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7 <-- 동남 전쟁 -->
동남전쟁이 발발하자, 남부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또 세금을 걷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고통스러운 이들의 단말마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남부 군대에 의해서 마을 하나가 쑥대밭이 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가담했든 안 했든 철퇴를 맞아야 했다.
공포로 모든 것을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백금 왕가의 판단이 행동으로 보였다.
무고한 이들이 흘린 피와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서 들어 올린 농기구와 함께 쓰러진 혁명가들의 피는 지하로 흐르고 흘러 흑마법사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아카타베루 님이시여! 피를 받아마셔 주십시오! 저희에게 힘을 내려주시옵소서!”
흑마법사들은 결코 자신들을 내보이지 않았다. 하수인을 통해서 피를 모았고, 지하를 통해서 흐르게 하여 인간이 갈 수 없는 길을 통해 피를 얻었다.
오지 중의 오지에서 수많은 탈출구와 온갖 키메라를 쌓아두고 남부의 혼란을 가중할 힘을 약자에게 주고, 분란을 일으켜 무고한 자들을 죽여 그 피를 탐했다.
중앙 권력의 힘은 지방까지 닿아있었지만, 지방의 힘은 인간과 인간을 통제하는 데에만 쓰일 뿐이었으므로 흑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자유를 주게 되었다.
〈흑마법사 게페락스〉가 자신과 함께하던 〈키메라의 알파던〉의 머리통을 들어 올려 공손하게 제단에 바쳤다. 옆에 쓰러져서 눈을 부릅뜬 채 죽은 〈던전 마스터 골굼〉의 증오 서린 눈알은 게페락스의 손에 뽑혀 제물로 쓰였다.
“크, 흐하하하!”
뼈가 커지면서 살을 집어삼켰다. 뼈에서 붉은 진액이 흐르며 몸을 둘러쌌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며 두개골이 튀어나오며 뿔을 만들었다.
쾌감에 저린 숨을 내뱉으며 〈악마 게페락스〉가 자신의 몸을 둘러봤다. 단순히 마력을 뿜어냈음에도 검은 불꽃이 양손에 쥐어졌다.
수백 년간 수십의 흑마법사와 함께 힘을 합쳐서 아카타베루를 숭배한 성과가 드디어 게페락스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아카타베루와 같은 동족이 되었다.
*
드낙이 양피지를 끄적거렸다. 〈키메라 만티코어〉에 대한 계획이었다. 힘은 힘일 뿐이었기에 악마의 힘으로 빚어진 생명체라도 신성력을 담을 수 있었기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하지.’
제작하는데 3개월 이상을 잡고 있었고, 동남 전쟁의 여파로 인해 척추와 신경계의 회복을 막는 못을 박고 반시체 상태로 만들어 〈고블린 지하 도시〉에 내버려둔 상태였다.
‘마력을 악마에게 바쳐 그 힘으로 키메라를 만드는 건 쉽다. 그다음이 문제다.’
그 누구도 만티코어의 제어권을 가져가게 둬서는 안 되었다. 드낙이 선택한 자만이 쓸 수 있어야 했다. 주인을 인식하는 것에 있어서 신성력을 가공해야 했는데, 그런 실력이 없는 게 드낙이었다.
‘남은 건 주력이지만, 접근성이 좋아. 연금술을 통해서 더블 파워를 자물쇠로 채우는 게 좋겠지.’
마력은 그 무엇으로든지 변화할 수 있기에 자물쇠로 만들면 절대 안 된다.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었다.
쓰면서 이것저것 정리를 한 다음에 드낙이 마법으로 양피지를 태워버렸다. 어디에도 보여줄 수 없었기에 자신의 머릿속에만 남겨두는 게 좋았다.
밖으로 나가자 밤공기가 맡아졌다. 별을 점치고, 군영을 돌아다녔다. 모비딕은 입에 피딱지를 붙이고 잠을 자고 있었다.
밤에는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경례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 어떤 우렁찬 외침도 들을 수 없었다.
‘요즘 잠이 없어졌다.’
잠을 자면서 오는 행복감이 사라졌다. 하루에 2시간~4시간밖에 자지를 못했다. 억지로 잠을 청하는 것에 가까웠다. 인간의 습관에 불과했지만, 드낙은 초월자가 되면서 잠을 빼앗기기는 싫었다.
드낙과 이실레아를 중심으로 한 선봉대는 3천 명에 달했다. 당초 전쟁 인원이 5천 명인걸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규모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투기하듯이 내놓기는.’
질 수 없는 전쟁이기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지갑을 털었다. 결국 동부의 전력은 1만이 되었는데, 그것조차도 많은 이들이 끼어들지 못했고, 더 많이 돈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대부분이 신흥 기득권계급이었음에도 여기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기득권의 딱딱한 행태라며 시민들에게 이야기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드낙으로서는 어처구니없었다. 자신의 영지만큼 출세하기 쉬운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싫으면 줄을 잘 잡고 있던가. 아쉬울 때 와놓고는.’
그 불만 때문에 핏빛 쥐를 통해서 정보를 얻고, 스스로 정리를 할 정도였다. 그만큼 드낙이 듣기 싫은 말이 꼰대였고, 기득권의 횡포였다.
‘남부 국경선까지는 앞으로 7일에서 10일.’
드낙은 동이 트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군막 안에서 물약을 꺼내 한 방울 손에 떨어뜨렸다. 마력과 주력이 모이며 더블 파워를 만들어내며 힘이 순식간에 증폭했다. 그 감각을 계속해서 터득하려고 노력했다.
댕댕댕!
실력 좋은 종 제작자가 만든 종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인기척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군대의 아침이 시작됐다. 서둘러 군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몇몇 시설은 남겨두었는데, 이곳에 목진지가 세워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언덕의 숲을 밀어버리고, 나무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도로의 한계 때문이었다.
‘식량을 도로 곳곳마다 쌓아둬야지, 본대의 병참을 해결할 수 있다.’
남부에서 동부로 향하는 〈달보름의 길〉은 상인들에게 유명했다. 당연히 악명으로 유명했는데, 실로 도로가 형편없어서였다. 국경선의 도로를 반질반질하게 닦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부 왕국〉이라는 같은 틀에 있어도 결국에는 적이고, 연합체에 불과했다.
중앙 집권이 불완전한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동부는 인간에게 버려진 적이 한 번 있어서 그럴 수 있었다.
덕분에 선봉대는 공병 노릇을 톡톡히 해야 했다.
“뀨우!”
발룬이 도로의 밖에 있는 나무를 쓰러뜨리며 질주했다. 발자국이 흙에 깊게 박혔다. 힘 하면 발룬이였다. 수사슴의 큰 뿔은 나무를 단단히 잡기에 좋았다.
“길을 넓힌다!”
드낙이 온천을 건설하기 위해서 제작한 〈온수 목봉〉은 훌륭한 겨울 군용 장비가 될 수 있었는데, 목봉을 어깨에 들쳐멘 병사들이 꽁꽁 얼어붙은 땅을 온수를 통해 녹이고, 삽으로 쉽게 걷어낼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300명의 수습 마법사들이 마법 장비의 마력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저 흙으로 된 길을 넓히는 것에 불과했고, 돌도 박지 않았기에 나무가 자랄 수 있었지만 당장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나 발룬이나 와이번이 나무를 밀어버렸기 때문에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3천 명이 주르륵 길을 걸으며 길을 확장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2일에 1번꼴로 식량을 적재하기 위한 목진지를 만드는 공사도 일어났다.
“꾸엉!”
발룬이 나무를 뿌리째로 뽑으면 드낙이 일으킨 흙의 골램 두 기가 척척 나무를 쌓았다.
‘생각보다 공사할 곳이 많다.’
결국 보름이 지나서 겨우 남부 국경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곳곳에 병사를 배치했습니다. 망루의 숫자만 50여 개에 달합니다.”
적군이 도착하는 걸 확실하게 인지하기 위한 모습은 남부 또한 결코 나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자기 배를 채우는 자는 결코 50개의 망루를 국경선에 바로 건설할 여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망루 1개에 5명의 병사를 배치해도 250명이었다.
“작정했네. 하지만 그렇게 큰 이득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행군로를 본다면, 보급로 또한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동부의 사정에 밝나?”
드낙의 말에 이실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와 남부의 은화 차익을 노리고 상인들이 많이 왕래했기 때문에 반드시 사정에 밝을 것입니다.”
“돈을 주면 그만이니.”
드낙이 혀를 찼다. 물론 영주 드낙이 아니라 보부상 드낙이었다면 그는 스스로 찾아가서 지도를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아닌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였다.
이를 모른다면 언제나 상처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해한다면 그런 인간을 만나도 사전에 방어할 수 있었다.
“행군로를 들킨다면, 게릴라가 심해질 것이라 보는가?”
“적 또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습니다. 피하는 게 좋습니다.”
“결국, 망루를 모두 처리해야 하나.”
귀찮은 일이었다. 또, 공중타격이 가능한 드낙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쳐들어가면 그 방향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저는 발룬을 통해서 아래에서 위로 치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렇다면, 난 위에서 아래로 쳐야겠어.”
이실레아는 경기병 50기를 대동하고, 야밤에 나섰다. 드낙 또한 구름 위로 와이번을 타고 올라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봤기에 망루가 못 보는 곳에서 망루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남부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맞불을 놔서 시야를 넓혔다고 해도 와이번을 뛰어넘는 정찰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 마법 장비 또한 없음을 마법을 통해서 인지하고 있는 드낙이었기에 거침없었다.
“바람의 보호.”
바람 마법을 통하여 높은 곳으로 올라갔음에도 드낙은 쉽게 호흡할 수 있었다.
구름 위로 튀어 오른 와이번의 입김이 새하얗게 뿜어졌다. 온도가 지극히 낮았다. 겨울이기도 했다.
적당히 시간을 기다렸고, 이내 드낙이 명령했다.
“내려가면 돼!”
“크르!”
모비딕이 아래로 내려꽂히듯이 떨어져 내렸다. 날개를 접자마자 푸짐하게 넓혀진 독특한 형태로 진화된 안쪽 깃털이 접히며 유성처럼 모비딕이 떨어졌다.
굉음이 터지며 망루가 무너지고, 땅이 엎어졌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달빛을 받아 마치 안개처럼 보였다.
그곳에 있던 병사 열 명 중 망루에 있던 2명은 즉사했고, 5명은 흙에 파묻히고, 매몰 당했으며 나머지 2명은 모비딕의 아가리와 꼬리에 죽임을 당했다.
강철이 흐르는 강을 쥔 드낙은 파묻힌 자 중 허우적거리는 곳에 검을 찔러넣어 마무리했다.
모든 것이 깔끔했다. 하지만 숲 속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망루는 미끼인가. 이건 좀 놀라운데.’
250명을 미끼로 세우고, 그게 파괴되면 바로 소식을 전한다. 최소한 적이 도착했음을 알기 위한 이중장치였다. 어둠 속에서 잔뜩 퍼지는 숲속의 병사를 보며 드낙은 추적을 포기했다.
대신 모든 망루를 파괴했는데, 중간쯤 가서는 숲 곳곳에 준비되어있던 봉화가 피어올라 망루도 텅텅 비게 되었다.
불파겐의 군세는 정보를 차단할 수 있었기에 이득을 보았고, 수백 명의 남부병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이실레아는 불구가 된 병사 몇몇을 잡아왔지만, 그들은 고문을 받았음에도 정보 하나 토해내지 않았다.
“독하네.”
드낙이 고문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옆에 같이 있던 이실레아가 이에 한 마디 했다.
“병사 모두 군적(軍籍)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름이 올라갔으니, 가족을 위해서라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몬스터와 야수가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현대와는 다르게 지독함이 있는 게 이곳의 인간들이었다. 참수되어 그대로 효수되었고, 시체는 까마귀 밥이 되도록 방치했다.
적은 적이었다. 기사라면 예우를 했겠지만, 병사는 어림도 없었다.
특히 겨울이라 포로를 받을 처지도 아니었다.
남부에 발을 들이민 이후로 도로를 확장하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대신 도로에 박힌 돌을 뽑아내는 과정이 이루어졌다. 무식한 파괴 행위였지만, 남부의 생산력을 몇 번이고 확인한 드낙이었기에 철저하게 동부와 남부가 전쟁을 할 수 없는 환경 조건을 만들어야 했다.
“저곳이 첫 번째 요충지인 〈쌓아올린 토성〉입니다. 특히 지하 공간이 많아서 상인들이 반드시 들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동부의 은화가 동화와 교환되고, 남부의 물건이 거래되는 곳이었다. 그만큼 적재하기가 편하고 창고 대여료도 나쁘지 않았다. 공급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토성은 화공을 하기가 어렵지.’
벽돌이나 나무로 쌓았다고 해도 겉을 진흙으로 겹겹이 오랜 시간 보수공사를 했다면, 천혜의 자연요새나 다름없었다. 겉으로 보면 목진지나, 돌진지가 아니라 그냥 언덕성으로 보일 정도였다.
“정찰하고 오겠다.”
“예.”
드낙은 모비딕을 타고 토성을 한 바퀴 돌았다. 닿지도 않는 화살이나 소형 발리스타가 그를 노렸지만, 유도하는 마법조차도 피해내는 게 모비딕의 기동력이었다.
‘상인도 많고, 시민도 아직 있는 듯하고, 기사도 있네.’
많은 준비를 한 것처럼 보였다.
“어찌하는 게 좋겠나?”
이를 이실레아에게 먼저 물어봤다.
“지금은 전시 상황 아닙니까. 도망을 권유했음에도 저러고 있다면 아직도 저희를 무르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본때를 보여줘야지 정신을 차리겠어.”
드낙이 이실레아의 말에 동의했다. 특히 상인 놈들이 아직도 도망 안 친 게 너무 괘씸하고 건방졌다.
‘내가 아니라 세팔이였다면 똥오줌도 못 가리고 가진 짐도 내려놓고 튈 놈들이···’
“고르곤의 심장을 가져와라! 남부가 누구를 모욕했는지 오늘 보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