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81화 (580/1,239)

0581 <-- 겨울의 논공행상 -->

이실레아와 도렌이 서로 마주 앉은 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실레아의 차림은 가벼웠고, 속살이 훤히 보였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이실레아의 방은 따뜻했다. 마법으로 발열하는 아이템들이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명실상부 불파겐의 이인자였다.

그만큼 많은 것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도렌의 눈이 얼굴 밑으로 향하자 이실레아가 매력적인 눈을 하며 그의 손을 잡으며 깍지를 끼며 말했다.

“왜? 섰어?”

“푸웃! 레아!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

능숙함에 도렌이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순진한 줄 알았지만, 겪어보니 순수한 도렌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실레아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농담이야.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

속이 텅텅 비어서 꽃밭을 뛰어다니는 연놈과는 다르다. 〈애송이 용병〉 시절을 험하게 굴렀던 것이 도렌이다. 약자 중의 약자로 그 거친 진흙탕에서 굴렀음에도 그는 맑은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겉은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은 꽉 찬 남자가 도렌이었다.

“그래서? 영주님께서는 뭐라고 하셨어?”

“국세청을 나보고 운영하라고 하셨어.”

“국세청?”

이름만 들어도 거대한 조직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는 대체 어디까지 자신의 권력을 떼어낼 생각인지 이실레아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율하고 있었다.

“세금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조직이래.”

“감독까지? 하겠다는 소리는 안 했겠지?”

관리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감독까지 맡는 건 미친 짓이었다. 가히, 영주대리라고 해도 무방했고, 드낙의 후계를 이을 자라면 국세청이라는 조직을 얻어야 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아진다.

“······”

도렌이 볼을 긁었다. 그 습관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알아. 하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고개를 숙인 도렌이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겉은 갈대처럼 흔들리고 유약해 보여도 자기 주관이 강할 때는 그 누구도 못 말렸다.

“고집을 부린 이유가 뭐야?”

“대의(大義)가 있었어.”

시민을 지키고, 마신장을 토벌한다. 일구었던 동부가 혼란이 생기더라도, 기형적으로 거대한 마신장이 날뛰는 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도렌은 결의한 것이다.

그를 위해서 동부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그가 그런 소리를? 믿을 수 없다!’

거기까지 들은 이실레아는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포커페이스 속에서 드낙의 음흉함을 핥았다.

‘날 내치려는 건가? 하지만 도렌에게 준 힘은 너무 강력하다.’

동시에 달콤함 또한 느꼈다.

‘뒤로 물러설 곳은 없다.’

드낙이 도렌에게 준 것은 〈양날의 검〉이다. 자신을 벨 수도 있었고, 타인을 벨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실레아는 적어도 자신이 쥔 검에 의해서 상처를 입을 정도로 약한 인물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그 정도의 힘을 줬다는 건 마신장 토벌이 길어진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못해도 반란은 일어난다고 봐야 해.”

“누가?”

“길게이 왕자가 가장 유력하겠네. 물론 외척도 마찬가지야. 황폐해진 북부를 세우기보다는 동부를 살찌우고 그곳을 지배하는 게 더 편해.”

동부의 자원집중은 괴물 같은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화가 불파겐의 이름 아래 쌓이고 있었다. 금은보화를 지하감옥에다가 넣고 있을 정도였다.

‘세금을 안 내는 놈들을 완벽하게 처벌할 수단마저 가지고 있으니까.’

드낙의 수완이라기보다는 제 발 저려서 세금을 상납하고 있었고, 특히 상인들의 역할이 컸다. 〈쉐도우 위스퍼〉와 관리들의 협력으로 수많은 상인이 과징금을 부여받았다.

당연히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동부를 살찌우고, 개발한 다음에 지배구도를 바꾸는 게 최고의 방법임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드낙은 서서히 자손을 낳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런 방법이 달콤해 보였다.

‘외척들도 그걸 노리고 버티는 거지.’

외척이 정치적 패배 속에서도 기를 쓰고 버티고 있는 이유도 가만히 있으면 일단 다른 곳보다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계산이 있어서였다.

‘마탑도 다른 마법사 체계와 달라.’

실제로 불파겐 마탑에서 생계를 위해서 몇 가지 마법을 배우고 바로 마탑을 나가는 마법사들이 많았다. 이들은 견습 마법사라기에는 할 수 있는 마법수가 적었다.

‘마법사들을 새로운 중산층으로 만드는 건 나조차도 존경할 수밖에 없는 수단이야.’

공장 노동자를 생각하며 생계형 마법사를 배출하는 것이지만, 어찌 되었든 이실레아조차도 존경할 정도로 세금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계층을 하나 더 만드는 수완은 놀라웠다.

‘위협도 안 돼. 하지만 큰 도움이 돼.’

마법사가 배울 수 있는 마법수가 제한되어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생계형 마법사가 되었고, 수준이 낮지만, 마법 아이템이 민간에 풀리게 하였다. 이를 제한해야 할 영주의 칙령은 전혀 없었다.

‘그냥 알아서 하라는 거지. 적당히 말이야.’

정말 미치광이 같은 생각이었지만, 드낙이기에 할 수 있는 짓거리였다.

‘군과 금이 뭉쳤으니, 막힘없이 달려가면 될 뿐이다.’

이실레아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할 수 있는 건 정면승부밖에 없어. 지금 바로 전에 사이좋게 지냈던 문인들을 포섭해줘. 충분히 포섭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이 시간에?”

“그럼?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좋아.”

“하지만 레아, 베바란스 총관보다 날 선택할까?”

이실레아는 뭔 개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인망을 받는 자가 아니야. 자기가 앉을 의자는 확실하게 챙기지만, 자기만큼 인정이 많지 않아.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던 문인들은 두 팔 걷고 도와줄 거야.”

“알았어. 해볼게.”

이실레아가 일어났다. 서둘러 도렌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논공행상이 끝나고 국세청이 세워지면 정말 바빠지겠는데?”

그 말을 하자 다시 이실레아가 앉았다.

술에 취한 드낙은 국회의원들에게서 배운 대로 칼치기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를 도렌이 말했으니 그녀로서는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세하게 말해봐.”

도렌이 적당히 말했다. 귀찮은 것을 피하고자 드낙이 논공행상이 모두 끝나고 은근슬쩍 국세청이라는 조직을 만들어버린다고 말하였다.

이실레아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지독한 악수야. 그에게 어울리는 건 정면돌파인데,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거지? 아무리 귀찮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안 돼!”

도렌을 밖으로 보내며 이실레아가 말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나한테 와줘. 드낙과 담판을 지어야겠어!”

“어이!”

쾅!

도렌의 앞이라서 영주님이라고 대우해줬지만, 귀족 몰래 조직을 만들고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는 기득권층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건 시민에게나 통한다고!’

이실레아의 분노를 직격탄으로 맞은 드낙은 순순히 사과했다.

“실언이었다.”

‘내가 그런 쓰레기들 같은 짓을 하려고 했다니.’

아무리 술에 취하고 있었지만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잘 알았다.

“어디까지 편해지려고 하십니까? 영주님께서는 지금 본인의 위치를 아셔야 합니다.”

“끄응···”

설교를 들은 드낙이 저자세로 나오자마자 이실레아는 수완을 발휘해냈다. 결국 논공행상에 10일의 유예를 얻어냈다. 이걸로 보다 분쟁은 줄어들 것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야 해.’

그게 중요했다.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그래. 그래. 어서 돌아가. 논공행상에서 국세청을 세우겠다고 말할 테니까.”

드낙은 어쨌든 결과가 자신의 원하는 대로 되었음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실레아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드낙에게서 받은 양피지를 돌려 말아서 품에 챙겼다.

“예.”

이실레아가 몸을 돌렸다. 아직도 논공행상에 대한 준비는 끝이 나지 않았다. 그저 직책에 누가 올라서는지만 결정되었을 뿐이었다.

〈오크 대침공〉의 공신 15명은 내청의 집무실에 모였다. 그중에는 이실레아를 따라와서 뒤의 벽에 기대어 참관하고 있는 도렌의 모습도 보였다.

상석은 비어 있었고, 이야기를 주도하기 위해서 베바란스 총관이 오른편에 앉아있었다. 그는 들어왔을 때부터 특히나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사제 3명을 대동하고 있었으며 눈알이 죽은 생선처럼 죽어있어서였다.

“오늘 이렇게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10일의 유예가 생겨서 영주님의 앞에서 이루어지기로 했던 논공행상의에서 따라오는 것을 미리 정하기 위함입니다.”

논공행상이란 단순히 직책을 명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덕에 기사들은 오크 대침공의 참전 여부에 따라서 파벌이 두 개로 나누어질 정도였다.

‘이게 진짜지.’

공적자들은 모두 날카로운 눈을 했다. 그들 뒤에 함께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좋은 걸 따내야 했다. 특히나 겐이 모은 6천의 병사와 수백의 자유 기사들은 자신들이 흘린 피만큼 보상을 원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수지 공사에 대한 것입니다. 서로 지분을 나누어야 하는데, 직책과 활동하는 곳에 따라서 제가 일단은 정해봤습니다. 종이로 사본을 그렸으니, 확인해주시면 됩니다.”

베바란스 총관의 뒤에 있던 문인이 종이를 원탁에 앉은 이들에게 돌렸다.

동부는 모든 것이 부족한 곳이었다. 심지어 식수도 부족할 지경이었고, 저수지를 짓는다고 해도 부족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엘라한 가문이 크게 중요해졌고, 상하수도나 물이 부족한 마을에 도움을 주면서 그 위치가 크게 상승했다.

당연히 이번에 공적을 쌓은 이에게 저수지의 공사를 하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 예산으로 더욱더 성장할 수 있었고, 다른 이들도 그것을 보며 드낙의 눈에 들려고 노력할 것이 분명했다.

공적자들에게 주는 꿀은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명예뿐만 아니라 돈부터 시작해서 민간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그 수단을 그저 받을 수 있었다.

나라 예산을 통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이를 통해 가문 또한 커질 수 있었다.

얼마나 남겨 먹을 수 있는지는 그들에게 달렸다.

적정수준이라면 드낙 또한 눈을 감아줄 것이 분명했다. 그의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되었다. 세세한 것은 신경 안 쓰기 때문이다.

‘공공사업만큼 남기기 쉬운 것도 없다!’

모두가 초집중해서 자신이 사업을 벌여야 할 곳을 확인했다. 사람이 많고 적고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도로다!’

도로가 잘 되어있거나 최소한 있기라도 한 곳이어야만 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저수지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남는 장사가 될 터였다. 그다음이 노동인구를 빨리 획득할 수 있는 인근 마을의 존재였다.

희비(喜悲)가 서로 엇갈렸다. 당연했는데, 서로 원하는 것이 같아서였다.

“이게 무슨 짓이오?”

겐이 황당한 표정으로 이실레아에게 말했다. 자신에게 배당될 저수지 공공사업이 철저하게 외곽을 위주로 되어있어서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실레아 또한 외부 공사로 되어있다.

‘대놓고 같이 죽자는 소리 아닌가? 생색이라도 낼 생각인가! 어리석은!’

절로 열이 뻗쳤다. 특히나, 신흥세력에 가까운 겐에게 있어서 자본은 무엇보다 부족한 상태였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가볍게 대꾸했다.

“이미 가진 자는 밖으로 멀리 손을 뻗고, 많이 가지지 못한 자는 안에서 가까이에 손을 뻗는 법입니다. 저는 이 이치에 따른 것뿐입니다.”

반대하는 이는 오직 겐 혼자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적자 중에서 3대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이실레아, 겐, 게제라스, 이렇게 3명뿐인데 이실레아가 계획했기에 그녀는 빠지고, 게제라스는 외청의 매음굴 사태 때문에 실각했다.

“실로 대단히 존경스러운 마음가짐입니다.”

“저를 따르는 이들이 관리하는 마을에 벽보로 칭송을 해야 할 결정 아니겠습니까?”

“제가 좋은 문장가를 알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 꼭 써서 선물하고 싶습니다.”

희희낙락해 하며 이실레아의 결정에 지지를 표했다. 그중에는 베바란스 총관 또한 있었다. 이들을 보며 이실레아의 속은 검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논공행상 때를 기대해라. 한순간에 뒤집힐 테니까.’

인생은 파도와도 같음을 알게 될 터였다. 거기에 국세청을 도렌이 맡게 되면 엄청난 선물공세가 터져 나올 것이다. 이를 통해서 이실레아는 군을 양성하면 몇 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여기서 그치면 결국 다시 나에게 이빨을 들이밀겠지.’

탕탕.

이실레아가 원탁을 치며 주의를 끌었다. 그 거침없는 모습은 실로 여장부다웠다.

“양보할 것은 서로 양보하고, 서로 존중할 것은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엘라한 가문에게 상하수도에 대한 모든 권리가 부여됐기 때문입니다.”

웅성웅성!

단번에 15인의 입에서 온갖 말이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술자를 교육하는 〈물의 기술관의 설립〉만해도 엄청난 이권이다. 돈을 쓸어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하수도에 대한 모든 권리?

“영주님께서 그 정도까지 내어준단 말이오?”

“확실한 것 맞소?”

이실레아는 품에서 양피지를 하나 꺼내서 베바란스 총관에게 넘겼다. 그는 그것을 순식간에 읽어나가더니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사, 상하수도가 있는 곳은 발전된 큰 마을과 성을 위주로 있다. 그것을 엘라한이 모두 관리하게 된다면···’

아찔함을 느꼈다.

“지금 당장 막아야 하오! 아직 논공행상 전이지 않소?”

서로 난리였다. 특히나 겐이 펄떡거렸는데, 엘라한 가문의 포지션을 생각하면 겐을 비롯한 불파겐을 도왔던 북부 가문과 그 성질이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라이벌이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실레아가 뱀처럼 간사한 눈을 감으며 혼란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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