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8 <-- 대산을 넘어 -->
드낙은 만티코어를 길들일 생각을 가졌다. 끓어오르는 구리를 브레스로 쓰는 것 또한 합격점이었다. 생각보다 구리가 들어가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부는 그걸 감당하지 못해서 다른 것과 섞어서 구리 합금을 쓰고 있는 형편이었다. 외청에서 괜히 동화를 은화와 교환해서 매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조짐은 빨리 없애는 게 좋았다.
역전세가 일어나는 주택가와 같이 망하기 전에 움직여야 하는 게 베스트였다. 은화보다 동화가 비싸지면 은화를 지닌 자들은 그 가치폭락을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드낙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런 위험 보고서가 베바란스 총관의 주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구리 광산을 얻는 것이지만, 은고원 마을에서 이 계곡까지 대충 7일이 걸린다는 걸 봤을 때, 호수 마을까지 오가는데 1달이 넘게 걸렸다.
‘만티코어는 좋은 구리 양식장이 될 수 있다.’
돈이 중요한 것이 드낙이었다.
그다음에 생각한 것은 만티코어의 탱크와도 같은 전투능력 때문이었다. 와이번이 전투기라면 만티코어는 로켓을 단 탱크였다.
‘무조건 길들여야 한다.’
그 정도로 대단한 신체능력을 보유한 것이 만티코어였다. 물론 와이번 또한 강력한 발톱으로 전갈 꼬리를 박살 내고 뜯어냈기에 공격력이 약한 건 아니었지만 피통에서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크르르···”
뒷목에서 흐르는 피가 털을 타고 흐르며 불룩 튀어나온 흉부 밑에서 주르륵 떨어졌다.
가장 먼저 모든 짐승을 다룰 수 있는 〈혼란무도(混亂無道)의 타투(Tattoo)〉가 움직여졌다. 그 강렬한 카리스마에도 〈구리의 만티코어(Manticore of Copper)〉는 적의를 더욱 드러내더니 이내 도약해서 그대로 드낙을 향해 덤볐다.
‘쯧. 역시 안 통하나.’
〈히드라의 타투(Hydra`s Tattoo)〉를 비롯한 오크의 힘을 사용하며 드낙이 빠르게 물러났다.
콰과광!
드낙의 빠른 발걸음에 땅이 부서져 내렸다. 엄청난 각력(脚力)을 흙이 버티지 못해서였다. 동시에 주문을 읊으며 마력을 소모해나갔다.
고르곤의 심장이 펌프질을 하며 생명력을 마력으로 치환했다.
‘먼저 가죽부터 노린다.’
주문을 읊으며 도망가는 드낙의 양팔에 푸른 마력이 시리도록 차갑게 빛이 났다.
쾅!
바닥을 부수며 만티코어가 흙먼지를 일으켰고, 상체를 들어 올리며 뒷발로 땅을 박차며 단번에 드낙이 있는 곳에 다시 한 번 따라붙었다.
쿵! 훅!
왼쪽 눈이 균열나있었기 때문에 만티코어는 왼발로 땅을 짚고, 자세를 곧추 잡으면서 정확한 힘을 실어 오른 앞발을 휘둘렀다.
모든 것이 휩쓸려 나갔다. 흙과 돌이 쓸려나갔고, 남아있는 바닥에는 바위가 발톱에 조각이 난 채 광풍에 흔들거렸다.
“〈살아있는 화염 늑대(Living Fire Wolf)〉.”
12문장으로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영창 마법이 드낙의 팔에서 쏟아져나왔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화염 늑대가 만티코어에게 들러붙어서 몸을 부딪쳐서 화염을 터트리고, 다시 늑대로 변화하여 몸을 휘감았다.
“크아아아아!!!!”
만티코어의 구리액이 거칠게 뿌려졌다. 〈숨결(Breath)〉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초월의 힘을 내재하고 있었다. 애초에 생명체가 모래를 검게 태워버리는 고열의 구리액을 토해내는 것부터 판타지적이었다.
‘단번에 상쇄하다니.’
드낙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마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오로지 생명력으로 마력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마법을 마음껏 쓸 수가 없었다.
“크롸롸!”
드낙의 시야로 와이번이 지나가며 단번에 날아올라 갔다. 그 모습에 만티코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쥐새끼만한 인간보다는 자신과 덩치가 비슷한 모비딕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어그로를 드낙은 단번에 이용했다.
“후욱!”
내달려서 만티코어의 발에 칼침을 놓았다. 점프해서 모든 체중을 싣고, 속력마저 집어넣어 찔러넣었다. 박혔지만, 그리 대단치는 못했다.
애초에 롱소드의 한계는 뚜렷했다. 체중만 수천kg에 달하는 만티코어를 100kg짜리 인간이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크윽!”
고통에 앞발을 휘두르는 만티코어의 움직임을 회피해냈지만, 지축이 크게 흔들렸다. 드낙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왼손으로 땅을 짚었다.
‘어딜!’
다시 날아오르려는 만티코어를 향해서 제국 전신갑주에 깃든 소환 마법을 사용했다.
3m짜리 〈대지 골램(Earth Golem)〉이 일어나며 만티코어와 그대로 정면으로 부딪쳤다. 손이 만티코어의 앞발을 움켜쥐자, 그대로 속력이 크게 줄었다.
콰드득!
딱딱한 흙이 수수깡처럼 이빨에 부서졌고, 뒷걸음질을 치면서 생긴 공간을 통해서 짧게 몸을 들이받았다. 단 2방 만에 흙의 골램이 무너졌다.
‘생체탱크네.’
꼬리를 잡으면서 들러붙은 드낙의 롱소드가 만티코어의 탐스러운 뒷구멍을 후벼 팠다. 척추를 곤두세우며 만티코어의 머리가 뒤로 바짝 섰다.
부들부들 떨었다.
전갈 꼬리가 모비딕에게 뜯겨졌기에 가능한 수였다.
“컹기잇!”
엄청난 고통이 만티코어의 신경을 통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냥 살이 비벼지는 치질도 끔찍한데, 검에 의해서 후장이 찔리고 베였다.
감히, 치질 환자에게 있어서는 PTSD를 일으킬만한 광경이었다. 드낙은 서둘러 도망을 쳤다. 동시에 드낙이 만든 기회를 모비딕이 잡았다.
신성력으로 회복된 모비딕의 낙하 속력은 순식간이었다.
인간의 동체시력을 아득히 뛰어넘으며 단번에 내려찍어 토끼의 머리와 목을 단번에 분리해버리는 송골매와도 같았다.
콰직!
무시무시한 모비딕의 발톱이 만티코어의 옆구리를 움켜쥐면서 만티코어를 넘어뜨렸다. 모비딕의 긴 목이 출렁거리며 다시 한 번 뒷목을 물어뜯었다. 강하게 털며 살덩이를 한 움큼 뜯어냈다.
살덩이의 반이 근육이었다.
거친 숨소리가 만티코어에게서 뻗어 나갔다.
“물러서!”
드낙의 말에 모비딕이 물러났다. 드낙은 혁대에 묶은 회복 물약을 뒷목에 뿌려주며, 동시에 마법으로 앞발만 단단히 묶었다.
회복 물약 한 병 분량으로는 만티코어의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연장할 뿐이었다. 결국 드낙은 신성력을 써서 만티코어의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크아아!”
회복되자마자 만티코어가 날뛰었다. 브레스를 자신의 앞발에 쏟아내 마법을 상쇄시켰다. 동시에 자신 또한 털이 타고, 가죽이 녹아내렸다.
‘이런 젠장. 이걸로는 안 되네.’
드낙이 힘으로 거칠게 검을 수직으로 찔러 앞발과 팔 사이의 연골에 집어넣고, 그대로 비틀었다.
“끄어어엉!”
만티코어가 눈물을 찔끔 거리며 비틀거렸다. 왼쪽 앞발로 섰지만, 모비딕이 뒤에서 목을 잡고, 막는 사이에 다른 앞발의 관절까지 드낙에게 박살이 났다.
앞발과 뒷발 모두 관절을 파괴한 드낙은 뒷목의 상처를 완전히 회복시켰다.
모비딕이 발톱으로 짓누르는 것만으로도 만티코어는 일어나지 못했다.
‘교육의 시간이다.’
만티코어에게는 지옥의 시간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계속 송곳으로 찔리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물론 거기에 굴복할 만티코어가 아니었다. 오히려 흥분해서 이성까지 마비될 정도로 격해졌다.
“크아아아!”
걸쭉한 침을 흘리며 지친 만티코어가 포효하며 눈앞에 있는 드낙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만티코어는 전신이 피떡져 있었음에도 그 흉포함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이 만티코어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이 새끼가.”
드낙 또한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만티코어의 머리를 검으로 계속 내려쳤다. 피가 튀고, 살이 갈라졌으며 근육이 잘리며 두개골까지 드러날 정도였지만 만티코어는 드낙을 노려보면서 오히려 머리에 더욱 힘을 줬다.
결국 손을 놓은 건 드낙이었다.
치킨 레이스에서 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몬스터라는 건 이런 놈들이었다. 녹색신이 만든 타투의 힘을 가지지 않았다면 와이번조차도 얻지 못하는 게 그였다. 물론 드낙에게 있는 타투는 중립신이 새로 짠 타투였다.
‘그래도 포기 못 해.’
이미 은행의 마스코트도 만티코어로 정할 정도로 꿈을 꾸고 있었다.
‘생포한다.’
드낙은 사지를 분지른 부분을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했다.
“끄어엉!”
만티코어가 박살이 난 관절을 재확인하는 드낙의 철두철미함에 비명을 질렀다.
‘재생력은 낮네.’
드낙은 모비딕에게 명령했다.
“구리를 최대한 가져와 봐!”
“그르렁!”
모비딕은 계곡을 부수고, 굵직한 구리덩어리를 가져왔다. 장작을 모으고, 마법으로 물을 뽑아내서 진흙을 쌓아 간이대장간을 만들었다. 화력을 통해서 구리 광석을 녹이고, 나머지 불순물은 걷어내어 순수한 구리를 얻었다.
이를 통해서 거대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것만 해도 2일이 걸렸는데, 이미 배보다 배꼽이 커질 정도였음에도 드낙은 정신을 못 차렸다.
‘재밌다!’
만티코어를 조련하는 데 큰 재미를 느꼈다. 몬스터 조련을 위해서 수많은 걸 준비하는 일은 정말 재미났다. 큰마음 먹고 외제차를 구매하는 회사원의 마음과 비슷했다.
반면 만티코어는 탱크나 다름없었다.
시내에서 탱크를 끌고 다니는 로망처럼, 판타지 세계에서 만티코어를 휘하에 두는 것만큼 엄청난 일은 없었다.
‘이런!’
음각 마법진의 형태로 구리를 통해서 마법진을 만든 드낙은 아차 싶었다. 현재 마력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마법진의 높은 효율로도 완벽하지 못해서였다.
‘며칠은 더 여기에서 지내야겠네.’
아쉬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대신에 만티코어가 잠을 자지 못하도록 잘 때마다 코에 물을 퍼부었다.
“흐흐커엉! 케륵!”
피곤에 절어 곤히 잠들었던 만티코어가 거칠게 숨을 내쉬더니 기침까지 했다. 얼굴이 너무 커서 사람 하나 들어갈 법한 콧구멍을 노리고 물을 퍼부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나중에 가서는 모비딕에게 이를 맡겼는데, 제일 열심이었다.
‘호적수는 호적수인가보네.’
물을 잔뜩 쏟아낸 드낙이 지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신성력은 아껴두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음 날에는 만티코어에게 못을 박았다. 고문을 통해서 굴복시키려는 마음이 강했다.
깡!
“크아아아!”
목소리만 큰 만티코어가 발악을 했다. 하지만 모비딕에게 단단히 잡혀 있었고, 사지가 분질러졌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말 잔혹한 일이었지만, 인간의 잔혹함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하룻동안 진행된 이 고문에서 만티코어는 드낙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싹싹!
싹싹!
드낙은 주변에서 독초를 가져와서 손으로 비벼서 가루를 냈다. 체온이 50도가 넘는 게 드낙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환각과 감각의 극대화를 느끼며 온갖 것에 휘둘리는 만티코어는 입에 거품을 물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검은 땀이 날 정도로 혹사당했다.
‘이래도 날 물려고 하네.’
힘으로 들이밀어 진 이빨을 밀어내며 드낙이 고민했다.
‘조련술의 업을 높이는 수밖에 없는 건가?’
하지만 이미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렸다.
벌써 나흘 동안 만티코어를 길들이는 데 쓰고 있었다. 이 이상은 드낙 또한 버거웠다.
“모비딕! 왜 자꾸 꼬리를 물어뜯어?”
적당히 땜질을 해놓아서 토끼꼬리처럼 전갈꼬리가 뭉툭하게 되어있는걸 모비딕이 자꾸 깨물자 드낙이 한소리를 했다. 약하게 깨물어도 아픈 건 아픈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굴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는 고통을 줄 필요를 못 느꼈다.
오히려 만티코어의 프라이드를 높이고 있을 뿐이었다. 고통 따위에게 굴복하는 자신을 보기 힘든 것이 분명했다. 만티코어의 삶을 생각하면 그럴듯했다. 자존심이라는 건 굽히면 굽힐수록 가벼워지지만, 그 반대 또한 가능한 일이었다.
“휴우···”
한숨을 쉰 드낙이 벌러덩 드러누웠다. 성과없는 일에 흥미가 떨어져서였다.
‘검은 회의에 물어보자.’
뜻밖의 수확을 낼 수 있을지 몰랐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키메라로 만드는 겁니다.”
“키메라로?”
포낙서스가 제안하는 방법에 드낙이 질색했다. 이 세상의 흑마법사들은 악마 아카타베루의 힘을 빌려서 흑마법을 부리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악마에게 〈마력(魔力)〉이 보상으로 돌아간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중립신이 업(業)을 얻으려고 온갖 음흉한 일을 벌이듯이, 악마 또한 마력(魔力)을 얻기 위해서 음흉한 짓을 한다. 물론 업도 좋아하는 게 악마였다.
급할 땐 쓰고 싶어도 이렇게 큰 일에 쓰고 싶지는 않았다.
‘대형 몬스터의 키메라···’
강력한 힘이 되겠지만, 동시에 결코 남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하나마나였다.
“죽여서 얻는 것도 많이 없어 보이고.”
박쥐 날개? 멋지긴 하지만 악해 보인다.
눈동자의 금속화? 강인하지만 지나치게 인위적이다.
‘구리를 토해내? 내 입으로는 브레스도 아니고 토악질이겠지.’
구리를 토하는 인간이라니···그냥 구경거리였다.
“키메라라···”
드낙이 고민에 빠졌다.
다른 이들의 조언도 들었는데, 세파리아스는 단칼에 죽이는 게 낫다고 평하며 쓸데없는 일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겉멋에 이성이 날아가 버린 벼락부자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흰여우 새린은 점성술을 통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면대결을 통해서 굴복시키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역시 들을만한 것은 되지 못했다.
기어오르는 발바룽은 사지를 잘라 구리를 토해내는 도구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며 드낙을 부추겼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그럴듯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