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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78화 (577/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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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논공행상

플래티넘 왕가의 재력은 끝도 없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만큼 그들이 지닌 권력은 대단했고, 없는 자들의 생명력으로 끌어올린 왕성은 끝도 없이 높았으며, 지평선만큼 넓었다.

<실버즈 상단>은 수많은 상단 중에서도 플래티넘 왕가의 입김을 받으며 성장한 상단이었다. 자연스럽게 플래티넘 왕가의 동부 경제 침략에 사용돼야 했다.

그 경제 침략은 잘 개발된 남부에서 나오는 식량과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풍부하게 쏟아져나오는 광물 그리고 전쟁과 야수, 몬스터로 인한 피해가 작기에 압도적으로 높은 인구 밀도를 통해서 생산되는 면직을 비롯한 2차 생산물까지.

그 모든 것이 압도적으로 싼 가격에 동부 경제를 밀어버리고, 생산력을 망가뜨린 다음에는 가격을 다시 높여서 완전히 의존하게 만드는 것에 있었다.

‘흉악하지. 하지만 그 책임을 질 상단이 필요하다.’

<실버즈 상단>을 비롯해서 왕가의 힘으로 우뚝 선 상단들이 그 방패가 될 것이다.

‘희생양이나 다름없다.’

동부가 걸려들 덫으로 가장 활발하게 동부에서 활동할 것이며, 동부의 적으로 찍혀서 큰 곤욕을 치를 희생양이 될 것이다. 대상인이었기에 죽음은 면하겠지만, 사실 어찌 될지 몰랐다.

상대는 불파겐 아닌가. 사지로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족이 있기에 도망칠 수도 없지.’

“파이살 상단주! 이게 대체 무슨 난리요?”

퍼디난드 창고장이 땀을 흘리며 집무실에 나타났음에도 파이살 상단주는 느긋했다. 반백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술병을 손에 들었다.

그 모습에 퍼디난드 창고장이 한숨을 쉬며 앉았다.

“잔이 세 개? 또 한 명이 오는 것이오?”

“창고장이 오는데, 그 위에도 오겠지.”

그 말에 창고장이 이마를 치며 푹신한 가죽에 몸을 기울였다.

“부상단주까지···”

암울한 표정을 짓자 술을 담은 잔을 내밀었다.

“평생 써먹지 않고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벌써 10년 전 아닙니까?”

“흐흐. 내가 분명히 말했지? 까먹을 때쯤 나타날 거라고.”

은퇴를 앞두고 자연재해가 들이닥쳤다.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성공한 상단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왕가의 힘이 득실거렸다.

이제 그 어음을 갚아야 했다.

“일이 끝나면 상단은 해체된다. 마지막 캐러반(caravan)이 될 것이다.”

깔끔하게 뒤를 없애기 위함이다. 이번 일에서 살아남으면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했다.

“작정했군요. 실로 무섭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다행 아닙니까? 깔끔하게 은퇴도 할 수 있고···저희들을 믿고 일하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원래 그렇게 세워진 상단 아닙니까?”

그 말에 파이살 상단주는 그저 술만 마셨다. 빈 술병이 3병 정도 쌓였을 때, 니키타 부상단주가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벌써 한바탕 시작했네. 이제 나이 생각해야지.”

서로 술잔이 돌았다.

“왕가는 우리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싶어 할 거다. 상단을 해체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겠지.”

“······”

“낌새를 숨기기 위해서는 상단원을 쓸 수도 없어. 신용 있는 용병이 필요하다.”

“돈이 엄청 깨지겠는데.”

신용 있는 용병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 용병들이다. 최소한 금화를 내야지만 쓸 수 있었다. 쓰는 돈만큼 자신의 목숨보다 의뢰를 중요시하기에 수요 또한 많았다.

“돈이라면 차고 넘친다. 동부의 상업을 파멸시키기 위해서 자금을 받았으니까.”

“그렇다면 그 자금으로 이주를 하자는 건가?”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속이기 힘들 걸.”

파이살은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이윤을 남기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 돈에 집착하면 할수록 허튼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눈앞의 금화에 눈이 먼 상인으로 보이면 기회가 올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대역을 써서 가족들이 있는 것처럼 속여볼 거다.”

“들키면 끝장이겠는데.”

“추적자가 언제 붙느냐가 모든 걸 결정하겠지만, 엘리트 용병들의 실력을 믿는 수밖에.”

파이살 상단주의 말을 들으면서도 니키타 부상단주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동부에 가서 모든 게 해결될 것으로 보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그만큼 큰돈을 횡령하면 왕가가 가만히 있을까? 반드시 죽이려고 할걸.”

전과 같은 삶은 살지 못할 게 뻔했다.

“그렇다면 돌아와서 가만히 죽을까? 발악이라도 해야지!”

“진정해. 두 사람, 모두. 일단은 사는 게 중요하잖아?”

퍼디난드 창고장이 중재를 했다.

“나 외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상단들이 있을 거야. 우리 혼자서 동부 경제를 파탄 낼 수는 없을 테니까.”

“거기에 묻혀 가겠다는 것도 너무 허술한 것 같은데···”

“많고 많은 협력자 중에 하나일 뿐이야. 충분히 도망칠 수 있다고. 알아본 것만 해도 상단 다섯 곳이 플래티넘 왕가의 입김으로 세워진 곳이다.”

늙은이 3명은 깊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하는 것으로 결의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었다. 조용히 숨어지내는 삶을 자식이 살도록 하는 부모는 없었다.

아직 남부 왕국의 수도에 동부에 <상인연합>이 생긴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선점해서 백단주나 천단주가 되어야 함으로 철저하게 아는 상인끼리만 정보의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새벽수련을 마치고, 드낙은 오랜만에 산책하기로 했다.

‘똑바로 일하고 있는지도 확인해봐야겠지.’

아직도 외청에서 내 땅, 네 땅 거리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헉! 헉!”

외성지역에서 외청으로 향하는 길에 지친 관리가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괜찮나?”

드낙이 관리를 일으켜 세웠다. 벽에 기대고 있던 관리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창백한 것은 둘째치고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있었다.

“허헉. 영주님을 뵙습니다.”

“난 괜찮다. 이 정도 몸 상태면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드낙이 던진 폭탄이 관리를 이렇게 만들었음에도 그는 천연덕스럽게 굴었다. 자신이 던진 돌이 얼마나 큰 파동을 일으켰는지 체감을 못 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본 관리는 속까지 안 좋아졌다.

“우읍···웨애애애액!”

드낙은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피했지만, 관리는 몸이 부딪치며 그대로 기절했다. 작은 충격에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정신력이 바닥나 있었다.

“허어···이거 안 되겠네.”

드낙은 생각보다 외청 관리들을 관리 못 하는 베바란스 총관을 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일이 급해도 사람이 먼저 아닌가?’

후려친 다음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꼴이었지만, 드낙은 현실에 충실했다. 과로에 시달려 구토하다가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일을 하는 것을 봤음에도 외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또한 과무한 업무에 시달려봤기에 그 피곤함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외청에 가서 싹 사라졌다.

“새치기를 왜 해? 너만 바쁘냐?”

“안 했는데? 너 나 아냐?”

‘지옥이 따로 없네.’

입구 밖으로 줄이 너무 길었다.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고, 병사들의 관리도 엉성했다. 숫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쿵!

드낙은 발을 한 번 굴렀다. 큰 소리에 사람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붉은 머리카락을 보여주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병사!”

“예!”

병사가 호다닥 달려왔다.

“이 사람들은 다 뭔가?”

“그게···전입 신고자들입니다.”

“전입?”

현대에서나 들어볼 법한 소리였다.

“게제라스 전총관께서 만든 것입니다. 마을을 이동하거나 새로 이사를 할 때마다 신고해야 합니다. 매년 세금 관리자가 방문했을 때, 착오가 있으면 배로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제법 잘 아는데.”

“예!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귀동냥을 제법 했습니다.”

드낙은 그럼에도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갑자기 왜 전입이지? 너. 왜 전입 하고 있나?”

“예헵?!”

대답하면서 혀를 깨문 시민이 벌벌 떨었다. 드낙의 카리스마는 무성한 소문과 함께 마왕이나 다름없었다.

“그게···제 아들이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시민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드낙이 빠짐없이 들었다. 교육을 위해서 호수 마을을 떠나 엘라한 토성으로 향한다고 해서 하는 김에 신고를 하고 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호수 마을의 높아진 집값을 버티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대 대시험의 시험장이 된 <호수 마을>은 그 후유증으로 호수 마을의 가치가 높아졌다. 또한 웃돈을 받고 살던 집을 다른 이와 함께 와서 집을 바로 넘겨주는 이들도 있었다.

모두 드낙이 만든 폭풍의 여파였다.

“너! 너는 왜 외청에 왔는가.”

부동산 차익. 교육열. 그 외에 온갖 문제가 산재해 있었고, 대부분 행정력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 다다른 외청은 사실상 행정력을 잃고 있었다.

드낙은 내청으로 향했지만 거기는 중앙 관리가 하나뿐이었다.

“귀족들과 협상을 하러 갔습니다.”

“협상?”

“논공행상 때문에···”

“아아···이거 참, 혼을 내야 일을 제대로 하네. 기특하니, 기한을 3일 더 늘려주겠다고 말해놓게.”

“예? 예···”

드낙이 이해했다. 아무튼, 열심히 일을 하는 듯해서 기한을 3일 더 늘려주었다. 숨통이 트일 것으로 생각한 것은 드낙 혼자뿐이었다. 병주고 약주는 꼴이라 불만만 높아질 뿐이었다.

세리안의 가죽 주머니에 담긴 짐승의 피가 <적혈대검(Red blood Two-Handed Sword)>에 뿌려졌다. 산소가 적어지면서 붉은색이 사라지고, 검은색의 피가 되어있었다.

촤르르.

검은 피는 빠르게 적혈대검으로 흘러들어갔고, 대검에서 핏빛이 넘실거렸다.

퍽, 캉!

또한 피가 땅에 닿지도 전에 검과 검이 부딪침과 동시에 제국 기사의 목 아래에 정확하게 <쟝의 스틸레토(Jean`s Stiletto)>가 꽂히며 체인메일과 판금을 깨부수고 목을 찔렀다.

검지에 걸린 쇠사슬로 스틸레토는 금방 다시 세리안에게 회수되었다.

‘푸른 피.’

갑옷을 파괴하는 충격의 스틸레토였다. 하지만 제국 기사의 목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고, 푸른 물이 흘러내렸다. 그 점성은 피라고 하기에는 너무 묽고, 물처럼 가벼웠다.

“흐압!”

마법을 쓰며 왼손으로 다친 목을 감싸며 뒤로 물러나려는 제국 기사를 향해서 세리안이 황소처럼 돌진했다. 피가 묻은 적혈대검은 깔끔하게 검을 자르고, 제국 기사의 목을 날렸다.

터무니 없는 불합리성. 강철로 강철을 무처럼 갈라내는 광경은 기사들에게 있어서 끔찍한 비현실일 뿐이었다.

촤아악!

푸른 피가 쏟아졌지만, 제국 기사가 뒤구르기를 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우습다.”

세리안은 전혀 방심하고 있지 않았기에 그대로 따라와 있었고, 발로 제국 기사의 무릎 안쪽을 후려쳤다.

다리가 밖으로 쩍 벌려지면서 균형이 무너졌고 목 안에 적혈 대검이 그대로 쑤셔졌다. 뭔가가 긁히면서 터지는 감각이 검신을 통해서 느껴졌다.

“끼이! 끼에에에엑!!!!”

목의 안쪽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나오며 제국기사가 부들부들 떨더니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엘프의 녹안을 지닌 세리안은 끔찍하게 변형되고, 인간의 용적한계를 뛰어넘은 큰 영혼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영혼을 다루다니. 제국은 어느 정도까지 발전한거지?’

적혈대검을 회수한 세리안은 적혈대검을 땅에 박아놓고 제국 기사의 갑주를 뜯어서 벗겼다.

‘단단히 용접되어있네. 벗을 수도 없다.’

십이천칭의 힘이 깃들어있는 <홀그린의 펜던트(Hallgreen`s Pendant)> 덕분에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서 단번에 갑옷을 해체했다.

내부의 파괴된 유리관을 확인한 세리안은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엘프가 날 남부 왕국으로 보내는 이유가 제국 때문인가?’

엘프의 마법 지식은 결코 인간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야 할 곳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인원으로 사태를 수습해야 하며, 하찮은 인간 따위와 <본격적인 전쟁>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불멸자라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니까. 그럼 남부 왕국을 통해서 제국과 전쟁을 하는 도중에 핵심을 엘프 원정대로 끝낼 생각이로군.’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고, 엘프다웠다. 피를 흘리는 건 인간. 이득을 취하는 건 엘프. 효율적이다.

‘엘프 원정대의 힘을 생각하면 머리를 노리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게 쉬울수록 좋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세리안이었지만 불쾌한 감정 하나 없었다. 엘프들의 행동은 옳다. 그리고 그 판단 덕분에 그녀는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수많은 인간이 전쟁으로 죽어갈 것이지만, 그녀의 감정 한 올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호기심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던 제국 기사의 끈질김은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세리안은 그의 품을 뒤졌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나 했더니, 기사인데도 정보원 노릇을 하고 있었군.’

아니, 이제 그것은 더 이상 기사라고도 할 수 없었다.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제국은···’

텅 비어버리고, 푸른 피만 남은 제국기사의 모습을 본 세리안은 돌돌 말린 양피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이 지역의 사람들을 규합하고 있는 제9 군단장에 대한 정보였다.

‘내전을 오히려 원하고 있어···’

이 제국 기사는 정보원이기도 했지만, 암살자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다. X표가 된 자들의 이름을 단번에 암기한 세리안이 양피지를 그대로 강하게 쥐었다.

부욱!

단번에 찢어버리고, 장작을 모아 제국기사와 함께 태워버렸다.

‘재밌어보여. 동부 제국에서 조금 더 제국의 노림수를 파악해볼까.’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머리카락을 가리는 로브를 고쳐 매고 세리안이 숲을 벗어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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