안 단 한 번도 그에게 쥐어지지 않았었다.

다른 흑마법사들을 뒤통수치는 데 성공하고 거기에 남부의 폭발적인 인구를 집어삼킬 기회마저 똑같은 해에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자신에게 광명이 비친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버텼던가.’

견디고 또 견뎠다. 계속해서 버티면 반드시 승리한다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흑마법사가 되고, 3218년 동안 존버했다. 그리고 지금 떡상의 때가 왔다. 악마 게페락스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보통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인고(忍苦)의 시절을 보내서였다.

‘나는 이 세계의 지배자가 된다.’

하나의 별을 쥔 대악마가 될 것이다.

게페락스는 불톤 마을의 외곽에서부터 일을 시작했다. 불이 꺼진 민가 앞에 섰다. 인간의 피부가 허물어지고, 붉은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3m의 거체가 된 악마 게페락스의 육신에서 팔 하나가 물컹거리며 길어지더니 창문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주먹은 아가리가 되고, 새까만 눈동자가 자리 잡았다. 뱀의 혓바닥이 날름거렸고, 밤임에도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자고 있는 부부 곁으로 다가간 뱀의 머리가 그대로 남자의 머리를 물었다.

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머리통이 뜯겨 나갔다.

“···?”

이상한 소리에 잠이 살짝 깬 여자가 눈을 뜨자마자 뱀의 쩍 벌린 아가리 속이 여자의 눈에 새겨졌다. 눈이 부릅떠지는 순간 그대로 머리통을 씹어 삼켰다.

피가 침대를 가득 적셨다.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혓바닥에는 길쭉하고 혐오스러운 돌기가 가득 생기기 시작했다. 혀가 뜯긴 목 부분에 닿자 돌기가 여럿 투둑하고 떨어져서 벌레처럼 꼬물거리며 살을 파고 들어갔다.

부글부글!

피가 끓어오르며, 목이 없는 사람의 피부가 붉게 변했다. 그리고 상체가 벌떡 일어났다. 목이 뜯긴 부분에 촉수가 수십 개가 튀어나와서 흔들거렸다.

〈헤드리스(Headless)〉.

악마들의 최하급 병졸 중에 하나로 악마가 만들기에 가장 소모율이 적은 병사였다. 갓 태어난 악마인 게페락스가 처음으로 휘하에 둘 악마병사로 가장 적합하기도 했다.

악마의 신체가 스며들어있었기에, 멀리서도 악마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언어가 필요 없는 통신과 같았다.

헤드리스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자식의 머리를 뜯어 아랫배에 있는 이빨로 씹어먹었다. 그 업은 자신들의 지배자인 게페락스에게로 향했다. 뜯긴 머리에 촉수 하나가 쑥 하고 들어갔다.

곧, 헤드리스로 변했다.

게페락스는 큰 소란 없이 불이 꺼져있는 모든 민가를 습격한 다음, 수백의 헤드리스 병졸들을 풀었다.

“흐악, 흐아아아아악!!!!”

팔이 뜯긴 채 도망치던 남자를 창문에서 튀어나온 헤드리스가 덮쳤다. 목을 움켜쥐고 머리가 그대로 아랫배에 있는 아가리로 향했다.

콰득! 콰득! 콰득!

남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잡아먹힌 목에 또 촉수가 들어갔다. 뜯어먹힌 팔에 촉수가 튀어나왔다. 재생은 안 되지만, 결손난 부위가 촉수로 대체되는 게 헤드리스였다.

동이 트기 전에 불톤이 악마에 의해서 함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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