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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570화 (56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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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

쿵. 뭔가가 그를 후려쳤다. 그런 기분에 휩싸인채, <조각상의 햇빛>은 오랜만에 눈을 떴다.

“킁!”

코에서 먼지가 공기와 함께 튀어나왔다. 마치 담배를 핀 것처럼 먼지의 구름이 생겨났다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끙.”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몸에 묻은 이끼를 떼어냈다. 제법 오래 잠을 잔 듯했다.

뚜둑. 우두둑.

몸을 움직이자 뼈마디가 비명을 질러대었지만, 조각상의 햇빛은 그걸 못 느끼는지 아니면 무신경한지 계속 움직여대었다.

‘뭐지?’

<둔감의 종족>이기도한 드워프이기에 그는 자신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탁탁.

어깨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흙먼지가 거침없이 그 입으로 들어갔지만 재채기 하나 나오지 않았다. 유기체 같지 않은 모습이 실로 선명하게 보여졌다.

‘내가 뭐하다가 잠을 잤더라?’

귀를 휘볐다. 안에 있던 거미가 거미줄과 함께 들러붙어 나왔다.

“후!”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의 대장간이었다. 녹이 슬어있었고, 대부분의 장비가 사용할 수 없었다.

‘어디···’

귀를 기울이니, 수많은 금속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에 노래는 형편없었다. 조각상의 햇빛은 정신이 사나워져서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통로는 지나칠 정도로 작았다. 높이는 160cm에 불과했고, 조각상의 햇빛에게는 머리가 살짝 살짝 닿일 정도였다. 폭 또한 꽉 낀 느낌이었기에 몇몇 이들은 폐쇄공포증에 시달릴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둔감한 드워프들은 이런 느낌을 오히려 좋아했다.

왠만해서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도 정신차렸나. 드워프의 부흥이 정말로 올지도 모르겠다.”

“이름이···뭐였더라?”

“이 새끼가! 크하하하! 나 <구리천장>이다.”

“이름 참···”

그 말에 구리천장이 덤볐고, 서로 몸이 부딪쳤다. 구리천장은 조각상의 햇빛보다 머리가 하나 더 작았지만 튕겨져 나가지 않았다.

쿵!

바위와 바위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넘어진 조각상의 햇빛이 눈을 깜빡였다. 오랜만의 충격에 뭔가 기분이 좋았다.

“해보자 이거지?”

투닥거리던 두 명의 드워프는 몸에서 열이 차오를 때까지 싸웠다. 그덕에 조각상의 햇빛은 자신이 왜 잠을 자고 있었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모든게 무미건조해버려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감정도 서서히 사라지는 엘프들과는 달리 드워프들은 감성적인 면이 강했다. 반대로 감각을 받아들이는게 무뎠다.

겉으로는 바위나 강철 같아도 속은 무른 것은 매우 위험한 성향이었다. 그덕에 드워프의 사회는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은둔자가 많았다.

조각상의 햇빛 또한 그런 은둔자가 되었었다. 그리고 깨어났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이제 그런걸 묻는거냐. 퉷!”

입에서 이빨을 뱉으며 구리천장이 볼을 긁었다. 살점에서 반짝이는 구리가루가 흘러내렸다.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따라와라. 직접 보여주는게 더 좋겠지.”

더 강렬할 것이다.

드워프는 그런 강렬한 것을 좋아했다. 듣는 것보다는 보는게 좋았고, 보는 것보다는 직접 해보고 싶어했다.

투박함을 숭상하는 드워프답게 각진 계단과 각진 통로를 걸어나갔다. 버섯이 갈라진 조각상에 피어나있었다. 관리를 하지 않는 드워프다움이 잘 나타나 있었다.

인간이 본다면 분명 드워프가 몰락했을 거라고 여길 것이다.

“맞다. 맞아. 이제 좀 기억이 나네. <신의 봉화>로 가고 있구나.”

“다 와서 말하네. 맞다. 신의 봉화다.”

드워프는 중립신이 죽으면서 탄생했다. 이 세계에 탄생한 드워프는 그렇기에 신의 후손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들은 신에 대해서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갈망의 발아가 <신의 봉화>였다. 15가지 광물을 기준으로 수많은 합금을 만들어 금속들이 다양한 노래를 부르도록 만들어 드워프에게 있을 신을 드러내는 용도로 쓰인 것이 신의 봉화였다.

그 결과 드워프들은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신은 죽었다. 그런 결론을 분명 내렸었지?”

“그래.”

역설적으로 신에게서 받은 <초월의 힘>은 여전히 드워프들에게 남았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많은 드워프가 은둔자가 되었다. 감정적으로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고, 허무함에 숨어들어갔다.

‘미친 엘프들과 다를바가 없었던 것이지.’

엘프는 스스로 중립신을 버렸지만, 드워프들은 중립신에게 닿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신의 죽음을 확인했다.

“내가 얼마나 잠을 잔거지?”

“수백년은 넘었을 걸.”

달력조차 없는게 드워프들이었다. 무신경함의 결정체였다. 그러면서도 잘 하는 건 잘했다.

“신의 횃불이 내가 깨어난 거랑 의미가 있다는거야?”

“잠만 쳐자는 똥쟁이들을 깨운게 그럼 누구겠냐? 너무 많이 자니까, 내버려 둘 수 없었는게 아닐까.”

구리천장은 외부 자극에 큰 반응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드워프들을 걱정해서 중립신이 신의 봉화에 반응을 준 것이라고 여겼다. 그게 진실인지는 누구도 몰랐다.

끝없이 치솟아있는 동공.

쭉쭉 뻗은 형형색색의 금속봉들.

그 속에서 빛가루가 금속에서 튀어나와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신의 횃불>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빛은 너무 약했다. 계획한 것의 100분지 1도 안 되어보였다. 대신(大神)이라고 하기에는 조악한 빛가루였다.

“왜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을까?”

“어떻게 알아. 시간이 지나면 알겠지.”

그 말에 조각상의 햇빛은 마음에 불이 지펴졌다. 주먹쥔 손을 움직이자 돌가루가 쏟아져나왔다.

드워프 종족이 가지는 <석공술>이었다. 이 석공술에 따라서 이름도 정해진다. 조각상의 햇빛은 돌가루의 석공술을 지니고 있었고, 구리천장은 구리를 뽑아낼 수 있었다.

떨어지는 돌가루를 보며 조각상의 햇빛은 중립신의 부활에 웃음을 지었다.

‘단 한 번도 연결되지 못한 신인 그는 드워프와 연결되었을 때, 무슨 말을 할까? 녹색 도끼처럼 부성애를 보여줄까. 아니면 크게 분노하면서 엘프랑 드워프랑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고 잔소리를 해댈까?’

거대한 신의 봉화에서 빛가루가 벚꽃처럼 떨어져내렸다. 그 벚꽃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드워프 은둔자들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왜 우리를 깨운 걸까.”

“모른다고. 몇 번이나 말해.”

쿵!

주먹으로 몸을 치며 조각상의 햇빛이 말했다.

“아니 짚이는게 있을거 아니야.”

“전혀.”

<세리안 불파겐(Serrian Bulpagen)>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머리카락은 검은색이 되어있었다. 약간 붉은빛이 감돌긴 하지만, 적발이라고 부르기에는 힘들었다.

“오우야···”

로브를 입고 있어도 걸을 때마다 보이는 가슴골에 술을 마시던 용병 하나가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제국의 지방 중에서도 가장 척박한 곳이 <극동>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엘프들과 국경선이 맞닿아있었기에 제국민이 가장 살기 꺼려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곳에는 인구가 적기에 자연히 생겨나는 야수와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온 이들이 대다수였다.

‘악취가 심하네.’

세리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로브를 벗었다. 순간적으로 술집이 조용해졌다. 성숙한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게 그녀의 모습이었다.

착 가라앉은 생머리는 두말 할 것도 없었고, 눈빛자체가 냉정했다. 호수의 조용한 수면처럼 가라앉은 그 모습을 보면 자연히 물결치게 만들고 싶어지는 뭔가가 있었다.

“가장 쎈 술.”

“드래곤의 포효가 있지!”

술집 주인은 진열된 것을 꺼냈다. 세리안이 반쪽이 난 금화를 테이블에 올렸기 때문이다. 술을 꺼내면서 다른 손으로 금화를 싹 챙기는 모습은 실로 능숙했다.

“이렇게 예쁜 여자가 이런 변방에는 무슨 일로 왔어? 용병인 것 같은데.”

남자 하나가 술잔을 놓으며 옆에 앉으려고 했지만, 세리안이 발로 의자를 밀자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푸히히히! 케켁!”

다른 용병이 천박하게 웃다가 사레가 들렸다.

낄낄낄!

술집에서 박장대소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얼굴이 시뻘게진 용병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술에 취한 모습에도 세리안은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 고고함에 용병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으려고 했다.

퍽!

용병이 턱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강철 글러브를 끼고 있었지만 손바닥을 펴서 때리는 모습에서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이런 곳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는 똑같은 문젯거리였다.

“······?”

모두가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뺨을 맞았지만 용병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동료로 보이는 자가 다가가서 그를 살피다가 경악했다.

“주, 죽었어!”

“뭔 미친 소리를. 손바닥으로 맞았는데 왜 죽어?”

제법 이곳에서 활동한 베테랑이 술배를 두들기며 다가와서 쓰러진 용병의 목을 짚었다. 그리고는 코에도 손을 가져다대었다. 고개를 돌린 그가 외쳤다.

“씨발! 진짜 뒤져버렸어!”

“손바닥으로 뺨을 때렸는데 사람이 죽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뒹구는 놈들도 있었지만, 경악하는 자들이 많았다. 세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급소를 때렸으니까, 죽은거야.”

사람을 죽여놓고 그 어떤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소리에 용병들이 입을 다물었다. 엮여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했다. 그런 눈치도 없었다면 여기까지 흘러들어올 수 없었을 터였다.

“······”

이내 술집에는 술집주인과 세리안밖에 남지 않았다. 1층에 있는 창문으로도 나갔기에 쌀쌀한 겨울바람이 거칠게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하고 좋다.”

눈을 감으며 겨울 바람 소리를 들으며 도수가 가장 쎈 술을 홀짝이는 모습을 본 술집주인은 거리를 슬쩍 벌렸다.

‘미친년이잖아.’

그래도 술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죽는 것보다 굶는게 더 싫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세리안은 곁눈질로 술집 주인을 보며 말했다.

“한 병 더. 똑같은 걸로.”

“예!”

세리안은 술을 마시면서 술집 주인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사람 하나를 손바닥으로 한 방에 죽였기에 그는 모든 것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죽인 것이기도 했다.

잔인했지만, 힘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일이었다. 강자에게 가장 쉬운 일은 사람을 쳐죽여 본보기로 삼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을 매우 쉽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드낙 불파겐이라···머리카락이 그렇게 붉나?”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있음을 알아챈 술집 주인이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붉다마다요! 그래서 그렇게 유명한 것 아니겠습니까? 근데 성질이 더 불파겐스럽다고 난리였죠. 자기 외척이랑 영지전도 하고, 아주 미친놈입니다.”

“뭐?”

세리안의 날카로운 눈썹이 찡그린 얼굴과 함께 흔들거렸다. 술집 주인의 표정이 새하얘졌다.

“예?! 아! 그만큼 강하다는 소리입니다. 무서우니까 사람들이 까는거죠. 저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는 걸 들었고, 그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헤, 헤헤···”

세리안의 눈이 옆으로 움직였다. 시끄럽게 떠드는 술집 주인이 말하는 걸 들으면 들을수록 세리안의 눈이 날카롭게 버려졌다.

‘북부랑 결혼동맹을 했다? 세월에 분노도 사라졌나···플래티넘을 빼닮았어. 배후에 그 더러운 새끼들이 있을지도.’

처음에는 씁쓸했다. 방계라면 다른 방법이 없었을 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정상참작이라도 세리안은 주동자를 죽일 생각을 가졌다.

당연하다. 역적놈의 가문과 놀아나다니,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려면 피가 필요하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했다. 피를 뿌리지 않으면 비틀리고, 어그러진 역사를 바로 잡지 못함을 그녀는 잘 알았다. 그러지 않으면 부패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즘 제국은 어때?”

“말도 마십시오. 오히려 이런 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지경입니다.”

술집 주인이 샥샥 주위를 살피더니 말했다.

“수도에서 흑황제가 사람의 혼을 잡아먹고 있다는 괴소문도 있습니다. 엘프가 흑황제를 허수아비로 세웠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고요.”

“그래?”

세리안이 흥미를 느꼈다. 그덕에 술집주인은 세리안의 손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곳은 청소해야할 곳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골목에는 정신을 잃은 여자가 널브러져 있거나, 늙은이가 묶여져서 투척 단검에 죽어있기도 했다.

마을에서 음식을 사고, 세리안은 골목에서 조용히 있다가 가장 어두운 시간대를 골라서 이 작은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이유는 더럽고, 천박하기 때문이었다.

미친개가 마을을 휩쓸었다. 방관한 자도 죄를 받아야했다.

지붕 위에서 피에 흠뻑 젖은 세리안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빛이 반짝였다. 가을에 보는 밤하늘이 더 취향이었지만, 겨울도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해를 안치한 곳은 어디일까. 만나고 싶다.’

그녀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을 상기했다. 아직까지도 생생했고, 그 강맹한 눈동자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엘프의 피가 강한 세리안에게 있어서 세파리아스는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와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의 애증이 담겨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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