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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95화 (594/1,239)

0595 <-- 동남 전쟁 -->

상단연합이 보급로 하나를 책임진다는 것은 병사들의 장비부터 시작하여 먹고 자는 것은 물론이고 그 외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팔 수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 대박이다.’

파이살 천단주가 입을 쩍 벌렸다. 계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남 전쟁의 보급로를 책임진다는 것은 그 정도의 일이었다. 병사 2천 명만 책임져도 은화로 큰 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비약적인 것일 수도 있었지만,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또 몰랐다.

‘아니, 그것보다 더 대단할 것이 분명하다.’

논공행상 때도 이름이 거론될 수 있었다. 직책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직책을 받는다는 건, 드낙의 비호 아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로또 당첨된 사람처럼 파이살 천단주는 정신을 못 차렸다.

“보급로를 줄이지 못하니 그런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해도 보급로 하나를 전부 책임지다니, 그들은 상인입니다. 상인!”

“그렇기에 더더욱 효율적인 보급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병사들에게 모래 섞인 빵을 주고 싶으십니까?”

파이살 천단주에게는 겐과 이실레아가 팽팽하게 대립하는 말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에서조차도 물건을 파는 게 상인이라는 족속들이라며 겐은 보급로에 집착했다.

‘절대 안 된다.’

동부 사령관인 그는 아무리 발악해도 병사를 전쟁터로 보낼 수 없어서였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건 병참이었다. 그런데 상인 나부랭이 따위가 감히 공을 하나 빼앗아 먹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보급로가 조금 어지러워져도 〈기사들의 만찬〉이라는 회의기구 덕분에 충분히 감당 가능했다.

“마소(馬牛)의 숫자만 봐도 상단연합의 개입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장원 기사들이 이를 모두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시는 건 아니실 겁니다.”

반면 이실레아는 일단 겐이 하고 싶은 일에는 반대하는 게 기본적인 태도였다. 원탁회의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라이벌이 있어야 했고, 겐은 능히 그 책무를 다할 수 있다. 동시에 상단 연합의 경우, 이인자인 이실레아의 입장에서는 키워주는 게 좋다.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천단주가 불파겐 마탑이 있는 중부에서 활동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마법 아이템의 민간판매는 오로지 동부에서만 대단히 자유로웠다. 이곳에서 은화 1닢 혹은 동화 500닢에 팔리는 것조차도 다른 지방에서 몰래 팔면 은화 수십 닢이었다.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들조차도 돈을 벌고 싶어도 귀족에게 제한당해 마법 아이템을 제대로 못 파는데, 동부는 그렇지 않아서 마법사의 이주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드낙이 지닌 현대인의 무서움 중에 하나가 바로 규제의 완화였다.

모든 것을 규제하는 게 권력자의 마음이다. 힘을 휘두르고 싶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되고 규제를 안하는건 실로 대단한 일일 정도다. 어디서는 풀어주지만, 권력자의 시야에 들어간 건 확실하게 자기 입맛대로 바꿔버리는 게 권력자의 심리였다.

반면, 드낙은 그런 게 없었다. 그게 그의 또 다른 힘이기도 했다. 동부는 상인들이 날뛰기 좋았다. 세율도 인간적이었고, 세금을 착복하면 쉐도우 위스퍼의 정보력으로 걸리긴 해도 무조건 이득인 땅이었다.

‘자금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중앙 사령관인 이실레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관할 지역을 살찌워주는 게 상단 연합이었다. 겐과 상단연합 두 세력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게 지금의 논쟁이었다.

‘잘 싸운다.’

드낙은 논쟁을 관전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있었다. 특히 동남 전쟁의 중요 쟁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전쟁 준비 또한 결국에는 기득권의 알력싸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밥그릇 싸움이네.’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렇기에 승자도 패배자도 리스크가 적었다. 패배한다고 해서 몰락하는 게 아니었다.

로마가 전쟁특수에 미쳐버린 것처럼, 이기는 전쟁은 무조건 이득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달아오른 점도 있었지만, 드낙에게 있어서 전쟁 준비를 처음부터 지켜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깨닫지 못했다.

‘경험은 중요하지.’

실전을 보면서 드낙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적어도 다음에 이런 상황이 온다면 시작 전에 조금 다른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이들을 불러서 미리 암약하여 삼강(三强)세력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너무 세력을 난립시켰어.’

삼권분립이라는 말이 있듯이 굳이 드낙처럼 내부세력을 많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 영지 운영을 너무 가볍게 본 드낙의 실책이었다.

작은 행보 하나하나 돈이고, 영향력이 되었다.

다른 이들은 감히 손에 쥐지 못하는 돈을 쥘 수 있었고, 많은 사람을 동원할 여지를 만드는 도로 공사는 절로 기사와 귀족의 이름을 드높이기 좋았다. 모든 일에는 이득이 따라오는 법이었다. 단순히 보급로를 하나 배당받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이 시기할 정도의 영향력과 돈을 만질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그게 너무 아쉬웠다. 더 많은 이들을 직접 선발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거기서 오는 즐거움도 제법 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였다.

“알겠습니다.”

겐이 결국 이실레아의 압박에 못 이겨서 상인 연합의 손을 들어주었다. 파이살로서는 싸우지 않고 이긴 격이었다. 눈짓과 간단한 손짓으로 이실레아에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치력은 낮네.’

보는 눈이 있는데 저렇게 해서야, 앞이 힘들 것이다. 못해도 곳곳에서 문제가 일어날 터였다. 간단하게는 용병을 고용하지 못할 수 있었고, 부농에게서 식량을 대량으로 구매할 때도 애로사항이 꽃필 수 있었다.

부농 또한 장원에 속한 시민이기 때문이다.

‘나도 아는 걸 모르네. 중앙에서 활동한 상인 맞나? 생각보다 쉽게 몰락할지도···’

다른 세력에게 가장 흡수되기 좋아 보였다. 돈이 많다는 건 아래로 두고 싶어 할 정도로 매력적인 세력이기 때문이다.

“병참 일정 가계획은 관리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베바란스 총관, 괜찮겠습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병참 일정은 철저하게 계획되어야 했다. 하루가 늦어지면 전방에서는 3일이 늦어지기 때문에 최소 30일까지 대충 보급량을 봐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즉흥적인 문제를 즉흥적으로 해결할 줄 알아야 했다.

어디서 몇 일분을 어디로 옮기겠다 같은 계획이라도 있어야 했다.

“몇몇 보급 집결지는 제가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오히려 부탁하고 싶습니다.”

드낙이 트롤을 잡으러 칠락 팔락 거릴 때, 동부를 지킨 건 이실레아였다. 그만큼 동부의 사정에 밝았고, 실전적인 보급 이동 속도 또한 가늠할 수 있었다. 동부를 직접 발룬을 타고 기병과 함께 내달렸으며 병사를 통해서 목진지 등을 세운 게 그녀였다.

겐 쟝보다도 수준 높은 병참 체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선택과 집중은 이 시대의 운송 시스템을 생각하면 필수였다.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버려지는 게 많았다. 수송하는 병사의 입속으로 다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지겹다.’

드낙이 입을 가리고 하품했다. 잠깐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대전은 북적북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후에도 수많은 것들이 산재해있어서였다.

‘대충할 수는 없나?’

그런 마음도 순간 들었지만 드낙은 자리를 지켰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왕이 대전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영향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걸 드낙은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는 착실하게 변하고 있었다.

매번 한 걸음 뒤늦게 변하지만, 그럼에도 변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현재 병사들의 기본 보급품에 대해서 통보하겠습니다. 들어주십시오!”

이실레아의 고함에 소란이 점진적으로 조용해졌다. 드낙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현실에서는 드낙보다 더 대단한 위세를 떨쳤을지는 모르겠지만, 판타지 세상의 드래곤 나이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수공예로 천옷과 다양한 종류의 가죽 혁대를 수급하고 있는 게 현재 동부 병사의 상황입니다.”

여성 노동력을 이용해서 민간에 돈을 풀고, 병사들의 복장과 혁대를 싼값에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보급 시스템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이게 최선이었다. 지금 바꿀 수는 없었다.

“동부 야수를 토벌하며 가죽 갑옷의 여분은 충분합니다. 체인메일의 경우 예전부터 진행하였기에 남쪽의 병사들 또한 최소 반년은 사용했을 겁니다.”

체인메일과 판금 갑옷의 복합 갑옷인 트렌지셔널 아머는 아니지만, 체인메일만 하더라도 최강의 방어구라 불릴만했다.

드낙이 꿈뻑 졸았다가 움찔거리며 눈을 떴다. 모두 못 본 척했다.

“물약의 경우에는 회복물약과 질병물약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남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백금 왕가의 추가세금 때문에 도망친 연금술사가 많았다. 그들을 가만히 둘 이실레아가 아니었다. 병사의 장비를 수준 높게 만든다는 명분 아래 큰돈을 써서 연금술사들이 동부의 새로운 중간계급으로 단단히 뿌리를 내리도록 도왔다.

그 외에 수많은 것들이 이야기되고, 대충 계획됐다. 실무진들이 워낙 많아서 대단히 현실적인 방안이 많았다. 자신이 활동했던 땅을 버리고, 동부로 온 자들이다. 결코, 평범한 이들이 아니었다.

거침없이 다른 지방으로 이주를 올 정도로 쌓은 게 제법 되는 자들이 많았다.

“이번 전쟁의 목표는 단 하나다. 남부가 동부에게 전쟁을 걸지 않기 위한 선제 공격이다. 그러므로 요새, 목진지, 도로, 마을을 모조리 파괴하는게 주목적이다.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선전포고 이후 보름에 남부의 국경지를 친다.”

드낙이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마지막에 가서 이번 전쟁의 목표를 말했다. 인구를 제외하고 모조리 초토화시킨다는 말에 모든 이들이 놀랐다. 그만큼 초토화 작전은 욕먹기 딱 좋은 작전이었다.

“이해한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건 그만큼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일반 시민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드낙이 직접 길게이까지 협박해서 만든 구도였고, 전쟁이었다. 여기서 한 발 빠지는 건 동부에서 떠나겠다는 발언밖에 되지 않는다.

원탁회의가 그렇게 늦은 저녁에 끝이 났다. 하지만 떠나는 이들은 삼삼오오 어울려서 의논을 나누기 바빴다.

생각보다 드낙이 그리고 있는 전쟁 그림이 컸기 때문이며, 동시에 그만큼 약탈물을 많이 얻을 것 같아서였다. 이건 협의가 필요했다.

‘생각보다 이번 전쟁, 얻을 게 많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개같은.’

길게이 플래티넘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케이슨 성기사와 함께하고 있는 레이시아의 앞에 섰다. 케이슨이 레이시아의 어깨를 살짝 터치하며 말했다.

“길게이 남부 사령관입니다.”

그가 뭐라고 하기 전에 레이시아가 드레스 자락을 양손으로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북부에서 일이 잘되어서 축하해요. 길게이 남부 사령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더는 왕자가 아니었다. 왕자라면, 드낙이 내려주는 직책을 거부하는 게 옳았다.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작에게 직책을 받는 왕자? 모순이다.

“···과찬이오. 레이시아 공주.”

왕자를 버린 길게이가 레이시아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드낙의 눈이 있을 게 뻔했기에 위험한 행동 또한 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았다. 이번 원탁회의에서 비록 공석이지만, 〈쉐도우 위스퍼〉가 전면에 드러났다.

한 번 드러나면, 계속해서 언급된다는 뜻이었다.

허튼 짓거리 하다가 손모가지 날아가지 않게 조심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어느 쪽으로든 막혔군.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나서다니.’

길게이는 레이시아의 영향력을 줄이고 싶어 했지만, 신전이 껄끄러웠다. 신전에 공주를 내어준다? 멸망해도 공주는 공주였다. 특히나 레이시아 공주는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예쁜 건 둘째 치더라도 성품 자체가 좋아서였다.

‘지켜볼 수밖에 없다.’

뱀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 길게이가 몸을 돌렸다.

“갔습니다.”

“휴우···”

레이시아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앞으로는 그와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신전은 공주님의 편임을 기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케이슨 성기사의 옆에 기사가 자연스럽게 섰다. 그 또한 레이시아 라인으로 갈아탄 기사였다. 드낙과는 다른 의미로 인덕이 있는 게 레이시아였다. 동부에 오고 나서부터 신전과 인연이 닿은 것이 아주 큰 행운임을 레이시아는 지금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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