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 <-- -->
그들을 어떻게 처벌을 해야 하는가? 그런 건 드낙에게 있어서 나중의 일일 뿐이었다.
이들에 대한 처우를 생각하며, 철저하게 수를 더듬어 미래를 가늠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드낙은 그런 능력이 없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궁리를 해야 하는 종류의 일이었고, 드낙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드낙의 성향은 사람과 법 그리고 사회 체계(system)에 있는 게 아니었다.
철저하게 일반인의 감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와 맞물려서 흉포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세파리아스의 찌꺼기〉와 〈중립신의 세뇌 경험〉은 결코 단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모조리 감옥에 가두어라! 철저하게 인원을 파악하고 그들의 집에 있는 것을 모두 수거해라! 바닥을 뜯고, 벽을 부숴서 비밀 금고를 찾아라! 동쪽의 지휘는 리암 경이 맡고, 서쪽의 지휘는 노드헝 경이 맡아라!”
“영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리암 제라드(Liam Gerard)〉와 〈노드헝 웃터(Nordhaug Utter)〉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들은 중앙대로를 기준으로 호수 마을을 절반으로 가른 뒤에 자신의 집이 있는 곳에 따라서 관리들을 두 분류로 분류했다.
그 사이에 드낙은 주문을 읊어서 하늘로 치솟았다.
현대에서 살면서 가장 화가 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죄를 지은 자가 자신의 돈을 모두 뱉어내지 않고,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나라에서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낙은 뭔가 대단하게 시스템을 새로 만들 준비를 한다든지, 혹시 모를 뒷배를 찾는다든지, 나중을 위해서 관리 중에 살릴 자와 죽일 자를 정하던지···그런 일을 그냥 뒤로 미뤄버렸다.
그 대신 누구보다 먼저 부패한 관리들이 손에 쥐고 있는 재화를 노렸다.
실로 드낙다운 행보였다.
관리들을 처벌하면, 동부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힘들어진다? 적어도 드낙은 나쁜 놈들이 재화를 숨기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호수 마을〉을 중심으로 생긴 중앙 관리들이 왜 부패했는지, 그런 이유를 먼저 캐묻고 싶은 마음도 적었다. 보석을 들고 튀는 놈들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뒷순위로 밀어냈다.
‘한두 명이 엮인 게 아니다. 분명 그들이 쌓은 돈은 모아놓으면 엄청날 것이다.’
골목길에 내려앉은 드낙이 속삭였다.
“나와라! 어서! 너희들의 신이 도움을 원한다!”
땅에 손을 짚으며 마법을 통해서 소리를 땅속으로 증폭하여 보냈다. 핏빛쥐가 손톱에 피를 흘리며 튀어나왔다. 크게 무리해서 땅을 파헤치며 온 것이다.
“뜨낙. 부르셨습니까.”
목소리는 작았다. 지금은 대낮이고 드낙은 결코 핏빛쥐들이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드낙은 외청의 부패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급한 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외청에 있던 관리들을 알고 있겠지? 그들이 적잖은 돈을 보관해놓은 곳 중에서도 가장 큰 재화가 쌓여있는 곳이 어딘지 알고 있느냐?”
“예.”
핏빛쥐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점 중에 하나가 호수 마을이었다. 그곳은 자신들의 창조주가 자리를 잡은 곳이며, 인간들이 드낙 불파겐의 영토라고 말하는 곳 중에서도 중요한 곳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핏빛쥐가 호수 마을의 지하에서 살고 있었다.
그 자원만큼 호수 마을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펄럭!
핏빛쥐가 품에서 양피지를 펼쳤다. 비린내가 나는 양피지였다. 그곳에는 호수 마을이 그려져 있었고, 수많은 정보가 어지럽게 새겨져 있었다. 글자는 아니었고, 모두 문양이었다.
‘봐도 모르겠네.’
단순히 알 수 있는 것은 같은 문양이라도 크기가 다르다는 점이다. 그중에 핏빛쥐는 호수 마을의 내부에 3곳을 점찍었고, 호수 마을의 밖에 4곳을 점찍었다.
그 외에도 같은 문양은 대단히 많았다.
“이 독특한 문양이 모두 관리들의 비밀 금고라고?”
드낙은 수십 개에 달하는 문양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핏빛쥐는 수긍하며 말했다.
“예. 시작은 외척들이라 불리는 무리가 물꼬를 텄고, 나중에는 어느 정도 사회에서 무리를 형성하고 힘 있는 자들이 너도나도 관리들에게 돈을 내어주었습니다.”
그 말에 드낙이 흉흉한 눈을 했다. 이걸 왜 말하지 않았느냐는 눈빛에 핏빛쥐는 고개를 숙이며 무릎마저 꿇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미리 말하겠습니다.”
그 말에 드낙은 스스로가 병신같았다. 이 정도의 정보를 쌓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을 텐데, 거기에 알아서 말하는 것까지 요구하다니?
“아니다. 내가 신경을 쓰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너의 죄가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예.”
핏빛쥐가 다시 구멍으로 사라졌고, 땅을 메웠다. 드낙은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지.’
외척을 끌어들였을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아야 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의 드낙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현대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공무원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하물며 CCTV도 없고, 전산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이 세계에서는 무조건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이것은 오히려 기회였다.
드낙은 호수 마을에 있는 3곳의 비밀 금고가 있는 곳을 급습했다.
쾅!
지붕이 박살나며, 쿵하고 드낙이 떨어져 내렸다. 중갑갑옷을 입고 있는 드낙은 바위나 다름없었다.
“허어어억! 윽!”
다락방에서 웅크려 있던 도둑놈이 일어나며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머리가 천장에 부딪혀서 혹이 났다.
흙먼지 속에서 도둑이 몸을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섬광과도 같은 검격이 흙먼지를 뚫고 두개골을 부쉈다.
퍼걱!
뇌수가 튀고, 바닥에 피가 터져나갔다.
금고를 털려고 가져온 장비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드낙은 이를 무시하고, 히드라의 타투를 양손에 집중시켰다. 작은 고통이 따라왔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우그그극!
금고를 아예 손으로 뜯어버린 드낙이 안에 있는 재물을 도둑이 가져온 가죽 포대에 담았다. 금괴, 은괴, 보석과 장부 그리고 잘 포개진 반짝반짝 빛이 나는 마법직물까지 챙겼다.
‘왜 이렇게 큰 포대를 가져온 거야.’
죽은 도둑놈의 욕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피식 웃은 드낙은 다시 주문을 읊으며 마법을 통해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미 가져갔다.’
이미 털린 곳은 흔적을 추적하고, 하늘에서 다급히 도망가는 자를 조졌다. 현장에서 그대로 처형하고, 대충 사태를 알렸다.
“부패하고 타락한 자의 하수인이다! 더러운 손으로 더러운 돈을 벌었으니, 이를 압수하며 죄를 달게 받지 않으려 하는 파렴치한 죄를 묻는 것과 동시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으니, 즉결처형한다! 나 드낙 불파겐의 이름으로!”
혼란은 없었다. 플라잉 불파겐을 상대로 헛소리를 지껄이고, 혼란을 부추기며 히히덕거릴 미친놈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갑자기 뚝 덜어져서는 대로를 파괴하며 사람을 피떡으로 만든 뒤에 그가 짊어진 가죽 배낭이나 가죽 포대 따위를 챙겨서 다시 날아가는 기사를 보고 선동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불파겐의 선정은 잘 퍼져 있어서 사람을 죽여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쳐도 그럴 분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쌓은 호구 이미지는 결코 단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철저히 지켜라!”
“예!”
드낙은 병사를 중앙 광장에 배치시키고, 가져온 가죽 포대를 털어 재물을 쌓았다. 피로 물든 드낙을 봤기 때문에 병사들은 겁에 질려서 감히 쌓아놓은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워낙 많은 이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딴생각을 가지지 못한 것도 있었다.
“켁!”
뒷덜미가 잡혀서 당겨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목이 그어졌다. 그가 로브 속에 숨긴 가죽 배낭을 드낙이 빼앗아서 둘러메었다.
크게 탐하든, 서로 나누어서 작게 탐하든 똑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자비 따위 없었다.
명분이 확실하게 있었으므로 드낙은 그 누구보다 잔혹해졌다.
밖에 있는 비밀금고를 터는 일은 더 쉬웠다. 밖에서 부리나케 도망가는 자들을 다수 마법으로 처리하고, 순회를 돌 듯이 시체를 뒤져서 귀중품을 챙기면 그만이었다.
건드리지 않은 비밀금고를 마지막으로 털었다.
쉬익!
함정을 밟자마자 쇠뇌가 튀어나왔지만 드낙의 어깨에 맞으며 퉁겨져서 팽그르르 돌더니 바닥에 꽂혔다.
‘깜짝이야.’
간담이 서늘했다. 보호막으로 몸을 두르고, 비밀금고를 털었다.
중앙 광장에 쌓인 재화는 밤이 되어도 번쩍번쩍했다. 병사들이 밝힌 횃불 덕분이다.
작은 언덕처럼 쌓인 재화를 밟으며 드낙이 지켜보는 이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다.
“업무를 보는 외청이 매음굴로 변했다! 용병부터 자유기사까지 뒷돈을 찔러주지 않은 자가 없다!”
죽여라! 죽여라!
산처럼 쌓여있는 재화를 보고 눈이 안 돌아가는 시민은 없었다. 그들은 약해서 그 기회를 잡지 못했고, 이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건 질투심이었지만, 겉으로는 청렴을 원하는 선한 시민의 분노로만 여겨졌다.
한참을 선동하며 동시에 재화에 대한 쓰임새를 마치 시민에게 환원해야 한다고 까지 발언한 드낙은 모든 재화를 내성으로 옮겼다.
시민들의 환호와는 별개로 호수 마을 밖으로 죽은 시체가 옮겨지고, 버려졌다.
내성에 도착한 드낙은 사제들의 방문을 받아야 했다.
“강제로 추행을 당한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신관은 인사를 하고,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들 모두 무식하게 감옥에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드낙의 일처리는 확실한 기준이 있었다.
미룰 건 미루고, 하나씩 한다.
무식한 짓거리였고, 사제들이 급하게 움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급박함 속에서도 드낙이 연설하는 곳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데리고 가시오. 하지만 창녀들은 안 되오.”
“창녀들 중에서 의식을 잃은 채 추행 당한 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런가? 아. 그렇군.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모르지 않소?”
드낙은 기억해냈지만 그 얼굴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창녀들도 풀어주기로 했다.
“창녀들도 모두 풀어주어라.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그 말에 사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양이라고 꼰대가 없는 게 아니고, 정조를 귀하게 여기는 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드낙의 열린 반응에 놀란 것이다.
“아, 죄가 있는가?”
드낙이 눈치 좋게 그것을 잡아내서 되물었다. 병사가 이에 멈칫하며 멈추어섰다. 이야기가 계속 진행될 듯해서였다.
“대놓고 그것을 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드낙은 귀찮은 마음에 그에 대한 처우로 언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창녀들에 대한 처우는 신전에서 내리도록 하시오.”
“예?”
“알아서 하란 말이오. 그들을 보듬어 주던지, 아니면 마녀로 몰아서 죽이던지, 새로운 길로 인도하던지 하란 말이오.”
“예. 알겠습니다.”
당황도 잠시 사제가 깍듯하게 대답했다. 드낙이 병사에게 턱짓하자 병사가 사제들을 안내했다.
폭풍이 휘몰아치고 내려앉은 밤에 드낙은 게제라스 총관에게 향하지 않았다.
‘〈검은 회의〉가 먼저다.’
드낙은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연기가 그를 덮쳤다.
“일을 키워라. 키워. 머저리 같은 놈아.”
들어서자마자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 욕을 먹어야 했다.
“아니 왜? 그럼 그냥 놔둬?”
욕부터 박고 보는 상황에 드낙이 어처구니없어했다.
“누가 놔두라고 했느냐? 조용히 일을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넌 그러지 않았지.”
끌고 가고, 죽이고, 빼앗는 모습을 보여줘도 그 어떤 말 없이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드낙은 구구절절 이야기하며 마지막에는 연설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음을 시민들에게 제법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것이 실수라고 세파리아스는 말하고 있었다.
“너 자신에게 똥칠하는 격이다. 관리가 부패한다면 그 책임은 결국 총관에게 향하는 것을 모르는가.”
“아.”
드낙이 그제야 아차 싶었다. 이대로면 게제라스를 물러나게 만들어야 했다.
제국식의 중앙집권 체제를 만드는데 게제라스의 존재는 필요했다. 제국민은 결코 남부 왕국으로 이주하지 않기 때문에 제국의 문물을 잘 알고 있는 그의 존재는 필요했다.
“몇 년 쉬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지. 하지만 지금 동부의 상황은 해마다 안 좋아질 것이다.”
“그 정도로 총관이 유능한가? 이번 일을 보면 영 아닌데.”
드낙의 의심에 세파리아스는 혀를 찼다.
“전부터 게제라스는 정치와 인간관계에서 썩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제대로 관리들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그건···”
드낙이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이 모든 것이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게제라스는 처음부터 그랬다. 〈횃불 성채〉에서 따돌림당하며 가문에서도 내쳐진 자였다. 그런 자가 사람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병신이라는 소리야?”
세파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드낙이 병신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였다. 만약 다른 자가 드낙보고 병신이라고 말한다면 그에게 큰 호감을 가지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 일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게제라스는 훌륭한 내정관이다. 그렇기에 모두 그가 지닌 치명적인 단점을 방치한 것뿐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랬다. 제도가 잘 잡혀있으니, 적당히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필사의 노력을 하니 다른 이들도 능히 그를 받쳐줄 거로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인간은 선량한 사람이 적었다.
“귀족은 그래도 다른 사람의 눈을 현혹할 명예를 숭상하지만, 게제라스가 등용한 관리란 것들은 그런 것도 없었으니···”
세파리아스가 혀를 찼다. 귀족보다 더 대범하게 일을 벌인 놈들이 중앙 관리와 중간 관리들이었다. 귀족조차도 황당할 지경이다. 아마 외척들도 까무라치고 있을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 작품 후기 ==========
6554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게제라스의 경우에는 사실 능력치가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를 설정했을 때부터 적어놓은 사건이었는데···영입때 충분히 복선으로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