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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이다.
〈북부 7가문 흔들기〉에서 사용된 방법은 그들 일곱 영주의 발등에 불을 붙이는 일이었다. 이미 드낙이 한 번 생각한 것이 사용됐다.
다른 방법을 쓰기에는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방법이야.’
드낙은 이것을 〈사냥 몰이〉로도 해석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 그는 사냥꾼의 삶을 살았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만약 검은 꿈이나 중립신에게 선택을 받지 않았다면, 용병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사냥꾼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용병 시절, 누군가에게 저당 잡혔다면, 암살자로 세월을 보냈겠지.
“이, 이게! 말도 안 되는! 이런, 이, 이!”
부들부들.
멜마론 영주가 손을 덜덜 떨었다. 사업을 실패한 사업가처럼 수십억대 빚을 본 것처럼 굴었다. 깊은 절망감이 그 손에서 느껴졌다.
“서, 서둘러 몽펠리에의 가주에게 가야 한다.”
벌떡 일어나서 서둘러 자신의 방을 나갔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다른 영주들도 모여있었다.
파이룬은 오크들에게 영지가 침략당했기 때문에 믿을 만한 건 몽펠리에뿐이었다.
북쪽의 전투요새 〈쌍둥이 성채〉에서 버텨냈기 때문에 병사는 죽었지만, 가을 수확은 온전하게 했기 때문이다.
“누가 들어갔소?!”
“팬크리스 남직이오. 젊은 놈이, 판단력은 참 빠르더군.”
불파겐의 병사가 양피지를 주자마자 일단 몽펠리에에게 향하며 서신을 읽은 것이 팬크리스 영주였다.
성질이 급하다고 말하기에는 〈불파겐〉이 가지는 이름값이 너무 컸다.
“빌어먹을. 그래도 가장 선택을 받을 것 같은 가문이 왜 몽펠리에를 먼저 찾은 것인지.”
“그러게나 말이오. 드낙과 함께 지낸 날이 가장 많은 것이 팬크리스 남작 아니오.”
팬크리스 남작에게 불만을 토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그나마 가능성 있는 자가 불파겐에게 향하여 도장을 찍지 않고, 몽펠리에에게 향하다니? 해도 너무했다.
“멜마론 영주! 어떤 서신을 받았소?”
“경쟁을 붙이다니, 이거 제국의 검투사가 된 기분이오.”
“진흙탕 싸움을 귀족 가문에게 하라고 하다니. 불파겐의 방식은 거칠기 짝이 없소.”
혀를 쯧쯧차며 불파겐을 뒷담화 하기도 했다.
“허허, 그 가문이 어디 가겠소? 세월이 지나도 불파겐은 불파겐이라는 것이지. 아무리 북부를 위하는 척해도 그 본질이 어디 가겠소? 지금까지 보여준 건 모두 거짓된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된 것 아니오.”
신랄한 척 불평을 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욕을 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게 지금의 불파겐이었다.
드낙이 강해도 너무 강해서였다. 거기에 〈검은 비늘 와이번〉은 독살도 할 수 없었다. 피부와 비늘에 독이 촉촉하게 자연적으로 생성돼서 햇살에 검은 광택을 내는 몬스터였다.
인간이 만드는 독 따위 한 끼 식사에 불과했다.
“몽펠리에가 우리를 도와줘야 할 텐데.”
“같은 메디오인이니, 어느 정도는 해줄 것이오.”
그들이 비빌 곳은 몽펠리에나 킹슬레이 뿐이었고, 킹슬레이보다 개발이 잘 된 남부와 연결된 몽펠리에가 더 조건이 좋았다.
서로 잡담을 나누면서 양피지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했다. 하나같이 비슷했고, 말하는 바는 똑같았다.
이실레아와 겐 쟝이 쓴 양피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받아줄 수 없고 지원도 힘들다. 다만, 약속했던 말을 번복하는데 안타까움이 있어 한 가문은 도의적으로 동부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주며 최대의 지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약속하겠다.]
피말리는 경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곱 중 단 하나만 허락함은 물론이고 ‘최대의 지원’을 문서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부 7가문은 모두 불파겐의 문을 두드리기보다는 몽펠리에의 문을 두드렸다.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그 리스크를 줄이는 일을 먼저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귀족이 어떠한 자들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가문’을 먼저 생각하기에 투자보다는 보신을 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북부에 짐을 내려주고, 협박하는 효과도 있었다. 몽펠리에와 파이룬 그리고 킹슬레이까지 부담스럽게 만드는 짓이었다.
단 하나의 방법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북부 귀족에게 크고 작은 위협을 주었다.
관전자가 있다면 절로 박수를 치며 고개를 흔들며 감탄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불파겐의 첫 견제이자 협박이라서였다. 그래서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할 수 있는 액션이었기에 그것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적당히 곡물과 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겠다고 통보를 하고 있었기에 두려움을 주었고 효력을 발생시켰다.
잡담도 할 말도 사라진 영주들은 복도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배신감에 치를 떠는 영주도 있었다.
그만큼 드낙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은 실로 개호구같아서였다.
‘항상 북부의 손을 들어주고, 웃으며 양보를 해준 호구 새끼가 이빨을 들이대다니!’
북부 7가문은 진흙이 묻은 이빨을 만져야 했고, 다른 3개의 명문가 또한 기분 나쁜 악취를 맡아야 했다.
‘치사하게 이런 방식을 써?’
특히나 드낙은 매우 치사하게 여겨졌는데, 다 도와주겠다고 말했다가 말을 바꾼 것은 물론이고, 돈이나 자원 따위를 북부에게 짊어지게 압박해서였다.
‘구질구질하다!’
돈으로 장난치는 놈은 항상 좋은 소리를 못 듣는 법이다. 여기서도 같았다.
영주들은 하나같이 함께 마실 건 마시고, 먹을 것도 먹었으면서 돈은 안 내는 놈을 보는 눈을 했다.
어쨌든, 불파겐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몰이 당한 일곱 가문은 몽펠리에로 모였다. 이를 받아주는 아크온은 제대로 답도 내어주지 못했다.
“나 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몽펠리에가 다른 여섯 가문을 모두 받아주지는 못하는 것 아니오.”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나는 어찌 되겠소. 우리 가문은 어디로 가란 말이오!”
다급해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팬크리스는 그만큼 자신의 가문이 존속되길 원했다. 왜냐하면 그들 가문은 이번 세대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였다.
작은 마을 하나 지키겠다고 가주가 죽었으며.
피난민들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스스로 명줄을 버렸다. 나무창 하나 들고 팬크리스라는 이름 앞에 모은 젊은이들은 이름 석자 이 젊은 영주에게 알려주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은 너무나도 무거웠고, 가혹했다.
명문가이자 버팔로 나이트라는 명성을 지닌 곰 같은 자에게 소리를 지를 정도로 그에게는 절박함이 깃들어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몽펠리에의 여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오.”
돈이 얽히면 누구나 구차해지는 법이다. 그건 병사 전력이 떼 몰살한 몽펠리에도 마찬가지였다. 역량이 충분히 있음에도 감히 약속하지 못했다.
몸을 일으킨 팬크리스는 인사도 없이 물러갔다.
돈과 자원, 토지에 대한 이권이 얽히자 북부의 규합력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음을 보여주었다. 귀족정이 지닌 한계이기도 했다.
머리가 많으면 내분에 취약했다.
“다른 가문도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하나씩 모두 들여보내라. 확답을 못 줘도 문전박대는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예.”
아크온은 그렇게 일곱 가문과 모두 만나주었다. 하나같이 실망하며 문을 나서야 했다.
쾅!
아크온의 주먹이 탁자를 쳤다. 큰 소리가 나며 탁자가 출렁거리며 부서져서 무너졌다.
‘대체 뭐하자는 거냐!’
으르렁거리듯이 기세를 뿜어냈다. 단번에 방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불파겐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소?”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150평은 되는 회의실에 사람만 200명이 되었음에도 쥐 죽은 것처럼 조용했다.
아크온이 그걸 보며 탄식하듯이 말했다.
‘불파겐이 제법이다.’
“결국, 끌려다녀야 한다는 소리구나.”
“이실레아 경에게 시종을 보내는 게 어떻습니까.”
그녀는 동부에서 불파겐의 방계가 되지 않은 귀족이었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다. 일단은 윤곽을 보고 결정해야겠다. 불파겐이 이런 행동을 보인 건 처음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느낌이 싸했다.
‘드낙이 생각한 수법이 확실하다.’
세속적인 자였기에 이렇게 더러운 짓거리를 할 수 있었다.
북부 7가문에 대한 짐을 짊어진다면 북부에 큰 영향력을 얻는 것과 같은데 그걸 버린 것이다. 그것을 버려서라도 돈을 아끼겠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움직여서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불파겐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야 했고, 나아가야 할 고지의 꼭대기를 봐야 했다.
소식은 금방 들려왔다.
“불파겐의 병사가 킹슬레이에게 향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킹슬레이를 움직여서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 같습니다.”
이에 수많은 이들이 아크온에게 의견을 내비쳤다.
“북부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겁니다! 몽펠리에와 파이룬이 기울은 것 같으니, 킹슬레이를 대우하여 영향력을 가지고 북부에 힘을 행사할 겁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을 마치 뭔가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불파겐 자작의 성향과도 맞습니다. 여러 세력과 손을 잡기보다는 킹슬레이 하나로 끝내는 게 편하고, 어렵지 않습니다.”
드낙의 성향을 이야기하여 킹슬레이로 향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모습을 보이는 자도 있었다.
자신이 데리고 온 수행원들의 말에 아크온은 귀를 기울일 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기사들은 자신의 수족과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이를 기다리고 확실하게 의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가주. 이번 논공행상은 사실 북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겠소? 제 생각에는 불파겐 자작이 자신이 차지할 일등공신의 자리를 킹슬레이에게 양보하려는 것 같소.”
그럴듯한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킹슬레이는 저희들에게 이등공신을 약속하라고 하지 않았소. 거기의 연장선이오. 분명 킹슬레이와 불파겐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킹슬레이를 올려주고 킹슬레이의 영향력을 불파겐이 얻도록 말을 맞춘 것이 틀림없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자극적이다.”
아크온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내 손사래를 쳤다. 너무 자극적이라 현실성이 없었다. 가능은 해도 그렇게까지 말이 잘 이어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드낙이 북부를 포기할 것이라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불파겐의 병사가 찾아왔습니다.”
시장바닥처럼 시끌시끌 거리던 방이 조용해졌다. 아크온이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들여보내라!”
양피지를 받고, 병사를 돌려보냈다. 아크온의 눈이 빠르게 훑었고, 그다음에는 천천히 음미하듯이 읽어나갔다.
“불파겐이 길게이 왕자를 일등공신으로 올리라고 한다.”
“말도 안 됩니다!”
“불파겐은 대체 무슨 생각을!”
양피지에 쓰인 글자는 많지 않았다. 단출하기 짝이 없었다.
‘협박도 없다.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말하고 있어.’
내어주고 받는 것도 없었다. 그 어떤 이득도, 그 어떤 손해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오직, 길게이 왕자를 자신을 대신하여 일등공신에 올리라는 말밖에 없었다.
양피지를 읽은 기사가 경악했다.
“이건, 완전히 통보지 않소! 그는 자신을 제국의 황제라고 생각하는 건가!”
남부왕에게조차도 존대를 하지 않고, 하오체를 쓰는 것이 북부의 귀족들이었다. 세금조차도 제대로 왕에게 안 보내면서 작위는 받는 것이 북부의 계급 사회였다.
“애초에 이 제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오!”
아크온이 그 말에 역정을 냈다.
“똑바로 읽어보라! 이건 제안이 아니다! 통보다! 협상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게 양피지에서 보이지 않나!”
“으음···!”
그제야 모든 이들이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감히 불파겐 따위가 자신들의 가문을 아랫것 다루듯이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불파겐이 자신의 힘을 휘둘러서였다.
“길게이 왕자를 일등공신으로 한다면, 백금 왕가는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서부에 똬리를 튼 오우거의 토벌이 아닙니까. 길게이 왕자를 통해서 동부와 화해를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일이며,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강한 세력 2개가 서로 악수를 하는 꼴을 북부는 결코 볼 수 없어서였다.
날카로운 비수를 쥔 불파겐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건 그저 주먹, 칼 같은 것으로 대비되는 무력이 아니었다.
드낙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최선이 무엇인가.”
아크온에게 붙어있는 문인이 고개 숙이며 말했다.
“킹슬레이를 통해서 불파겐 자작을 달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돌변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힘을 합쳐서 대처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킹슬레이라는 패가 필요합니다.”
“시종을··· 아니, 내가 직접 가야겠다.”
십여 명의 수행원을 추려내고 아크온은 서둘러 방을 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빠르게 걸어가면서도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대체 뭘 노리고 있는거지.’
가벼운 한 수, 두 수가 아니었다.
길게이가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잘 꾸며진 함정에 들어선 기분에 휩싸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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