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9 <-- 대산을 넘어 -->
드낙은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몬스터라지만 힘은 힘일 뿐이라는 절대적 법칙에 따라서 신성력도 잘 통하는 게 만티코어였다.
입에서 브레스를 질질 싸거나 거칠게 뱉어냈지만, 환각제를 먹이고 나서는 그런 빈도도 줄어들었다. 특히, 독이라고 할 수 없는 약초들을 과다 투여해서 부작용을 이용하여 확실하게 만티코어의 공격성을 줄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고블린 지하 도시〉에 가져갔지만, 사지를 분지른 만티코어를 제어하라는 소리에 불가능하다는 소리만 들었다.
“절대 안 됩니다.”
〈용맹한 고블린 웅타〉는 똑 부러지게 말했다. 고블린에게 있어서 만티코어는 반신급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실제로 그런 고초를 당했음에도 만티코어의 눈에는 아직도 흉포함이 깃들어있었다.
도저히 길들일 수 없는 존재였고, 고고한 자존감을 지닌 존재였다.
죽으면 죽었지 고개를 숙이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녹색 도끼의 선물인 와이번을 홀라당 훔친 중립신 일당이 크게 한탕한 경우와는 달랐다. 또한 만티코어는 자연계의 몬스터이면서도 특이하게도 마신(魔神)의 족속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매우 비밀스러운 특징도 가지고 있었다.
‘죽여서 응원해야 하나···’
드낙이 만티코어를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대형 몬스터〉의 경우 인간의 탈을 벗기 싫은 드낙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트롤의 경우 〈혈액〉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만티코어는 아니었다. 오우거의 경우에도 〈머리카락〉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만티코어의 능력 중에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건 전무하다고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뼈? 오크에 이어서 중복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으면 있으나 못한 계륵이 될 뿐이었다. 덩치가 커질 수 있었지만 고작 만티코어를 잡고 덩치가 비대해지는 것이라면 키메라로 만들어서 핏빛쥐들의 전력을 높여주는게 좋았다.
오우거를 죽였다가 요절해버린 인간마저 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만티코어의 힘을 드낙은 오롯이 받지 못할 게 분명했다. 오우거의 적발 성능 또한 오우거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키메라로 만들어서 대장쥐에게 선물로 줄까. 한 번 기강을 잡을 필요가 있어.’
이 세계의 개체 하나하나는 모두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대장쥐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서 굵직한 놈을 선물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지하 세계의 지배자가 될 대장쥐는 드낙에게서 〈키메라 만티코어〉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정황상 발룬을 하사받은 이실레아와는 다르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자에게 내려주는 포상이다.
구국의 위기에 내려주는 성검 같은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장쥐의 충성심을 더욱더 올릴 수 있어 보였다.
‘해보자.’
드낙은 고블린 지하 도시에 키메라를 만들 장소를 주문했다. 수많은 공사를 하고 있었기에 공터를 얻는 건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이곳을 쓰시면 됩니다.”
“원래 어디로 쓰려고 했는가? 상당한 공간인데.”
지하에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장소였다. 수천 평에 달하는 거대한 동공이다.
“수석(水石) 버섯을 양식하는 곳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위로는 지하수가 지나가서 물이 떨어져서 습도가 항상 높고, 아래로는 물을 흐르게 해서 항상 물이 고여있도록 만들 수 있도록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수석 버섯은 고블린 지하 도시의 특산물이었다. 핏빛쥐들의 털 곳곳에서 살고 있는 벼룩을 단번에 죽일 수 있는 게 수석 버섯을 넣고 달인 물이었다.
“알았다.”
드낙은 실패한 구리 마법진을 떠올렸다. 강력한 속박 마법진이었지만, 그냥 사지를 분지르면 되는 일이었기에 그냥 버려졌던 마법진이었다.
‘그때는 당황해서 그랬지만 이번에는 안 그래야지.’
정확한 플랜을 짜고 움직이기로 했다.
키메라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흑마법이 아니라 악마의 힘을 통해서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일이기에 어찌 될지 모르는 게 가장 무서웠다.
악마가 수작질을 부리기에도 좋았다.
그렇기에 키메라는 흑마법사들에게 해킹 같은 걸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런 안배를 악마가 해놓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초월자에 대한 두려움은 중립신을 통해서 드낙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를 방비하기 위해서는 흑마법을 통해 키메라에 간섭하는 실력과 지식 그리고 경험이 풍부해야 했다.
악마가 자주 건드리는 음흉한 곳을 지워야 했다. 그런 건 드낙으로서도, 포낙서스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무지(無知)한 건 아니다.’
변종 키메라인 포낙서스라는 존재 자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경험을 상세하게 안다면, 충분히 안전하게 만티코어를 키메라로 만들 수 있었다.
악마의 힘을 빌리더라도 안전하다는 게 중요했다.
‘문제는 하루 이틀 걸릴 게 아니라는 점이지.’
못해도 3개월은 걸리는 대작업이었다. 당장 키메라로 만들면 3일이면 충분하지만, 사전에 돌다리를 건너듯이 톡톡 건드리며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키메라가 된 만티코어에게 대장쥐가 죽을 수는 없었다.
드낙은 가장 먼저 핏빛쥐를 통해서 대장쥐가 이곳에 오도록 명령했다. 그다음에는 고블린 지하 도시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핏빛쥐들이 가진 철을 운반토록 하였다.
이에 걸린 시간은 3일에 달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가져온 금속을 마법으로 녹여 마법진을 만들어 만티코어를 단단하게 구속하고, 거대한 철 덩어리에 마력을 쏟아 넣어 마법진에 마력이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만들었다.
“크르르!”
3일 동안 알아서 기운을 차린 만티코어가 브레스를 뱉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가리가 벌어지지 않았기에 줄줄 새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새어나가는 구리액은 만티코어의 아가리에 이중으로 덮인 강철통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고열의 구리액이라도 강철을 녹일 수는 없지.’
생명체 상대로는 강력한 브레스였지만, 강철을 상대로는 산액 브레스 쪽이 더 우위였다.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법이었다.
만티코어를 이중 삼중으로 속박한 드낙은 서둘러 〈호수 마을〉로 돌아갔다.
당초 목적이 구리 광산을 얻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삼대시험 때문인가.’
호수 마을 밖까지 천막이 처져 있었고,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병사 중에는 경기병도 있었는데 검을 뽑은 채 돌아다니고 있어서 매우 살벌했다.
“우와아!!”
“와이번이다!”
드낙에게는 감탄사로 들렸지만, 단번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높이 있었기에 드낙이 잘 보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쿠당탕!
천막이 뭉개지는 건 물론이고, 도망가다가 횃불을 발로 차서 화재가 발생했다. 드낙은 서둘러 마법을 통해서 물의 마법으로 화재가 발생한 곳에 물을 대량으로 쏟아냈다.
“진정하라!”
소리를 거세게 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수십 명이 서로 밀고 넘어져서 다쳤다. 병사들이 드낙의 외침에 서둘러 중재를 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피해가 생겼을 정도였다.
완전히 전쟁터가 된 곳에 모비딕이 내려앉았다. 잠을 자다가 천막이 무너져서 나온 자유기사가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지만, 드낙을 보고는 뒷걸음질 쳤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경기병이 서둘러 다가와서 외쳤다. 그제야 자유기사와 주변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와이번 하나 때문에 이 지경이 될 줄이야. 서둘러 피해를 확인하고, 부상자들을 보살펴라!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예!”
드낙은 모비딕을 타고, 다시 날아올라 내성 공터에 내려앉았다. 곧바로 병사들을 시켜서 원탁회의를 열었다.
베바란스 총관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이실레아 중앙 사령관은?”
“전투과에 대한 준비로 자유기사들과 언쟁이 붙어서 오늘 아침부터 회의 중입니다.”
드낙이 그 말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하고 있네.’
“구리 광산이 있는 곳을 확인했다. 밖에서부터 노출되어있어서 상당한 양이다.”
“정말입니까?”
베바란스 총관이 깜짝 놀랐다. 하도 소식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삼대시험이 코앞까지 와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가슴을 졸였다.
“은고원 마을에서 7일 거리에 있다.”
‘켁. 멀다.’
베바란스 총관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영주님. 너무 멀다고 생각하시지 않으신지···”
“은고원 마을을 더 활성화하면 능히 대처할 수 있지 않겠나.”
“예···그건 그렇습니다만, 혹 구리 광산 주변 지리가 어찌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계곡이네.”
“계곡···”
계곡 지형에서 채굴하기 위해서는 위로 올라가서 조심스럽게 계곡을 깎아내면서 캐야 했다. 필요 없는 흙도 파내면서 안전하게 가져가야 했다.
당연히 엄청난 노동력이 소모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위치도 안 좋고, 채굴 방식에도 무리가 있어.’
“동북부에서 똬리를 틀 겐 동부 사령관에게 구리 광산의 인사권을 주기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가.”
멀리 있기에 광산의 인사권을 통해서 중앙의 재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었으며, 적진에 홀로 있는 경우가 될 수 있어서 일도 똑 부러지게 할 것이다.
겐의 파벌을 구리 광산에 앉히겠다는 말에 베바란스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싶었다. 은광산은 불파겐을 도운 12가문의 후예가 가져갔고, 구리 광산은 동부 사령관이 가져간다면 자연스럽게 중앙의 손이 뻗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앙은 베바란스 총관이 아니고, 이실레아와 도렌 그리고 레이시아를 의미했다.
제대로 활동하게 되면서 인덕(人德)이 있음이 증명된 레이시아의 비상(飛上)이 날카로웠다. 그덕에 베바란스 총관은 적어도 돈에서는 다른 자가 그 이권을 가져가길 원했다.
“찬성하고, 또 찬성합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고···구리 광산이 활성화가 되면 내년에는 썰매장을 건설할 수 있겠지?”
“당연히 가능합니다.”
흥청망청 써도 수단을 직접 손에 쥐여주는데 하지 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흐뭇한 표정을 짓는 베바란스 총관을 보며 드낙은 다음 문제에 대해서 말했다.
“삼대시험에 대해서 말할 게 있다.”
“예. 말씀하십시오.”
베바란스 총관이 경쾌하게 대답했다. 구리 광산이 손에 들어오면서 더 이상 동화를 매입하기 위해서 상인들과 만남을 할 필요가 없어져서였다.
그것만으로도 할 일이 반절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과 시험을 세종류로 나누고 싶다.”
“예?!”
“왜 그렇게 놀라나. 행정을 담당하는 중앙청에 시험을 볼 수 있는 중앙과. 세금을 담당하는 국세청에서 시험을 치르는 국세과.”
“마지막으로 어느 마을에서든, 어느 성에서든, 어느 곳에서든 똑같은 법률을 통해서 판결하는 법원까지.”
“법원···”
베바란스 총관이 몸을 떨었다.
‘법이라니? 영주 최대의 힘을 이렇게 남에게 준다고? 미쳤다!’
그가 속으로 발악을 했다. 행정보다 더 대단해 보이는 게 법원이었다.
“제도를 정비한 게제라스 전총관을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 그를 다시 중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드낙이 웃었다.
“제도까지 이렇게 정비를 해놔서 가는 길이 쉬워졌는데, 법까지 다루게 하는 게 뭐가 나쁜가?”
“하지만 그는 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은퇴한 자입니다. 어찌 다시 불러들이시는 겁니까? 만인들의 불만이 높을 것입니다.”
“불만을 가진 자는 내 앞에 와서 말하라고 해라. 그런 죄인까지 다시 써서 만인을 이롭게 하려는 나의 각오를 이길 수 있다면 말이다.”
드낙의 말에 베바란스는 더는 불만을 품지 못했다. 드래곤 나이트가 지배하는 땅에서 그의 각오를 부러뜨릴 자는 거의 없었다.
베바란스 총관을 돌려보낸 드낙은 핏빛쥐를 불렀다.
찍찍!
“뜨낙! 우리의 창조주를 뵙습니다.”
“게제라스 총관은 요즘 뭐 하고 있나?”
베바란스 총관에게는 전총관이라고 말했지만, 드낙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게제라스가 총관이었다. 그만큼 시기라는 게 중요했고, 함께한 시간은 무서웠다.
“시를 짓고, 돈이나 여러 패물 혹은 음식을 받으며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몰이 낚시〉도 즐겨합니다. 며칠 전에는 온종일 술만 마시면서 호수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괘씸한!’
“또? 더 말해봐라.”
“내청의 관리가 와서 행정에 관해서 묻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훈수를 둬주고 은화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게제라스가 만든 제도였다. 당연히 그에 관해서 물으러 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죽은 권력이라고해도 아예 권력을 쥐지 못한 놈보다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괘씸한!’
드낙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무직이라서 돈에 부족함이 없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백수라도 크게 달랐다. 그게 박호훈으로서는 열불이 났다.
자기는 구리 광산을 주기 위해서 땀이 나도록 돌아다니고, 지하 도시와의 협력을 다시 한 번 세움과 동시에 만티코어를 대장쥐에게 하사하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게제라스는 말 그대로 한량이 되어있었다.
적당히 애들에게 몇 자 가르쳐주고. 온갖 것들을 받아서 술로 하루를 그냥 날려버리기도 했다.
‘아주 살판났구나, 이놈!’
드낙의 눈이 번들거렸다. 당장 게제라스를 찾아갔다. 핏빛쥐 덕분에 어딨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우헤헤!”
경박하게 웃고 있는 게제라스가 드낙의 눈에 보였다. 대낮에 여자를 끌어안고 함께 몰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특히 여자가 굉장히 예뻤다.
지겨움 없이 바로 낚시의 손맛을 느낄 수 있어서 데이트 코스로도 아주 좋았다.
옆에 깔아놓은 돗자리에는 잘 구워진 빵과 꿀단지가 놓여 있었다. 그 외에도 야채에 포개어진 해산물도 제법 보였다.
얼음이 담긴 물에 넣어진 피를 싹 뺀 생고기도 보였다. 생고기와 함께 술병도 여러 병 들어가 있었다.
‘아주 천국이네. 천국이야.’
먹고 마시고 즐기고! 일타삼피를 노리고 있었다. 거기에 핏빛쥐들을 통한 정보로 게제라스와 함께 즐기고 있는 여자가 빵집을 운영하는 여성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만남을 이어나간지 이제 보름이 넘었기에 깨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자 관계까지 부러뜨리는 건 좀 아니겠지.’
게제라스가 연애를 한 적을 본 적이 없었기에 다가가려는 드낙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내일 불러야겠다.’
남자끼리 지켜줘야 할 선이 있는 법이었다. 오직 상남자끼리 지키는 법도라는게 있었다. 모솔의 연애를 훼방놓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탐하지 않는다. 같은 기본적인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