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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그렇게 자극했는데, 게제라스도 안 죽이고 어떻게 그 분노를 해소할 생각이냐?”
드낙은 닥치는 대로 죽이고, 빼앗은 행보를 처음부터 보여줬다. 자연히 그 마무리도 그러해야 했다. 용두사미를 가장 싫어하는 게 인간이라는 족속들이었다. 과정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과를 중시하는 게 인간이다.
붙잡힌 관리만 해도 200명이 넘었고, 외청에서 기다리던 자들 300명이 사로잡혔다. 그들 모두 변명 하나 드낙에게 말하지 못하고, 감옥에 처박혔다.
그 거친 행보를 보였으니, 시민들도 아주 날 잡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추수도 끝났으니, 제대로 일이 커졌으니 거기에 화답을 해주고 있었다.
드낙이 스스로 그렇게 판을 만들었으니, 이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그와 짝이 맞도록 끝을 내야 했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정 최고 책임자의 이름이 거론될 수밖에 없었다.
굳이 외척이나 다른 자들이 입을 다물어도 시민들은 다른 관리들의 이름은 몰라도 게제라스 총관이 중앙 관리들의 장(長)이라는 건 알았다.
또한 이번 일은 드낙이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서 또 말을 바꾸면 당혹스러워할 자들이 많을 것이다. 마치 총관을 다른 이로 내정할 것처럼 크게 사건을 밖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일을 좀 꼬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사거리에서 나무 단상에 올라가 말로 먹고사는 자들은 항상 있는 법이다. 거기에 민심은 또 판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럽게 총관을 노릴 것이다.
“총관은 적이 많다.”
세파리아스가 단언했다. 그건 드낙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인간 관계에서 나오는 정치력에서 재능이 형편없고.
귀족이나 몰락 귀족은 결코 관리로 등용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줬고.
기사들을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세금 내는 장원 시스템을 추진했으며.
동부의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너무 크고 비대한 중앙 관리 세력의 덩치를 만들었다.
드낙과 합의가 되어있다고 해도 외척에게 굽신거리며 줄을 놓는 박쥐 같은 면모 때문에 청렴하고 착한 이들 또한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무직인 문인들은 높은 지위를 가진 것에 대한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하나 훑으면 당장 물러날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신임을 받고, 총애를 받을수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법이지만 게제라스가 없으면 그가 키우고, 추진하는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기에 게제라스는 계속 노출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귀족과 몰락 귀족을 관리로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낙이 내어준 내정에 대한 권력을 너무 홀로 독식한 탓도 있었다. 그 자신이 자신의 단점을 알아서 낸 고육책(苦肉策)이겠지만, 일이 터진 이상 놔둘 수도 없다.
결국, 돌고 돌아도 총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리 언질을 주면 그때는 암살당할 것이다.’
드낙이 다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드낙이 그렇게까지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냥 죽이는 게 편하다고 여길 자들도 있을 터였다.
핏빛쥐로 지킨다면, 드낙은 그 순간 마왕이 되고,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갈 것이다. 그건 중립신의 대계에 반하는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중립신은 하다못해 동부의 인간을 드낙이 이끌기를 원하는 듯이 보여서였다.
그 근거 중에 하나는 바로 사제들의 동부 유입에 있었다. 그래서 드낙이 핏빛쥐를 전면으로 내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고, 머리야.”
드낙이 검은 꿈에서 뒤로 몸을 뒤집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그 경박한 모습에 세파리아스가 실로 한심하게 드낙을 쳐다보았다. 교양스럽지 못했고, 어린 애새끼처럼 보였다.
“발바룽은? 발바룽!”
드낙이 태어난 지 2년도 안 된 발바룽을 찾았다. 〈악마의 힘〉이 깨어난 트롤의 자궁에서 태어난 발바룽은 그보다 더 직관적인 해결법을 제시할 수 있을 터였다.
“피를 보면 간단한 거 아닐까. 충분하다고 여기게 뭔가 잔혹함으로 총관에 관한 관심을 지우는 거지.”
“피를 본다?”
“뭐, 공개 재판 열어서 관리들 200명을 죄다 죽이면 게제라스 총관은 살릴 수 있겠지.”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자신의 이마를 치며 분을 삭히려고 했지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성질을 죽이면 불파겐이 아니었다.
“미친놈아! 그리되면 동부의 세금은 어찌 관리하느냐!”
“그거야 나중 일이고. 확실하게 총관을 계속 중요직에 앉히고 싶으면 그게 최고 아냐?”
드낙이 손뼉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거야.”
“너도 미쳤군. 다 죽이면 영지는 결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떼 묻고 죄지은 관리를 왜 계속 쓰겠는가!”
세파리아스가 몸을 떨었다. 체계를 가장 쉽게 무너뜨리는 것은 중간관리직을 망가뜨리면 된다. 그걸 손수 하겠다고 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누가 죽인다고 했어? 그거 잘못한 사람 중의 한 명만 조지는 거. 그 사자성어 있었는데, 당장 기억이 안 나네.”
일벌백계(一罰百戒)! 여러 번 사용하면 효과가 없지만 단 한 번은 효과가 극대화되는 사기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싶었다. 뭔가 그럴듯하고 멋져 보인다는 이유도 있었다.
“한 명만 죽인다고? 시민들은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드낙에게 반발하지는 않겠지만, 드낙의 결정에 불만을 이야기할 터였다. 그로 인한 빈틈은 또 문제를 일으키고 다른 문제가 터지게 만들 수 있었다.
“3분의 1만 죽이는 거지. 주동자 다섯이랑.”
세파리아스의 말에 냉큼 말을 바꾸기도 했다. 드낙하면 팔랑귀였다. 피드백을 그때그때 받는다고 좋게 포장하기도 좋았다.
“하지만 부족하다.”
“크흐흐, 히히.”
드낙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는 자연스럽게 세파리아스의 마음속에 혐오감이 깃들게 하였다. 간신, 소인배, 겁쟁이 등을 극도로 혐오하는 게 그였다. 아주 간사한 웃음소리였다.
‘선동과 날조! 그리고 다른 이슈로 몰아버리고, 꼬리 자르기!’
한 해에만 뉴스거리로 넘쳐나는 게 한국이었다. 이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선동되고 날조된 것을 믿으며 연예인의 가십거리에 눈 돌리며 살아왔던 게 드낙이었다.
“관심 돌리는 것쯤이야, 내 장기지.”
드낙이 호언장담했다. 오히려 어깨가 가벼워지고, 흥이 났다.
“뭐, 거둔 돈이라도 시민들에게 뿌리려고?”
드낙이 손가락을 저었다. 그 아까운 것을 왜 시민에게 주나? 절대로 돈을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크게 잔치를 벌이고 삼일 밤낮을 취하다 보면 다 잊는 법이지. 결국, 결과론적으로 술도 얻어먹고, 고기도 얻어먹었으니까.”
잔치해서 적은 돈으로 많은 음식을 베풀 생각이었다. 구두쇠 같은 생각이었다.
금화 1닢으로 엄청난 음식을 만들 수 있고, 또 와이번을 통해서 겨울을 대비하여 살찌운 야수나 일백야수 등을 사냥해오면 돈을 대신할 수 있었다.
돈이 많아져서 돈 걱정은 안 하지만 그렇다고 흥청망청 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실로 드낙같은 생각이었다.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드낙의 모습에 플래티넘 왕가의 모습이 아른거려서였다. 괜히 조용해진 그를 보자 드낙이 헛기침을 하면서 변명했다.
드낙의 마음에 그래도 세파리아스는 검술 스승이었다. 그가 드낙의 재능을 개처럼 여겨도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가르침에서는 항상 진지했다.
그게 드낙과 세파리아스가 서로 등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게제라스는 정치는 못 해도 법도 만들고, 장원 시스템도 잘 만들었고 아직 동부에 필요해.”
“그럼 토치라이트를 끌어와라. 그들이라면 정치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 터다.”
“끙.”
결국 게제라스가 못하는 것을 다른 이가 맡아야 했다. 그리고 세파리아스는 또 다른 가문을 거론했다. 바로 토치라이트 가문이었다. 이에 드낙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점점 동부가 미쳐 돌아가겠는데?’
현대로 따지면 구청이 성매매업소가 된 격이다. 그런 사태가 일어날 정도인데 여기에 또 다른 가문을? 드낙도 고개를 갸웃할 정도였다.
“하. 그건 좀 아닌데. 그냥 이실레아를?”
이실레아는 다재다능하기에 정치에서도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세파리아스가 갑자기 웃음을 빵 터트렸다.
“크하하! 날개 달린 범이 아예 불까지 뿜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라.”
웃음기를 머금은 채 그렇게 말했다. 드낙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해본 소리였다.
겨울에 있을 논공행상 전까지는 그래도 동부의 군사력을 모두 쥐고 있는 게 현재 이실레아의 힘이었다. 거기에 정치까지? 논공행상에서 견제하기 전에 이미 꿀을 쪽쪽 빨아서 어떻게든 이득을 탐할 것이다.
그녀의 재능은 그게 가능했다.
애초에 남들 다 드낙의 방계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그녀 혼자서 자유기사의 신분으로 홀로 가문을 동부 내에 차렸다. 충성은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것을 허용한 이유는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한 드낙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다시 압박하기에는 모양새가 안 살았다. 또한, 그런 대범함을 보여줬기에 자유기사들이 많이 찾아오기도 했다.
드낙이 더는 고민하지 않고 그냥 결론을 내버렸다.
“에잇! 까짓거 그렇게 해버리자! 정치는 토치라이트 문인들을 받아서 잡고! 토치라이트 여식이랑 또 결혼도 하고!”
그 다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고 나서 감찰조직이나, 문인을 교육하는 시설도 지어야겠는데. 책임자는 누구로 하지?”
세파리아스가 손사래를 쳤다.
“그다음에 대해서는 이번 일을 처리하고 생각해라. 성급하다.”
“오케이. 땡큐!”
드낙은 그렇게 검은 회의를 마치고, 새벽에 동이 트기도 전에 게제라스 총관을 찾아갔다. 자기 생각을 들려주기 위함이었다.
게제라스 총관은 새벽에도 눈을 뜨고 있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차를 옆에 둔 채 책상에 앉아있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왜 잠을 안 자고 있었나?”
“어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웃었다. 총관을 믿고 따르는 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드낙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총관의 말을 듣고 싶어졌다.
‘못해도 반나절은 고민했겠지.’
“그래,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나?”
게제라스는 깔끔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총관 자리에서 물러나고, 은퇴하겠습니다.”
드낙의 눈이 커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게제라스는 그걸 보지는 못했다.
그는 다시 총관을 세우며 말했다. 서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제 한계를 깨달아서입니다. 영주님께서 만든 동부는 너무 크고, 너무 많은 이들이 찾아왔고, 저는 그들을 모두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따뜻한 잔을 손으로 꼭 쥔 채 게제라스는 담담하게 자신이 지닌 재능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 눈에는 깊은 절망감이 서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노력할 기회조차 못 얻은 자가 그 재능을 펼치지 못해서 절망하는 것보다 밤낮을 상관하지 않고, 신성력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미친 듯이 노력한 게제라스가 지닌 절망이 더 컸다.
몸과 정신이 부서져라 내달렸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혔다. 신성력조차도 감당하지 못해서 의식불명에 빠질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그 절망감은 자살 충동까지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저는 제 한계를 잘 압니다. 이렇게 크게 실패하고 나니 오히려 더 눈에 잘 보이더군요···”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움직였던 것 아니었나?”
드낙이 게제라스를 변호하듯이 말했다.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외척과 다른 이들이 중앙 관리들에게 손을 뻗는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예. 맞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저도 예상치 못할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영주님께서도 보지 않았습니까? 타락한 관리들을 말입니다.”
당장 총관도 외척과 관계를 맺는데, 그 밑은 말할 것도 없다.
“그게 자네 탓인가? 아니지. 권력을 가지면 멀쩡한 사람도 이상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게제라스의 말을 드낙이 혀를 차며 끊어내며 이어 말했다.
“쯧. 거기에 멀쩡한 사람도 이 세상에는 극소수야. 모두 기회가 없을 뿐이지, 기회가 온다면 모두 그렇게 할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놈이 이상한 놈 취급을 당해.”
어느 정도 양심이 있는 관리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단체가 변질하면 거기에 가담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침묵하는 선량한 관리나 부패를 저지르는 관리나 결국 똑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는 한 영지의 내정관에 어울리지, 이렇게 커진 동부를 모두 다스릴 그릇이 아닙니다.”
“그런가.”
“예.”
그렇게 말하고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게제라스는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노력했고, 박살 났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을 손에 놓으면 끝이었다.
‘이 동부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지내야지.’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게제라스를 보며 드낙은 속으로 검게 웃었다.
‘쉬게 놔둘 줄 알고? 동부를 중앙 집권 국가로 제도를 정비할 때까지 넌 사람을 죽여도 일하다가 죽어야 한다. 〈제도관〉? 뭐 그런 직책이 있는 것도 좋겠지.’
드낙은 앞으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예 은퇴를 생각하는 자다. 말하면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었다.
“그대가 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일단은 몸조리 잘하고 있게. 상황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내 다시 그대를 부를 테니. 총관이 그냥 말 한마디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제가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게제라스는 그렇게 빈말을 하며 드낙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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