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71화 (57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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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대로를 지나 골목길로 겐 쟝이 들어섰다. 골목길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창문은 나무판으로 겹겹이 틀어막혀져 있었다.

그는 이름 모를 건물의 허름한 문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로브를 벗었다.

‘지독한 악취.’

코를 찌르는 오물 냄새에도 그는 거침없이 2층으로 향했다. 1층은 아무도 없고, 버려진 것처럼 보였지만, 몇몇 암살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히프노틱의 암살자>들이다.

악취 또한 그들의 작품이었다. 인간의 몸 냄새는 심하므로 음식물이나 오물 냄새로 환경에 맞도록 그럴싸하게 가린 것에 불과했다. 더불어 <기름 냄새>와 <강철 냄새>는 숨기기가 극히 힘들다.

“판 경. 있는가?”

겐의 물음에 방 안에서 소리가 났다.

“기다렸소. 왜 이렇게 만나기가 힘드오? 하루나 늦게 오시다니.”

“상황이 상황이라서 늦을 수밖에 없었네.”

2층의 거실에서 서로 마주 앉았다. 히프노틱 가문 또한 불파겐의 후손을 피신시키도록 도와준 이들 중 하나였다.

“히프노틱 가문의 판단이 섰으니 날 불렀겠지?”

“경께서 의견이 합일되도록 도와주셨으면 해서 불렀소.”

그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에 겐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난 외부인이 아닌가. 내가 어찌 도울 수 있겠나. 말도 안 되는 소리. 더 큰 분란만 일어날 뿐이네.”

그렇게 말하며 겐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걸 그대도 잘 알고 있겠지? 그때도 하나로 합치지 못해서 때를 놓친 것 아닌가.”

간을 보다가 불파겐이 고꾸라졌다. 진심으로 세파리아스를 끌어내리려고 하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서로 도움이 되는 것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지. 머저리들.’

쟝 가문만 해도 엄청난 혈통을 획득하게 되었다. 장창으로 수많은 이점을 얻어서 그런 무위를 보여줄 수 있었지만, 오크 대전사를 인간이 죽일 수 있게 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북부 12가문에게 있어서 세파리아스의 죽음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어떤 미친놈이 그런 사지로 스스로 들어가겠냐고 생각한 우리들의 오판이었지.’

술잔을 흔들며 겐이 상념에 젖었다. 자신의 시대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었지만, 쟝 가문의 세파리아스에 대한 집착은 무시무시했다. 그러한 계승 또한 존재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히프노틱 가문의 주저함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불파겐과 북부 12가문은 거대한 오해 속에 있었다.

‘직계가 안 나타나고 방계가 이렇게 성공할 줄은 몰랐지만···쟝 가문의 가보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창의 달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간격이 좁혀졌을 때, 싸울 수단이다. 그것을 해결할 가보가 사라졌으니, 아쉬움도 컸다.

“겐 경. 그가 받은 계승이 온전치 못한다는 걸 확실하게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결정에 어려움이 있소. 그 부분을 어떻게 도와줄 수는 없소? 특히···강철이 흐르는 강은 그가 죽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한 귀물(鬼物)아니오?”

사람을 가린다고까지 여겨지는 불파겐 가문의 보검. 불파겐의 피가 흐르지 않은 자는 잡을 수도 없다고까지 여겨졌고,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쓰면 쓸수록 사용자가 피폐해지고, 상처를 자주 입게 되어서 그의 시체와 함께 매장했다.

나중에 올 직계를 위해서 아주 그럴듯하게 묘를 만들어놓았다.

“보기 좋게 강탈 당했지만..판 경도 소문은 들었을 것이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불파겐의 정보 조직 말이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겐이 말했다. 지금 이런 만남조차 파악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못 도와주겠다는 것이오? 화폐 수급에서 힘든 상황이라고 들었소.”

“보고도 모르면 내가 뭘 더 해주겠는가?”

윽박지르는 것 같은 겐의 어조에 판 히프노틱이 한숨을 내쉬었다.

“싸우고 싶은 게 아니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해서 그렇소.”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겐으로서는 꼴불견에 지나지 않았다.

“드낙 불파겐 자작은 자신과 함께 몰락한 12가문을 도와주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게 함정일 확률이 있지 않소? 모두 찾아낸다면···”

손으로 목을 그었다. 그 모습에 겐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래서 살인 업자를 만나는 건 거북하다. 겉으로 너무 잘 드러내. 그게 베여있어.’

하지만 효과적으로 돈을 버는 것 또한 인간과 관련된 사업이다. 사람 장사에는 불황이란 게 없었다. 죽이든, 부려먹든 결국에는 똑같다. 망할 일이 적다.

필요한 가문인 것이다. 그리고 계승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손익을 계산하면 함께하는 게 좋았다.

“그의 행보를 보면 귀족다운 모습을 보기 힘드네. 몇 번이나 말했는지 입에 붙겠어. 귀족답지 않은 모습이 적다는 걸 잘 알지 않나.”

짜증을 섞었다.

“이제그만 결단을 내려 동부에 빨리 와주었으면 하네만··· 애초에 영향력이 있는 자들은 죄다 동부로 몰려오고 있는 상황이야. 새로운 땅이라고!”

마지막에는 언성을 높였다. 이곳에서 싸워 높이 서려면 뭉치는 게 필요했다.

“북부와 단교를 하고 나서 더더욱 내 가문은 나오는 걸 두려워하게 되었소. 겐 경. 그렇지 않은가···불파겐이네. 불파겐. 세월이 흘러 그 이름은 그저 영웅처럼, 난폭한 군왕처럼 쉽게 보이고, 자극적으로 재밌게 이야기되지만 경은 알고 있지 않소.”

“북부와 단교가 북부를 없애는 게 아니지 않은가.”

“드래곤이 음흉해진 것이나 다름없소.”

“그건 자네의 판단인가. 히프노틱 가문의 판단인가?”

“오직 나의 판단이오. 가문은 아직 갈등하고 있소···”

그 말에 겐이 엄포를 놓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조심하게. 물론 걱정은 안 드는군. 적어도 그 마음을 가지고도 나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경께서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그것이야말로 보증서 아니겠소.”

“그렇게까지 히프노틱 가문과 함께할 정도는 아니네.”

겐 쟝은 바로 일어났다. 그의 냉철한 눈에 답답함이 서렸다. 이미 경주는 시작되었는데, 어물쩍거리는 히프노틱 가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프노틱도 쓰레기가 다 되었군. 이제 더는 사자가 아니야, 세월이 그렇게 만들어 버렸어.’

롱소드와 똑같거나 더 무거운 레이피어를 통해서 전공을 쓸어담던 히프노틱은 더는 볼 수 없었다.

‘무조건 올라타야 하거늘. 이미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왜 그걸 모르지?’

북부 12가문은 불파겐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가문들이었다. 혈통부터 시작해서 기술까지 압도적으로 질이 좋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쟝 가문이다. 그렇기에 겐 쟝은 누구보다도 불파겐의 이름값을 잘 알았다.

‘모를 수가 없다.’

<하늘의 기사>라니, 실로 거창한 기사를 배출해내기도 했다. 그 실력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크의 침공 때 드낙에게 갈 수 있었다.

‘지금의 드낙은 그때의 불파겐이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깨닫고 있다.’

영지전에서도 손속을 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실레아가 그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막고 있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북부 12가문은 조심했다.

결단을 내린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충성을 바칠 가치가 있다. 이번에는 충신이 되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

사자가 하이에나에게 둘러싸이는 형세를 절대 만들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위세를 통해서 부흥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계단을 오를 것이다.’

그가 자신을 충신으로 믿고 있다면, 자신도 충신이 될 뿐이다.

죽음의 그 목전까지도 쥐고 갈 각오가 되어있었다.

과거의 자기 가문이 하지 못한 일을 이번에 할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앞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기사들의 만찬>을 성공적으로 달성해야 했고, 동시에 이실레아의 날개를 꺾어 보여야 했다.

드낙은 답답한 기분을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모습을 숨기고 축제를 돌아다녔지만,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가장 먼저 음식이 거기서 거기였다.

‘식문화가 정말 끔찍하네. 왜 생선 대가리만 잘라서 꼬치로 먹는 거야?’

독특한 향내음이 나서 쫓아가 보니 생선대가리 꼬치라니. 끔찍했다. 물론 그 향내음이 뭔지 매우 궁금했지만 드낙은 명색에 현대인이며 교양인 아닌가.

‘저런 걸 먹을 수는 없지.’

이곳의 생선은 크기도 해서 눈알이 너무 컸다. 도저히, 드낙은 그걸 먹을 수가 없었다. 향신료는 제법 있었지만 민간에 잘 퍼지지 못한 듯했다.

결국 드낙이 돌고 돌아서 간 곳은 레이시아와 신전이 주최하는 연극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하기에는 주변 소음이 심하므로 천막을 놓아야 했고 자연스럽게 공터가 있는 곳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외부로 밀려난 것은 당연했다.

‘뭐야,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피부를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은으로 된 반지를 낀 사람도 보였다. 눈치 좋은 드낙은 그가 보부상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수완이 제법 되어 보였다.

그 외에도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열심히 살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간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수수하지만 하나씩은 뭔가가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레이시아의 수완인가.’

“공주님!”

연극이 시작되는 큰 천막의 입구에서 레이시아는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담까지 나누는 것을 보니, 아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이곳에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을 편하게 만드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드낙은 비틀린 생각으로 그걸 덮어버렸다.

‘베푸는 한 사람들은 모여드는 법이다. 그녀가 베푸는 한 이 그림은 계속될 터다.’

그런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그 광경을 제법 오래 지켜보았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는데, 이 세상에서는 말 그대로 먼저 후려치는 놈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들은 없어 보이네.’

감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잠시였다. 서로 칭찬 레이스를 하는 곳에 드낙이 서서 로브를 살짝 벗으며 레이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흥미가 있어서 왔습니다. 민폐는 아니겠죠?”

그녀의 옅은 분홍색 입술이 벌려졌다. 하지만 다시 줄어들었다.

“아! 이 분은 제가 아는 분이고! 호, 호위기사. 이분을 제 옆자리로 안내해주세요.”

“예. 공주전하.”

드낙은 기사의 안내를 받았다. 기사 또한 드낙인 줄 모르는지 뒤를 힐끔 보며 드낙의 모습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확!

그가 앉자마자 기사가 드낙의 로브를 단번에 벗겼다. 그 어떤 전조도 없었으므로 드낙은 그 손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 죄, 죄송합니다.”

다른 이에게 붉은 머리카락이 보이기도 전에 놀라운 순발력으로 다시 덮었다. 시야를 다 가릴 정도였다.

“아니다. 충분히 이해한다. 소름 돋았지? 내가 배려해주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연거푸 사과하는 것을 드낙이 웃으며 받아주었다.

‘발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어. 존재감도 없어서 몇 번이고 뒤를 볼 수밖에 없었다.’

몸을 돌린 호위 기사가 살 떨리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그의 말대로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마치 귀신 같았다.’

호위 기사는 팔뚝을 쓸며 레이시아에게로 향했다.

“자작님이 와주실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혼자서요.”

“예. 뭐··· 베바란스 총관은 잘 도와줬습니까?”

“그럼요. 생각보다 저 권력이 있답니다?”

그녀가 손에 힘을 줘서 휘둘렀다. 자유로운 그 모습에 드낙은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원래 그녀는 활달한 성격인 듯했고, 안정된 상태에서 드낙과 만나면서 그 모습을 드낙에게도 보여주게 되었다. 그 덕에 드낙은 괜히 그녀가 이곳에 와서 죽은 것처럼 지냈던 시절이 떠올랐다.

‘왠지 죄 지은 기분이다.’

그는 눈을 돌려 시작하는 연극에 집중했다.

연극은 재미없었다. 너무 설교적이었고, 어린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드낙의 수준에 맞지 않았고, 아마추어나 다름없어서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문화는 남부 왕국에 <이야기꾼>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아.’

그때 드낙이 크게 들썩였다.

‘으억, 씨!’

마치 불의의 일격을 맞은 것처럼 굴었다. 의자에 걸쳐놓은 손을 레이시아가 잡았기 때문이다.

“히극.”

드낙이 들썩이자 잡았던 손에서 느껴지는 큰 진동에 레이시아가 손을 빼더니 이내 딸국질을 했다. 그 모습에 드낙이 웃음을 참으려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드낙은 벅찬 행복감을 느꼈다.

전신에 땀이 후끈 삐져나왔다. 자기도 쪽팔리는 줄은 알았다.

‘겨우 손 하나 잡았는데, 왜 이래.’

드낙의 깜짝 놀라며 숙맥처럼 보이는 모습은 불륜을 저지르며 새사랑을 찾은 놈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아내에게는 다 닳은 사람처럼 보여도 내연녀에게는 로맨티스트가 되는 놈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애써 침착하며 드낙이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궁색하게 그녀에게 속삭였다.

“갑작스러워서···결코 싫었던 게 아닙니다.”

“아. 네···”

드낙은 변명을 하지 않는 게 더 좋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미 저지르고 난 뒤였다. 서둘러 털어내고 싶어서 이번에는 드낙이 그 손을 잡아주었다.

연극이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있었다. 레이시아는 손이 덥고, 땀이 나왔지만 감히 내뺄 수 없었다. 눈치를 몇 번 줬음에도 드낙은 반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드낙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6029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아. 깜빡해서 코멘트란에 적습니다. 작품수정해도 수정이 빨리 되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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