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60화 (55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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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세파리아스의 조언대로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물을 쏟아놓고 그걸 다시 독에 넣을려는 모습이나 다름없었지만, 적어도 시민들의 궁금증은 급증하였고, 술은 밤낮없이 잘 팔리게 되었다.

“무직인 문인들을 불러모아 와라.”

“예.”

두 명의 기사를 필두로 병사들은 곳곳에서 떠들고 있는 문인들을 싸잡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냥 아무나 잡은 건 아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게 기사들이었다.

“영향력이 있는 문인 50인을 잡아들여라! 사람이 적게 모인 문인은 무시하라. 그리고 내가 말하는 문인들은 반드시 데려와야할 것이다!”

두 기사는 최소 5명의 문인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 외에는 딱히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럴 의미도 없었다.

“케흠!”

자신의 사상과 생각을 시민들에게 주입하는 무직 문인들은 문인의 옷을 입고, 말끔하게 차려입었으며 장신구 하나 끼지 않았다. 없는 것들 앞에서 있어 보이는 것만큼 바보 같은 것도 없었다.

“공개 재판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오! 불파겐 영주는 시민들을 위해서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목숨을 걸고 밖에서 피와 썩은 음식을 먹으며 전투를 수행했는데, 중앙의 관리라는 작자들은 외청에 매음굴을 만들고 대낮에도 업무를 볼 때 술병을 옆에 두었소!”

“개새끼들!”

“썩은 놈들은 모조리 죽여야 해!”

이 시대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무식했다. 죄가 있으면 죽이고 봤다. 이성적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감성적으로 대했다. 그중에 깨어난 자들이 있었지만, 선동 앞에서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엇!”

인파가 갈리며 병사 다섯이 등장해서 단번에 문인을 나무 단상에서 끌어 내렸다. 그러자 시민들이 화를 냈다. 자신들의 마음을 뻥 뚫어주고 시원시원한 언변으로 일을 부풀리며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문인을 끌고 가니 마음이 팍 상하는 게 당연하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너도 부패한 병사구나!”

“이놈들을 끌고 가서 영주님께 데려가자!!!”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자 병사들이 무기를 뽑아들며 외쳤다.

“영주님의 명령이다! 비켜라!”

그제야 시민들이 움츠러들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을 피떡으로 만드는 폭군과도 같은 남자가 드낙이었다. 그가 행하는 것이 옳다고는 해도 그 무력은 공포를 주기 충분했다.

언제 드낙을 칭송했느냐는 듯 문인이 소리를 박박 내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나는 문인이다! 그 누구도, 우루룹.”

입에 재갈까지 물려졌다. 병사들이야 훈련은 잘 받아도 치안에 관해서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실레아는 일단 무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것은 등한시하고 제대로 된 병사를 원했다.

그 손길은 거칠 수밖에 없었다.

곳곳에서 병사와 시민 그리고 문인이 다투었지만, 무력행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기를 든 병사와 미처 무기를 가지고 오지 않은 시민들의 차이에 있었다.

리암과 노드헝은 병사들과 다르게 착실하게 사유를 설명하고 문인들을 데려왔다. 그 덕에 입소문이 퍼져서 문인들은 병사들이 보이면 그냥 따라갔다.

“놔라! 내가 죄인이냐!”

병사의 손길을 거칠게 거부하며 베바란스 온이 척척 앞장서서 걸어갔다. 척 봐도 기가 강한 문인이었다. 눈썹이 굵고, 수염도 진했다. 어디 싸움이 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달려갈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문인이었다.

〈호수 마을〉의 문인들의 존경을 받는 자이기도 했다. 물론 말이 존경이지 패거리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그가 지닌 정치력에 게제라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이기도 했다.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다. 드낙은 기회의 장을 마련했고, 거기에 혹해서 이곳에 왔지만 드낙과 마주할 기회조차도 받지 못했다.

‘이제 기회가 왔다.’

털이 수북한 베바란스 온은 거침없이 성큼성큼 움직였다.

제법 시민들에게 관심을 받는 문인 50명이 모두 모이자 병사들이 외쳤다.

“1명씩 영주님을 뵙게 될 것이오!”

문인들은 베바란스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는 거침없이 몸을 일으켰다. 누구나 첫 타자는 하기 싫은 법이다. 하지만 문인 베바란스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불파겐 자작을 뵙습니다.”

“앉아라.”

드낙은 자리를 권했다. 베바란스는 드낙이 앉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호수 마을의 관리들이 잡혀간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청에서 일하는 다섯 명의 중요 관리까지 모조리 지하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 말 그대로 중앙 관리들이 모조리 투옥된 상황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베바란스는 떳떳이 고개를 든 상태로 말했다. 귀족들이 그들의 행정을 문인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이유는 청렴에 있었다. 물론 그 속에 깃든 지연과 학연은 귀족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돈을 훔쳐 쓰지만 않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동부는 조금 달랐다.

‘형편없는 총관이 위에 있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오직 시스템으로 부패를 막았기에 불만이 쌓이고, 뒷거래는 점점 음험해졌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 연결되다가 임계점에 닿았고 밖으로 크게 튀어나왔다. 그게 외청의 매음굴 사태다.

고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던가? 아니다. 더 커지고 더 커져서 결국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깨끗한 놈은 오래 살지 못하고, 이 더러운 세상에서 오래 살다 보면 너도나도 떳떳하다고 진실되게 말할 수 없다.

사람의 기준은 모두 제각각이기에 나름 떳떳하게 살아왔던 자도 더럽다고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문인 베바란스는 실로 떳떳해 보였다.

“부패한 관리들을 어떻게 처벌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느냐?”

“모조리 탄광으로 보내 만인의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죽인다면 억울하고,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겠지만, 죽이지 않는다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평균의 처세를 입에 담았다. 절반의 사람을 크게 만족시키기보다는 대다수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 〈문인 베바란스 온〉이 생각하는 처세였다.

“죽이면 문제가 되나?”

“누가 감히 불파겐 자작께 문제를 제기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그러겠습니까? 하지만 깊은 물속은 들여다볼 수 있어도 한 사람 마음은 들여다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에 드낙은 흥미가 생겨서 또 질문했다.

“그게 두렵다면, 가족과 친척 또한 죽이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게까지 한다면 적어도 저는 불파겐의 이름 아래에서 일하기보다는 겁에 질려 고개를 숙이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면 안 된다?”

베바란스는 고개를 짧게 저었다.

“자작께서는 장단점을 생각해야할 분이 아니십니다. 그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십시오. 그게 옳은 일입니다.”

그는 드낙을 띄워주기도 했다. 그가 지닌 무소불위의 권력은 내비치는 적이 없어서 많은 이들이 이를 가볍게 여겼지만, 베바란스는 자신은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훌륭한 자기PR이었다.

‘이 녀석 봐라?’

드낙 정도의 위치라면 그런 장단점을 애초에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가 지닌 권력이라면 어느 것을 선택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진실을 말하면서도 베바란스의 시선은 드낙에게 단단히 고정되어있었다.

“음.”

드낙이 몸을 뒤로 뺐다. 그 사이에 베바란스는 뜨거운 차를 마셨다.

살인멸구(殺人滅口)라는 말은 흡사 진실처럼 들리고,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군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신기루에 불과하며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결국에는 서로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의 합의와 담합이 최고다. 독재는 결국 물러가게 되지만 보이지 않는 합의는 죽어도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간은 강해지고 죽이기 위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드낙이 몰살시키는 것에 대해서 주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폭군 소리가 흘러나오겠지.’

인간은 맛있는 것을 먹는 데 행복을 느끼고, 문화를 즐기는 것에 시간을 쓰고, 다양하지만 쓸데없는 것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드낙이 대중목욕탕을 만든 것도 이러한 이유고, 그가 마탑을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온천욕도 마찬가지다.

‘죽여서 기분이 좋을 리가.’

아무리 강해져도 드낙은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가볍게 죽인다고 말했지만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과는 달랐다.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로 200명의 문인을 처형시키고, 300명의 가담자를 탄광으로 보내 인생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저 부패했기 때문에? 그냥 또라이다.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재물을 탐하긴 했지만 그래서 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현대로 쳐도 이슈거리가 될 만하지만, 죽을죄는 아니다.

‘아!’

드낙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둘러 양피지에 글을 써내려갔다.

비밀 금고를 털어서 도망을 치려는 자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이유를 상세하게 말하여 변명을 늘어놓아야했다.

“실례하지.”

“예.”

드낙은 그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가 이를 벽보에 사본하여 붙이라고 하였다. 병사는 냉큼 대답하며 내성을 나섰다.

“부패를 저지른 관리들과 그 가족은 다시 관리가 될 수 없고. 관리들은 은광산에서 10년을 일해야 할 것이다. 이 정도면 어떤가.”

“너무 가볍습니다. 관리들은 죽어서 은광산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시민들은 그런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죽이지는 않지만, 통쾌하기는 해야 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 가담자들은?”

“장부의 진위를 확인하고, 그 30배를 물게 하십시오. 그게 안 된다면 은광산으로 보내십시오.”

“좋다.”

드낙이 그들에 대한 처우를 결정했다. 이에 베바란스 온이 움찔했다.

“제가 말한 대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는 그 말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닥치는 대로 죽이는 것보다는 생산적이고 좋지 않으냐. 아니면 관리들 200명을 공개 처형하고, 가담자 300명도 죽여야 하는 게 옳은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공개 재판을 통해서 그들을 재판하십시오. 그리고 해가 뜬 대낮에 그들을 은광산으로 보내십시오. 질서와 정의가 바로 세워질 것입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쇼를 보여주는 건 매우 중요했다. 돌을 맞아서 죽는 놈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알게 뭔가? 그 정도까지 배려해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중앙의 관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믿고 따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부르겠다.”

“예. 감사합니다.”

그가 감사를 표했다. 다른 문인들도 드낙은 하나하나 불러들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소리를 했다. 문인들의 네트워크에서 이미 처우가 결정이 난 것이다. 그들 스스로 논쟁을 하면서 알아서 결론을 내어놓은 상태였다.

드낙은 이들 50명에게 알아서 대표자를 뽑으라고 했다. 당연히 베바란스 온이 대표자가 되었다.

“문인 베바란스 온. 호수 마을의 문인들을 잡고 있다지?”

“마음이 비슷해서 같이 어울릴 뿐입니다.”

“네가 총관이 되어라. 그리고 알아서 다섯의 내청관을 두고 100명의 외청관을 등용해라.”

“예.”

드낙은 다시 한 번 세력을 하나 꾸려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을 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검은 꿈에서 생각했듯이 토치라이트 가문 소속의 문인들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그들을 계약직으로 감사직으로 삼는다.’

완벽한 계획처럼 보였다.

새로운 중앙 관리들은 서둘러 감옥으로 향했다. 인수인계를 받기 위함이다. 적어도 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잘 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상세하게 말해줄 것이다.

동시에 기사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서 세력을 크게 만들었을 뿐이기에 할 일이 적어서 크게 시간이 소모되는 일도 없었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이스핀이 도착했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에게 있어서는 가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었다.

존은 서둘러 호수 마을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의 품에는 양피지가 소중하게 말려져서 단단히 몸과 함께 묶여 있었다.

그는 〈장원 기사〉의 끄나풀이었다.

게제라스의 제도는 실로 악랄했고, 철저했다. 그 덕에 장원 기사들은 찍소리도 못한 채 세금을 내야 했다.

그 불만은 상상을 초월했고, 호수 마을의 중앙 관리들에게 어떻게든 줄을 놓으려고 할 정도였다.

제도가 철저하면 그 제도를 실행하는 사람을 조지면 될 일이다.

‘이번 일은 큰 기회다.’

완전히 새로운 물갈이였다. 지금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영영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다. 게제라스 총관이 가장 위에 있을 때는 바꾸지 못한 걸 이제는 바꿀 수 있었다.

한 푼, 두 푼 덜 내는 게 아니라, 아예 장원 체계를 비틀 수 있어 보였다.

‘지금부터 준비하고, 총관의 후임자가 결정되면 투자한다.’

서둘러 움직였다. 그들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직 문인과 장원 기사가 서로 닮은 점이 있어서였다. 이곳에 새로 자리를 잡은 신흥 세력이며, 깊은 관계를 맺은 세력도 없었으며 세가 강한 것도 아니다.

자연히 기회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비단 장원 기사의 수하만 움직인 게 아니었다. 중앙 관리의 세력판도가 드낙 한 명에게 통째로 뜯겨나갔다. 대격변이라 해도 무방했다.

수많은 이들이 호수 마을을 떠났다.

동부의 세력 관계도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끔찍할 정도로 복잡하고, 난잡했으며 더러웠다. 드낙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었다.

핏빛쥐들은 이를 드낙에게 말을 하지 않았는데, 적당히 때를 봐서 말을 할 생각이었다.

드낙이 인간을 포기하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조련술의 업(業)〉으로도 제어할 수 없었다. 드낙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드낙은 진정으로 인간들에게서 벗어나 핏빛쥐들에게로 와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게 핏빛쥐들이었다.

또한 자유기사가 없는 곳에는 지역 유지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주민들이 많았고, 이실레아는 동부의 야수들을 빠르게 토벌한 상태였다.

음흉한 동굴에는 도적 떼가 이주민의 이동과 따라서 들어오기도 했다. 이들은 자릿세를 통해서 성장하고, 양지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업에 스며들 것이다. 혹은 노예들을 잡아서 밀주를 만들어 길목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당연히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세력이 동부에서 엉덩이를 깔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6611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드낙 빙의해서 다 죽이겠다고 썼는데 하루 지나니 그건 좀 아닌듯해서 탄광행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화가 식으면 또 사람마음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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