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75화 (574/1,239)

575====================

겨울의 논공행상

이실레아가 아무 때나 부를 수 있는 친구라면 베바란스 총관은 확실히 주군과 가신 관계가 더 강했다.

일어나자마자 내성에 있는 드낙의 집무실에 들어온 베바란스 총관은 손으로 옷을 바로 하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공부하고 있었다. 어떤 물음을 줘도 답할 자신은 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드낙에게 점수를 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낙의 품에서 그 위세를 받으며 천천히 성장하는 게 베바란스의 주목표였기에 드낙에게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게 당연했다.

달칵.

“벌써 와있었나. 거리가 제법 된다고 말하던데.”

“어제 막 이사를 했습니다.”

핏빛쥐가 아무리 다 알고 있어도 드낙이 그걸 모두 들어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는 그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았다. 애초에 경청하는 타입도 아니었으며, 뉴스를 챙겨보는 양반도 아니었다.

“그래?”

“예. 원래는 외성지역에 거주했는데, 이실레아 경이 내성으로 하루바삐 옮기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이사를 했습니다.”

어김없이 이실레아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야망의 크기만큼 열심히 일하는 자였다. 어느 정도 큰일에 관여가 안 되는 일이 적었다.

“이렇게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사대시험 중에 기술과에 대한 문제 때문이네.”

드낙은 자신의 주관을 숨기고 베바란스에게 현재 기술과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 대해서 걱정이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베바란스 또한 멍청이는 아니었다. 기술과에 전 사회계층이 모여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마 이번 대시험 중 최대 격전지가 될 터였다.

‘문인이 되는 것보다 기술자가 되는 게 낫지. 그것도 불파겐이 공인한 기술자가!’

무직인 문인들은 문과보다 기술과를 기웃거리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경쟁이 너무 심하자 다시 문과를 보려고 하고 있었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놓는 게 어떻습니까.”

베바란스는 확실하게 과정을 그려서 과열되는 것을 막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치밀한 계획이라.”

‘개귀찮아 보이네.’

듣자마자 귀찮아지는 걸 드낙은 느낄 수 있었다. 척 봐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총관을 불렀기에 끝까지 들어주기는 들어줘야 했다.

‘지금이 기회다. 귀족들이 기술과에 많이 못 들어가게 만들어야 해.’

“사전합의를 통해서 귀족과 다른 계층들의 합격자수를 서로 배분해놓고 시험을 치르는 겁니다. 그리한다면 계층 간의 분쟁은 감소할 것입니다.”

반대로 똑같은 계층끼리의 분쟁은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베바란스 총관은 친귀족적인 성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드낙을 통해서 귀족의 역량을 감소시키고 싶어 했다.

개인의 생각은 개인의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다.

“계층간 분쟁을 감소하고, 합격자수를 미리 배분한다···”

듣는 때에 따라서는 사악한 비리로 여겨질 수 있었다.

드낙이 턱을 매만졌다.

‘매점매석이었던가.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지.’

뭔가 매관매석 같아서 별로인 것 같아 보였지만, 이내 민주주의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의석수가 결정될 때까지 온갖 돈을 선거에 퍼붓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돌린다면 동부의 예산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라로 들어오는 돈이 많아야 해.’

그래야만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엄청난 도로를 만들어서 동부를 로마처럼 만드는 도로사업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변변찮은 도로가 없는 게 동부였다.

파이룬의 도로 사업은 <오크 대침공>으로 인해서 예산이 삭감됐고, 단교를 통해서 일시중지가 된 상태였다. 무엇보다 건설에만 5년이 걸린다고 했으니, 이러니저러니 없는 셈 치는 게 나을 정도였다.

‘아깝지는 않다. 괘씸한 새끼들. 상종도 하기 싫다.’

한 번만 더 수작질을 버리면 그때는 와이번을 통해서 북부의 모든 인프라를 파괴할 생각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드낙에게 번개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천재라면 그 벼락을 더 키워냈겠지만 드낙은 그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돔구장. 돔구장이다! 돔구장처럼 인프라 확충을 해야해!’

진짜 돔구장을 짓겠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인프라! 인프라였다.

드낙이 모든 영지 성장의 핵심을 찔렀다. 그건 바로 돔구장같은 인프라였다.

대형 인프라야말로 영지 성장의 핵심동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건 로마의 도로나 마찬가지였지만, 체감하는 정도가 달랐다.

‘돔구장이 중요한 것처럼 인프라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 그 돈을 여기서 충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이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자연스럽게 베바란스 총관의 사회계급 간 합격자 수를 사전합의하는 것은 실로 그럴듯해 보였다. 동부에 돈을 많이 주는 만큼 배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미국의 금권정치와 궤를 같이하고 있었지만, 드낙은 그저 음흉할 뿐이었다. 하지만 발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큰 변화였다. 그렇게 달려왔으면 지금쯤 흥청망청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불파겐에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서 합격자 수에 차등을 두면 더 좋겠군. 아주 찍소리도 못할 것이야.”

웃음기를 머금은 채 드낙이 아주 흉악한 소리를 하자 베바란스 총관이 어깨를 들썩였다. 자신의 말을 완전히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그, 그렇게 되면 자유기사마저도 등용이 안 돼버렷! 모두 귀족과 기사들이 가져가게 된다!’

“돈으로 합격자 수를 배분하다니요! 저 절대 안 됩니다. 아주, 큰 반향이 일어날 것입니다!”

“한 분야쯤이잖아? 그리고 그 돈으로 더 멋진 걸 하면 되지 않겠어?”

‘있는 놈들의 돈으로 착한 곳에 쓴다! 뭔가 의적 같은데?’

드낙이 폭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눈에는 이제 로마의 도로와 돔구장 인프라에 대한 장점이 뇌에 가득 들어갔다. 그 뽕은 마약보다도 더 강렬했다.

“귀족들의 세력만 더 커질 뿐입니다. 지금 영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권력구도가 크게 변할 겁니다.”

그가 진정되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베바란스는 식은땀마저 흘릴 정도였다.

“아! 그, 엘라한 가문과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응? 무슨 가문?”

까맣게 잊고 있던 가문이 나오자 드낙이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엘라한 가문 말입니다. 불파겐 가문의 몇 없는 방계 중에 하나지 않습니까?”

“아. 하늘색 머리카락의···”

드낙이 기세가 줄어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예. 그들은···”

정령의 가호로 물을 다루는 엘라한 가문은 수로, 하수 등 물이 관여된 곳에서는 무적의 실력을 자랑했다. 더러운 하수관을 공사 없이 청소하는 것은 물론이어서 최고의 관리자라는 호평을 받고 있었다.

특히 관에 슨 녹을 꼼꼼하게 물을 빠르게 돌려서 함께 빼낼 수 있어서 대저택을 보유한 자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수압도 자유자재로 여길 수 있다고 했지.’

농도나 힘을 높이면 치료마저 가능한 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더러운 물을 정화할 수 있었기에 부농(富農)의 경우에는 일부러라도 엘라한의 방문을 간곡히 부탁하며 선물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드낙이 엘라한 가문이 그 인기에 비해서 자신이 전혀 듣지 못했다는 걸 인지했다.

눈치 좋은 드낙은 동시에 자신 주변인들이 엘라한 가문을 은폐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새끼들. 이거 진짜 늑대무리 속에 있는 것 같네.’

삼국시대의 호족이 그러했을까. 드낙은 이 세계의 사회체계가 얼마나 전투적인지 알 수 있었다. 삐끗하면 전쟁이 벌어질 여지가 흘러넘쳤다. 그건 업을 원하는 중립신의 안배인가? 그건 잘 알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의심하면 끝도 없다.’

중립신이 그에게 힘을 주는 이상, 그도 그를 믿어야 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드낙은 특히나 그랬다.

“엘라한 가문인가. 정확히 어떻게 그들을 대하라는 소리인가?”

드낙이 흥미를 느끼며 베바란스 총관에게 물었다. 총관은 입에 침을 발랐다. 이상한 곳에서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폭주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매우 신중하게 입을 열어야 했다.

“이번 기술과에서 가장 많은 합격자 수를 배출할 가문이 엘라한 가문입니다. 그러니 엘라한 가문을 대우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귀족들의 열기가 한풀 꺾일 것입니다.”

드낙의 눈치를 보니 딴 짓거리도 못할 터였다. 드낙의 시선은 곧 <쉐도우 위스퍼>의 관심이기도 했다. 가벼운 비리는 신경 쓰지 않지만, 드낙의 변덕스러움은 조심해야 했다.

“흠···”

드낙은 베바란스 총관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여겼다. 엘라한 가문에 대한 가치에 비해서 이용하는 정도가 적었기 때문이다.

‘아, 문인이라서 그렇구나. 귀족에 대해서 좋은 소리를 못하지.’

그가 적당히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기술과에서 귀족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으니, 자신이 적극적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다면 앞서 말했듯이 귀족들의 자리를 빼낼 수 있도록 합격자 수를 따로 계급에 따라서 나누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눈치 좋게 더듬고, 사냥꾼처럼 추적해낸 드낙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실레아는 경쟁자인 엘라한 가문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베바란스는 귀족을 깎아내리기 바쁘네.’

특히 베바란스는 질이 나빴다. 드낙의 권세를 통해서 자신을 숨기고 일을 진행시키고 싶어 했다. 중세의 정치가라기보다는 현대의 정치가다운 모습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의 손발을 숨긴다.

‘마음에 들지 않아. 하지만 동부의 총관으로서는 믿음직하네.’

게제라스처럼 실각하기 힘든 상이었다.

“의견 고맙다. 돌아가 봐도 좋다.”

“예. 감사합니다.”

베베란스는 상투적인 말을 하며 물러갔다. 그는 드낙과 처음 독대를 하며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꼬리에 불붙은 황소나 다름없다!’

그는 양팔을 주무르며 서둘러 내청으로 향했다. 오늘 있었던 독대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집무실에서 홀로 남은 드낙은 핏빛쥐를 불렀다.

“엘라한 가문의 가주의 행보를 알고 있나?”

“당연합니다. 페슬라 엘라한은 지금 안젤리카 에오윈과 만나고 있습니다.”

드낙의 눈이 조금 커졌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기 때문이다.

‘조용히 지내는 두 가문의 만남이라.’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드낙이 핏빛쥐를 다그쳤다.

“아무리 모두 말할 수는 없어도, 응?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있잖아.”

가장 꼴보기 싫은 선배, 선임, 상사의 모습이 절로 드러났다. 편해지고 싶어서 인성까지 미쳐버린 괴물을 마주한 핏빛쥐는 속수무책이었다.

“뜨···뜨낙···”

이 세상을 모두 말하기에는 핏빛쥐의 입은 작았기에 드낙의 불평을 그저 들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에오윈 가문의 차녀지만 가문에서 가장 실세인 안젤리카 에오윈이 아기를 품은 채 페슬라 엘라한 가주를 맞이했다. 그녀의 저택은 목조 건물이고, 2층에 불과했지만, 내성 외곽을 먼저 선점해서 넓고 넓었다.

가문의 일원이 모두 그 집에 지내고 있었다. 큰 저택에 한 가문원이 모두 지낼 정도로 숫자가 지나치게 적었다.

그렇기에 양적으로 팽창하기가 힘들었고,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다른 가문과 이어지는 걸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표적인 가문이 불파겐과 엘라한 가문이었다.

엘라한 가문은 <흰여우 세린>에게 유린당하고, 키워졌다. 그 가문원은 30명에 달했고, 이곳에도 엘라한 가문원이 살아가고 있었다. 장남인 랄프 에드윈과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벌써 애를 하나 낳았고, 두 가문은 순풍이 살살 불어올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서로 이해가 일치할 수밖에 없다.’

두 가문은 천생연분이나 다름없었다.

“앉으시지요.”

“랄프 경께서는 어디 가셨습니까?”

“엘라한 가문의 물약과 상성이 좋은 약초를 발견했다고 해서 잠시 외출했습니다. 약초꾼들과 협약도 맺어야한다면서 며칠 전부터 아주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이것은 약소하지만, 빈손으로 올 수 없어서 가져왔습니다.”

서로 굽신거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절로 나왔다. 그 정도로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었다.

유전적으로 신성력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게 엘라한 가문이었다. 반대로 에오윈 가문은 특출나지는 않지만 강골(强骨)을 타고난 무인 가문이었다. 안젤리카의 경우 남자와 견주어도 근육량이 부족하지 않았다.

동시에 백내장을 앓고 있는 엘라한 가문의 열성 유전자를 극복할 수 있게 할 수 있는 것도 에오윈 가문이었다. 그들 가문은 <눈>과 관련된 혈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구에 점 같은 것이 박혀있는 것이 에오윈 가문원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이었다.

괜히 몽펠리에가 에오윈 가문을 쥐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몽펠리에와 연을 끊고, 영지도 반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불파겐 자작께서 그렇게 행동을 하셨기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드낙이 던진 폭탄은 수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에오윈 가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주를 보다 빨리 해야 했다.

그덕에 장남은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동분서주하며 일에 매달려야 했다.

“사대시험에 대해서는 들으셨을 겁니다.”

페슬라 엘라한이 본론을 꺼냈다.

“오늘을 위해서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이 기술시험에서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기술을 들고 왔습니다. 저희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공유할 생각입니다.”

“어떤 기술입니까?”

“불파겐 마탑이라고 알고 계실 겁니다. 그들 수습마법사들은 적은 수의 마법밖에 배우지 못하고, 곳곳의 마을에서 일을 하는 걸 아십니까?”

“<파견 마법사>들을 말씀하신다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덕에 이번에 풍년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들과 협력하여 만들어냈습니다. <옹골찬 물의 정령>이 지닌 힘을 담을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대단치 못한 것이지만 이것을 통해서 교섭한다면, 합격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시험 외적으로 흔들겠다는 소리였지만, 그만큼 강력한 카드도 없었다.

“불파겐 자작님과 독대해서 이번 일을 추진해주십시오. 우리 또한 다른 자들처럼 비단길을 걸을 때가 왔습니다. 오히려 그분께서 원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세력을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

============================ 작품 후기 ============================

6594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