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 <-- -->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꺼내시는 겁니까?”
에이담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정도로 경직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심지어 드낙을 의심하는 눈초리를 했다.
“부패한 자들에 대해서 듣지 못했나?”
드낙이 어처구니 없어하며 웃었다. 아무리 교리를 새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해도 세상 돌아가는 일까지 모르다니? 이에 에이담에게 안내를 맡은 사제가 속삭였다. 그 사제는 드낙에게 어린이들과 창녀는 죄가 없다며 데리고 간 사제였다.
에이담의 눈이 커졌다.
‘이거, 진짜다.’
불파겐 자작이 가볍게 말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정도의 배경이 깔려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크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불파겐 자작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권력은 쥐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돌변하게 만듭니다.”
“실로 무서운 일이지. 그렇기에 감사를 하여 만인을 이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신전이 원했던 일이기도 하고. 사제들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
이에 에이담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큰 갈등이 그 눈에 서렸다. 그 인내심에 드낙은 조금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신전이라도 바로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는데.’
두 번, 세 번 곱씹는 모습은 진정으로 이들이 얼마나 많은 고행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정신력이 강하고, 일이 생기면 꼼꼼하게 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인성이 되어있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자신의 것을 반갈라 주고, 세상의 가장 밑바닥을 찾아서 스스로 움직인다. 그것이 이 세계의 사제 평균이었다.
타락한 사제가 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다수의 사제가 올바르다.
“그렇게 어려운 건가? 신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도적으로 큰 일을 해보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하고 싶을텐데.”
너무 노골적인 말에 에이담은 가볍게 웃었다. 드낙은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렇게 유혹적으로 말씀하시면 더욱 움츠러들고 선택하기가 힘듭니다. 그게 중립신을 받드는 사제들임을 알아주십시오.”
‘답답할 지경이네.’
그렇게까지 말하니 드낙도 그냥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대나무 같은 사람을 굽히려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다가 부러져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에이담의 발언은 쌩뚱맞았다.
“신전에도 서열이라는 것이 있더랍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에이담 성기사!”
에이담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지켜보던 사제 몇몇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만큼 다른 이에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 교리를 책임지고, 매일 같이 고민하고, 수정하며 살고 있기에 절 일인자처럼 여기는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습니다.”
교리는 곧 법이다. 따라야할 수칙이기도 했다. 그런 것을 정립하는 것이 에이담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높이 보는 사제들이 생겨났다. 방랑을 오래하며 경험을 쌓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파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에이담 성기사님. 지금 무슨 말씀을 불파겐 자작님께 하시는겁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제의 말에 에이담이 그를 손으로 부드럽게 가리키며 말했다.
“보십시오. 불파겐 자작님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장 피해야할 자세입니다. 저 태도는 존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부끄러운 것을 말하지 않는 게 그렇게 잘못된 것이오?”
“프리크스 사제. 당신은 단 한 번도 내가 만든 교리를 읽은 적이 있소?”
“옳고 깨어난 사제들이 관리들을 감사해야하오!”
“권력을 탐하기보다 굶고 있는 자들과 곪고 있는 자들을 찾아서 행하라!”
“권력은 나쁜게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말 한 마디로 천 명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살린 사람의 숫자를 세알리기 보다 그저 먼저 행하라!!!”
어느새 이름모를 사제와 에이담이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드낙이 돌로 된 탁자를 주먹으로 쳤다.
쿵!
돌탁자가 부르르 떨리며 크게 진동음이 이어져나갔다. 부서지지는 않았다.
“지금 날 앞에 두고 뭔 짓들이오?”
“죄송합니다.”
드낙이 노하자 두 사람이 사과했다. 드낙은 사제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나가보시오. 내가 볼일이 있는건 에이담 성기사니까.”
“예.”
그가 나가자 에이담에게 그가 누군지를 물었다.
“남풍의 사제라 불리는 자입니다. 저런 자가 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든 나서기를 좋아하고, 권세가 조금이라도 있는 자와 친해지려고 애를 쓰는 자입니다.”
드낙이 혀를 찼다.
‘별 이상한 놈들까지 꼬이는군.’
중립신은 착한 사제들을 불러들었지만, 타락한 사제들에게 동부로 오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형세를 보고 이곳까지 온 것일 터였다.
“힘들면 말하시오. 신전이 부패하면 동부 또한 빠르게 부패할 것이오.”
“관리 200명을 비롯해서 가담자 300명을 모조리 잡아서 지하 감옥에 넣으셨는데, 누가 그런 마음을 먹겠습니까? 또 프리크스 사제의 말은 옳기도 합니다.”
에이담은 그가 없을 때 담담하게 그가 지닌 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방랑을 했고, 정말 괴롭고 괴롭지만 현실이라는 놈이 지닌 무서움을 뼈저리게 봤기 때문이다.
“사제 한 명이 백날 밭을 가는 것보다 자작님이 지닌 말 한 마디가 더 많은 이들을 구하는 법입니다. 그 말에 어느 누가 딴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에이담이 프리크스 사제를 크게 경계함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여서였다.
정말로 많은 사람을 가장 구하기 쉬운 방법은 권력을 쥐고, 그것으로 선정을 베푸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론 중의 정론이다. 반박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하던 말을 계속해보시오.”
칭찬에도 드낙은 서둘러 그를 재촉했다. 해야할 일이 많았다.
“제가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결정할 수 있는 자가 하나 있습니다.”
드낙은 그가 누군지 묻지 않았다. 모르면 병신이었다.
“케이슨 성기사를 말하는군.”
“예. 그분이라면 가능합니다. 제가 말한다면 많은 이들이 위험부담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케이슨 성기사님이라면 능히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드낙은 그가 그렇게 고평가 받는 것에 대해서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케이슨은 자신보다 어렸기 때문이었다.
‘나와는 다르네.’
귀족들에게 견제받고, 외척에게 견제받고, 뒤통수 맞고 그 지랄병에 시달린 것이 드낙인데 신전의 케이슨은 전혀 달랐다.
태양과도 같은 길을 걷고 있어보였다.
‘신전과 귀족은 다르니까. 그런 것이겠지.’
드낙은 괜히 변명거리를 하나 내세우며 넘어갔다.
“지금부터라도 움직이셨으면 좋겠소. 이번 기회를 그저 위험하다고 넘어가기에는 아깝지 않겠소? 상황이 달라지기 전에 답을 줬으면 좋겠소.”
“노력해보겠습니다.”
요구 사항 또한 하나 남겼다. 신전이 어떻게든 움직여야 시민들이 들썩일 터였다. 거기서 물꼬를 틀 생각을 가졌다. 물론 빠져나갈 구멍도 하나 만들었다. 괜히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음을 거론했다.
소문은 금방 퍼져나갔다. 〈신성한 방패(Holy Shield)〉라는 조직명조차 벌써 떠돌 지경이었다. 그만큼 동부에 정착한 시민들은 사제들을 좋아했다.
당연히 드낙은 베바란스 총관의 방문을 받아야했다.
“신전은 신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자작님께 충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감사를 맡기는 것 아닌가. 물론 그들에게만 맡기는 게 아니네.”
“예? 그럼 다른 자들에게도 맡긴다는 소리입니까? 대체 누구에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토치라이트 가문에서 문인들을 2년 꼴로 초빙받아와서 잘못된 것을 찾아서 상벌을 줄 생각이네.”
턱.
베바란스 총관이 손으로 이마를 쳤다. 당장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어서 입을 꾹 다물어야했다. 드낙은 이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큰 권력을 맡겼으나, 돌아오는 것은 외청을 매음굴로 만든 것이었지. 그렇기에 몇 개로 놔눌려고 하는 것이니 딴 소리 하지 말게. 적어도 내정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을 가진 것은 그대가 될 것이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저 너무 큰 변화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서 달려온 것입니다. 다른 뜻은 전혀 없습니다.”
빈말을 하며 그가 물러갔다.
밖으로 나간 베바란스 총관이 벽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굴리다가 이내 질끈 감았다. 현기증이 났다.
‘신전을 내정에 끌어들이고 거기에 토치라이트 가문까지. 게제라스는 은퇴를 아직 선언하지 않았고, 시민 중에 출세에 뜻이 있는 잡것들은 아직도 그의 집을 병문안하며 가르침을 받고 있다.’
내정 세력도가 단번에 복잡해졌다. 당장 손을 대기 힘들었고, 그 그림을 그린 당사자인 드낙에게 발언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느 말이 독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면 입이라도 다물어야한다는 것은 어느 조직에서든지 통하는 절대법칙이었다.
그렇기에 베바란스 총관은 입을 다물어야했다. 쥐새끼처럼 드낙의 앞에서 물러나야했다. 그게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개호구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는 무엇인가. 미칠 노릇이다.’
여기서 끝내면 드낙이 아니었다.
“중앙에 스며든 부패를 뽑았으니, 기쁜 일 아닌가? 잔치를 준비하라.”
“아직 공개 재판 일정도 잡지 않았는데, 잔치를 벌이라는 말씀입니까? 시민들이 불만을 가질 것입니다.”
“음식이며 술이며 주는데 무슨 불만? 진행하라.”
“지하 감옥에 투옥 된 자들의 처우를 먼저 결정하여 일을 말끔하게 처리를 하셔야 합니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 무슨 말이 그리 많은가? 그리고 그런 이유가 잔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드낙의 말을 두 번 태클 건 베바란스는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크게 후회해야했다.
“장기자랑에서 1등한자는 금괴를 주고! 10등한 자에게도 은괴 하나는 주겠다!”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소리를 내지르기도 했다. 나중에 분명 후회할 일이지만, 시민들이 드낙을 그렇게 외쳐대는데 그 기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문인들이 말릴 새도 없었다.
칭찬은 고래도 박수치게 만드는 법!
그걸 시작으로 잔치의 수준 자체가 달랐다.
문화가 수없이 꽃핀 현대에서 살아본 드낙이었다. 시민들을 위한 장기자랑, 무인들을 위한 대련대회, 문인들을 위한 논쟁대회가 계획되었고, 이야기꾼들에 의해서 크게 떠들어졌다.
‘더, 덮으려고 한다.’
베바란스 총관이 손발을 떨었다. 드낙이 게제라스 총관은 물론이고, 관리와 가담자들을 그냥 적당히 때가 되면 풀어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드낙은 그를 불렀다.
“가담자들부터 공개재판하겠다. 축제가 끝나고 하루 뒤에 집행하고, 그들을 3일 내에 호수 마을에서 은고원 마을로 보낼 생각이다.”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가담자 중에 질이 나쁜 놈 딱 5명만 추려내라. 그들은 처형시킬 것이다.”
“피를 보시는 겁니까?”
“모두 살려줄 수는 없는 법이지. 적어도 가담자 중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놈은 죽여야겠다.”
“예. 알겠습니다.”
베바란스 총관은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에 사로잡혀서 드낙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나가자 드낙이 피식 웃었다. 실로 비열한 웃음이었다.
‘오히려 베바란스가 게제라스보다 예상하게 쉽네. 나랑 비슷해.’
게제라스의 특징은 괴짜스러움이라면, 베바란스의 특징은 유능함이었다. 예상하기가 편했다. 드낙이 핏빛쥐로부터 지닌 정보력 때문이었다. 그는 그보다 항상 먼저 앞서나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정보력, 그거 하나 때문이다.
“밖에 누구 없느냐! 〈술취한 통(Drunken barrel) 상단〉의 상단주를 불러라.”
“예!”
잔치를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러했다. 왜냐하면 동부의 수준이 형편없어서였다.
‘상단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지.’
드낙은 이번 〈겨울의 논공행상〉 때 못해도 11개의 세력을 이 동부에 만들 생각을 가졌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동부의 세력도였고, 그것이야말로 드낙의 처세였다.
‘나는 가능하다.’
11개의 세력으로 동부를 빠르게 성장시키고, 제국과 엘프를 대비해야했다. 그 말에 11개의 세력 모두를 드낙이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굴러가게 될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지. 어찌어찌 굴러가게 만드는게 중요해.’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상단이었다. 돈을 쥐고 있는 상인이 세력화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하다. 귀족이 그들에게 사병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용병단은 결코 11명을 넘어서지 않는다.
귀족이 제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부에서는 다르다면?’
단순히 동부만 개판이 되는게 아니었다. 남부 왕국, 전체가 정말로 개판이 될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하!”
드낙은 유쾌한 웃음소리를 입밖으로 냈다. 그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편하게 지낼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로 비열하기 짝이 없는 고약한 생각과 마음이었다.
살면서 가장 통쾌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아니다.
‘내가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은 미치도록 재밌지.’
주변에서 욕하든 말든 남에게 자신의 일을 떠넘기는 사람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정말로 미치도록 재밌고 즐겁기 때문에 떠넘기는 것이다. 거기에 그 일이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이라면?
그게 그냥 인생의 행복이다.
========== 작품 후기 ==========
6121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머리를 식힐겸 다른 소설을 쓰다보니 드디어 오늘 2연참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일도 2연참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