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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통(Drunken barrel) 상단〉 상단주 카이라트.
그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드낙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영주의 집무실과는 다르게 양피지나 종이가 지나칠 정도로 적었고, 조금 텅텅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무릎까지 하나 꿇었다. 드낙의 위세는 가히 대영웅 그 자체였다. 오크의 대침공에 대한 소문과 그 대침공을 막은 드낙에 대한 이야기는 무성하게 뿌려졌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크게 득세했다.
대표적으로 변변찮은 전공도 없었고, 되려 전술적으로 이기적으로 움직이게 한 길게이였다. 일등공신으로 유력하다고 말해지니 자연스럽게 대단하게 여겨졌고, 헛소문도 떠돌았다.
그런 드낙을 직접 대면하고 그가 일개 상인 따위를 불렀으니,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일어나서 앉아라. 무릎까지는 왜 꿇나?”
기분은 절대 나쁘지 않았다.
드낙이 웃으면서 그를 일으켜 세워 앉혔다.
〈술 취한 통(Drunken barrel) 상단〉.
호수마을과 석지마을은 시작부터 밀주 범죄자들을 사로잡아서 주류 사업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술 취한 통 상단은 자연스럽게 호수 마을에 적을 두었다.
술가게에 술을 파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양한 술은 항상 매출에 도움이 되고, 또 경쟁이 된다. 무엇보다 이미 술사업이 진행되었기에 술을 가장 많이 팔 수 있는 것 또한 호수 마을과 석지 마을이었다.
두 마을 중에 가장 큰 마을은 호수 마을이었으니, 상단주 카이라트가 여기에 있는 건 당연했다.
미리 만들어놓은 주류의 유통을 그만의 경험으로 단번에 뚫어냈기에 앉아서 돈을 벌고 있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위험한 여행을 시작하기 어렵다.
‘남부와 동부의 은화 시세 차이.’
드낙은 수많은 사업을 벌이며 돈을 쏟아붓고, 돈이 많아지니 경제도 활성화되며 사람들의 소비가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다시 세금으로 드낙에게 돈이 들어온다. 동시에 은광산에서는 계속해서 은을 캐고 있었다.
은화가 많이 쓰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은화의 가치는 낮아지니, 이를 이용해서 동부의 은화를 사들여서 남부로 가져간다면 그 차익을 노릴 수 있었다.
엄청난 사업이었고, 그랬기에 상단주나 되는 자가 이곳에 상주를 해야 했다. 믿을 만한 놈이 없는 건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남부에는 혈연으로 맺어진 자들이 상단의 요직을 하고 있었기에 걱정이 없었다.
‘잔치에 돈을 투자하라고 말하려는 걸까? 그게 가장 유력한데.’
동부의 수준은 열악하다. 잔치나 축제라도 하려면 손이 많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로 기반이 약하고, 숫자도 적기 때문이다.
‘혹은 추가 세금을 내라고 할지도.’
그동안 많이 벌었으니, 토해놓고 가라는 소리일 수도 있다. 〈쉐도우 위스퍼〉라 불리는 소름 끼치는 정보단체가 드낙의 뒤에 있다는 소문은 실로 그럴듯했다.
수많은 의심 속에 자신의 손해를 생각하는 카이라트에게 드낙이 술잔을 따라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편하게 마셔라. 다름이 아니라 자네를 부른 것은 주류 사업에 많이 끼어들고 있다지?”
끼어든다는 말은 너무 공격적인 표현이었다. 카이라트는 손이 베인 것처럼 몸을 들썩였다.
“푸흐! 케켁.”
술잔을 카이라트가 뿜었다. 자신이 닦아놓은 주류 사업의 모든 것에서 손을 떼라고 말하는 것이라 여겨서였다. 동화의 추가 수급처였기에 없어서는 안 되었다. 동부의 은화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동원해야 했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돈을 생각하는 것은 상인의 본능과도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카이라트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탁자를 꼼꼼하게 닦았다. 드낙은 그 모습에 태평하게 대답했다.
“괜찮다. 괜찮아. 많이 긴장했나 보군. 내가 무슨 괴물로 보이나? 하하하.”
괴물로 보였다.
“주류 사업을 하면서 사람 쓰기가 많이 힘들지 않았나? 예를들면 용병단도 여러 번 구해야 하고, 자네를 진정으로 보호해주는 자가 적지.”
“예. 그렇긴 합니다.”
카이라트는 일단 수긍했다.
“그래도 편법은 안 되지. 일개 상인이 무장한 용병들을 50명이나 아래에 두고 있다니.”
“예? 그, 그것은···”
변명하려는 찰나 드낙이 이마를 두드리며 웃음기를 머금은 채 말했다.
“아, 이거 실언했어. 정확히는 68명이지?”
그 말에 카이라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제대로 견적을 냈다. 이거, 날 목표로 삼았다.’
빠져나갈 구멍? 귀족이 움직였다. 도망칠 길은 오직 귀족이 쥐고 있을 것이다.
“사사사, 살려주십시오! 결코 영주님을 해하려고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시민들에게도 한치의 부당함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어허! 자꾸 왜 이래? 내가 무슨 피에 굶주린 악귀인가?”
“아닙니다. 아니고 말고요!”
카이라트가 냉큼 드낙의 말에 동조했다. 실로 박쥐 같은 자였다. 드낙은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것을 숨겼다.
‘더러운 박쥐 새끼. 하지만 쓸모는 있지. 겁이 많은 것도 괜찮고.’
뭐든지 쓰기 나름이다. 드낙은 그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제법 위인 같은 생각이야.’
간지가 나는 말이다. 뭐든지 쓰기 나름이라니. 곱씹어도 멋있는 말이다. 그리 생각하며 드낙은 카이라트 상단주를 바라보았다.
술 취한 통 상단이 불러온 시너지는 생각보다 대단했다. 일단 술값 자체가 값싸졌다. 자연히 지갑이 가벼운 자들도 술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외부에서 술을 들여오며 자연스럽게 경쟁이 붙어졌고, 결과적으로 주류 산업의 파이가 커졌다.
술은 소비재였고, 팔리면 팔릴수록 이득이다. 어디서든 푼돈을 주고 일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백인패를 내어주겠다. 상인들의 힘이지. 앞으로는 숨겨서 그렇게 다닐 필요가 없게 만들어주마. 사병 100명을 거느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뜻이다.”
“사병을 말씀이십니까?”
‘그것도 100명!’
몸을 덜덜 떠는 것도 사라졌다. 욕심과 탐욕에 정직한 모습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는 않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상인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겠다는 뜻 아닙니까.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돈이라는 건 큰 힘이다. 그렇기에 돈과 다른 것을 엮는 것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상인들은 돈 외의 힘을 가지면 안 된다.
그게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이것은 제국도 다를 바 없다.
돈과 정치. 돈과 군사. 뭘 엮어도 두려운 힘으로 바뀐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견제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다른 권력자와 타협을 하고, 그 힘에 기대는 수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걸 없애주는 것이 사병이었다.
싸울 수 있는 사람을 합법적으로 100명을 거느린다면 수많은 가능성이 열린다.
불법적으로 100단위의 상단을 운용하는 것과 합법적으로 100단위의 상단을 운용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적어도 상업에 종사하는 자가 상업을 주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더 효율적일 텐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예? 그것은···”
카이라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가진 것이 많은 그는 결코 확답을 내어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 유혹을 던져버릴 수 없었다. 이미 돈 냄새가 풀풀 나는 상황이다. 여기서 빼면 다른 상단주를 부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백단주 신분패를 받기 위한 기준은 단 하나뿐이네.”
“그게 무엇입니까?”
꼴깍.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의 표정이 붉어졌다. 하지만 드낙은 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
“매년 내는 세금에 순위를 두어서 100위 내의 상단에게만 지급할 것이네. 아무 상단에게나 내어줄 수 없지 않겠나.”
‘아!’
드낙의 음흉함에 카이라트가 부르르 떨었다. 큰 깨달음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드낙이 했던 말을 그는 계속 곱씹었다.
딱히 반대하지 않는 모습에 드낙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자신은 똑똑하다.
‘백화점의 VVIP!’
일정이상의 금액을 백화점에 뿌려야지만 획득할 수 있는 지위다. 드낙은 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상인들을 동부의 세금 VVIP로 만드는 것이 드낙의 노림수였다. 동시에 그들을 세력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중에 10명은 천단주의 신분패를 내어줄 생각이네. 다 같은 100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상업을 주도하려면 왕노릇도 해야겠지?”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왕노릇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하지만 상단들을 휘어잡을 리더가 있어야 상업이 잘 굴러갈 수 있을 겁니다.”
“좋네. 좋아.”
드낙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그에게 미리 만들어둔 백단주 신분패를 내어주었다.
“은과 철을 섞은 합금이네. 무게를 달면 위조패인지도 잘 알 수 있지.”
무거운 철과 그에 비해 가벼운 은. 그 비율을 모르면 패의 무게는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겉이 반짝거리는데 이건 뭡니까?”
“아아, 그 반짝거리는 것은 〈용비늘 용법〉이라는 것이다. 연금술의 일종이고, 빛에 반짝거리게 만들 수 있지.”
“아···예···”
적당히 수긍했다. 햇빛에 반사되는 신분패는 각도를 다르게 할 때마다 수많은 비늘의 형상을 만들며 오색으로 빛이 났다.
연금술의 힘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두루 알리라고 했으니, 모를 사람은 점점 적어질 것이다.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예!”
그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드낙이 제지했다.
“그런데 잔치에 쓸 술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다며? 너무 많이는 주지 말게. 그래도 공짜로 받으려고 하니 영 불편해서 말이야. 하하하하!!!!”
카이라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협박이나 다름없어서였다.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술이 부족하다는 소리는 절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으음! 그래! 믿고 있겠네.”
내성을 나온 카이라트가 한숨을 푹 쉬면서도 백단주 신분패를 만지작거렸다.
‘손해를 볼 시간이 아니다!’
허둥지둥 자신이 지내는 곳으로 달려가서 용병들을 닦달하고, 사람을 구해서 지인들이 있는 남부로 서둘러 연락을 보냈으며 마을 곳곳에 퍼져서 상행하는 다른 상단의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이 정보를 가장 빨리 내어준 것만 해도 나에게 큰 감사를 표할 것이다.’
“상단주님!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서 와서 저기 잉크 말리고 있는 거 보이지? 똑같이 따라 써! 보내는 사람 이름은 내가 다 적어놨으니까!”
“예옙!”
글을 쓸 줄 아는 그의 보좌관이 서둘러 움직였다.
*
〈제국〉
〈노투르나(Nocturna) 마을〉
어두컴컴한 밤이었지만 작은 마을임에도 길이 밝혀져 있었다. 제국이 얼마나 발전되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철컹, 철컹.
마법불로 밝혀진 길을 제국 기사 삼십여 명이 척척 걸어갔다. 드낙이 상대했던 제국 기사들이 지녔던 것과는 판이하게 개량되고 개혁된 새로운 전신갑주를 착용하고 있었고, 특히나 어깨에 부착된 망토가 지나치게 굵고, 넘실넘실 흔들렸다.
촌장이 중앙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겠지?”
“예. 기사님. 엘프들의 첩자가 이곳에 스며들어왔다고···”
불안한 눈을 하는 촌장이 말을 잊지 못했다.
“허흐윽?!”
숨이 턱 막혀왔다. 입을 뻐끔거렸지만, 피거품만 입을 타고 흐를 뿐이었다. 폐에 꽂힌 검이 뽑혔다. 피가 땅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조리 죽여라. 우물에 수면약을 풀어두었으니,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알았다.”
제국기사들은 2인 1조로 움직였고, 철저하게 내부에서부터 외부로 뻗어 나갔다. 생명체를 탐지하는 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찾아낼 수 있었고, 어린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수의 도망자까지 머리채가 잡히고, 목이 따였다. 그들 시체는 모조리 다시 마을로 옮겨졌다.
쾅!
집 한 채가 마법에 의한 충격으로 벽이 무너졌다.
화르르!
지붕이 검게 타올랐다.
곳곳에 마법 흔적을 수없이 남겼다. 특히나 엘프들의 주특기인 비행에 대한 흔적을 집에 남기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엘프의 짓으로 만드는데 제국 기사들은 하룻밤을 썼다. 시력이 온전치 못한 노파에게 환영 마법을 통해서 조작도 했다.
모든 것이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제국 기사들은 동이 트기 전에 숲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에 대한 소식은 메시지 마법을 타고 빠르게 제국의 지방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엘프에 대한 적의를 가진 제국인들이 생겼고, 외세 덕분에 다시 한 번 흔들거리는 제국이 균형을 잡았다.
그 균형은 흑황제를 무너뜨리는 선택을 굵게 만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답이 없다! 패륜을 저지른 흑황제를 몰아내고 새롭게 제국을 다스려야 한다!”
곳곳에서 이러한 시위가 일어났다.
그저 웅크리던 자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많은 이들이 궐기했다. 동시에 엘프들은 내분에 개입을 멈추었다. 서로서로 죽이는데 끼어드는 건 효율적이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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