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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새끼도 몰리면 고양이에게 이빨을 드러낸다.
하물며 인간은 더하다.
그게 동부에 있는 외척들이었다. 드낙은 가혹할 정도로 그들을 냉대했다. 더는 외척을 걱정하는 드낙은 없었다.
서로 대놓고 만날 수도 없었으며, 한 번에 한 자리에 자리를 마련하지도 못했다.
큰 두려움이 그녀들에게 있었다. 동시에 정치적으로 완전히 패배했다는 걸 시인하는 행동이었다.
“그분의 부름을 받은 부인이 한 명도 없습니다.”
드낙은 심지어 레이시아 공주와도 만나지 않았고, 케이샤 킹슬레이도 마찬가지였다. 더욱 거리감을 두었다. 〈겨울의 논공행상〉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기에 외척들은 더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심하면 논공행상에서 거론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 가능성이 매우 컸다.
“킹슬레이의 경우에는 아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심지어 만족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오래 걸려도 확실한 동아줄이다. 불파겐 혈통의 힘을 빠짐없이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레이시아 공주의 경우에는 의문이 남는다. 아예 여자와 선을 그은 것처럼 보였다. 여자를 탐하는 놈도 해본 놈이 더 미친 듯이 구애를 하는 법이다. 의무로 관계를 맺는 이상 드낙이 여자와의 관계에서 재미를 느낄 리가 없었다.
“아직 미래가 창창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조금 더 지켜보는 것도···”
“쥐 죽은 듯이 지내는 것도 더 이상 한계입니다. 태풍이 불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시종의 입으로 전해졌다. 모습을 가린 시종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누가 어느 부인의 말을 전하는지 부인들조차도 몰랐다. 배신자가 나올 것을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내부 결속까지 무너졌음을 시사했다.
좋은 상황에서는 서로 영차영차 하지만, 나쁜 상황에서는 서로 헐뜯고 딴마음을 품기 마련이다.
드낙의 행보 하나하나가 외척의 모든 것을 짓밟고 더럽게 만들었다. 그 정도로 가벼운 결속이었나? 아니다.
그저 태산과도 같은 자가 더는 호구짓을 하지 않게 된 것뿐이다. 동시에 손익을 계산하지 않고 움직이고 있기도 했다.
오크 대침공의 거대한 공적을 한 발로 걷어찬 것이 드낙이다.
물론, 그의 위치가 높아졌기에 백금왕가가 그에게 상을 내려주는 그림은 그려서는 안 된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뼈아픈 것은 사실이다. 그런 명분을 위해서 포기했다기에는 버린 게 너무 많았다.
그게 세간의 현재 평가였다. 불파겐이 드디어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많은 첩자들이 동부로 향하고 있었다.
‘남을 위해서 움직이고, 먼저 양보하는 것도 이제 끝이라는 소리다.’
백금 왕가와 남부가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정 때문에 더더욱 불파겐의 행보가 중요해졌다.
“퇴로 하나 없는 형세인데, 가만히 있으면 밀려날 뿐입니다.”
더는 드래곤에 올라타는 형세는 오지 않을 것이다.
“방금 상단에게 사병의 권리를 내어준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불파겐 자작의 결정입니다.”
외척들의 상황에 불을 지르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결국 북부의 외척들은 이미 뿌려놓은 씨를 지금 싹으로 기르기로 했다.
“게제라스 총관에게는 실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가 만든 빈틈으로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이니···”
“장원 기사가 없는 마을의 지역유지들은 우리에게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북부의 상황이 힘들어도, 견습 기사를 이곳으로 불러오는 건 가능합니다. 많이 필요도 없습니다.”
“이실레아 경의 능력은 정말 뛰어나더군요. 산적을 제외하고는 인간에 위협이 되는 건 모조리 싹을 잘라버렸으니.”
“선별한 지역 유지들의 관계도를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올리겠습니다.”
반대는 없었다. 음지에서 이미 그들 마을을 키우고 있었기에 명단 또한 존재했다. 그들은 외척의 바지사장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드낙이 원하는 세력 중 하나였다.
장원 기사를 견제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들을 드낙은 〈네츄럴〉이라고 명명했다.
그 누구도 드낙이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고 보지 않았다. 그가 그럴듯한 그림을 그린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만큼 행보가 거침없었다.
*
‘무식한 게 최고지. 그런 명언이 분명 있었어. 심플 이즈 베스트였던가.’
드낙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펼친 양피지는 번호가 매겨져 있었고, 짧게 글자가 적혀져 있었다.
길게이와 남부 몰락 귀족.
상단연합.
장원기사.
순찰자.
모두 동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드낙은 그냥 무식하게 그들을 그냥 세력화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어느 수준에서 멈추겠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아니었다.
‘지금이 적기(適期)다.’
〈겨울의 논공행상〉을 위해서 지금 세력을 만들어놓아야 했다.
그저 물질적 보상과 작위 그리고 영토나 장원을 주는 그런 걸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더 복잡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세금은 정말 강한 힘이니까, 국세청 같은 것을 만들기는 만들어야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행정관의 힘이 너무 강해진다.’
문인들의 세력은 크게 3개로 만들고 싶었다. 세금, 법, 행정이다.
‘무인들의 세력이 많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동부의 세력 총량이 적다. 차차 나아질 때까지는 그 불균형은 유지될 것이다. 무엇보다 드낙도 무인취급을 받고 있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다수였다.
굳이 거기에 재를 뿌리고 싶지 않았다.
똑똑.
“들어오라.”
“예!”
병사 하나가 들어왔다. 시종 하나 없는 게 불파겐 가문의 현 상황이었다.
“이실레아 경. 겐 경. 케이슨 성기사를 비롯해서 전쟁에 나섰던 이들이 호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래? 마중 나가야겠어.”
드낙이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귀찮아도 남을 대우해줘야 했다.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기도 잠시, 이실레아는 자신의 수완을 활용해서 누구보다도 빨리 현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게제라스 총관을 찾아갔다.
“은퇴했는데, 그것 때문에 찾아오신 겁니까?”
평범한 문인이 된 게제라스는 이실레아에게 존대를 했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서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아니오. 그 누구도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왔소. 장기자랑이라는 잡기를 부려 웃음을 사는 잔치에 금괴를 상금으로 내건 것을 아시오?”
직언(直言)하기 딱 좋은 주제다.
“예. 이미 몇몇 문인들이 찾아와서 말려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완전히 손을 뗀 것 같은데 맞소?”
이실레아의 말에 게제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일어나자 그가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가랑비가 올 때는 사람들은 급한 일이 있으면 비를 맞으면서 합니다. 태풍이 치고, 나무가 뽑혀 나가는 상황에 많은 사람은 지하로 숨어들어 갑니다. 경께서는 잘 생각하고 처우하실 거라 믿습니다.”
그녀가 매력적인 웃음소리를 냈다.
“믿지 않기에 말한 것 아니오?”
밖으로 나온 이실레아는 웃음기를 싹 뺐다.
‘그 정도란 말이지.’
체리 색처럼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이실레아가 발걸음을 빨리했다. 이미 선두주자이기에 남들이 하는 것만큼만 하면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드낙은 이실레아를 부르지 않고, 겐을 불렀다. 겐 쟝은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 또한 인맥이 있기는 있었다. 사실 인맥이 없어도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너도나도 들떠서는 말해서는 안 될 것도 말하고 다녔다.
그 정도였으니 똥꼬에 불타는 나뭇가지가 박힌 황소처럼 달려왔다.
“뭘 그리 급하게 왔는가.”
“차, 찾으셨다고 하셔서···”
드낙은 그를 앉게 권하고, 물을 손수 떠주었다. 황송하게 두 손으로 물을 마신 겐이 드낙을 바라보았다.
짧은 단발을 뒤로 모아 묶었다. 약간 초록빛이 감도는 눈동자는 이질적이었다. 초록색 눈동자가 아니라, 그런 기운이 감도는 정도에 불과해서다.
나이가 아직 20도 안 되어서 키는 쭉쭉 커졌다. 실제는 오크의 업을 탐하면서 자연스럽게 195cm에 육박하는 신체가 되었지만, 워낙 드낙의 흉포한 카리스마가 커서 키가 자라도 그걸 깨닫는 자가 적었다.
“부르신 이유가···”
“급하기도 급하지. 술이나 한잔 하게.”
드낙은 겐 쟝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호구조사부터 다른 이들과의 관계까지 물었는데 취조를 받는 기분마저 들 정도로 세심했다.
‘거짓 하나 말하지 않네.’
겐 쟝의 충성심은 드낙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와 함께한 적이 적어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검증까지 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장원 기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지?”
“예. 애초에 저도 장원 기사입니다.”
남부 왕국과는 다른 체계였기에 그렇게 독특하게 불리고 있었다. 세금을 내는 기사라니, 어불성설이다.
호수 마을에서 토치라이트 가문까지만 적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 흉악한 이동 거리야말로 기사들의 권력을 의미했다.
지역 유지를 견제하며, 마을을 통솔하는 것이 기사들의 부차적인 임무이기도 했다. 지역 유지에게 소모될 자원을 기사를 통해서 부여잡는 것이니, 장원에 대해서는 영주보다 갑인 것이 그들이었다.
“제도적으로는 훌륭하지?”
“제도적으로는야···게제라스 총관의 능력을 의심하는 기사들이 싹 사라질 정도였습니다.”
드낙의 입술이 비틀렸다. 착실하게 목줄을 조여오는 법이라는 건 어떤 기분일까? 드낙은 잘 체감할 수 없었다. CCTV가 많은 곳에서 범죄를 저지른 기분의 갑갑함? 모르겠다.
‘충격이 컸기는 컸나 보네.’
솔직한 겐의 말을 들으며 드낙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원 기사들은 나에게 충성했지만, 내가 그들에게 영토를 빌려주는 건 조금 부족한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
“천 번 생각해도 그렇게 생각하는 기사는 없을 겁니다. 몇몇 가문을 제외하고는 전부 몰락한 가문의 자유기사들입니다.”
드낙이 그 말에 대충 수긍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다른 기사들에 비해서 빼앗기는 게 있기는 있지 않나.”
“그런 말을 하는 자가 있다면 장원 기사를 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다 알고 와놓고는 딴소리를 한다면 그것만큼 언행이 일치하지 않으니···”
겐 쟝의 뒷말을 흘려들으며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드낙이 속으로 황당해 했다. 두 번 말하면 적당히 들을 줄 알았는데, 충신 연기를 계속해대었다. 하지만 그제야 드낙이 눈치를 챘다. 마치 충신의 배신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처럼 척추에 전율이 훑고 지나갔다.
‘아! 이 녀석 진짜다.’
이실레아를 견제할 수 있다면, 겉으로라도 충신으로 활동한다면 드낙이 이끌어 줄 수 있다. 그렇기에 겐을 밀어주기로 한 것이 드낙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드디어 충신이 하나 들어왔네. 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을 터. 자신의 손을 더럽힐 수는 있을까. 그게 중요한데.’
드낙이 그렇게 입을 다물어버리자 그제야 겐 쟝의 표정이 서서히 변모했다. 자유 기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자신만 불렀다.
‘그들에게···’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그 어떤 것도 수행하겠습니다.”
드낙이 깍지를 끼며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이야기가 진행되네. 자유 기사들에게 힘을 내어주고 싶다. 정확히는 그들을 적당히 독립 세력화 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렇습니까.”
겐은 긴말을 내뱉지 못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소리였다.
‘짚이는 게 있다면, 날개 달린 호랑이의 날게 한 쪽을 꺾는다는 목적이겠지.’
겐 경은 가장 먼저 이실레아를 생각했다. 그녀는 점점 커지는 동부의 군권을 쥔 자다. 총사령관과 같았지만 직책은 따로 없고, 그냥 기사다. 거기에 불파겐의 방계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시기를 잘 탔지.’
지금이라면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렇기에, 지금이다.
‘자유 기사를 따로 떼어낸다. 병(兵)은 그녀에게 놔두고 장(將)을 빼앗는다.’
명분도 좋다. 기사들을 조직화한다면 이실레아는 그 구성품에 불과하고, 리더가 되기는 힘들다. 기사들은 세력이 낮아도 가진 것이 없어도 자존심 높은 사람들이다.
‘〈적당히〉라는 건 그런 걸 의미하지.’
명석한 겐은 드낙의 단어를 그렇게 해석했다. 적당한 독립 세력. 그렇기에 크게 반대 받을 이유도 없는 수준. 하지만 이실레아에게서 떨어질 정도는 되는 수준으로.
‘어려운 건 아니다. 오히려 쉽다.’
물론 드낙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 대신 그 일을 추진해야 할 사람을 찾아야 하니까. 그 사람이 이실레아와 대적할 마음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한 겐 쟝은 짜릿한 기분에 휩싸였다.
‘동부의 중요한 직책에 올라설 수 있다.’
출세길 중에서도 높은 길이다. 걷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겐 쟝은 이실레아가 싫었다. 그녀는 너무 수완가이기 때문이다. 기사이기도 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좀 더 영주나 통치자에 어울린다.
‘정치적인 판단도 나와는 맞지 않아.’
“단체의 이름은 〈기사들의 만찬〉으로 하겠습니다. 그저 식사와 가벼운 친목을 위해서 무겁지 않은 이름입니다.”
드낙이 수긍했다. 실로 그럴듯했다. 물론 드낙은 이실레아의 날개를 부러뜨릴 생각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목적은 단순했다. 닥치는 대로 세력화할 수 있는 목록을 작성하고 그대로 행할 뿐!
그 여파에 대해서는 수십 수를 넘어봐야 했다. 복잡한 관계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낙은 그런 것까지 손을 대는 인간이 아니다.
“좋은 견제 수단이 될 것입니다.”
“역시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게 옳은 일이겠지?”
“예.”
서로 다른 걸 생각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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