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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거대한 용광로와도 같았고, 하나의 콜로세움과 비슷했으며, 끝없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밤이 되면 회색의 연기가 풀풀 나오기에 제국인들은 그것을 〈연기 마탑〉이라고 불렀다. 흑황제가 처음으로 대규모 공사를 벌인 만큼 제국인들에게 일감을 주고 그의 악한 행보를 덮으려는 수작질이라고 〈더러운 마탑〉이라고 내리까는 이들도 많았다.
자신의 아비를 죽인 패륜아.
흑황제라 불리며 수많은 제국인들의 이름이 오르고 내린 제국인들의 자랑이었던 흑태자 〈제넬루 바르시아〉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굳이 수도를 놔두고 그 옆에 지어진 곳에 그가 있는 이유는 그 누구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에 의문을 가질 자는 이제 없었다.
수도의 제국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영혼의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지하 대전〉의 입구는 〈영혼 제국 기사〉가 지키고 서 있었다. 투구에 가려진 눈동자에는 푸른 마력의 빛이 강하게 흘러나오고 있어서 어둠 속에서도 그 빛만은 확실하게 보였다.
〈통달의 대마법사 아웃버스트〉가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몸 절반이 칼로 절단된 것처럼 것처럼 구분되어있었는데, 한쪽은 검회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다른 한쪽은 밀랍인형처럼 생기가 없는 몸뚱어리였다.
솨악!
청동으로 만들어진 화덕에는 새까맣게 타버린 사람이 웅크려 안에 들어간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그 머리에는 회색의 영혼이 사방을 밝히듯이 있었다. 껑충 뛰고, 한 바퀴 돌고 한쪽으로 튀어나오지만 결국 다시 되돌아간다.
함정에 다리가 묶여 흥분한 멧돼지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내가 이걸 가장 처음 만들었었나.’
아웃버스트가 화덕에 눈길을 주었다. 그가 창조한 〈영혼 마법〉의 마법체계가 처음 적용되어 만들어진 마법 화덕이었다.
당연히 인간이 그 재료로 사용된 마법 아이템이다.
그 근본은 〈인신공양(人身御供)〉에 있었다.
‘신도 사람을 먹는데, 나라고 못할 게 없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쿵. 쿵.
아웃버스트의 뒤로는 제국 기사가 50명이나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얼마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지 척 봐도 전력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만세! 만세! 만만세!
우리들을! 이끌어 주소서!
지하 대전에서는 이미 세뇌된 대신들이 상석에 앉은 제넬루 바르시아를 칭송하고 있었다. 아웃버스트가 오자 그 광적인 외침이 단번에 사라졌다.
“인형들에게 칭송을 받는다고 즐겁습니까?”
그의 말에 흑황제 제넬루는 무료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세뇌의 효과를 확인하고 있는 것뿐이다. 반복적이고 열성적임을 오랫동안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
대신 중에서는 팔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었다. 의심이 가는 몇몇 대신은 머리를 찧다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세뇌와 동시에 영혼관이 박혀있어서 빠르게 상처가 사라지는 모습은 기괴했다.
“아. 그런 뜻이 있으셨습니까.”
아웃버스트가 그제야 감탄했다. 천재지만 마법에 미쳐있는 것이 아웃버스트였다. 그 무관심이야말로 제넬루가 아웃버스트와 손을 잡는 계기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통달의 대마법사다. 세뇌가 빠짐없고, 세심한 것은 물론이고 하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흑황제 제넬루가 몸을 일으켜서 상석을 내려왔다. 아웃버스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려고 했지만, 그가 그것을 막으며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여기까지 왔는데, 언제까지 나를 황제로만 여길 것인가.”
“제 대업을 이루어주셨으니, 이제 은인이기도 합니다. 날을 더할수록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흐하하!”
제넬루가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웃었다.
“여기까지 내려온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생겼을 터. 말해보아라.”
“예. 7인의 엘프 원정대(Elda Andawaita)가 수도에 숨어들어 갔습니다.”
엘프 원정대는 무조건 7인으로 구성되어있다. 예외는 없었다.
“잡았겠지?”
“현재 전투 중입니다.”
흑황제 제넬루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반년이나 늦게 도착했군. 엘프들은 원래 이 정도로 멍청했나?”
느린 거북이나 다름없는 것이 엘프들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되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것은 똑바로 방향을 잡고 꾸준히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가진 힘을 보십시오. 강함에서 나오는 오만함으로 그들을 가볍게 보시면 안 됩니다.”
제넬루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인정했다.
“그대의 말이 맞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군.”
수도의 제국인이 모조리 영혼의 용광로 속에 녹여졌다. 그 힘은 가히 〈신〉의 반열에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엘프를 이기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했다.
“누구를 이용하는 게 좋겠나?”
“제국의 군단장 중에 살아남은 자 중에서 지방으로 도망친 〈9군단장 보헴 셀 막시밀리안(Bohem Shel Maximilian)〉을 이용해야 합니다.”
현재 지방에서는 흑황제를 몰아내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워낙 많은 이들이 수도로 잡혀가서 불만이 대단했다.
온갖 누명이 씌워져서 소년소녀까지도 목에 올가미가 씌워져서 개처럼 끌려갔다.
이러니 반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엘프 집정관의 시신을 세뇌한 중간 관리급에게 내어준다면 그것을 통해서 9단장은 명분을 크게 세울 수 있겠지.”
“강인한 영혼들이 하나 되어 이곳에 오게 될 것입니다.”
내전처럼 보이기에 엘프들은 다시 한 번 주저하게 될 것이다. 이파전을 삼파전으로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들의 육체와 영혼은 강할지언정, 〈영혼의 용광로〉를 이길 수 있을까?”
대답은 필요 없었다. 이미 수십만에 달하는 기사와 병졸이 끝없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 날로 제국의 세금 중에서도 소공상인들을 담당하던 자 중 하나인 〈4급 세금관리 라우렌티우스(Laurentius)〉가 말이 이끄는 짐수레를 타고 제국의 지방으로 향했다.
덜컹!
짐수레에는 방부제가 든 단지와 항상 차가움을 유지하는 마법 천막에 덮인 엘프 집정관의 시체가 들어있었다.
제국이 서서히 몸을 움직일 때, 엘프 또한 서서히 자신들의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엘프 도시 〈칼와 엔다(Calwa Enda)〉.
쿠오오오!
엘프 도시 내부의 마력 농도를 높이는 시설인 〈폭풍의 요람(Cradle of the typhoon)〉에서 소음이 일어났다. 휘몰아쳐도 항상 조용했던 것을 생각하면 엘프 도시에서 큰 마력을 사용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수십 명의 엘프들이 피부가 늙은 엘프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영혼 감옥〉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 행렬을 보는 엘프들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잔혹했던 과거를 들추는 일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들의 종족은 항상 올곧아야 했고,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러지 않은 세월이 있었다.
그 시절의 광기는 그 어떤 엘프도 변호할 수 없는 끔찍한 광기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행렬을 막을 수 없었다.
도시의 시작부터 있었던 〈나스타 카라(Nasta Cala)〉가 앞장을 서고 있어서였다.
영혼 감옥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마법은 이미 일찌감치 상쇄되어있었다. 열쇠로 자물쇠를 열듯이 해제할 수 없고, 잠시 중단시키는 것도 불가능한 곳이라 마력 상쇄를 해야 했다.
도시가 넘어가도 영혼감옥으로 갈 수 없도록 만든 곳이었다.
‘윽.’
나스타 카라가 거침없이 내려갔기에 이를 따르던 엘프들도 한 걸음 내려갔지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영혼을 지녔기에 이 바닥에 가라앉은 영혼력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기분 나쁜 감각이다. 썩은 하수구의 물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나스타 카라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고, 거침없이 움직이고 있었기에 구역질을 참으며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도착하자 마력을 영혼으로 만들고, 그것을 마력과 다시 혼합하여 마법진을 통해서 만들어진 푸른 연기가 고정되어 사방을 가리고 있었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이곳에 도착한 엘프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썩어들어가 있었다. 그곳에서 나스타 카라가 입을 열었다. 그 혀는 붉지 못하고, 새하얀 색이었다.
“본래는 수백 명이 들어설 곳이었지.”
영혼 감옥은 그 거대한 규모와는 다르게 수감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나스타 카라는 옛날 생각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생각보다 인간들이 잘 해주었어. 그래서 한 명밖에 이곳에 도달하지 못했지.”
〈세리안 불파겐(Serrian Bulpagen)〉.
이곳에 수용될 자 중 이곳에 도달한 자는 오직 그녀뿐이었다. 세파리아스를 비롯한 불파겐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도움을 받았기에 엘프에게 오는 게 당연한 순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었다.
“세파리아스가 인간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인간의 저력을 알 수 있었지. 지금도 그렇다. 언제나 인간이 문제다.”
침묵이 잠시 내려앉았고, 이내 나스타 카라는 주문을 읊으며 영혼 감옥을 해제했다.
스스스.
연기가 묽어지고, 가라앉으며 사라져 갔다. 슬라임이 녹아가는 것처럼 스멀스멀 물러갔고, 모두 사라지자 그곳에는 한 명의 여전사가 있을 뿐이었다.
불파겐을 따르던 12개의 가문은 모두 불파겐을 위해서 마지막을 함께하지 않았다. 방관한 가문도 존재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가문을 제외하고 모든 가문이 그 생존자만큼은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 핏줄이 사라지는 걸 아까워해서였다.
겉으로는 명예를 위해서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 빛 속에는 어둠이 번들거렸다.
세리안 불파겐은 그렇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11가문은 그들의 가보를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그녀의 왼팔뚝에는 〈롤레온의 방패(Rollleon’s Shield)〉가 묶여 있었다. 〈협력의 방패〉라고 불리는 롤레온의 방패는 사용자를 알아서 도와주는 방패로 롤레온 가문의 가보 중의 가보였다.
〈홀그린의 펜던트(Hallgreen`s Pendant)〉는 목에 걸어져 있었다. 〈별의 펜던트〉라고 불렸고, 펜던트는 평범한 별이었지만, 목걸이의 줄에는 십이천칭이 길쭉하게 늘어져서 형상화되어있었다.
이는 〈별의 펜던트〉라고 불리며 사계절에 따라서 그 강함과 약함이 오가는 별자리의 힘을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힘을 지녔다.
혁대에 걸린 송곳 같은 무기는 〈쟝의 스틸레토(Jean`s Stiletto)〉라 불렸다. 상단세가 귀신같은 가문이기에 그 가보는 창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그 반대였다. 그 어떤 방어구도 꿰뚫는 〈충격의 스틸레토〉가 그 가보였다.
녹색의 〈제라드의 강철부츠(Gerard`s Steel boots)〉는 바람 소리가 거칠게 나오고, 나서는 안 될 소리를 상대에게 듣게 하는 혼란을 줬고, 〈교란의 강철부츠〉라고 불렸다.
지나칠 정도로 새하얀 〈데드판의 목 보호대(Deadpan`s Neck protector)〉는 천으로 되어있었지만, 그 어떤 날붙이로도 벨 수 없었으며, 화염 고리를 토해내는 〈파괴의 목 보호대〉로 불렸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웃터의 투구(Utter`s helmet)〉는 다재다능한 온갖 도움이 되는 마법을 상황에 맞추어서 토해냈는데, 사용자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고대 큐브의 투구〉라 불렸다.
휘황찬란한 금색과 붉은색으로 불꽃 같은 무늬를 지닌 〈히프노틱의 망토(Hypnotic`s Cloak)〉은 전신에 잔상이 깃들에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똑같은 제2의 환상체를 만들어 운용할 수 있었다. 따로 별명이 없었다.
거뭇거뭇한 철색의 〈브루드의 자벨린(Brood`s Javelin)〉은 필중의 능력과 다시 손으로 돌아오는 수거의 능력, 자벨린에 벼락의 힘이 깃들어 있는 강력한 마법 장비였다. 〈트리블 자벨린〉이라 불렸다.
짙은 갈색의 〈셔토이언트의 단궁(Chatoyant`s Shortbow)〉은 강철마저 찢는 힘을 화살에 부여했다. 〈거인의 단궁〉이라 불렸다.
호랑이의 털가죽에 뒤덮인 〈클레이의 강철글러브(Clay`s Steel Glove)〉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피해를 막아낼 수 있는 〈역전의 장갑〉이었다.
푸른색의 보석이 박히고 은으로 이루어진 〈사이렌의 귀걸이(Siren`s earring)〉은 소음을 통해서 다수를 제압하고, 피해를 주는 〈소리물결의 귀걸이〉였다.
핏줄처럼 붉은색이 대검에 들러붙은 〈적혈대검(Red blood Two-Handed Sword)〉은 죽이면 죽일수록 붉게 빛이나며 절삭력이 강해지는 〈세파리아스의 검〉이라 불렸다.
그것을 모두 착용해있는 세리안 불파겐의 모습은 용병처럼 보일 정도로 색채와 복장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엘프도 웃지 않았다.
한 명의 인간이 눈이 뜬 것만으로도 공기가 변했기 때문이다.
“하아.”
숨이 트이자마자 그녀의 눈이 떠졌다. 시리도록 차가운 눈매에 반해서 엘프의 녹안(綠眼)은 아침 햇살에 비치는 나뭇잎 색처럼 밝디밝았다. 새하얀 피부와는 반대로 흉측한 검흔이 볼을 타고 목을 긁고 지나가 있었다.
폭군이 몸을 일으켰다.
엘프들은 너도나도 적의를 일으켰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었다. 야생 짐승을 앞에 둔 것 같았고, 그렇기에 믿을 수 없었다.
“뒤통수를 치고 다시 날 깨웠다? 어디 소설 속의 마왕이라도 눈을 떴나봐?”
적혈대검의 검날에 자신의 엄지를 대어 피를 흘리게하며 세리안 불파겐이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강자의 면모가 절로 느껴졌다.
적혈대검에 있는 붉은 균열에서 붉은빛이 쏟아져나왔다. 이에 나스타 카라가 말했다.
“넌 자유다. 남부 왕국으로 돌아가든지, 제국으로 가든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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