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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99화 (598/1,239)

0599 <-- 동남 전쟁 -->

〈둥근 언덕 마을〉의 순찰자들은 백설산맥에서 도망친 자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신념이 한 번 꺾인 패배자들이었다. 현재는 드낙이 유용하게 정찰병으로 쓰고 있었다.

〈쉐도우 위스퍼〉로부터 받은 보고서가 변절한 순찰자의 손에서 드낙에게로 옮겨졌다.

핏빛쥐들의 표식이 양피지에 있었다.

북부에 〈배불뚝 리전(potbelly Region)〉이 똬리를 틀었다.

동부는 〈굳은살 리전(Calluses Region)〉이 가져갔다.

남부에는 〈붉은혀 리전(Red tongue Region)〉이 암약하고 있었다.

참고로 〈작은 벌 리전(Little Bee Legion)〉 같은 경우네는 곳곳에 파견되는 공병 내지는 기술자 핏빛쥐들이었다. 가장 숫자가 적었지만, 가장 널리 분포된 자들이었다. 담당하고 있는 지역(Region)이 없었다.

‘양피지의 내용은···’

드낙이 양피지를 훑었다. 남부 군대의 출정에 관한 내용은 몇 줄에 불과했다. 반면, 수많은 곡물 창고의 물류에 대한 깊은 이해도가 담긴 내용이 많았다. 병참을 보면, 상대 군대의 규모 또한 알 수 있는 법이었다.

‘백금 왕가가 미쳤나? 겨울에 총력전을 하는 병신이 있다니.’

드낙이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실레아의 눈총이 뜨거워졌다. 자신도 분명 읽고 싶을 터였다. 드낙이 넘겨주자 이실레아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받아서 속독했다. 드낙보다 3배는 빨랐다.

“엄청난 정보입니다.”

“예상되는 군대의 숫자를 가늠할 수 있겠나?”

“이게 사실이라면 10만 대군입니다. 보급에 6만. 실제 싸우는 건 3만도 안 되겠지만, 만(萬)을 동원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로, 교통이 잘 되어있지 않고, 적재한 식량이 풍부하지 않으면 하나의 전쟁터에 3만의 병력을 동원하기도 어렵다. 그 이상을 동원하려면 엄청난 숫자의 말과 소가 필요했다.

병사를 대신하여 짊어지는 만큼 건강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고, 더 많이 동원할 수 있었다. 자연히 숫자가 많아지는 만큼 군대의 이동속도는 한없이 느려진다.

“중요한 건 기병입니다.”

“내 생각도 같다. 별동대로 쳐도 우리보다 2배는 많겠지.”

이실레아가 드낙의 날카로운 답변에 고개만 끄덕였다. 이실레아는 정론을 말했다.

“한 번 자리를 빼야 합니다. 이곳은 이미 무너져 있는 곳이고, 잔해를 모아 언덕을 만들어도 포위되는 형세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길 수 없다는 뜻인가?”

“저들은 싸움을 걸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시간만 끌어도 보병이 오기 때문입니다. 평지로 후퇴하려고 한다면, 그 때 갉아먹기 전술을 펼칠 것입니다.”

경기병으로 측후면을 흔들고, 중기병으로 혼란에 빠진 병사를 돌파한다.

기병 전술의 제1 전술의 응용이 갉아먹기 전술이었다. 빠른 기동성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철저하게 다수가 되고, 상대하는 보병은 철저하게 소수가 된 상태에서 싸움을 강요당한다.

수만을 수천의 기병으로 상대해도 이 철칙은 유효하며,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의 두 다리는 느리기 때문이다.

기병이 강력한 점은, 수적 열세가 있음에도 언제든지 이를 뒤집을 수 있으며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칠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상대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지. 하지만 이번에는 와이번이 있지 않은가? 저들이 자신들의 피를 바치면서까지 병사들의 발목을 잡겠는가?”

“그것은 확답할 수 없습니다. 지휘관의 역량에 달려있습니다.”

강제로 수군이 된 일반인이라도 지휘관을 잘 만나면 역전의 병사가 된다. 북부의 기사들은 그걸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확답을 내지 못했다. 인간은 리더에 의해서 송두리째 바뀔 수 있어서였다.

“남부에 인재가 없지는 않겠지.”

까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뜻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후퇴하는 게 절대적으로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본대가 왔을 때, 회전(會戰)을 거는 게 이상적이다.

전쟁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남부군을 상대로 괴물들과 싸워온 북부의 지휘관들은 패배하고 싶어도 패할 수 없었다. 특히 드낙같은 맹장이 있기에 상대 진형은 100% 무너진다고 보면 되었다.

이런 계산이 있는 이실레아는 당연히 후퇴파가 되었다.

“후퇴해야 합니다.”

“흠···”

드낙의 고민은 길어졌다.

‘아직 토성의 지하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상인들이 도망치기 위해서 가져온 것들은 화폐나 패물이었다. 그 외의 것은 지하에 남아있었고, 이것까지 노획해야지 제대로 된 약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병사들에게 금일봉을 지급했음에도 철철 남아넘칠 지경이었다.

‘얼마나 날 호구로 본거냐···’

국경선의 토성을 거점으로 동부와의 무역에 박차를 가한 모습이었다. 자신들이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한 모습이라, 양심의 가책마저 느꼈다.

물론 양심이 찔린다고 해서 그만둔다는 건 또 아니었다. 그랬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되었을 터다.

“보급만 휘저어도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영주님이 없다면, 기병이 무리해서라도 들어올 겁니다.”

“언덕으로 안 보이게 하면?”

“와이번이 며칠 동안 안 보이면 찔러볼 수밖에 없습니다.”

“흠···”

드낙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한사코 후퇴하지 않겠다는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실레아가 결국 물러섰다. 그녀는 최고 결정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부어야 합니다. 단독 기병 별동대는 반드시 오고 있습니다.”

군사학을 안 배운 놈이 지휘관이라면 기병과 보병을 묶어서 움직일 테지만, 남부의 기사들은 일종의 관리직이었다. 관련 시험을 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총사령관은 낙하산일 공산이 컸지만, 그 밑은 실무자가 맡는 게 일반적이다.

별동대같이 위험한 임무를 맡는 곳에는 실력이 있는 놈이 붙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원거리 능력이 낮으므로 브레스라면 능히 그들을 괴롭힐 수 있을 겁니다. 3일 내내 그들에게 피해를 강요한다면 그들도 방도가 없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대마법사가 탄 와이번과 기병 3천~5천의 싸움이 될 터였다. 그만큼 초월의 힘은 무서운 힘이었고, 이 때문에 남부 왕국의 마법사들은 철저하게 상위 계급으로 올라서지 못했다.

그런 힘을 지니거나 사상을 지닌 마법사는 잠을 자는 와중에 암살당하기 일쑤였다. 오히려 제국이 마도사회를 이룩한 게 신기할 정도였다.

두개골에 단검을 쑤셔 박으면 그 어떤 마법사도 한방이다. 기사도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영주님은 응해줄 것이다. 그는 맹장이니까.’

“괜찮은 방법이군.”

토성의 지하를 노획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보였다. 적이 보이면 그래도 피해를 감수할 만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행군하는 내내 와이번에게 공격당하고, 마법으로 괴롭힘 당한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지. 언제 적의 선봉대와 만날지 알 수 없다는 게 심리적으로 타격이 클 것이다.’

지휘관이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 후퇴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끝까지 달릴 것이다. 드낙은 끝까지 달리길 원했다. 백금 왕가가 총력전 양상을 보여서였다.

“기병을 잡고 난 다음을 생각해둔 게 있나?”

“본대는 대치 상황을 만들고, 선봉대는 위나 아래로 내려가 헤집을 겁니다. 이곳은 남부의 토지. 날뛰면 날뛸수록 영주님의 목표지점에 가까워집니다.”

이실레아의 말에 드낙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자신의 목표를 먼저 생각해줬기 때문이다.

‘역시 실력이 있으면 다 용서가 된다니까. 편하다, 편해.’

“바로 출전하겠다.”

드낙이 일어서자 이실레아도 일어섰다.

“돌아오실 때는 본대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토성의 지하도 확실히 노획하도록.”

드낙은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을 입에 담았다. 실로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이실레아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왕으로 모시기 딱 좋았다.

드낙은 모비딕을 타고 곧장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이번 전쟁으로 얻은 이득으로 큰 공장지대를 세울 생각을 가졌다. 도로와 동시에 제조업의 부흥!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싼값으로 조진다.’

그럴 수 있는 노동력 또한 충분했다. 게제라스의 제도 덕분에 이주민이 많았다. 좋은 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끄으으읍.”

고문하는 소리가 외곽의 폐가에서 흘러나왔다. 그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다. 세리안에 의해서 확실하게 검증된 조용한 곳이었다.

전신갑주가 해체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실로 기괴했다. 아티팩트의 힘으로 모든 것이 강화된 세리안의 보정된 근력은 코뿔소나 다름없었다.

북부 기사는 치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사가 완전무장된 상태에서 납치를 당하다니, 굴욕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독기가 그득했다. 웬만한 고문을 모두 견뎌냈다. 뼈를 긁어내도 버텼으니, 실로 북부 기사가 지닌 고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세리안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여주며 말했다.

“드낙 불파겐에 대해서 말해라. 아는 것을 모두.”

그 말 속에는 분노가 깃들어있었다. 제국에서 모은 정보 때문이었다. 이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북부의 기사를 납치한 게 세리안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있어야지.’

하나부터 열까지 믿기 힘들었다.

“붉은 머리카락···”

‘또 다른 불파겐의 후예인가.’

북부 기사가 속으로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라면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동부가 단교를 선언하며 북부는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나마 킹슬레이를 선두로 세우는 북서부 영지들은 할만했다.

다른 외척과는 다르게 쥐죽은 듯이 지내며 동부의 자원을 자신들의 영지로 옮기고 있어서였다. 특히 명문도 아닌데 킹슬레이 덕분에 드낙의 외척이 된 빌라이언 가문은 동부의 자원으로 킹슬레이 다음으로 가장 잘살고 있는 가문이 되었다.

명문가가 아니기에 외척의 밀담에 끼지도 못하고, 킹슬레이의 눈치만 보던 가문임에도 동부에서 큰 이득을 보고 있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계약하여 이득을 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빌라이언 가문의 상황이었다.

고로, 북부 기사는 불파겐을 내전에 휩싸이게 할 이 찬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다. 불파겐이라는 이름이 무서워서 그나마 포장된 소문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드낙이 보여준 행보가 흘러나와서 세리안의 귀로 들어갔다.

“자신의 영지민을 지키기 위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스스로 결혼을 추진했다고?”

전쟁을 피하려고, 사람들이 고통받는 걸 원하지 않았기에, 북부의 압박에 못 이겨 결혼한 것이 아니라 드낙이 추진한 것이라는 것을 듣자 세리안이 반문했다.

“어느 기사나 시종을 잡아도 똑같은 소리를 들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말이지.”

“왜 나에게 진실을 말하지?”

“네가 불파겐의 또 다른 후예이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아군인 법이다. 그런 논리였다. 그 외에도 세리안의 이성을 앗아가 버릴 것들이 가득 있었다.

“뭐라?! 제국 전신 갑주를 외척에게 그냥 선물을 했다고!”

영지전의 마무리는 돈과 식량이라는 걸 들었을 때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다 쳐 죽이는 게 불파겐의 논리였다. 다분히 사이코패스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게 불파겐의 방식이었다.

“킹슬레이의 공작 때문에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북부는 다 알고 있는 게 하나 있지.”

북부 기사는 드낙에게 마무리 일격을 쑤셔 박았다. 바로, 혈통을 외척에게 준 것을 입에 걸었다.

이드득.

세리안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잇몸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이를 갈았다. 아무리 엘프의 피가 강해도 오우거의 피 또한 있는 게 그녀였다. 분노에 오우거의 피가 바짝 추켜올려 세워졌다.

그 광기에 북부 기사가 자신도 모르게 겁에 질려서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냉정하고, 칼처럼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게 세리안 불파겐이었다. 강한 누님 같은 인상이었기에 더더욱 흉포한 기세가 돋보였다.

“그런 작자가 불파겐의 후예라니, 수백 년이 지나더니 아주 맛이 가버렸어. 안 그런가?”

북부 기사가 드낙 불파겐을 비웃었다. 동시에 세리안의 대검이 북부 기사의 목을 날려버렸다. 수 미터짜리 단두대로도 한 번에 잘리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인간의 목뼈가 한칼에 날아갔다.

“어디서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날아간 기사의 입이 뻐끔거렸지만 이내 멈췄다.

아무리 그래도 불파겐이었기에 북부 기사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꿀도 발라줘야했는데 불파겐과 불파겐을 싸움 붙이는데 정신이 팔렸다. 고문의 여파로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탓도 있었다.

욕을 해도 세리안이 욕을 해야 했다.

결국, 혈연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놈을 죽이는 건 나, 세리안 불파겐이다.’

그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 더럽혀진 불파겐의 명성을 다시 고쳐세운다.

각오를 다지며 세리안이 폐가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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