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98화 (597/1,239)

0598 <-- 동남 전쟁 -->

〈쌓아올린 토성〉은 그 누구도 도망치지 않았기에 드낙의 분노를 샀다.

‘얕보여도 이렇게 얕보이다니···’

드낙은 남부인들에게 크게 실망했다.

특히, 상인들이 남아있다는 뜻은 드낙이 전쟁 속에서 인정을 베풀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굴 개호구로 보나.’

실제 소문이 으레 그러하듯, 자기한테 좋은 것만 듣기 마련이었다.

‘건방져도 방심하면 안 된다.’

모비딕은 강하다. 저 토성에 있는 그 어떤 무기로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 모두를 잡는다는 건 힘들지도 몰랐다.

전략 전술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수 시간의 토의 끝에 불파겐 군대가 움직였다.

“크아아아!”

모비딕이 울부짖었다. 공성 무기들의 공격을 순식간에 피해내며 아가리에서 산액 브레스를 쏟아냈다.

“흐아아아악!!!”

버둥거리면서 무기와 방어구가 끓는 소리를 내며 독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숨을 쉼과 동시에 병사가 그대로 쓰러졌다. 숨을 막아야 하지만, 고통스러운 와중에 그런 것을 하기에는 브레스 관련 훈련도가 낮았다.

이 토성의 특성상 훈련보다는 치안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변경백의 병사 중 가장 숙련도가 낮았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많은 돈을 먹고 있는 자들이 〈쌓아올린 토성〉의 병사들이었다.

콰지직! 쿠궁!

“살려줘!”

발리스타의 관절이 녹아서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뒤로 옆으로 밀려나 떨어졌다. 병사 하나가 함께 토성 밑으로 추락했다. 골반이 괴이하게 비틀려서 꼼짝도 못 하게 되었고, 입에서 선홍빛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소리조차 못 지를 정도의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마법도 쓰지 않는 드낙에게 외성벽의 모든 이들이 농락당했다. 하지만 이내 와이번이 다시 높이 날아오르며 거리를 벌렸다. 그 사이에 불파겐 군대는 토성의 포위진을 만들었다.

‘기회다!’

토성의 성주가 눈을 반짝였다. 꼴사납게 웅크려있었지만, 그 또한 군사학을 배운 지휘관이었다. 형세를 읽을 정도는 되었다.

“상대의 포위망은 얄팍하다! 힘을 집중시키면, 퇴로를 뚫을 수 있다! 병사들은 성문을 열고, 나갈 준비를 하라!”

3천이 역사가 있는 토성 하나를 둘러쌌으니, 그 열은 고작 2열에 불과했다.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4개의 성문을 생각하면 나갈 수 있었다.

성주가 서둘러 내성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비켜라! 비켜! 성주의 명령이다! 이놈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

검을 뽑아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음에도 대로는 상인과 용병들로 아비규환이 되어있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어!”

누가 봐도 더는 이 토성에 미래는 없었다. 모비딕의 산액 브레스에 당한 채 산채로 녹아내리는 병사의 모습을 본 이상, 도망 밖에 살길이 없었다.

거칠게 병사들이 힘으로 밀어붙였다. 용병들은 대항하려고 했지만, 무기를 뽑지는 못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병사들 또한 자신들의 무기에 피를 묻힐 것이다.

제압당하는 편이 오히려 더 낫다고 판단했다.

“안 된다! 안 돼! 아직, 아직 더 남아있다! 계약을 이행해라! 더러운 용병 놈들아!”

목함을 짐마차에 실으며 상인이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짐마차에는 온갖 것들이 가득했다. 대로 한쪽을 막고 있기도 했기 때문에 병목현상의 주범으로 보였다.

“비켜라! 지금 상황이 어느 때인데! 성주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병사가 상인을 밀어버리고, 말의 고삐를 끌어당겨 골목길로 유도했다. 상인이 허겁지겁 마차의 뒤에 올라탔다. 결코, 버리고 갈 수 없었다. 목숨보다는 돈이었다.

“밀어붙여라! 죽여도 상관없다!”

결국에는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돈 때문에 받아주었던 용병과 상인들이 병사들의 손에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용병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고, 검을 들어 올렸다. 허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기를 휘둘러도 강철창에 막혔고, 점점 조여와서는 이내 목이 창에 찔렸다.

“토성을 나가서 퇴로를 뚫고 후퇴한다!”

“와아아!!”

병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성주의 판단에 적극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가죽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척 봐도 묵직한 것이 비싼 것이 들어있어 보였다.

이 모습을 내려다보는 드낙이 등에 메고 있던 고르곤의 심장을 앞으로 돌려 잡았다.

‘계획대로다.’

토성의 이모저모를 훑은 드낙 때문에 이실레아는 토성의 실체를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동시에 〈실버즈 상단〉의 정보 또한 유효했다. 공중 정찰의 정보와 함께 배신자의 정보를 결합하면 이실레아는 토성의 성주나 다름없을 정도로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전쟁은 간단하지 않다. 똑같은 승리라도 그 과정은 매번 다르고, 결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수십 명의 수급을 베고, 도망치게 만드는 게 승리.

포위하며 몰살시키는 것도 승리였다.

승리에는 수많은 과정이 있고, 결과는 매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광역 대지 마법으로 지진을 일으키면 이 토성은 끝이다. 몰살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그래서야 드낙의 이름이 운다. 그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앞으로 진행할 동부 사업에 있어서 돈은 많아도 많아도 부족했다.

‘흐흐흐.’

은화로 가득 채운 창고에서 드러누울 정도로 세속적이고 탐욕스러운 것이 드낙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것에 탐욕을 드러냈었다. 대중 목욕탕부터 시작해서 대형 썰매장 건설 예정까지.

남들이 보면 쓸데없는 것에 흥청망청 쓰는 것에 불과지만, 드낙은 앞으로도 그런 행보를 보일 것이다. 인간이 문화를 소비하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그런 드낙이 지진으로 토성을 무너뜨린다? 탐욕적인 인간이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파묻혀있는 걸 모두 꺼내려면 전쟁이 끝나도 몇 년은 걸릴 터였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전쟁은 주식과 같았다. 승패에 따라서 떡상과 떡락이 교차한다. 남부의 인프라를 부수는 것과 동시에 전리품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드낙의 본심이었다.

전쟁을 하면서 소비된 자원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도망치라고 권고까지 했는데도 안 도망친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지도 않았다.

‘배상금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또한 드낙은 배상금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드낙 개인의 소비가 사회의 소비로 되어버린 상태였기에 한 걸음 움직여도 엄청난 노동력과 돈이 쓰여지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백금 왕가의 배상금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동부를 개발할 돈을 생각하면 천금, 만금을 배상금으로 얻어야 했는데, 백금 왕가가 그럴 여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므로 결국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털 수 있는 건 턴다.’

냉혹한 전쟁터의 논리였다. 죽은 동료의 애검을 노획하고, 적군이 쓰던 마차를 가져가 새로 써먹는다. 모두 광인이 되어버리는 길이기도 했다.

“후우우우···”

드낙이 몸에 힘을 빼며 고르곤의 심장에 마력을 집어넣으며 심장을 활성화했다. 고르곤의 심장에서 마력이 쏟아져나왔고, 이는 다시 드낙에게 흘러들어가 심장으로 향했다.

하나의 고리가 연결되었지만, 드낙은 계속해서 이를 반복했다.

보통 마법사와는 고르곤 심장 활용법이 달랐다. 드낙의 심장 또한 고르곤의 심장이었기에 다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인간이 쓸 수 있도록 하향 조정되었지만 그 본질은 같았다.

‘중요한건 출력. 얼마나 많은 마력을 축적하는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마력을 한 번에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두 개의 고르곤 심장은 서로 경유하며 거대한 마력의 고리를 형성했다. 그 찐득거리는 마력의 고리는 이내 드낙의 양팔 밖으로까지 보일 정도로 굵어졌다.

거센 파도가 드낙의 양팔을 헤집었다.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 조직이 뭉게졌다. 피부가 녹았으며, 생살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죽어갔다. 하지만 그 양팔은 순식간에 회복되어갔다.

고통 속에서도 드낙은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평범한 광역 마법으로는 안 된다. 기습적으로 인명피해를 내고, 성벽까지도 무너뜨려야한다.’

토성의 넓이는 넓었다. 수많은 이들이 대로에 나와있었지만, 동시에 숨어있는 자들도 많았다.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렇게 정했다.

‘나는 할 수 있다. 인간의 몸으로 인간을 초월해냈다.’

고르곤의 심장으로 드낙은 홀로 광역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건 대마법사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이 세계의 이치에 맞지 않았다.

‘마법은 얼음 마법으로.’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서 속성은 얼음 속성으로 통일시켰다. 다른 속성에 비해서 얼음은 마력과 친숙했다. 색이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만 있을 뿐, 누구도 자세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재물을 태우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하지.’

찢기거나 망가질 수 있었지만, 회수 가능한 것이 많아질 터였다. 3천 명으로 만든 포위진은 뚫어달라고 대주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드낙은 그같은 경우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확실하게 광역 마법을 사용해서 일말의 가능성조차 죽여야했다.

“겨울은 사계절 중의 왕이요, 백설로 가득찬 곳에는 인적 하나 없고···”

드낙이 빠르게 주문을 읊었다. 자신의 심장과 고르곤의 심장을 오가는 마력이 거세게 드낙의 손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마법사들의 지식과 지능을 흡수한 드낙의 눈가에 핏줄이 돋아났다. 토성에 있는 모든 이들이 푸른빛에 노출되어 주변 색이 변하자 하늘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맙소사.”

“저게 대체···”

파랑색의 네온사인으로 만들어진 태양이 있다면 이와 같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고르곤의 심장 두 개를 이용한 시너지 효과는 대단했다.

〈겨울 폭풍(Winter Storm)〉.

범위에 들어간 토성에 겨울보다 시린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푸른빛이 감도는 눈이 휘날렸다.

“허억.”

강렬한 추위에 모두 몸을 떨었다. 시야가 푸른색을 지닌 눈보라에 의해서 가려지고, 하늘에서 수많은 얼음창이 떨어져내렸다.

작게는 150cm에서 크기는 3m에 이르는 얼음창은 모든 것을 파괴했다. 몇몇 지점에는 오로지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얼음덩어리가 성벽을 비스듬하게 후려쳤다.

“아아악!”

어깨에 창이 꿰뚫리며 쓰러진 용병이 버둥거렸다. 땅속 깊이 박힌 얼음 창은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용병의 위로 집이 무너져내렸다.

“재정비하라! 전열을 지켜라!”

자리를 지키기는 했지만, 죽어가는 건 매한가지였다. 마법 앞에서 인간은 무력했다.

“컥!”

투구에 얼음창이 꿰뚫렸다.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떨어지며 가속력이 붙었기에 강철조차도 꿰뚫는 운동량을 지니고 있었다.

“허으으, 허으으으!”

벌벌 떠는 자들도 많았다. 혹독한 겨울보다 더욱 추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살상력이 화염보다 부족했기에 추위로 죽이려고 했다.

이런 토성에 마법사 전력이 있을 리 없었으며, 이곳은 〈전투 요새〉도 아니었다.

흙먼지가 일어났지만, 바람과 눈에 의해서 금방 가라앉거나 흩뜨려졌다. 이내 내성벽이 무너졌고, 뒤이어 외성벽 또한 무너져내렸다. 끔찍한 재앙이 토성에 내려앉았다.

빈혈기에 시달리는 드낙이 모비딕의 목에 몸을 기울였다.

광역 마법이 사라지고, 이실레아가 군대를 지휘했다. 2열의 포위진은 앞으로 나아가며 3열 내지는 4열로 두꺼워졌다.

“이야아아!”

모든 것이 무너진 곳에서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용케도 살아있는 자들이 있었고, 그 숫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 규합력은 붕괴한 것이나 다름없다.’

서로의 함성 소리가 멀어지는 걸 느껴도, 이미 그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지휘권조차도 엉망진창이었는데, 상관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며 완전히 붕괴된 상태였기에 잔해 때문에 먼 거리를 볼 수도 없었다.

결국 다시 한 번 뭉치지 못한 이들이 수십 갈래로 나누어진 수십 명이 덤볐다.

“크롸롸롸!”

모비딕이 브레스를 뿌리며 그대로 그곳에 내려앉으며 앞발로 땅을 단단히 잡으며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며 꼬리와 몸으로 모든 것을 압살시켰다.

강철이 찌그러지는 소리.

사람이 날아가는 소리.

끔찍한 외침.

그 모든 소리가 모비딕의 거체가 땅을 휘젓는 소리에 묻혔다. 드낙은 일선에 나서지 않았다. 더는 상처가 회복되지 않을 정도로 피를 소모해서였다.

‘재물에 눈이 멀어서 너무 무리했다.’

반면 이실레아는 이곳에서 가장 많이 날뛰었다. 조금이라도 수급을 챙기고, 전공을 드높여야했다.

“꾸엉!”

발룬의 뇌격이 그나마 기사 한 명으로 지휘되는 병사 무리를 붕괴시켰고, 방패병이 그곳을 우직하게 지나가며 상대를 넘어뜨리고 밟았다. 방패 안으로 다리나 머리가 보이면 숏소드로 베고, 찔러 죽였다.

전신갑주의 마법조차 쓰지 못한 채 뇌격에 직격당해 기절한 기사의 목을 이실레아가 취했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살려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여기 사람이 있소!!! 난 병사가 아니오!!!”

수많은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고, 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발 구해주십시오!”

건물이 무너진 곳에 배가 짓눌려서 입술이 푸르딩딩하게 변한 자가 구해달라고 빌었다.

“모두 죽여라! 항복하는 자도 죽여라!”

이실레아가 고함을 질렀다. 포로를 가질 수 없는 게 현재 불파겐 선봉군의 상태였다. 그렇다고 도망치게 놔둘 수도 없었다. 상인의 후계자로 보이는 어린 자도 목이 베어졌다.

“우리는 점령을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동부를 지키기 위해서 이 일대를 파괴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적에게 인정을 베풀지 마라! 그 인정은 군대가 지나갈 길을 만들게 될 것이다!”

“와아아아!!!”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 죽이고 빼앗고, 노획했다.

사람의 사정을 살피는 전쟁 따위, 위선자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1만 5천의 병력을 동원한다는 것은 하루에 1만 5천명의 식비를 감당해야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 무게를 짊어지고 약탈과 노획을 하지 않는 자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론자에 불과했으며, 오늘의 인기를 위해서 내년의 세금을 훔쳐쓰는 얄팍한 자의 가벼운 생각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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