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74화 (57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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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논공행상

드낙이 생각했던 관복의 제정과 통일은 시작부터 반대에 휩싸였다.

“문인과 같은 복장으로 다니는 것은 결코 안 됩니다. 다른 이들이 어찌 기사와 문인을 구분하라는 것입니까?”

<원탁 회의>에서 겐과 이실레아는 말을 맞춘 것처럼 반대했다. 다른 기사 출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두 오크의 대침공에서 활약하고 살아남은 자들이었고,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을 얻었다.

‘이 정도의 반대가 있을 줄이야.’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에서는 무인(武人)의 지위가 높다. 자연히 문과 관리와 무과 관리의 복장이 통일되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관복의 통일은 드낙의 위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제국 또한 그러했다.

귀족이 드낙이 입으라는 옷을 입고 정무를 본다? 엄청난 대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여파를 드낙은 너무 쉽게 봤다. 국사책에 업적으로까지 여겨지는 게 관복의 제정이었다.

‘베바란스 총관까지 찍소리도 못할 정도니···’

자존심이 있을 것 같았는데, 시작부터 깨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직 드낙에게만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문인이 드낙의 말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도 기사와 문인의 싸움이 될 공산이 컸다. 베바란스는 그런 정치적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자중해야 할 판이다..거기에 기사와 논쟁? 돌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오크의 대침공>에서 공적을 쌓은 동부의 기사들은 그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그 반대로 관리들은 형편없는 평판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쥐죽은 듯이 조용히 있는 게 최선이었다.

‘무엇보다 아직은 굽혀야 할 때다. 불파겐 자작님의 위세 속에 기대야 해.’

기사와 같은 관복이든 제복이든 입는다는 것은 그들과 동등해진다는 뜻이었다. 그건 문인들이 원하는 게 아니었고, 아직 그럴 각오도 없었다. 게제라스와 그 휘하의 문하생들이라면 드낙을 도와줬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에 들어선 중앙 관리들은 결코 아니었다.

“흠···”

‘이놈이고, 저놈이고···관복을 통일해서 입으라는 게 이렇게 문제일 줄은 몰랐네.’

원탁 회의에서 반대, 반대 노래를 부르는 자들만 있었고, 그렇지 않은 자는 드낙이 불도저처럼 밀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드낙 또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정무를 볼 때만이라도 입는 건 어떤가?”

“그렇다면 안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애초에 왜 그런 것이 필요합니까?”

드낙은 그냥 과거 시험에서 시작된 생각이라는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제국의 통일성을 생각해보라. 그렇기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기사는 기사대로, 문인은 문인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통일이 아니지 않은가.”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드낙이 앓는 소리를 냈다. 관복의 제정과 그 통일이 가지는 힘에 대해서 자세하게 모르기 때문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드낙이 손에서 놓을 생각이 없자 기사들도 진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 삐질지 모른다.’

이실레아는 드낙의 표정을 살폈다. 그에 대해서 스토커라고 말할 정도로 집착스럽게 알아보고 살핀 양피지를 적는게 그녀였다.

겐에게 이실레아가 눈치를 보냈다.

“일단은 다음에 다시 말씀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오늘은 그것 외에도 정해야 할 것이 많지 않습니까.”

드낙이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논의는 직책에 대한 급수를 매겨 확실하게 등급을 짓는 것입니다. 남부의 영주들이 사용하는 직책은 무분별하기에 들어도 누가 얼마나 높은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베바란스의 말에 기사들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말하면 보병훈련장과 보병장 중 누가 더 대단한가? 그건 영지마다 다르다였다. 거기에 이러한 직책은 다른 문제도 있었다.

“직책에 따라서 하는 일이 달라야 하는데, 실제로 하는 일과 직책이 어울리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단단히 구분하여 그 경계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베바란스는 차근차근 탑을 쌓아올리듯이 직급을 두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드낙은 고개를 확실하게 끄덕여주었다. 반대는 아예 안 받겠다는 듯이 눈을 감기도 했다.

‘이건 무조건 해야지.’

지금은 1급~9급까지 정하고, 그중에서도 공란이 많아질 것이다. 처음이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첫 단추가 중요한 법이었다.

‘체계적으로 해야지. 암.’

문제는 이 직급이라는 것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기사들의 호승심을 건드렸다는 점이다.

“훈련이 장난이오! 그런데 어떻게 기병장보다 낮소?”

“전쟁의 꽃은 기병임을 모르는가!”

“그 잘난 기병으로 성벽 하나 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면 꽃이라고 말해주겠소! 그것도 경기병장이 4급이라니!”

문인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보병훈련장 5급과 경기병장 4급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것이다. 이실레아와 겐을 통해서 충분히 잘 정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랬다.

그 모습을 보며 이실레아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보병훈련장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5급으로 선정했다.’

보병은 모든 전쟁의 핵심이다. 그들이 없으면 모든 전투가 성립되지 않는다. 어중이떠중이들을 상대로는 기병 자체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지만, 이 세계는 녹록지 않다.

그러므로 경기병장과 근접할 수 있었다. 후방 직책이면서도 직급이 높았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병장보다 높은 건 아니지.’

말을 다루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인간보다 비싼 것이 말이다. 거기에 전투 종마는 더더욱 그 중요도가 높았다.

전투적인 면에서 본다면 보병과 경기병 모두 중요하지만, 그 외적인 요인과 조건들을 생각하면 경기병장의 사회적 계급과 재정적인 면모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저 자유기사의 이름은 기억해둬야겠군.’

그의 한계는 5급으로 정해졌다. 목숨을 걸어도 장원을 3개 이상 가지지 못할 터였다. 그만큼 현재 이실레아는 공신 중의 공신이었다.

단 한 번도 고꾸라지지 않은 가신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 이실레아는 성공가도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황소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평판에 걸맞게 드낙도 그녀를 대우해줘야 했다.

대업에 큰 역할을 한 자를 죽이면 사자성어까지 만들어지는 것이 세상이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경기병장과 보병훈련장에 대한 직급 논의는 끝을 몰랐고, 결국 하루를 다 보내야 했다. 대놓고 돈이 없거나 종마를 다루는 기술이 부족해서 직급에 차이를 두었다고 할 수 없어서였다.

막말로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자유기사도 있기는 있구나.’

덕분에 드낙은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똑똑한 몇 사람만 설득시키면 관복을 제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어느 정도 타협을 해야 할 듯했다.

원탁회의가 끝나고 드낙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실레아를 기다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빌어먹을 그런 천한 기술직이 이렇게나 인기가 있을 줄이야.’

하기 싫어서 하수구 청소를 공익에게 강제로 시키는 나라에서 살았던 것이 박호훈이었다. 당연히 지금 그 어떤 이슈보다 뜨거운 것이 기술과 대시험이었다.

등용문을 설립할 때 아예 기술과를 따로 떼어내서 <기술관>을 새로 크게 지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핏빛쥐를 통해서 알아본 결과 이러다가는 제2의 태풍이 될 수도 있었기에 이실레아를 호출할 수밖에 없었다.

‘베바란스는 도움이 안 된다.’

눈치가 빠른 드낙은 단번에 베바란스의 생각을 읽어냈다.

‘천천히 가겠다, 이거지.’

지나칠 정도로 귀족과 기사들에게 저자세였다. 동시에 드낙에게서 따로 독립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 위세를 통해서 보신하고 정치적으로 안정적으로 출발하고 싶어하는 게 보였다.

태풍 앞에서 모래 포대를 쌓는 꼴이었다. 하지만 드낙이 있기에 그런 태풍도 조용히 지내고 뚝심 있게 한 걸음씩 걷겠다는 건 나쁜 건 아니었다.

‘나도 세파리아스에게 물들었나. 소소하게 이득을 취하는 걸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다니.’

없는 것들이 하는 게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드낙은 베바란스에 대한 생각을 털어내려고 애를 썼다. 왠지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그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드낙에게 좋은 변화가 아니었다.

그가 싫어했던 권력자와 비슷해지고 있다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이다.

“부르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기술과 대시험 때문에 불렀다.”

“아···저희 가문도 그 시험을 치기 위해서 호수 마을로 오고 있을 겁니다.”

“벽보가 붙은 지 이제 2일 지났는데?”

드낙의 말에 이실레아가 웃음 지었다.

“제 가문이 목장을 하지 않습니까. 다른 이들보다 더 빠르게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손톱에 때가 묻고, 역겨운 냄새가 몸에 스며들어도 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기술은 곧 기사들의 또다른 힘이기도 했다. 적어도 남부 왕국에 있는 기사 중에 성의 복잡한 수로관을 설계하지 못하는 기사는 없을 정도였다.

그건 자유기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계승>을 받는다는 건 성주로서 성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브릴리언트 가문까지 팔을 걷다니. 이거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드낙이 중얼거렸다.

기술시험이 대박나면 좋은 게 아니냐 싶겠지만, 사대시험 자체가 반(反)기사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설계를 한 것이 드낙이었다.

‘문인은 문과로. 전투과는 병사들을 부사관급으로. 마법과로 마법사들을 더욱 국가적으로 운영하고. 기술과로 기술의 부흥을 넓게 퍼뜨린다.’

전수가 어려운 게 기술이었다.

평범한 마을의 대장장이조차도 자신의 밥벌이를 남에게 알려주기를 꺼린다.

기술이라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기술을 마구잡이로 공개했다가 암살까지 당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드낙만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오히려 기술 직책에 오르려고 귀족들이 발악을 하는 상황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걸 기대하셨던 것 아닙니까?”

“내가? 그렇게 보이는가. 너무 대성황이라 오히려 난감한데.”

드낙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실레아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 또한 귀족이었다. 특히 산전수전을 다 겪고 드디어 사회계급의 일선에 섰다. 꼰대질해도 모두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술과 대시험을 내가 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영주님께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몰라서 감히 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저라면 그냥 놔두겠습니다.”

이실레아가 깍듯하게 대답했다. 빠르게 말하는 것을 보니, 그녀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 수 있었다.

“저는 영주님께서 권력의 양도를 통해서 다양한 세력을 동부에 놔두시는 것의 연장선으로 보았습니다. 기술과를 귀족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 싸우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귀족의 시선인가.’

“하지만 그렇다면 왜 그곳으로 뛰어드는 거지?”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싸우는 이유는 승리자가 가지는 모든 권리를 위해서다. 당연한 것을 묻는 드낙을 이실레아는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양육강식이다. 불파겐의 피가 가지는 검은 역사를 생각해서 드낙은 참고 있다고 여겨져도 방금 그 물음은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직책은 동부에서 가장 강력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 의자에 말석이라도 앉고 싶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 직책에 있으면 연봉을 받지 않습니까.”

귀족에게 있어서 화폐 수급처는 중요했다. 드낙은 사대시험을 통해서 귀족이 아닌 자들을 영입하고, 그들을 직장인처럼 써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귀족이 꼬여버렸다.

“영주님이 내리신 직책과 직급 그리고 연봉까지 생각하면 하는 게 이득입니다. 왜냐하면 장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귀족과 자유기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량으로 지내기보다는 관리가 되겠다는 뜻인가.’

확실히 이득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경제 또한 활성화될 것입니다. 영주님께서는 불파겐 영지 중부에 마탑과 대중목욕탕을 같은 곳에 건설하지 않으셨습니까? 순간적으로 인구가 그곳으로 몰렸지만, 다시 호수 마을로 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균형된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게제라스의 법원을 생각해서 여기에 놔뒀는데, 그게 또 그렇게 되네.’

“근데 한 곳에 집중하는 게 더 좋지 않나?”

“장단점이 있습니다.”

이실레아는 온갖 단어를 쓰면서 이를 알려줬지만 드낙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에 그쳤다.

“복잡하네. 그 외에 더 말할 것은 없는가?”

“예.”

이실레아는 <엘라한 가문>에 대해서 숨겼다. 사실상 이번 기술과 대시험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가문이 엘라한 가문이었다. 이미 답이 적혀진 수학문제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를 드낙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더 이상 드낙이 깊게 개입하면 안 된다.’

============================ 작품 후기 ============================

5987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봄이 오니 고등학생 시절에 많이 읽은 연애 소설과 만화책이 생각납니다. 남들은 꽃놀이인데 신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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