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47화 (54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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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원탁 회의가 열립니다.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드낙이 짧게 대답하며 파이룬의 시종을 돌려보냈다. 귀족들이 일을 진행하니, 난잡했는데 이미 몽펠리에와 킹슬레이의 시종이 이미 다녀가며 똑같은 말을 해서였다.

‘엉망진창이네. 하긴, 어쩌겠어. 시스템이 그런데.’

머리가 여럿이니, 회의 하나 진행하는 과정이 이렇게 난잡하다.

밀서의 사본을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는 겐 쟝과 이실레아 브릴리언트를 보며 드낙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어떤가.”

킹슬레이의 밀서. 그 내용에 관해서 물었다.

일등공신으로 드낙을 밀어주고 있는 건 당연하고, 확전을 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줌과 동시에 백금 왕가가 나설 곳을 상을 주는 것으로 끝내서 그들이 체면을 세우려면 크게 상을 주는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드낙이 백금 왕가 놈들을 싫어하는 걸 알고, 그 부분을 긁어주고 있었다.

“킹슬레이의 이득이 없는 밀서입니다. 의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킹슬레이는 지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파겐만 좋은 일을 시키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럴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없었다. 동시에 겐과 이실레아 모두, 드낙이 이 밀서를 보고 좋아할 것이라 여겨서 반대부터 했다.

‘킹슬레이가 불파겐의 등을 업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큰 반대는 하지 못했다. 불파겐에게 요구하는 것이 전혀 없어서였다.

이것 또한 킹슬레이의 노련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들을 통해서 불파겐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위치를 통해서 파이룬과 몽펠리에를 움직였다.

드낙이 물밑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빈공간을 확실하게 이용했다.

지하 밑바닥에서 칼춤을 추는 킹슬레이를 막지 않은 건 불파겐의 책임이었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결과는 불파겐이 먹을 걸 킹슬레이가 먹어 챙긴다는 점이었다.

겐과 이실레아는 드낙의 〈킹슬레이 방침〉 때문에 움직임이 봉쇄된 상태였다. 괜히 킹슬레이가 하는 짓을 훼방 놓아봤자 그림만 어지러워질 뿐이었다.

‘나는 다 알고 있다.’

드낙은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진짜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서로 다른 걸 원하기 때문에 무엇이 연막이고, 무엇이 진짜인지 가려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막말로, 킹슬레이는 자신들을 이등공신으로 넣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드낙을 일등공신으로 하자는 소리는 아니었다.

몽펠리에와 파이룬 또한 드낙을 외쳐대었지만, 정작 원탁회의에서 논공행상을 하여 백금 왕가에게 보고서를 보낼 때 드낙의 뒤통수를 후려칠지 누가 아는가?

‘모르는 일이지.’

전쟁영웅이 일등공신이라고 결정되어도 그 보상이 적다면? 그리고 정작 남부에 퍼진 소문에서는 드낙이라는 이름 대신 다른 자의 이름이 더 높게 퍼진다면?

‘모두 가능한 일이다.’

신문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 남부 왕국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몰랐다. 명분이라는 걸 만들 수 있는 세력이 있었다. 그에 반해 드낙은 이번 전쟁에 고작 기병 수백과 훈련도가 낮아서 제대로 버티지도 못하는 보병 6천을 끌고 온 게 전부였다.

첩자를 양성하지도 못한 상태.

용병은 돈만 주면 역으로 정보를 되 뱉어내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드낙이 이렇게까지 생각한 이유는 더는 북부를 믿지 못해서였다.

‘귀족정이 왜 박살 났는지 알겠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안 된다.’

그가 보여준 친북부 성향은 북부가 드낙을 함부로 대하게 하였다. 몇 대 후려쳐도 웃으면서 적당히 넘어갔기 때문에 기고만장해졌다.

‘더는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폭력적인 사태는 해서는 안 되었다. 눈이 돌아가면 모를까, 지금 드낙은 미래를 대비하기 바빴다.

‘중립신조차 제국을 위협적으로 생각하고, 오크를 살려서 돌려보내라고 말할 정도인데.’

여기서 남부 왕국의 인간을 더 죽인다? 오늘을 위해 미래를 파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보다 정치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또한, 그 세파리아스조차도 정치 하나 잘못해서 죽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 그가 누구인가.

드낙이 결코 이길 수 있다고 여기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베이면 피를 흘리는 인간. 싸우다 보면 지치는 인간. 그 인간을 중립신의 온갖 능력을 얻은 드낙은 이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칼을 함부로 뽑아들지 못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드낙에게는 〈검은 회의〉가 있었다.

‘그림은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드낙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최대한 간단하게 상황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드낙이라는 변수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서로 간의 교류를 염탐했다.

“양피지를 갖고 와봐.”

겐이 가까이 있는 양피지를 가져오고, 이실레아는 말하지 않았음에도 펜과 잉크를 쥐었다. 드낙은 빠르게 써나갔다.

‘킹슬레이가 원하는 것은 나와의 상부상조(相扶相助).’

북부의 가장 큰 세력이 킹슬레이가 되었으니, 불파겐과 이제 서로 돕고 사는 것이다. 드낙을 일등공신으로 해주는 데 힘을 쓰고, 그 대신 불파겐이 먹을 것을 조금 줄여 자신이 먹는 것이었다.

드낙으로서는 일이 쉽게 잘 처리가 되는 값을 치른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렇게 분노할 일은 아니었다. 알아서 교통정리를 해준다는데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물론 통수를 칠지 어떨지 모르지.’

북부에 대한 깊은 의심! 마치 병과도 같았다. 모든 걸 알아도 진짜로 그렇게 할지는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통수에 통수의 통수가 진짜로 벌어질지 몰랐는데 그만큼 북부의 규합력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었다.

‘나에게 밀서를 보내서 친구 하자고 해도 이젠 내가 싫다, 이 말이다.’

북부에게 자신이 이제는 다름을 보여줘야 했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그럴듯하지?”

“예. 확실히 킹슬레이는 이번에 북부 최대 세력이 되었습니다. 영주님께서 적으신 대로 움직인다면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이실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드낙을 새삼 새롭게 보았다.

“킹슬레이를 통한다면 북부를 휘어잡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 걱정을 덜 수 있습니다.”

겐은 외척이 많은 동부의 상황을 짚었지만 드낙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단은 무조건 동부를 떡상시켜야 한다.’

어차피 중립신의 챔피언인 드낙이었다. 그는 언제나 승리자로 남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뒷배로 신을 가진다는 건 그러한 것이다. 겐 쟝의 충언이 제대로 들을 리가 없었다.

“킹슬레이 하나만 잡아두면 모든 게 해결되는 일이지.”

다시 전의 결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드낙은 거기서 더 펜을 놀렸다.

“몽펠리에와 파이룬은 많은 손해를 입었다. 그 피해를 동부가 책임진다면, 질 역량이 있겠는가?”

영지의 상황을 아는 두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 무인이라고 무력에만 치중한 게 아니다. 지휘관이라면, 응당 영지 내의 역량을 파악해야 했다.

10일을 싸울 수 있는데 전략을 30일 버티는 식으로 결정한다면 패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귀족은 가히 만능형 인재라서 총관과의 다양한 협력도 하고 있었다.

자유기사가 생뚱맞게 젊은 문인과 밀값에 대해서 논의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북부 7가문이 동부로 이주해와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게제라스 총관의 확답을 들을 수 없고, 내가 확답을 해준다면 총관의 위신이 깎이고 그를 가볍게 여기는 영주가 생길 터다.”

그렇게 말하며 드낙은 양피지에 백금 왕가와의 공조를 썼다.

“음.”

“너무 자극적인 말 아닙니까?”

두 사람 모두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실로 자극적이고, 결코 보여줘서는 안 될 추측이었다. 다른 북부 귀족들이 들으면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제국 전신갑주 사건만 봐도 충분히 가능하다.”

드낙은 더는 북부를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북부는 그대로 남부 왕국의 영토이기에 백금 왕가의 상을 받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시 재기를 꿈꿀 수 있습니다.”

이실레아는 드낙이 북부에 대해서 믿지 못한다는 뉘앙스를 표현하자 간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서둘러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드낙은 아랫사람과 곁에 둔 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다는 걸 잘 알기에 번개처럼 말을 내뱉었다.

‘길게이에게 힘을 줘서는 안 된다! 균형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마른 침을 삼키는 모습마저 드낙에게 보일 정도로 그녀는 순간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드낙이 지니는 〈북부에 대한 의심과 분노〉는 브릴리언트 가문에게 매우 위험한 신호였다.

늑대가 호랑이로 바뀌는 꼴이기 때문이다.

‘백금 왕가의 자원이 동부로 꾸역꾸역 들어온다면···’

많은 것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태가 좋았다.

“이실레아 경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 북부가 저희에게 수작질을 건다는 것은 좀 말이 안 됩니다.”

겐 쟝이 가장 현실적인 말을 했다. 그와 이실레아의 최우선은 서로 달랐다.

홀몸인 쟝 가문과 가문의 일원이 많은 이실레아는 판단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겐 경의 말이 맞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것을 말하고 싶기도 하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술을 한 잔 마셨다. 뜸을 들이는 모습에 두 사람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하지만 그 사이에 누구 하나 드낙이 뭘 말하려는지 대답하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백금 왕가가 일등공신인 나에게 제대로 된 상을 주겠는가? 아니다.”

두 사람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지금 하는 논공행상 자체가 드낙에게 불필요하며, 불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일등공신으로 떠받들어지더라도 상을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3왕자를 드낙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배를 불려줄 선택을 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쓸 것이다.

킹슬레이의 사막 기병들이 만들어낸 기적.

와이번을 향해 안전하지 못한 마법 장치를 끼고 날아오른 버팔로 나이트.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이실레아의 입술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절로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가문이 드낙에게 상을 줄 수가 있는가? 아니다.’

드낙은 그들의 신하가 아니기 때문이다. 협상과 상은 다르다.

고로, 이 판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오직 명분과 다른 가문과의 관계도를 올리거나 내려찍는 것뿐이었다.

뭘 해도 불파겐이 이득을 볼 상황이 아니었다.

누가 상을 주는가.

그 한 문장에서 얻을 수 있는 답이었다.

“······”

여기까지 드낙이 이야기를 하자 이실레아가 팔짱을 꼈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기 때문이고, 절로 추위를 느꼈다.

무시무시한 판단력이었다.

누구나 외친다. 다르게 생각하라고.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실레아는 공포를 느꼈다.

똑똑한 야수만큼 무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덤벼드는 야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도망치는 야수였다. 그렇기에 〈마브로스 리꼬〉라 불리는 검은 늑대를 두려워했다. 특별한 이름을 얻을 정도로 두려워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바뀌었지? 이번 전쟁에서 드낙은 대체 무슨 변화를 거치고, 무엇을 깨닫고, 어떤 식으로 성장한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드낙에 대한 평가가 아주 낮게 잡혀져 있었기에 이실레아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사냥꾼이 흔적의 조각조각을 살피며 결국 사냥감의 정체를 파악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것과 같았다.

이실레아가 공포를 느꼈다면, 겐 쟝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 대단하십니다. 저희는 체스판 안에 있으면 안 되는 형세였다니···”

두 명이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드낙이 웃음소리를 밖으로 내었다.

힘만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이 준비한 것으로 놀라는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뿌듯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판단한 것이다. 이제 살을 붙이는 것은 너희 둘의 몫이다. 잘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실레아가 뜨거운 물을 찾았다. 겐 쟝은 먹거나 마실 생각 없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킹슬레이고 뭐고, 이번 기회에 불파겐이 전과 다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비가 내리기 전에는 항상 먹구름이 끼는 법입니다. 북부 7가문을 통해서 먼저 흔들어야 합니다.”

이실레아의 말을 들은 드낙의 눈이 겐 쟝에게로 향했다. 그 또한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었다.

“병사!”

문을 열며 불파겐의 병사가 들어왔다. 시종 하나 없는 게 불파겐 세력의 현실이었다.

“이 말을 빠짐없이 전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그, 그것이···”

남의 말을 100% 그대로 그 뉘앙스를 살려서 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훈련받은 시종도 종종 실수를 할 정도였기에 결국 드낙은 양피지를 써서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훈련도가 낮은 불파겐 병사의 복장은 눈에 특히나 잘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겐의 방침 때문이었다. 아군 식별을 잘하기 위함이었다.

병사 7명이 북부 7가문에게로 향했다.

‘불파겐이 움직인다.’

물을 채우던 시녀가 빨리 걷는 병사를 곁눈질하며 물을 다시 바닥에 버리며 빠르게 다른 곳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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