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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83화 (582/1,239)

0583 <-- 겨울의 논공행상 -->

동부에서 드디어 논공행상이 개최되었다. 아무나 참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연줄로 겨우 참관을 온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익히며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아침부터 시작된 논공행상이었지만, 실제로 바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서로 추켜세워주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지.’

드낙이 술잔을 든 채로 주위를 훑었다. 이번에 직책을 받는 자들에게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영주님. 안스가르 카이(Ansgar Kay) 경입니다. 겐 경과 함께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병사 훈련에 조예가 있습니다.”

“흠.”

오늘을 위해서 이실레아가 붙여준 시종이 드낙에게 말했다. 그가 다가와서 드낙에게 인사를 건네자 드낙 또한 그에 대해서 적당히 말했다.

“카이 경, 병사 훈련에 조예가 있다고 익히 들었네. 앞으로도 그 실력, 기대하고 있겠네.”

“가, 감사합니다!”

드낙은 연회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는 그대로 앉았다. 벌써부터 지쳤다. 하지만 금방 일어나고 싶었는데, 이스핀 롤레온이 자신의 수족들을 데려와서 새로운 술병을 배치하고 있어서였다.

‘크크큭.’

이스핀이 탐욕스러운 눈을 했다. 잔뜩 충혈된 눈을 손으로 비볐다. 생각보다 술을 만드는 것이 재밌어서 잠도 안 잘 정도로 매달릴 때가 많았다.

작은 조건만 달라져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 깊이에 푹 빠져있는 게 이스핀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더 많은 연구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간 수많은 주류 연구자들이 만든 소기의 달성을 보여줘야 했다.

“실수는 결단코 없어야 한다. 얼음이 든 물의 온도를 한 번 더 점검해라! 너무 차가운 것은 새로 물을 교체하도록!”

가져온 술의 종류 중에 산딸기 와인의 치명적인 맹점 때문이었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찌꺼기가 생긴다는 단점을 없애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맛은 실로 농후하기에 이번 전장에서 쓰기 위해 가져왔다.

그는 곳곳에 술을 배치하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술을 들고 상석에 앉아있는 드낙에게 향했다.

“직접 만든 술입니다. 시음을 해보셨으면 해서 가져왔습니다.”

“호···”

드낙이 입술을 핥았다. 사람 관리를 하고 난 다음에 마시는 술이라니, 절로 흥미가 동했으며 무엇보다 조금 큰 원반형 얼음이 반쯤 가라앉아있는 통에 담긴 술이라서 시원할 것이 분명했다.

상위 계층에서부터 시작된 마법의 다양한 전파는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마도왕국의 기초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물론 수많은 조건 중에 하나를 획득했을 뿐이었다.

“여기 3병은 맥주고, 나머지 2병은 와인입니다. 포도를 쓴 와인이 작은 것이고 다른 와인은 산딸기를 이용해서 만들었습니다.”

“산딸기를? 만들기 어려웠을 텐데···”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산딸기 와인입니다.”

그 말에 드낙은 산딸기 와인을 바로 시음을 해보기로 했다. 오늘을 위해서 단단히 준비한 듯했다. 이곳에 초청받거나 초대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었다.

한 명의 마음에 들면 수백 병이 팔릴 수 있었다. 가격도 현지에서 만들기 때문에 쌀 수밖에 없었다.

“음···”

과일의 향이 특히나 강렬하게 맡아졌다. 알코올의 맛도 느껴졌지만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성들에게 특히나 인기가 있어 보였다.

‘나쁘지 않은데? 오히려 내 취향이다.’

하지만 혀끝에 미묘한 것이 턱 하고 걸렸다. 드낙이 혀를 휘감으며 더욱 집중했다.

‘산딸기 와인에서 신성력이 느껴지는데?’

정말 미세하지만 신성력이 담긴 와인이었다.

“여기 사용된 산딸기···신전이 개입되어있는 건 아니겠지?”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눈을 쓰윽 돌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뒷골목 깡패다운 행보였다.

“···들키지나 마라. 살 사람, 안 살 사람이 구분될 테니까.”

아주 미세했기에 조사한다고 해서 알아차릴 수는 없을 터였다. 고등한 마법사에게 와인 조사를 맡기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스핀이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드낙은 더욱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들킨다고 별일이나 있겠어. 기껏해야 불매니 뭐니 그런 거겠지.’

큰 문제는 안 생길 것이다. 신전에게 돈이 크게 유입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술을 만드는 것은 이스핀의 세력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도 때아닌 술 평가가 이루어졌다. 같이 데려온 여성들에게 특히나 산딸기 와인이 인기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도수가 높지 않아서 안전하면서 술을 마신다는 기분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공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즐기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논공행상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직책을 받은 건 당연히 이실레아였다.

“이실레아 브릴리언트! 그대는 누구보다도 먼저 기병을 양성하는 데 힘을 다했으며···”

그녀의 행보 중에서도 오직 좋은 것들만 싹 다 모은 양피지를 문인이 읊었다. 그 이후에는 드낙이 무릎을 꿇고 있는 이실레아에게 말했다.

“중앙 사령관 1급관에 임명한다!”

드낙이 검을 강철이 흐르는 강을 꺼내 들어 어깨에 대었다. 모든 허례허식을 최대한 뺀 순수 북부식이었다.

상위 공적자 15명이 지나간 다음에는 한 번에 적게는 다섯 명에서 많게는 30명까지 우르르 몰려와서 드낙에게서 직책을 받아야 했다.

“이스핀 롤레온! 주류산업장 5급관에 임명한다!”

주류산업을 독점할 공직 또한 만들어졌다. 현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동부의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이것밖에 살길이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때그때 양피지를 봤음에도 이름을 말하는 게 정말 어려웠다. 실수라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지나칠 정도로 과분해 했기 때문이다.

드낙은 눈치가 좋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이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된 순간이라는 걸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깨끗한 도화지에 멋진 풍경화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는 기분과 같았다. 그런 기분을 얻을 수 있게 노력하고 싶어졌다.

‘조금 쇼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시종! 양피지를 나에게 가져와라!”

드낙의 돌발행동에 이실레아의 고운 눈썹이 찌푸려졌다. 허례허식이라고 폄하해도 최소한의 격식을 만들어놓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그것을 행하는 것은 드낙이었다.

그녀 외의 모든 이들의 가슴이 철렁했다. 거칠게 잡는 모습에 몇 주를 공들인 행사가 단번에 망할 수도 있어서였다. 어떤 자에게는 드낙이 그 양피지를 찢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이다르 애런(Haidar Arron)〉! 앞으로 나오라!”

“예!”

“이 척박한 동부에서 300명이 먹을 군량을 제공했으며···”

드낙은 한 명, 한 명 비슷한 공을 세운 이들을 지명하여 그 공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입으로 말하였으며, 직책을 내렸다.

이 과정이 끝날 때쯤에는 해가 기울었다.

모든 이들이 조용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기에 주황색의 햇빛이 연회장으로 들어와서야 드낙은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좋은 일 했다.’

잠시 휴식시간이 주어지고, 저녁 만찬이 시작되었다. 그 사이에 귀족들은 옷을 새로이 갈아입거나, 땀을 씻어내러 가기도 했다.

외척들은 이 자리에 올 수가 없었다. 모두가 드낙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며, 레이시아와 안젤리카만 조용히 참석했다. 다가오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드낙 때문이었다. 오전 때의 모습이 불편했기에 드낙은 일부러라도 부인들에게 다가가서 적당히 말을 섞었고, 그제야 두 사람이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그만큼 이 자리가 중요하다는 소리겠지.’

저녁 만찬은 그저 희희덕거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남부 출신을 위해서 춤을 출 수 있는 곳은 있었지만, 극소수만 이용했고 그마저도 나중에 가서는 이용하지 않았다. 다수가 춤을 안 추는데 소수가 춤을 춘다?

이런 귀족 사회에서는 툭 튀어나온 놈이 후려쳐 맞기 쉬웠다.

북부 출신의 귀족들은 문무겸비에 미친놈들이었기에 춤을 출 시간조차도 없었다. 그런 것을 잡기(雜技)라고 싸잡아서 내리까는 게 보통이었다.

드낙은 애초에 춤을 배우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춤을 출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서로 삼삼오오 모여서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주류를 이루었다.

“호수 마을 근처 저수지를 만든 기술자들을 잘 아시오? 공사 기간이 다른 기술자들에 비해서 배는 빠르다고 하오.”

“어째서 그렇소?”

“그때는 모든 게 부족해서 이실레아 중앙 사령관에게 혹독하게 다루어졌다고 하오.”

“참으로 흥미가 있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당연히 브릴리언트 가문에게 속해있소. 하지만 이번에 내가 그들 그룹 중의 한 명을 시종의 사위로 얻었는데···”

술이 들어가고, 음식을 맛보며 돈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연회장을 나가기도 했다. 드낙은 마지막까지 이 자리에 있어야 했기에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론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기 바빴다.

‘겨울이니까 동계운동회 같은 거 열면 재밌겠다. 썰매로 순위를 매겨서 상을 주는 거지. 그걸로 명분을 세우고 썰매장을 만드는 거야.’

드낙이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겨울에 만든 썰매장을 동계 운동회로 인기몰이를 하고, 돈을 벌 생각을 가졌다. 동시에 노동력을 돈으로 사서 경제도 활성화할 생각이었다.

‘은행업도 해야겠지.’

은행업은 큰일이었고, 사람도 많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당장 할 수는 없고 생각만 가지고 있어야 했다.

논공행상의 저녁 만찬에서 모든 공공사업이 오직 귀족과 그에 맞닿은 중산계층 등에게로 돌아갔다. 혈연으로 연결된 곳이 없으면, 귀족을 건너서 연결됐다.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다행이라면 공사 자체가 민간의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레이시아 예쁘다.’

은발과 대비되는 검은 드레스가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옆에 딱 붙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있어서 바라보기만 했다.

뭔가 쪽팔리고 부끄러워서였다.

신전과 홀로 연결되어있는 것이 레이시아였고, 신전이 공식적으로 세력화가 진행되었기에 그곳은 특히나 북적거렸다. 단순히 마을에 사제가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에 사제를 자신이 관리하는 장원으로 데려오고 싶어하는 자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경쟁이 붙겠네.’

드낙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저얼대 안 됩니다!”

베바란스 총관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바짝 마른 목 때문에 콜록거렸다.

“취지는 좋잖아? 겨울에 어차피 시민들은 할 것도 없을 것 아냐.”

드낙이 주변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실레아는 가만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와는 다르게 베바란스 총관은 뜨거운 물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펄쩍 날뛰고 있었다.

썰매장을 만드는 것 또한 행정이 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바란스의 중앙청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겉으로는 모두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드낙이 이번에 불파겐과 함께 멸망했던 북부 12가문들의 생존 가문들을 북쪽으로 뭉치게 하라는 명령을 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컸다.

보상금이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동화가 부족합니다!”

“동화가 부족해?”

드낙이 궁금해하자 베바란스 총관이 속사포처럼 말했다.

경제를 물처럼 흐르게 만드는 취지는 좋았지만, 그 말은 고여있는 물이 적다는 뜻이었다. 이는 곧 조직을 기준으로 봤을 때, 쥐고 있는 돈이 적다는 뜻이기도 했다.

“근데 그 정도로 적나?”

“은화는 많지만, 동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어서 최근 외청에서는 은화로 동화를 상시 구매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인가···”

드낙의 기세가 줄어드는 걸 느낀 베바란스 총관이 오랜만에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드낙의 의견을 막으면 뭔가 구국영웅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알았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구리 광산을 찾는다.”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수십미터짜리 썰매장을 만들 생각으로 이미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그간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가?

‘이제는 좀 놀아도 된다. 아니, 놀아야 해!’

검은 꿈만 쫓은 지 2년째였다. 이제는 휴식을 할 때가 왔다.

‘흥청망청, 대망청으로 가즈아!!!’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드낙이 대산 너머로 향해서 구리 광산을 얻으려고 하자 이실레아가 벌떡 일어났다.

“겨울에 진행할 행사 중에 삼대시험이 남아있습니다. 영주님께서 반드시 참석해주셔야 합니다.”

“걱정하지마라! 와이번이 있으니까, 참석은 가능할 것이다.”

드낙이 이실레아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믿고 맡기겠다! 그럼 난 이만! 모두 영지의 부흥을 위해서다! 동화가 부족하면 동화를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은광산도 찾은 나다! 걱정 말고 기다려라!”

“영주님! 영주님!!! 잠시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이실레아는 드낙을 쫓아갔지만 신체능력으로 치면 이미 인간을 초월한 것이 드낙이었다.

“헉! 헉!”

이실레아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노래 중에서 딱 부르기 좋은 곳만 부르겠다는 드낙의 심보가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카락을 심하게 헝크는 이실레아의 모습을 내성 근위병이 보고 다시 몸을 홱하고 반대로 돌려서 사라졌다. 결코 봐서는 안 되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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