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67화 (56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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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다 됐다. 나머지는 겨울의 논공행상까지 기다리며 직책을 만든다.’

〈검은 회의〉에서 하라는 일을 모두 한 드낙은 드디어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쟁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중앙 사령관과 동사령관을 누구로 임명하느냐는 것은 아직 세파리아스조차도 주저하고 있었다. 물론 드낙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걸 말하지 않는 이유는 세파리아스가 고민하는 모습이 재밌기 때문이다.

‘시건방진 녀석. 조금 더 고민해라.’

불파겐을 도운 가문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기에 불파겐 후손이 언제 올지 몰랐다. 그 전에 동부 세력을 어느 수준까지 성장 시켜야 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해야 했다.

“밖으로 나가, 이실레아 경에게 전하라. 일백야수와 산적을 토벌하러 갈 테니, 기병을 준비하라고 명해라. 전투는 없을 것이다.”

“예.”

축제를 앞두고 있었기에 드낙은 야수를 잡아와야 했다. 축제의 시작을 싱싱한 바비큐로 시작하고 싶었다.

‘이제 거의 축제지.’

잔치라고 말했지만 그것보다 힘을 더 주고 있어서 축제와 같았다. 물론 드낙이 처음에 〈잔치〉라고 말했으므로 누구도 축제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잘한 것에 신경 쓰는 건 중세인들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이제 세력이 형성되면 본격적으로 야합하게 될 것이다.’

드낙이 전신갑주를 입으며 날카로운 눈을 했다.

‘서로 적처럼 보이더라도 결국에는 야합하는 게 이 바닥이지.’

으르렁거리면서도 서로의 권력을 위해서 움직이는 모습은 현대에서도 볼 수 있다. 자신의 정권을 위해서 다른 나라의 이슈를 가져오거나, 제3의 세력이 등장하는 걸 막기 위해 색깔 논리를 펼친다.

나와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다.

‘라이벌 관계도 똑같다.’

라이벌 관계라는 것은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 시선을 받기 좋고, 다른 세력과 다르게 더욱 불타오를 수 있었다. 고연전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하나의 축제나 다름없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세상도 결국에 그 본질은 똑같다.’

역겨울 지경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관계지만, 서로 얻을 건 또 얻고 지낸다. 그 기이하고 모순적이면서도 위태로운 협력은 끝이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동부의 상황은 그만큼 좋지 않았다. 앞으로 더 성장해야 했다. 게제라스 총관이 중앙집권의 제도를 마련했다고 해서 바로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숙청은 모든 것이 끝나고 해야 한다. 드낙은 모든 것이 끝나도 자신을 대신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검은 회의〉가 말한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통일해서 야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어느 곳에든지 야합은 존재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 말에 깃든 음습한 이기심은 어느 인간이나 가지고 있었다.

그저 그럴 기회가 없어서 하지 않고, 더럽다고 여길 뿐이다.

‘제국이 되어서도 똑같겠지.’

크고 작은 모임과 밤마다 열리는 파티에서 온갖 이권이 오고 갈 것이다.

‘인간의 속성이지.’

큰 파이를 먹고 싶다면, 혼자 먹기보다는 함께 먹는 게 더 안전하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안전한 것은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왕을 내세우고, 누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파이를 탐하는 것이다.

핏빛쥐를 통해서 드낙은 다시 한 번 현실을 깨달았다.

‘길게이가 동부에 왔기에 알 수 있었다. 야합은 막을 수 없다. 담합을 막는 것과 같다.’

길게이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동부에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그를 적대하면서 자신의 위신을 쌓았다.

‘손쉬운 일이지.’

외세가 득세하면 국내 분위기를 확 잡을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이실레아가 가장 대표적인 반(反) 길게이 파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종마를 교환하며 기병 사업에서 길게이와 이실레아, 두 사람 모두 이득을 본 정황이 있다.

핏빛쥐에게서 그것을 들었을 때, 드낙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성공하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너와 내가 아니면 누구도 기병 사업에 끼어들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협력한 것이다. 남부와 북부의 종마가 뒤섞여서 질 좋은 말이 태어나니 감히 누가 대적하겠는가.

‘확실하게 수준 차이를 벌려놓을 수 있었겠지.’

파이를 먹기 위해서는 적도, 아군도 없는 것이다. 일단은 그 파이를 먹기 위한 의자를 최대한 쳐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협력하던 상대를 집어삼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불온한 동맹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계속 유지될 것이다. 어느 한 놈이 고꾸라지거니 빈틈을 보일 때까지.

‘보이지 않는 유리창과 같다.’

그 창을 넘을 수 없으면 결코 그 파이가 있는 좌석에 앉을 수 없다. 앉고 싶어도 의자가 없는 것이다. 이미 의자에 앉은 놈들은 파이를 맛있게 먹고 있을 것이고.

‘완벽하지 않은가.’

반대하면서 정치적 명분과 사람들을 얻고.

함께하면서 세력 자체의 질을 늘려나가 다른 경쟁자들을 쳐낸다.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 눈치를 보며 입에 꿀을 묻히고, 포크와 나이프를 놀린다.

‘이 계획의 리스크는 단 하나.’

언젠가 불파겐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위나라의 사마씨 가문과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드낙을 죽이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달칵.

드낙은 투구를 쓰며 고정쇠를 연결했다. 밖으로 나가서 뒤뜰에 있는 모비딕에게 다가갔다.

크르르···!

검은 비늘 와이번은 햇빛보다는 그늘에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뒤뜰에 있게 되었다.

“어이구. 우리 모비딕이 똥도 잘 싸네.”

아저씨 같은 소리를 하며 등자에 올라갔다. 와이번이 단번에 날아올라 호수 마을의 밖에 내렸다. 그곳에는 준비된 기병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있었고, 이실레아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을걸. 남들은 축제 준비를 하는데 왜 우리는 싸우러 가느냐는 표정인데.”

“결코 아닙니다.”

드낙은 실실 웃으면서 작전을 설명했다.

“사람이 들어오면 산적과 도적도 생기는 법. 동부의 이주민은 많아서 이 주변을 다시 한 번 청소한다. 와이번을 타고 내려다보니 의심스러운 곳이 제법 있었다.”

“전투는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싸움다운 싸움은 없을 것이다. 지도를 받아라. 마킹한 곳으로 오면 된다. 번호를 매겨놨으니 어려움이 없을 터다.”

“예.”

드낙은 그 말을 끝으로 날아올랐다.

구오오오오오!

와이번이 거세게 포효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용이란 건 그만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비록 와이번이라고 할지라도 용은 용이었다.

단번에 날아오른 드낙은 얼마 가지 않아서 금방 내려앉았다.

쿵!

먼지가 피어올랐다. 일반적인 날 것과는 다르게 체중이 무거운 것이 와이번이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날개 안쪽에 있는 깃털의 우수한 성능 덕에 아무리 무거워도 날 수 있었다.

“으억!”

흙먼지가 휩싸인 도적이 소리를 냈고, 단번에 마법 주문에 의하여 속박되었다.

“케켁!”

흙먼지에 기침 소리를 냈다.

작은 언덕 숲에 진지를 꾸린 도적들은 이 소란에 너도나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와이번의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도망치는 놈은 죽는다.”

드낙이 쥔 오른손에 잡힌 헤비 렌스에서 붉은빛이 쏟아져나오고, 그의 머리 위에 수없이 많은 타오르는 마법 화살이 쏟아졌다. 화살은 천천히 퍼져나갔고, 이내 도적들의 인원수만큼 많아졌다.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드래곤 나이트와 싸울 자는 이곳에 없었다. 도망칠 자도 자기가 먼저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놈이 도망칠 때 도망칠 생각을 가졌다. 그러므로 누구도 도망치지 않게 되었다.

“불을 지펴서 연기를 내라.”

“예!”

봉화를 내서 이실레아가 오기 편하게 만들었다.

그다음에 약탈품을 짐수레에 싣게 하고, 호수 마을로 향할 준비를 했다. 나무줄기를 엮어 밧줄을 만들어 짐을 들게 하였다.

“쓸만한 것은 모조리 챙겨라!”

“예!”

드낙은 와이번을 움직여서 도적 대장이 가져온 귀중품을 훑었다.

“더 있잖아. 다시 가져와.”

“예!”

도적 대장이 다시 가져왔다. 드낙은 두 번 더 그를 돌려보냈고, 이내 목을 잘라 죽였다.

‘어디서 계속 구라를.’

나머지는 회수할 생각도 안 했다. 핏빛쥐들이 알아서 가져갈 것이다.

두목을 왔다 갔다 시키고 죽이고 나서야 이실레아가 발룬을 타고 도착했다. 보기 드문 괴물들이 나타나자 도적들은 감히 반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속에서 어리숙한 도적이 허튼짓했지만, 어깨에 검이 쿡 쑤셔지고 쓰러졌다. 와이번이 그를 물어서 뜯어먹었다.

단 두 명이 죽었을 뿐이지만, 피냄새가 진동했다.

기병들은 도적들을 호송했다. 이렇게 가깝게 숨어있을 줄은 몰랐기에 이실레아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있었다.

‘잠깐 동부를 비웠을 뿐인데···’

역시 남을 등쳐먹고 싶은 자들은 끝도 없이 많았다. 특히니 인구가 유입될수록 그 인구 속에 있는 나쁜 놈들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인근의 도적들을 소탕하고, 그들의 약탈품을 회수한 다음에는 이실레아와 드낙은 서로 찢어졌다. 일백야수나 그에 준하는 덩치 큰 야수를 찾는 일은 매우 힘들어서였다.

‘씨를 말렸네. 아주.’

드낙이 혀를 찼다. 그 정도로 악착같이 치안을 유지한 것이 이실레아였다. 하지만 곧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 몇 마리만 잡아도 능히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꼼꼼히 뒤졌다.

“꾸우엉!”

보호색처럼 땅을 파서 짙은 갈색 흙으로 몸을 덮고 있던 코뿔소가 단번에 튀어나와서 평야를 내달렸다.

와이번의 무지막지한 발톱이 코뿔소를 할퀴며 옆으로 내려찍으며 그대로 벌러덩 넘어뜨렸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일각수 코뿔소의 덩치는 엄청났다. 특별한 능력은 없었고, 일각수가 되면서 무식하게 덩치가 더 늘어난 모습이었다.

그 덕에 코뿔소를 마법으로 손쉽게 무력화시켰다.

쉬이이익! 푸르르!

거친 숨결을 느끼며 드낙은 주변 바위에 마법을 부여해서 코뿔소를 이송했다. 이실레아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했다. 하늘을 나는 것과 달리는 것은 큰 차이였다.

그녀를 도와주고 나서야 드낙과 기병들은 호수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딱 3일이 걸렸네.’

축제는 보름 이상을 준비해야 했다. 동부가 그만큼 쌓아놓은 것이 없었고, 상인들이 이번 축제를 도와줘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그 어수선함만으로도 호수 마을의 시민들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레이시아 공주 전하께서 만남을 원하십니다.”

“응?”

드낙이 엉뚱한 소리를 냈다. 그건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벚꽃을 본 반응이었다.

“알겠다.”

모두 집무실에서 내보내고 핏빛쥐를 통해서 드낙은 상황을 파악했다. 정말 치트키나 다름없었다. 〈자연의 주력〉을 통해서 마법에 감지가 안 되기 시작한 핏빛쥐들은 실로 대단한 정보원이었다.

“신전의 다리가 된다.”

나쁘지 않다. 레이시아를 건너서 길게이와 연결되게 한 것도 훌륭했다. 보통이라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의 심성을 신전이 잘 이용하겠어.’

그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길게이는 신전 때문에 그녀를 인형처럼 다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레이시아의 호위는 기사와 성기사가 동시에 맡게 되었다.

‘그래도 공주는 공주라는 건가.’

보통 이상을 해주고 있었다.

“레이시아 공주 전하께서 들어오십니다.”

드낙이 일어났다. 결혼해도 그녀의 지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저 계속 붙을 뿐이다. 남부 왕국의 공주이자 불파겐의 부인이고 형식적이지만 길게이 왕자에게서 받은 직책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그녀를 지칭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드낙은 오랜만에 존대를 입에 담았다. 입이 간질거렸다.

“이제 말씀을 낮추셔도 괜찮지 않나요?”

“적어도 공주에게는 계속 존대를 하고 싶습니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건 제가 약하기 때문인가요?”

드낙은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전을 도와주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케이슨 성기사에게서 부탁이라도 받았습니까?”

“아니요. 그런 부탁을 할 정도면 저는 그를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 보니 주관이 확실하네.’

힘이 없었기에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던 그때와는 달랐다. 목숨을 위협받으며 쥐죽은 듯이 지냈던 때를 드낙은 상기했다.

‘만약 그때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까?’

애정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지 오래다.

지금의 위치에서는 모든 것이 비즈니스다. 사람은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명언이 있지만 그건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만드는 강요에 불과했다. 그걸 모르는 자들은 현실이라는 놈을 모르는 햇병아리들뿐이다.

“오랜만에 고아들을 봤어요. 그전까지는 갈 수 없었거든요. 애들은 정말 빨리 자라나는 것 같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애가 있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말을 가르치고 있더라고요.”

“공주 전하가 잘 가르쳐서 아닙니까?”

“전혀요. 저는 정말 서툴렀어요. 가르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두 사람은 잡담을 즐겼다. 생각보다 레이시아는 수다를 좋아했다. 위협이 사라지니 그녀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드낙은 술을 홀짝였고, 레이시아는 차를 입에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새하얀 손이 드낙의 눈에 담겼다. 그늘에서는 시리도록 차가운 은색의 머리카락이 어깨를 지나며 차에 빠졌다.

“앗.”

홍색으로 물든 은색의 머리카락을 보며 드낙이 웃으며 손수건을 건넸다. 그걸 보고 시종이 한 걸음 나섰던 것을 다시 뒤로 물러났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두 사람의 모습을 힐끗 본 시종은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 작품 후기 ==========

6437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담합이나 야합이 무조건 안 좋다는 분들이 많으시네요···저랑 너무 다르셔서 놀랐습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너무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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