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7 <-- 대산을 넘어 -->
먼저 하늘로 솟구쳐 오른 것은 모비딕이었다. 와이번이 가진 날개 성능은 그 어떤 대형 몬스터보다 좋았다. 그만큼 하늘의 제왕이라고 부를만했고, 용족다운 면모였다. 만티코어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리며 포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구오오오!
포효는 특히 음역대가 매우 낮고, 멀리 퍼지는 특성 때문에 동물을 쫓을 때 자주 사용되곤 했다. 같은 몬스터에게는 생각보다 잘 안 통하는데, 평범한 동물과는 다르게 그 흉포성이 남다르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몬스터 상대로 하는 포효는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구리 계곡을 홀로 점령한 만티코어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크아아아!”
거칠게 포효한 만티코어도 열심히 계곡을 달렸다. 산화된 구리를 거칠게 밟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쿠궁! 쿠궁!
규칙적인 달리기 소리가 울려 퍼지며 메아리처럼 계곡을 후려쳤다.
사자의 몸체는 두껍기 그지없었다. 자연히 날아오르는데 속도가 받쳐줘야 했다. 박쥐의 날개를 폈지만 쉽게 날지 못하는 이유도 덩치 때문이었다.
콰드드득!
잔뜩 흥분한 만티코어 때문에 전갈 꼬리도 말을 안 듣는 것처럼 사방팔방으로 휘적거려졌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 있는 꼬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흉포하게 주변을 파괴하며 흙을 뜯어내며 파괴했다.
후아악!
날아오른 만티코어는 우직하게 날아올랐다. 와이번보다 큰 박쥐 날개가 거세게 움직였는데, 그 날개에 담긴 힘이 보는 것만으로도 태산을 움직이는 것처럼 거칠었다.
‘저 괴물 놈의 날개는 자르기 어렵겠는데.’
드낙은 만티코어의 날개가 엄청나게 억세 보이는 것을 확인했다. 와이번과 비교하면 떡대나 다름없는 만티코어의 체중을 버티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바람을 견뎌야 했다.
격렬한 날개짓에 피막이 늘어났다 줄어드는 게 확실하게 보였다. 밤에서 본다면 날개가 파도처럼 출렁거릴 것이고 그건 마치 어둠을 두른 것 같은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보일 터였다.
‘보통은 날개가 약점이지만, 저놈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함정으로 보였다. 그때 드낙이 괴상한 소리를 냈다.
“으그급!”
모비딕이 거칠게 움직였다. 그 중력에 휩쓸린 드낙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날개를 살짝 접으며 바람을 꺾어버리며 단번에 낙하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전신이 압박되는 느낌에 드낙이 안간힘을 썼다. 다시 몸을 고쳐잡을 수는 있었지만, 매번 모비딕이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기에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미친 듯이 날뛰는 황소 위에 있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웃!”
요령이 부족한 드낙으로서는 모비딕에 찰떡처럼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멋지게 공중전을 하겠다는 말과는 다르게 모비딕의 거친 움직임에 떨어지지 않게 노력하는 게 전부였다.
‘그냥 하늘을 나는 것과 공중전은 차원이 달라!’
“쿠와아아아악!!!!”
짐승 두 마리가 포효했다. 와이번과 만티코어의 브레스는 모두 액체 브레스였다. 당연히 먼저 날아올라 위를 장악한 모비딕에게 유리했다. 액체라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푸아아악!
안타깝게도 브레스의 상성은 만티코어가 우위였다.
〈구리의 만티코어(Manticore of Copper)〉는 평범한 만티코어가 아니었다. 토해내는 브레스 자체가 고열의 구리였고, 산액 브레스를 단번에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산액보다 무게가 무거운 것이 구리액이였기 때문에 산액 브레스를 뚫고 쏘아지기도 했다.
만티코어가 뿜어내는 구리액은 독성이 약했지만 모래마저 순식간에 검게 태울 정도의 고열이었다. 산액을 단번에 기화시킬 화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컹!”
모비딕이 날개를 접으며 낙하하며 얻어낸 속력으로 순식간에 만티코어의 옆을 지나가며 긴 목으로 뒷발을 물고 늘어지더니 순식간에 모비딕의 몸체가 괴이하게 향하던 방향을 유지하면서 입체적으로 옆으로 반월을 그렸다.
“크악!”
만티코어의 몸체가 반바퀴 흔들렸다.
모비딕의 목 또한 크게 출렁거리며 비틀어졌다.
쥐어짜지듯이 비틀린 가죽이 단번에 뜯겨 나갔다. 마치 회전하는 드릴의 축에 휩쓸린 가죽처럼 난잡하게 뜯겼다.
핏!
피가 튀었지만 소량에 불과했다. 결코 치명타는 되지 못했다.
펄럭!
아래로 내려간 모비딕은 크게 날갯짓을 하며 솟구쳐올랐다. 만티코어가 포물선을 그리며 몸을 돌리는 사이에 다시 한 번 하늘을 지배했다.
‘압도적인 기동력.’
인간이 만든 마법첨탑의 공격마저도 피해낸 블랙 스케일 와이번이었다. 기동성으로는 그 어떤 대형 몬스터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긴목이 가지는 회전력.’
특히나 방금 보여준 것은 마치 머리와 몸을 마치 투포환 선수처럼 이용했다.
‘신기한 방법이네. 대형 몬스터와 체중 차이가 나기 때문에 터득한 와이번만의 사냥법인가.’
모비딕은 자신의 몸을 축으로 이용하여 공중에서도 충격적인 운동량을 보여줬다. 만티코어의 가죽이 걸레가 짜이듯이 비틀리며 회전하며 단번에 뜯겨 나간 것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공격력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잽을 날리는 것에 불과했다. 진짜는 와이번의 발톱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근접전을 피할 수 없었다. 만티코어와 싸워본 적이 있는 듯한 모비딕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싸움의 양상은 장기전으로 이어졌다.
후웅!
기회를 잡은 만티코어를 상대로 모비딕은 날개를 활짝 펴서 활강하며 속도를 단번에 늦췄다. 낙하산을 펼친 사람처럼 몸이 느리게 내려갔고, 만티코어의 기동력으로는 이에 대처할 수 없었다.
서로 아슬하게 지나쳐가며 브레스만 쏘았다. 만티코어로서는 실로 답답한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단 한 방만 맞으면 끝장을 볼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촤아악!
액체와 액체가 뒤엉키고 고열의 구리로 인하여 기체화된 독연기가 검녹색의 연기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끄응!”
드낙은 활강하는 모비딕 때문에 역중력을 받으며 몸을 떨었다.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우주인처럼 혈관 하나하나가 조여오며 시야가 살짝 깜깜해지기도 했다. 그만큼 모비딕의 움직임은 변칙적이었고, 재빨랐다.
쾅!
서로 꼬리와 꼬리가 부딪치기도 했다. 그 충격만으로도 위치가 흔들렸다.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딛고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부딪히고 나서 자세를 바로 잡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슈샤샤샥!
드낙이 쏜 〈밴쉬 에로우(Banshee Arrow, 악령 화살)〉가 만티코어를 노렸지만, 견제조차도 하지 못했다.
‘내가 전혀 도움이 안 되네.’
진작에 생명력으로 마력을 회복했지만, 주문을 읊을 수가 없었다. 간략화된 마법을 영창해도 공중이라는 입체공간에서 투사체를 만티코어에게 맞춘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것도 힘든데, 미친 듯이 날면서 방향전환을 슉슉 해대는 모비딕의 위에서 상대를 눈으로 좇는 것도 버거웠다.
‘드래곤 나이트는 개뿔!’
고래 밑에 들러붙어서 찌꺼기를 먹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꼬락서니였다. 롱소드의 길이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만큼 대형 비행 몬스터의 싸움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거리를 벌려서 마법 타격을 줄 수 있었지만, 만티코어의 기동력이 그 정도로 나쁜 건 아니었다.
‘창이 있었으면 근접전에 도움이 되었을까?’
와이번과 만티코어의 강철과도 같은 꼬리 길이는 투핸디드소드로도 감당이 안 되었다. 거기에 맞서거나 그 공격을 상쇄하려면 3m가 넘는 긴 창이 필요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창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내달리는 전투마 위에서도 옆구리에 고정쇠를 두고 헤비 렌스를 걸치고 옆구리로 고정하고 달리는 게 인간의 한계였다.
초월적인 힘을 지녀도 하체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오로지 근력만으로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 태풍 속에서 장대를 들고 목적지로 향하는 꼴이었다.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드낙의 눈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고글이라도 껴야겠어.’
그 정도로 대단한 유리는 이 세상에 없었지만, 그만큼 모비딕의 속력이 대단했다. 잠깐 여유로울 때, 드낙이 외쳤다.
“어떻게든 한 방 먹이던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봐!”
그 말에 모비딕이 순식간에 날개를 조작하며 아래로 향했다. 높이 올라간 만티코어는 다시 내려간다는 선택지에 고민할 것을 노리며 거리를 벌리게 하려고 했다.
드낙의 명령은 순식간에 전황을 바꾸었다.
“크르라앙!”
만티코어가 숨을 잔뜩 뱉어내며 부채꼴로 브레스를 쏘았다.
‘이런!’
드낙의 명령이 오히려 악수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아랫배를 보이며 회전하며 단번에 날개의 위치와 방향을 바꾸며 날아오르는 모비딕 때문에 드낙의 시야가 반전했다. 동시에 타들어 가는 구리액에 검은 비늘이 녹아내렸다.
투둑!
드낙의 투구에도 고열의 구리액이 들러붙었다. 치이익 거리는 소리에 드낙이 침을 삼켰다. 직감적으로 모비딕이 대신 많은 양의 구리액을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구나 훈수를 둘 줄 알았다. 그 훈수가 X될 것이라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훈수충 때문에 만티코어는 기회를 잡았다.
와이번을 상대로는 다시 한 번 오지 않을 호기였다.
“쿠와아악!”
모비딕의 방향을 바꾸게 만들었다는 것은 곧 그 이동간격을 단번에 역전시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만티코어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무식한 놈!’
드낙은 욕지거리를 뱉었다. 하지만 만티코어로서는 자신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것에 불과했다. 허나 만티코어보다 발이 긴 모비딕은 발톱으로 가장 먼저 만티코어의 전갈 꼬리를 움켜쥐었다.
콰득!
갑각류의 전갈 꼬리에 발톱이 박히며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콰직!
동시에 모비딕의 긴 목이 만티코어의 뒷목을 물었다. 이내 서로의 몸이 거칠게 부딪쳤다.
쾅!
‘우억!’
드낙의 몸이 붕 떴다. 만티코어의 흉악한 이빨이 모비딕의 옆구리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고통스러울 것이 뻔했지만 두 몬스터는 결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입으로 문 상대를 결코 놓아주지 않을 심산이었다.
만티코어의 갈기를 왼손으로 잡은 드낙의 몸이 종잇장마장 펄럭이면서 흔들렸다. 거친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이나 다름없었다.
모비딕의 목이 출렁일 때마다 만티코어의 뒷목에서 피가 거세게 흘러나왔다.
거대한 몸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힘이 절로 느껴졌다. 서로 뒤엉킨 채로 그대로 두 마리의 대형 몬스터가 지상으로 추락했다.
추락하는 방향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자 드낙이 히드라의 타투를 사용하여 무식한 힘으로 홀로 움직여서 만티코어의 갈기를 잡은 채 자세를 엉거주춤 잡았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였다.
‘죽어라!’
바로 눈을 노렸다.
캉!
‘미친?!’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균열이 난 만티코어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드낙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터프함에 드낙의 몸이 찌릿했다. 온몸에 전율감이 퍼져나갔다.
평범한 야수와는 다르고, 일백야수를 지나 일각수가 된 야수와도 달랐다.
몬스터에게 있어서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괴물〉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흉포함이 평범함을 아득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크흐으!”
더욱더 조여오는 만티코어의 이빨에도 모비딕이 물고 있는 뒷목에서도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동시에 전갈 꼬리가 아예 뜯어졌다.
꼬리가 뜯겨 나가면서 서로의 하체가 떨어지자마자 서로가 상대를 노렸다.
떨어지면서도 만티코어는 앞발을 휘둘렀고, 와이번은 뒷발로 할퀴면서 걷어찼다. 모비딕의 아랫배가 긁히면서 살점이 뜯겨나갔고, 만티코어의 엉덩이가 발톱에 걷어차이며 출렁거렸다.
쿠웅!
자욱하게 흙먼지가 두 곳에서 일어났다. 드낙 또한 낙하의 충격을 받았다.
“께흑! 콜록!”
고통 섞인 기침에 피가 한가득 쏟아져나왔다. 내장이 다친 듯했다. 하지만 드낙은 단단한 흙을 느끼며 일어섰다가 다시 넘어졌다.
‘이거 왜 이래?!’
방향감각이 괴상했다.
원양어선에서 살다가 오랜만에 땅을 밟았을 때 느끼는 기분과 흡사했지만 더 심했다.
“크르르···”
드낙의 훈수로 브레스도 맞고, 운 나쁘게 옆구리가 물리기까지 한 모비딕은 일어나지 못했다.
파아앗!
드낙은 일단 신성력으로 모비딕을 치료해주고, 흙먼지를 바람 마법을 통해서 흩어냈다.
후우우웅!
강풍이 지나고 만티코어의 모습이 드러냈다.
정신을 못 차리고 피해를 감당하지 못했던 모비딕과는 다르게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만티코어가 걸어오고 있었다.
왼쪽눈이 균열이 나있었지만 그럼에도 움직이며 드낙을 바라보자 드낙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저런 놈을 죽일 수는 없지. 넌 내꺼다!’
기동력이 와이번보다 못했지만 오히려 전투능력은 높은 것이 만티코어였다. 물론 드낙의 훈수가 아니었다면 서로 백중세를 유지했겠지만, 어쨌든 결과를 그러했다.
특히나 보통 만티코어와 다르게 구리액을 쏟아내는 것도 멋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