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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72화 (57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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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

비숍(bishop)으로 불리는 미노타우르스와 쌍벽을 이루는 마신의 오른팔인 오우거는 룩(Rook)으로 불린다. 그만큼 마신의 강력한 힘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우거도 결국에는 마신에게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은 존재에 불과했다.

“드워프의 업을 내년까지 가로채라. 중립신이 무리해서 드워프에게 신호를 줬다. 잠들고 있는 드워프 제국이 몸을 추스르기 전에 죽여야 한다.”

“명을 받듭니다.”

마신 성현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져버렸다. 차원의 약탈자이지만, 괴이하게도 본격적으로 침공은 하지 않는 마신의 어정쩡한 태도는 모든 존재가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발라쿠도 같았다.

‘빌어먹을.’

드낙이 중립신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숭배하며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면, 마신장 발라쿠 또한 자기 뜻을 굽히고 있었다.

“크아아!”

포효하며 흉포한 기세가 뻗어 나갔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연에서 태어난 오우거는 자유롭지만, 마신에게서 부여받는 가장 강력한 권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Mabeob)을 사용하지 못한다.

힘을 받았기에 그 힘을 준 존재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힘은 곧 족쇄이기도 했다.

욕을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관계인 것이다. 돈이든 무엇이든 받는 순간 그건 경중이 다르지만 똑같은 목줄이었다.

‘부족한 것이 태산이다. 하지만 드워프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치는 건 무조건 이득이다.’

발라쿠가 대기하고 있는 마수를 향해 소리쳤다.

“잡아놓은 인간을 데려와라! 공물을 더 받아야겠다!”

인간을 협박하여 최대한 뜯어내고 인간의 땅을 되돌려주고 황폐한 서부로 향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쉐액!”

아가루스(Agarus)라 불리는 마수였다. 두 발로 선 악어의 모습에 꼬리는 참새로 되어있는 기괴한 마수였다.

게제라스가 문인차림으로 내성을 찾았다. 그는 내성문에서부터 기다려야 했는데, 죽은 권력이기 때문이었다.

‘평범해진 것이지.’

그는 이제 평범한 문인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오히려 평판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졌다. 덧없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의 그 불만의 눈빛은 버티는 게 힘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제도라는 것은 결국 인간을 묶어버리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건 마치 자동차의 가속딱지와 같았다. 오직 받지 않는 사람만 좋아할 뿐이지 받는 사람은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게 제도라는 것이었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드낙은 미쳐있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직언뿐이다.

“영주님께서는 집무실에 계십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괜찮네. 알아서 갈 수 있으니.”

그런데도 병사는 마치 게제라스를 감시하듯이 따라나섰다.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죽은 권력이고 많은 문인 중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불쾌함보다는 편안함이 더 컸다.

‘끝까지 부딪쳐 볼 수 있었다.’

큰 은혜다. 그렇기에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수많은 중소세력이 출범했지만, 결코 강(强)한 세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불파겐이 노리는 세력구도였다. 거미줄 같은 관계는 게제라스도 만족할만했다. 정치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그나마 차선으로 선택할 만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게제라스는 물러나도 드낙에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게 얼마 만인가! 뭐 일이라도 하고 싶어져서 왔는가?”

“아닙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드낙은 게제라스를 크게 환영하며 안아주었다. 그 모습은 절로 안내한 병사의 눈에 새겨졌다. 이 정보를 판다면 은화 한 닢은 받을 수 있었는데, 그만큼 게제라스는 비싼 인물이었다.

“들어가세. 들어가!”

드낙은 누구도 들이지 않고, 게제라스와 함께 집무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시종으로 기르는 문인 또한 밖으로 나가야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여전히 집에만 있지는 않겠지? 축제도 하고 있지 않나.”

“예? 저는 그런 건 좀···”

“문화를 즐기는 것도 좋은 기분 전환이 될걸세. 나도 연극을 보고 왔는데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는 게 눈에 보여서 끝까지 다 봤지.”

거짓말이다. 드낙은 연극을 제대로 보지 않고, 레이시아와 손잡고 멍청히 있었다. 거래 때문에 성욕을 해소하는 것과 레이시아와 썸을 타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한 번 가보겠습니다. 저 또한 레이시아 공주 전하 때문에 자작님께 한 말씀을 하려고 오게 되었습니다.”

드낙이 레이시아와 접촉을 많이 했다는 것을 누군가가 게제라스에게 알려준 듯했다. 무슨 의도인지는 뻔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었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게제라스가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드낙은 가볍게 웃으며 넘어갔다.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고블린의 주술 아이템을 두른 핏빛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법에도 걸리지 않게 되었다.

“좋다. 계속 이야기해봐라.”

“자작님께서 만들고 있는 세력구도를 생각하면 레이시아 공주 전하와 만나는 것은 피하셔야 합니다.”

공주를 받쳐주면 중소 세력구도가 무너지기 쉬웠다. 이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레이시아 공주는 신전과 깊은 관계를 쌓지 않았습니까? 못해도 길게이 왕자가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을 때부터 신전과 공주께서는 교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신전은 다른 세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을 피하려고 레이시아 공주를 포섭했다. 그녀는 그녀일 뿐, 길게이 왕자 세력과 또 달랐다.

“하지만 그것은 레이시아 공주가 주관이 강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호위조차도 신전이 개입해있지 않나.”

“그것과는 다릅니다. 자작님께서 결코 이를 가볍게 여기시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할 말이 있느냐.”

드낙이 일단 이해하고 넘어갔다.

“길게이 왕자 전하의 성향은 독사와 같습니다. 언제든지 동부를 집어삼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독사? 너무 대놓고 말하는 것 아닌가.”

드낙이 웃었다. 게제라스가 자신에게 얼마나 마음을 편히 먹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야망을 가지고 있거나 손에 쥔 것이 많은 놈을 상대하다 보니 부족해도 솔직한 사람이 더 좋아지고 있을 지경이었다.

“길게이 왕자는 분명 레이시아 공주를 통해서 신전을 이용하려고 들 것입니다. 그녀와 신전이 그 음흉함을 막아낼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드낙은 인정했다. 그 또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해답 없이 그저 중립신을 따르고 있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중립신이 스스로 말하지 않을 때까지 숨겨야 할 일이었다.

‘물론 몇 가지 근거는 있지.’

이왕이면 신전이 1강이 되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레이시아에게 힘을 올려주는 건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또한 아기는 길게이가 시간적 여유를 가지게 할 수단으로도 보일 수 있었다.

잔혹하지만, 불파겐의 후손을 공주가 획득함으로써 길게이는 보다 느슨해질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중립신을 믿고 있으므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결론이 오히려 쉽지.’

<중립신 믿고 가즈아!>. 아주 간단한 논리였다. 이미 윗선에서 고정된 로또 번호를 드낙에게 내어주는 것과 같았다. 그 정도로 중립신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휘청거리고, 일이 맞지 않아도 그건 그저 사소한 것일 뿐이라며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에 당도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 중립신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아직도 중립신에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갈등하고 있을 뿐이었다.

“난 내년 혹은 내후년에라도 마신장 오우거를 토벌하러 갈 것이다. 그렇기에 중심을 크게 잡으려고 하는 것이다. 강한 세력 그리고 큰 변화를 원하지 않는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레이시아 공주가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습니까. 늑대 무리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호랑이를 두는 꼴입니다. 내전이 일어날 것이 뻔합니다.”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레이시아 공주의 심성을 생각하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게제라스는 모든 것을 총동원했지만, 드낙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의견을 바꾸지는 않았다.

‘실패인가.’

게제라스는 드낙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내성을 빠져나온 게제라스는 그의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정공법을 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방법 또한 존재하지.’

정치력이 낮다고 해서 멍청한 것은 아니다. 게제라스는 레이시아 공주에게로 향했다. 그녀와 독대는 하기 쉬웠다.

결함품이라고해도 백금 왕가는 자원이 많은 왕족이다.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가르쳤을 것이다. 왕족의 결함품임에도 평민보다, 귀족보다 유능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체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가혹하게 다루어졌을지도 몰랐다.

레이시아는 게제라스의 말을 모두 끝까지 들었다.

“···그렇기에 공주 전하. 부디 동부의 평화를 위해서 자작님을 설득해주십시오. 그게 안 된다면 스스로 물러나 주십시오. 이대로 진행하면 공주 전하께서도 권력의 한중간으로 들어가버리게 됩니다. 그런 걸 원하시는 분은 아니지 않으십니까?”

레이시아의 어깨가 떨렸다. 그녀는 차를 마시며 생각에 빠졌다. 게제라스 또한 기다려주었다.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 것을 판단하든 용기가 필요했다.

‘갈등하고 자리를 끝내도 길게이 왕자에게 의심이 남지.’

바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길게이의 기사는 이를 상세히 그에게 전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길게이라는 독사가 지니는 특징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레이시아의 심성과 판단이 필요가 없었다.

총관직에서 정치질을 당하며 주워 먹은 지식이며, 깨달은 것이었다.

‘당사자의 주관에 맡기는 게 아니라 그렇게 흘러가게 만드는 게 일류의 정치.’

그런 걸 수없이도 반복해내야 진짜 일류 정치가였다. 하지만 게제라스는 그럴 깜냥은 되지 않았다. 가끔 그림 하나를 그릴 수 있었지만, 숨 쉬듯이 가볍게는 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했다.

“미안하지만 안 들은 것으로 하겠소.”

레이시아는 익숙하지 않은 어법을 사용해서 그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게제라스가 일어나려고 했지만 레이시아가 기사에게 눈길을 주었다. 어깨가 잡힌 게제라스가 다시 앉혀졌다.

“더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맞소. 에흠···”

레이시아가 헛기침을 하고,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전혀 없소. 이를 잘 알고 처신하시오. 봐주는 것은 이번 한 번뿐이오.”

“예. 주제넘은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게제라스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깊이 숙였다. 카리스마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제라스는 상투적으로 대답하며 겉으로나마 레이시아 공주에게 굴복했다.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듯했다.

“배웅은 하지 않겠소.”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사가 옷깃을 잡아당기며 난폭하게 게제라스를 끌어냈다. 레이시아의 의견에 확실하게 화답하는 모습에 게제라스가 속으로 놀랐다.

‘길게이의 기사가 왜 이렇게까지? 설마 그녀가 포섭을 했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 고, 공주 전하! 잠시 제 말을!”

게제라스가 레이시아의 가려진 능력을 기사의 충성심으로 깨닫자 버둥거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기사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나갔다.

“크윽!”

거칠게 땅에 나뒹군 게제라스가 서둘러 일어났다.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 전에 문은 닫혔고, 검 손잡이에 손을 놓은 기사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게제라스는 결국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레이시아는 의자에 앉았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다시 그때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지금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녀에게 자유는 두 번 다시 쥐어지지 않을 터였다.

‘그라면 가능해. 나를 속박하는 모든 것을 끊어내 줄 수 있어.’

레이시아는 지팡이를 손에서 놓고, 양손을 꼭 잡았다. 그 강렬한 온기를 떠올렸다.

============================ 작품 후기 ============================

571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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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자 : KGH782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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