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6 <-- 대산을 넘어 -->
‘못 먹어도 고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도박사들을 미화한 영화에서 볼법한 대사였지만, 드낙은 그런걸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받쳐줄 만한 것이면 충분했다. 시험 기간에 온갖 자기변론을 하며 딴짓하는 사람의 심리나 다름없었다.
‘둘 다 못 가지면 애초에 시골에 처박혀서 농사나 지었어야지. 여기서는 상남자처럼 모험을 해야 한다.’
탐욕스럽지 못하면 패배할 뿐이었다. 이 세상은 경쟁이다. 경쟁은 절대적 평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적 평가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드낙은 드래곤 나이트가 되면서 그 〈선〉을 넘었다.
인간을 초월한 힘에 턱걸이하면서 바라보는 세상이 달라졌다.
‘일인군단의 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륜한 검술도 필요하고, 끔찍한 살상력을 지닌 그림자와 어둠을 두른 소환체가 필요했다.
물론 포낙서스의 말이 특히나 드낙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저씨들이 괜히 자동사냥을 좋아하는 게 아니지.’
게임에서 대리와 핵이 판치는 것처럼, 누구나 편하게 일을 이루고 싶어한다. 거기에 나이는 상관없었다. 특히 드낙은 그런 종류의 유혹에 잘 빠지는 사람이었다.
현대였다면 핵쟁이로 제법 커뮤니티에서 악명을 떨쳤을 핵쟁이의 상이 바로 드낙이었다.
세파리아스가 걷는 길은 드낙이 똑같이 걸을 수 없었다. 그와 그는 다르기 때문이다. 절륜한 검술 실력만 갖추고서는 이 험한 난세를 이겨나가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게 드낙의 생각이었다.
‘세팔이는 너무 건방지기도 하고.’
검술에 대한 자신감이 도를 넘는 게 그였다. 검으로 신도 잡을 기세였다. 범인인 드낙이 생각하기에 그냥 싸이코나 다름없었다. 신을 죽이는 검사라니,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적어도 드낙은 〈살성(殺星)〉이라는 별 자체를 엘프가 있는 곳으로 옮겨가 염탐하는 중립신을 상대로 이길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가 점점 별을 개방할수록, 중립신의 영향력은 이 행성에 더욱 자리매김할 것이다.
포낙서스가 세파리아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드낙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이 세계의 소환술을 생각하면 엄청난 힘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건 그렇지.”
레우치터 소환술은 소환마법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 경계에 걸쳐져 있는 무언가일 뿐이었다. 원시 주술과 주술의 경계선. 그게 중요했다.
그것만 유지하면 큰 유지비가 들지 않았다. 소환마법의 유지비를 생각하면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의 고블린이 왜 생피부를 드러내서 원시주술과 주술을 짜 넣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런 고블린보다 큰 힘을 다룰 수 있지 않습니까?”
포낙서스의 꿀 발린 소리에 드낙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조련술의 업 또한 레우치터를 다루는데 바로잡아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 말했다.
“기사는 말이야, 검술만 잘해? 아니잖아. 문무겸비에 미친놈들이지. 그러니까 나도 가질 수 있는 건 모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후회하게 될 거다. 너의 한계는 뚜렷하다.”
“어차피 세팔이의 찌꺼기가 나한테 있잖아? 결국에는 도달하는 길 아니야?”
“흥.”
은근히 세파리아스를 추켜세워주는 말에 그가 코웃음을 치며 사라졌다. 오늘은 드낙을 가르칠 마음이 들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드낙은 그가 톡 쏘고 가지는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멧돼지의 등에 곰머리가 셋달린 일각수가 지닌 능력은 보잘것없었다.
‘지금 수준의 나에게 필요한 게 전혀 없네.’
털을 강하게 만드는 능력? 모양만 더러워질 뿐이다.
상당한 후각 능력 증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영혼과 마력을 뒤틀어서 힘으로 끌어낸 제국을 상대하는 데 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단점은 없으니까.’
드낙은 멧돼지의 후각을 선택했다.
‘나는 드래곤 나이트다.’
이제 웬만한 능력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그가 멧돼지의 털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했다.
‘단점없는 능력만 쪽쪽 빨아먹어도 괜찮겠지.’
우월감에 빠진 드낙을 포낙서스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검은 문을 모두 취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드낙이 하나를 그냥 버렸기 때문이다.
‘중립신이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네.’
업을 쌓아야 하는 중립신에게 있어서 드낙의 행태는 실로 기쁠 것이 분명했다.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포낙서스의 도움으로 이론을 터득한 드낙은 암력(暗力)을 단번에 다룰 수 있었다.
원시 주술을 사용한 적이 있었고, 그 덕에 불완전한 레우치터를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또 주술사의 역량 또한 검은 문을 통해서 강제로 쌓아올렸다.
못하는 게 이상했다. 다만, 주력의 회복은 느릿느릿한 것이라 조그마한 힘에 불과했다.
‘단점이 없는 게 아니네.’
회복이 어려운 소환수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대해질 수도 있었기에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보였다. 자연의 주력은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었지만, 마구잡이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산처럼 쌓인 금화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조그마한 통으로 옮기는 것과 비슷했다.
아무리 강대한 그릇을 가져도 주력의 회복속도는 평등했다. 만변(萬變)의 속성을 지닌 마력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감정에 치우친 〈원시 주술〉은 특별한 체계였다.
고정된 자연의 주력을 악독한 것으로 변모시키기 때문이다. 그건 어둠과도 같고, 그림자와 비슷했다.
레우치터의 신체를 이용하는 것이 암력의 주된 힘이었다. 그렇기에 자동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 힘은 드낙이 휘두르는 힘이 아니라, 레우치터가 휘두르는 힘이었다.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을까?’
때에 따라서는 레우치터에게 준 힘을 다시 빼앗거나 줄여야 할 수도 있었다.
‘위험하지만, 시도할 가치는 있어.’
이 험악한 능력을 힘으로 쌓는 블랙 고블린들은 오히려 드낙보다는 덜 위험했다. 완전한 레우치터를 휘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한계가 존재했다.
반면 드낙은 진짜 레우치터를 제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덤벼도 능히 막아낼 수 있다.’
전에는 도망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도노에게 주고 남은 주력으로 만들어낸 레우치터는 손가락 몇 개를 합친 것 같은 어둠으로 드낙의 주위를 돌았다.
‘마치 암흑 정령 같네.’
검은 구체는 검은빛을 뿌리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드낙의 주위를 도는 것뿐이었다. 완벽하게 제어되고 있었다.
‘천천히 키워볼까.’
드낙이 움직이자 불완전한 레우치터는 드낙의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서 사라졌다.
‘고블린을 죽여서 암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참자.’
얻는 것에 비해 흘리는 피가 많았다.
중립신의 세뇌를 받았던 드낙이라면 가차 없이 이 도시를 멸망시키고 그 업을 핥아먹었겠지만, 풀려난 드낙은 그러지 않았다.
고블린도 생명이었다.
그들은 살아있으며, 인간과 비슷한 지성종족이었다.
여유로운 상황에서 마음껏 죽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급박한 상황이 와야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고블린 지하 도시〉를 적당히 돌아다녔다.
석탄은 여전히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핏빛쥐들과 블랙 고블린은 서로 뒤엉켜 살고 있었다. 특히나 집단적으로 크게 거래를 하기 위한 공터가 도시 곳곳에 마련되어있었다.
‘핏빛쥐들의 딱딱한 사회를 생각하면 너무 자유로워 보이는데.’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블랙 고블린들은 언제고 도움이 된다.’
적어도 초월의 힘을 다루기 때문에 특수병과로써 활용하기 좋았다. 이들에게 계속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내어줘야 했다.
백금 왕가가 북부를 싫어하면서도 지금 북부 논공행상을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상을 주든, 벌을 주든 결국 그 행위 자체가 그 사람과 세력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드낙도 블랙 고블린에게 상을 줘야 했다.
“웅타, 핏빛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들었다. 주술 아이템부터 석탄까지, 그 교류의 깊이가 남다르다고 했다.”
“오히려 도움을 받은 것은 저희들입니다.”
“어찌 되었든 서로 상생해서 세력을 크게 불린 것은 그대의 공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확실하지 않은가.”
“감사합니다.”
칭찬에 일단 용맹한 고블린 웅타는 감사를 표했다. 드낙은 고블린 지하 도시의 외성벽에 마법을 부여해주었다.
“끝도 없이 수복하는 성벽이다. 이런 지하 도시에서는 공성 병기도 제한될 수밖에 없겠지.”
성벽을 무너뜨릴 수 없으면, 소비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항상 숫자가 많은 고블린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쾅!
주먹으로 성벽을 균열내는 드낙의 모습에 블랙 고블린들이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균열이 난 성벽이 빠르게 수복되는 걸 볼 수 있었다.
“마력을 담을 곳이 필요해. 내일까지 최대한 많이 금속봉이나 기둥을 성벽에 붙여놓도록.”
“예!?”
웅타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표정을 돌렸다. 어찌 되었든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드낙은 하루를 지내며 최대한 많은 금속을 성벽에 두게 하였다. 고블린들의 손재주는 상당해서 녹인 철봉이나 청동 합금으로 된 기둥을 철야를 해서 놓았다.
그 숫자는 능히 드낙의 마력을 모두 담을 수 있었다. 마력까지 탕탕 턴 드낙은 와이번을 타고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진짜로 구리를 찾으러 가야 해.’
카이야와 와이번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을 정찰하는 일은 쉬웠다. 하지만 〈크놀의 광물업(鑛物業)〉이 있어도 광물이 매장된 곳이 있어야지 알 수 있었다.
동부는 절망적인 곳이었다.
“까악!”
와이번의 목에 은근슬쩍 자리를 잡은 카이야가 날개 하나를 펴서 방향을 가리켰다. 드낙이 이를 인지했고, 모비딕을 움직이게 했다.
‘거대한 계곡이네.’
이상한 점은 그 주변이 민둥산이 되어있었다. 풀 한 포기 자라있지 않았고, 나무도 전혀 없었다.
드낙의 촉이 바짝 섰다. 서버렸다.
“일단 내려가자!”
환경마저 바꿀 몬스터가 있다는 뜻이었다. 모비딕은 한 번 저항했는데, 호승심을 느낀 듯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뭔가의 존재를 느꼈다는 뜻이었기에 드낙은 더욱 모비딕의 긴 목을 꾹꾹 눌렀다.
지상에 내려앉은 드낙은 코를 킁킁거렸다.
후각으로 뭔가 구릿구릿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 사이에 금속의 향도 풍겼다.
‘독인가?’
평범한 사람이면 여기서 물러났겠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세상을 고꾸라뜨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이 그였다. 이제 웬만한 것으로는 그의 발걸음을 돌릴 게 없었다.
호탕하게 걸어나갔지만, 매우 신중했다.
모비딕도 움츠린 드낙이 살금살금 걸었기에 괜히 날개를 접고, 목을 낮추고 잰걸음을 했다. 나무가 듬성듬성 나 있었기에 와이번의 거체도 조용히 움직일 수 있었다.
‘녹음(綠陰)이 너무 적다.’
드낙은 땅을 파보았다. 나무뿌리가 눈에 들어왔는데, 척 봐도 뭔가에 중독된 것처럼 시들시들했으며 푸르딩딩했다.
‘뿌리 색까지 변질되어있네.’
독을 가진 몬스터로 보였다.
‘지하 종족일수도.’
하늘에서 봤을 때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였다.
드낙이 귀를 기울였다. 이곳저곳 수색하며 나무뿌리를 들춰보며 길이를 가늠하며 수원을 찾았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이런 사냥꾼다운 일은 특히나 천성에 맞았기에 드낙은 하나부터 열까지 막힘없이 해냈다.
공부를 시키면 1시간도 의자에 못 앉아있지만, 게임을 시키면 1년 365일 잠까지 줄여가면서 할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자신에게 맞는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똑 부러지게 하는 법이었다.
‘찾았다.’
물이 잔뜩 고여있는 곳이었다. 바위를 통해서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때때로 소리를 낼 정도로 물이 쏟아져나왔다.
물을 떠본 드낙은 그 색이 녹색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뭔지 도통 모르겠네.’
맛까지 본 드낙이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구리가 대기에 노출되면서 산화하여 녹청으로 변질되어 독이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었다.
구리색과 녹청색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숲에서 소득을 못 냈지만, 독이 대단치 않다는 것에 안도하며 드낙이 계곡을 향해 날아올랐다. 가까이 가서야 녹청으로 변질된 구리 광맥들을 볼 수 있었고, 내려앉아서 검으로 내려치고 나서야 구리를 볼 수 있었다.
“구리 때문에 민둥숭이가 되었구나.”
유레카를 외치는 드낙은 손을 비볐다. 이렇게까지나 광맥이 노출되어있는 계곡이다. 엄청난 양의 매장량 또한 검은 문의 능력으로 알 수 있었다.
‘당첨이다.’
“크르르!”
그렇게 판단한 드낙의 곁에 있던 모비딕이 크르렁거렸다. 계곡의 울퉁불퉁한 어둠 속에 가려진 굴에서 몬스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햇빛으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의 위용은 와이번과 비교해도 결코 꿇리지 않았다. 이만큼 거대한 계곡을 자기의 땅으로 삼은 몬스터였다.
거대한 사자의 머리와 몸통.
박쥐의 날개는 와이번보다 넓고, 컸다.
두툼하기 짝이 없는 전갈 꼬리가 땅바닥을 가차 없이 후려치면서 잔뜩 흥분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르르···”
위협적인 낮은 울음소리를 내는 사자의 입에서 잔뜩 끓어오르는 구리액이 흘러내렸다. 흙에 떨어지자마자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흙을 태워 녹였다.
‘무슨 괴물이지?’
드낙이 판단하기도 전에 모비딕이 날개를 폈다. 드낙은 그 판단에 그대로 따라주었다. 모비딕에 타자마자 그대로 날아올랐다.
만티코어를 상대로 육지전으로 와이번이 승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와이번의 앞발은 만티코어의 사자의 앞발과 비교하면 앙상한 비둘기의 다리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