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66화 (56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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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풍의 사제 프리크스〉는 짐을 쌌다. 그의 눈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동시에 분노와 질투심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어린놈이 뭐가 좋다고···모두 정신이 나가버린 거야.’

그런 생각조차도 다른 이에게 말하지 못하고 그는 그 날로 호수 마을을 떠났다.

〈성기사 케이슨〉이 신전에 들어서고 단 하루 만이었다. 그리고 신전의 대형 기도실에서는 의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걱정입니다.”

아무런 해결책 없이 그저 두려움에 떠는 신관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신성력을 지닌 사제라는 것은 견제의 대상에 불과했으며, 이용하기 좋은 자들에 불과했다.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일만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권력을 잡는 것은 위험한 일 아닙니까?”

드낙에 대해서 공포감을 지닌 이도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면 단 한 번 제대로 평온하게 지나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엮이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상당수의 사제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소인배처럼 상황에 휘둘리는 면모도 강했다. 그러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무서울 뿐이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아직 신전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굳이···”

지금 신전의 상황을 빌어 거부감을 표하는 성기사도 있었다. 굳이 상황이 나쁘지 않은데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은 케이슨 성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저는 중앙 신전에 있었을 때, 수많은 이들에게서 많은 칭찬을 들으며 살았습니다. 저에게 기대를 하는 이들도 많았고, 그 기대에 부흥하고자 저 또한 노력했습니다. 이러니, 하기 싫은 교리도 재밌게 여겨졌습니다.”

기대하는 만큼, 칭찬하는 만큼.

케이슨은 더욱 앞으로 내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짓도 했습니다. 7살 때였나, 잠자는 게 아깝다고 생각해서 잠을 안 자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었는데, 깨어보니 3일을 의식을 잃었었죠. 무엇보다 그 자리를 수많은 사람이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절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케이슨은 주위를 훑고 주먹을 흔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저희의 상황도 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중앙 신전을 마치 등에 업고 신의 아이처럼 여겨져 온 저는 중앙신전에서 내쳐졌습니다. 이에 깨달음을 얻고 많은 이들에게 절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 누구도 절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고행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지금의 케이슨을 만든 가장 깊은 절망이기도 했다. 그는 그것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상황이 좋으면 누구나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바다에 나가면 그냥 고기가 그물에 잡히는데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나가겠지요. 하지만 바다에 생선이 한 마리도 안 잡히는데 나가겠습니까?”

“······”

“우리의 상황이 이와 같습니다.”

기이한 열기가 대형 기도실에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러 나오는 말을 하고 있었고, 그 경험은 평범한 것도 아니었다.

“순풍이 불 때는 누구나 낙관적입니다.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싶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태풍이 불고, 파도가 거세면 누구도 항해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순풍의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양팔을 벌린 케이슨이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다른 이들처럼 낙관적으로 배를 평범하게 몰 것입니까? 언제 태풍이 불어서 돛대가 부러질지도 모르는데? 저라면 노를 젓는 이들을 고용하여 누구보다 더 멀리 나아가고 싶을 겁니다.”

언제 태풍이 불어 신전이 위태로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뿐입니다. 질문하실 분이 계십니까?”

“케이사 성기사께서는 어디를 바라보고 계십니까?”

“신전의 독립된 영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부지를 내어주는 게 아니라, 영주처럼 말입니다.”

분위기가 들썩였다.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지금 이루어지는 권력들을 보십시오. 상인조차도 영주처럼 사병을 두게 되었습니다. 화폐 한 닢, 두 닢에 사람 뺨을 때리는 게 상인들입니다. 그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방랑하는 사제와 성기사가 많은 게 동부의 신전 세력이었다.

상인이나 보부상, 용병에게 좋은 감정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겁탈당한 여자의 의뢰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여자를 성노예로 삼는 게 용병들이고, 가구수가 적은 마을은 약탈하기도 한다.

보부상이나 상인은 말할 것도 없다. 귀족에게 뒷돈을 내어주는 자들이다. 식량으로 장난질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은 이를 〈소수가 벌이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걸 직접 목격한 사람에게 그딴 변명이 통할 리 만무했다.

케이슨 성기사 또한 그런 일이 있었다.

불을 피울 수 없어서 어두컴컴한 동굴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던 그를 모르고 자리를 편 용병들과 용병대장의 손에 들른 소녀의 잘린 머리. 그 소녀의 죽은 눈과 마주치는 기분은 지금조차도 선명하다.

신전은 하나로 뭉쳤다.

상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신전은 권력을 쥐기로 했다. 자체적인 정화를 위해서 1년 단기로 계속 사람을 바꾸기로 했다.

‘단 한 마디로 천 명의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 더러운 것을 만지는 게 무엇이 힘들까. 나는 잘 모르겠다.’

케이슨이 기도실을 나갔다. 피곤함이 쏟아져나왔다.

〈신성한 방패(Holy Shield)〉의 창설은 호수 마을 곳곳으로 이미 퍼져나가 있었다. 드낙이 의도적으로 소문낸 것도 있었다.

시민들의 관심이 그곳으로 향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세력이 신전으로 향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가장 힘을 써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신전의 독립이나 다름없다.’

그중에는 이실레아 또한 있었다. 그 외에도 불파겐을 도운 옛가문 중에서도 가장 공을 많이 세운 겐도 있었고, 이번에 총관으로 올라서며 권력을 획득한 베바란스 또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술취한 통 상단의 상단주 카이라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세력과 연줄을 신경 쓸 정도로 〈상단연합〉의 내부는 단단하지 못했고, 지도력을 지닌 자도 없었다.

천단주와 백단주를 가르기 때문에 엄청난 자원을 소모하며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고, 호수 마을로 오고 있었다.

외척들은 조용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조용할 것이다. 토치라이트의 경우에는 전과 비슷하게 계속 한발 늦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이 태풍이 불어닥치는 호수 마을에 도착도 하지 못했다.

“겐 경께서도 신전에 볼일이 있으신가 보오.”

“이실레아 경만큼 하겠소?”

호수 마을에서 길 하나를 내놓고 이어져 있는 신전 부지로 향하는 단 하나의 길에서 겐 쟝과 이실레아 브릴리언트가 서로 마주쳤다. 벌써 기 싸움이 일어났다.

그녀와 그는 물과 기름이 된 지 오래였다. 지금까지 겐은 그것을 숨기고, 타협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크 대침공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동부의 양대산맥이 아닙니까!”

서로 노려보고 있을 때, 베바란스 온이 문인을 몇 이끌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문인 따위가 신전을?’

‘우릴 이길 수 있다는 건가?’

두 사람의 눈이 새로운 총관에게로 향했다.

“총관이 되신걸 축하드리오.”

이실레아가 능숙하게 말했다. 반면 겐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말았다. 이번 일로 중앙 행정의 힘이 약화할 것이라 여겼다.

“아직 전 총관이 아닙니다. 겨울의 논공행상 전까지는 임시직에 불과합니다.”

베바란스는 그때 가야 진짜 자신이 지닐 힘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있으니, 지금의 권력으로 자신을 재단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모두 케이슨 성기사께 볼일이 있으시겠지요?”

“여기에 있는 자들의 목적이야, 눈을 감아도 알 수 있는 것 아니오?”

겐이 그렇게 쏘아붙이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걸 보며 이실레아가 그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기세가 하늘을 뚫는구나.’

그녀 또한 걸음을 옮겼다. 신전은 하루에 거물 3명이 방문하자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다. 진짜로 신전의 위치가 변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되었다.

케이슨 성기사는 기다리고 있는 세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바쁘신 거 아니십니까?”

케이슨은 가장 먼저 이실레아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이 중에서 가장 자신의 실력을 내보인 자였다. 동시에 감정적으로 활동하지 않기에 가장 믿을만한 인물이었다.

특히 평상시에 입을 옷이 없다고 말해질 정도로 검소함이 몸에 베여있어서 소문도 한 번 크게 났었다.

“신성한 방패가 창설했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실레아가 깍듯하게 케이슨을 대했다. 그만큼 신성력을 지닌 자들이 드낙의 공인을 받고 세력화되는 건 큰일이었다.

“말씀을 낮추십시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실레아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정치하는데 외모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조차도 못 생기면 좋은 정치가가 되지 못했다.

“불파겐 자작께서 〈겨울의 논공행상〉을 진짜 제대로 크게 하고 싶으신 듯합니다. 케이슨 성기사께서는 지금 좋아하셔도 됩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케이슨은 하나하나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물었다. 분위기는 좋았지만, 이실레아는 뭔가 가슴이 간질거렸다. 뭔가를 잊고 있는 듯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딱.

따악.

딱.

불규칙적인 소리가 그녀의 귀로 들려왔다. 눈을 돌린 이실레아의 눈이 커졌다. 겐과 베바란스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햇빛에 비치는 은발은 윤기가 있었고, 아름다웠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은발은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이질적이었지만 확실하게 존재감을 퍼뜨리고 있었다.

새하얀 천으로 눈을 가린 레이시아 플래티넘이 호위 기사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은발에 비해서 생명력이 넘치는 청색의 드레스가 봄바람이 천천히 움직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구불구불하고 투박한 나무 지팡이가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 어울리지 않는 지팡이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음이 틀림없어 보였다.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며 레이시아가 걸어갔는데, 호위 기사가 앞장서며 말했다.

“공주 전하. 걸음을 멈추셔도 됩니다. 이실레아 경, 겐 경, 베바란스 임시 총관과 케이슨 성기사가 앞에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여기서 원탁회의라도 하는 겁니까?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으시다니, 별일입니다.”

이실레아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드낙이 그녀에 대한 처우를 확실하게 다시 한 번 보여주기 전까지 그녀를 대우해줘야 했다.

“공주 전하는 뵙습니다!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라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레이시아는 그것에 상관없이 말했다. 호위 기사가 속삭이자 레이시아가 허둥지둥했다.

“서, 서둘러 일어나 주십시오. 저는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실레아는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남들이 보기에는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겠지만, 그녀는 예절에 애매함이 있다면 일단 하는 사람이었다.

“공주 전하께서는 무슨 용무로 신전까지 오셨습니까?”

“케이슨 성기사께서 저를 부르셔서 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인가요?”

전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케이슨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여러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 나중에 다시 찾아와주셨으면 합니다. 공주 전하. 기도실로 모시겠습니다.”

호위 기사 2명이 빠르게 먼저 기도실로 향했다. 사제 하나가 뚝 떨어져서 선행하여 움직였다.

남겨진 자들은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신전이 레이시아에게 붙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레이시아 공주는 신전과 잘 어울렸다. 그 사이에 그녀의 심성을 알게 된 사제와 성기사가 많았다. 동시에 그녀가 겪은 고통 또한 알게 모르게 알고 있었다.

그런 종류의 고통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기질을 평범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라보면 가련하게 보이던가, 갑자기 사라져버릴 것처럼 불안정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드는 등, 그런 감정이 들게 만드는게 레이시아였다.

안으로 들어선 케이슨이 의자에 앉았고, 따라온 길게이의 시종이 레이시아를 조심스럽게 의자에 안내하며 앉혔다.

“본래라면 제가 찾아가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잡담부터 시작했다.

“여전히 그림은 그리고 계십니까?”

“네. 최근에는 겨울옷을 만드는 것도 시작했어요. 케이슨 성기사께서는 오크 대침공에 참전을 하셨다면서요?”

차가 새로 한 번 돌고 나서야 잡담이 끝나고 케이슨은 본론을 꺼냈다.

“신전의 다리가 되어주십시오.”

“어디로 향하는 다리인가요?”

“길게이 왕자 전하에게로 향하는 다리입니다.”

“의외네요···”

레이시아가 말을 줄여나갔다.

신전이 남부의 길게이 왕자와 연을 맺는다? 서로 다툴 것이 뻔했다.

“레이시아님이 계시기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녀라는 다리가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신전은 홀로서기를 했겠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다른 세력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을 가졌다.

“난감하네요. 저보고 앞으로 나서라는 말씀이신가요?”

레이시아는 목소리를 떨었다.

“이제는 그래야 합니다. 명석하신 공주 전하께서는 이미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

그녀의 새하얗고 긴 손이 서로 얽혔다.

“고민하셔도 됩니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고 가시겠습니까?”

“좋아요.”

두 사람이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6271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신전이랑 레이시아는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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