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45화 (544/1,239)

545 <-- -->

저녁만찬이 열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오크 학살자! 드낙 불파겐 자작이시오!”

잔을 들어 올린 스틸리코 영주가 드낙을 칭송했다. 모두 합을 맞춘 것처럼 오크 학살자를 외쳐대었다. 드낙은 그저 웃으면서 잔을 함께 들어 올렸다.

“광역 마법을 홀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받은 혈통이오? 내 잔을 받아주시오!”

브레이브 영주는 드낙의 혈통을 드높였다. 그가 〈계승〉에 있어서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부분을 긁어준 것이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소. 브레이브 가문 또한 용맹함으로는 으뜸 중에 으뜸이 아니오.”

“하하하!”

수많은 귀족이 드낙을 추켜세우느라 바빴다. 드낙은 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참으며 광대뼈가 부러지도록 칭찬에 진정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이 어린 것들에게도 ‘예. 고객님.’이라고 말하고 살았다. 그래서 드낙은 쉬울 줄 알았지만 후회하고 있었고,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거 얼굴이 빨개져서 미치겠다.’

자신의 자존감은 생각보다 빨리 회복되었고, 커져 있어서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마음이 주체가 안 될 정도로 터질 것만 같았다.

서둘러 술을 석 잔 연달아 비웠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센베르그 영주가 냉큼 잔을 높이 들었다.

“전쟁영웅! 이번 전쟁의 주역 중의 주역! 북부를 지킨 수호자!”

불파겐! 불파겐!

수행원들이 추임새를 넣었다. 영주 중에서는 입만 그럴듯하게 놀리고 목소리를 크게 안 내는 자가 있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멜마론 영주였다.

“와이번 나이트를 위해서 내 시를 읊어보겠소!”

이벤트 성으로 피아스트 영주가 와이번 나이트를 위한 시를 말하기도 했다. 썩 좋은 시는 아니었지만, 박수갈채가 쏟아져나왔다.

‘죽어도 드래곤 나이트라는 말은 안 쓰네.’

〈드래곤 오크 라이더〉라고 말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드낙에게는 〈드래곤 나이트〉라는 단어는 절대 나오지 않고 그저 와이번 나이트라는 말만이 나왔다.

신경이 굵은 사람은 결코 모를 기분 나쁜 개짓거리였다.

“그는 진정한 메디오인이오!”

“맞소, 맞소!”

은근슬쩍 민족적으로 드낙의 공을 함께 먹으려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입으로는 똥도 황금으로 만들려고 하는 귀족들의 모습은 괴물 같았지만, 드낙은 내일의 달콤함을 위해서 오늘을 참기로 했고, 그들에게 맞춰주었다.

다음 날.

〈투구걸이의 기사〉, 겐 쟝은 아침을 해결하고, 드낙을 찾았다. 문 앞에서 잠깐 기다리는 사이에 그의 어깨가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습관처럼 보였다.

창을 쥐면서 〈계승〉의 가장 첫 줄이 그 습관을 시작하는 일이었다.

그냥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 나아갈 때 살짝 밑으로 움직이고, 뒤로 가며 평상시대로 되돌아갔다. 몸을 푸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이 겐 쟝이라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습관으로까지 굳어진 그 〈비전〉의 조각을 아는 자는 이곳에 그 누구도 없었다.

“들어오라.”

“예.”

문을 열며 겐 쟝이 깍듯하게 대답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수백 년 전에는 가주끼리 친구사이였어도 지금은 그런 것을 바라면 안 되었다.

‘나의 은인.’

드낙은 자신에게 기회를 준 자이며, 자신은 몰락한 가문의 자유기사일 뿐이다. 그것을 항상 마음과 뼈에 새기고 있는 게 겐 쟝이었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다.’

실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배경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들며 그저 좋은 검으로 사용되다 버려질 뿐임을 잘 알고 있었다.

‘밖으로 한 걸음 내디딜 때는 그걸 몰랐지.’

세상이라는 놈이 가진 무서움은 그 풍파를 맞아봐야지만 깨달을 수 있는 종류였다. 그렇기에 겐 쟝은 고개를 숙일 줄 알았다.

그 마음은 드낙이 독단적으로 자신에게 큰 자리를 내어주겠다고 말했을 때 더욱 커졌다. 드낙이 얼마나 게제라스 총관을 총애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군사에 해당하는 예산을 드낙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드낙의 발언은 겐 쟝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굳은 얼굴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드낙이 겐 쟝의 표정을 살피고 자신도 표정이 굳은 채 말했다. 그만큼 겐 쟝을 높이 사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주군께서 한 번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어서 일찍 찾아왔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드낙이 자리를 권했다. 서로 앉자마자 드낙이 턱짓하며 말했다.

“뭐가 문제지?”

“불파겐에서 오는 보급이 감감무소식입니다. 그게 걱정이라서 이렇게 서둘러 찾아왔습니다.”

불파겐 영지는 도렌과 이스핀의 무력이 있었다. 이류에 턱걸이를 하고 있었지만, 전신갑주가 있어서 어중이 떠중이들에게 죽을 놈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겐 쟝의 걱정은 합당했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데?”

“마력이 대단히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메시지 마법을 통해서 불파겐 마탑과 연결하여 소식을 들었으면 합니다.”

드낙은 조금 귀찮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겐 쟝의 말을 반대할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쌍둥이 성채에는 마법사가 없다. 더불어 마법 첨탑도 무너진 상태였기에 메시지 마법을 저 먼 〈불파겐 마탑〉이 있는 곳에 도달하게 하는 건 드낙밖에 할 사람이 없었다.

‘쩝. 나밖에 할 사람이 없긴 한데. 좀 그런데?’

드낙은 바로 답을 주지는 않았다. 왠지 아랫것의 명령을 듣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대신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오크에게 습격을 당했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지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토치라이트라면 습격을 여럿 받아서 이곳으로 오는 길이 쉽지 않겠지만, 저희 보급대는 편하게 오고 있을 겁니다.”

“만약 방해요소가 있다면 무엇이 있지?”

“피난민일 공산이 큽니다. 주군께서 시민을 대함에서 정을 많이 베풀고 있지 않습니까.”

윗사람이하면 아랫사람도 하게 되는 법이다. 눈치를 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 외라면···”

겐 쟝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괜찮다. 말해보라.”

“백금 왕가일 수도 있습니다. 길게이 왕자를 받아들였지 않습니까.”

“놈들이 움직였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오우거에게 시달리고 있지 않나.”

“모르지요. 이 기회를 놓치기에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글쎄···”

드낙은 조금 더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불파겐 중부에서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미완성된 마탑에 메시지 마법이 도달하는 게 나을 듯했다. 미완성이라고해도 견습 마법사가 있는 곳이 불파겐 마탑이었다.

“좋다. 하지만 거리상 내 마력을 2일은 마력탱크에 넣어야 한다.”

“그 말씀은···”

드낙이 어깨를 으쓱했다. 당장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무너진 마법 첨탑의 지하에 있는 마력탱크를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통짜 강철로 되어있는 마력탱크는 엄청난 양의 마력을 저장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같은 크기의 보석이다.

금화나 백금으로도 살 수 없는 큰 크기의 보석 덩어리가 마력저장에 최고였다. 그것을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강철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안 되면 바위를 쓰기도 했다. 결국 크기만 크면 장땡이라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문제는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냐였다. 그렇기에 강철이 자주 쓰였는데 마법 첨탑의 지하까지 가져다 놔야 했다.

“···못해도 7일은 걸릴 텐데, 그래도 괜찮겠지?”

겐 쟝은 마지 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준비 없이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드낙은 곧장 마법 첨탑이 무너진 곳으로 향했다.

“하으아! 두으아!”

하나, 둘을 외치며 밧줄을 당기는 병사들이 보였다. 잔해를 치우는데 끙끙거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통나무를 옮기다가 한 명이 기울어져서 통나무가 영 좋지 않은 곳에 꽂혀서 꺼내고 있었다.

“누가 빨리 내려오나! 천천히 내려온다!”

“밧줄을 잡아라, 항상!”

혼잡한 곳에서 기사들도 몇몇 보였다.

병사들이 다치지 않게 관리, 감독하고 있는 듯했다.

“불파겐 자작께서는 어쩐 일로 이곳에 오셨소?”

기사 하나가 냉큼 쪼르르 달려와서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드낙에게 목례를 하며 말했다. 다급하게 달려온 것치고는 하오체를 쓰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드낙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마력탱크를 좀 써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지하실로 가는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줄 수 있겠소?”

“어렵지는 않소. 따라오시오. 내 안내해주겠소.”

기사가 앞장섰다. 온갖 잔해물 속에서 새하얀 손가락이 삐쭉 튀어나와있는 걸 보며 드낙은 잔해를 걸어갔다.

“여기 무너진 곳만 치우면 내려갈 수 있습니다. 마법첨탑이 그래도 깔끔하게 무너져서 그나마 가장 빨리 치울 수 있는 곳입니다.”

드낙은 거침없이 삽을 어깨에 걸쳤다.

“우와아아!!”

아무리 큰 벽도 히드라의 타투를 사용하는 드낙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허무하게 들어 올려졌다. 병사들이 탄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놈은 일을 잘하는 놈이었다. 그보다 더 인기 있는 놈은 일도 잘하는데 웃긴 놈이다.

마력 탱크를 끌고 밖으로 가져온 드낙은 먼지투성이였다. 겐 쟝은 준비한 물 먹은 천을 건네주었다. 드낙은 그것으로 적당히 얼굴만 닦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너무 급하게 움직인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많아서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불파겐 영지의 소식을 듣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만두지는 않았다. 마력탱크에 마력을 가득 채우는 드낙의 눈에 주홍빛으로 가득 물들고 있는 세상이 보였다.

내일마저 채운다면 메시지 마법을 쓸 수 있을 것이고, 2일 내지는 3일 이내에 불파겐 마탑에 메시지 마법이 도달하여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마력은 전기나 빛 같은 자원이 아니었다. 마력의 속도를 억지로 높이는 수도 있었지만, 효율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하루를 더 마력을 모으면 그게 그거였다.

〈반 킹슬레이〉.

위풍당당한 3만의 군세가 쌍둥이 성채에 도달했다. 기병이 1만이었고, 보병이 2만이었으며, 짐수레와 마차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에리트레아(Eritrea)〉영지에서부터 시작된 극한의 청야 작전으로 모을 수 있는 것은 진작에 모아놓았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독하게 버릴 건 버릴 수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취한 것도 많았다.

이미 전쟁의 모든 것이 끝난 상황임에도 킹슬레이 공작은 병사를 가르지 않았고, 돌려보내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킹슬레이의 처지를 알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전쟁을 끝내? 웃긴 일이지. 우리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을.’

불파겐이건 몽펠리에건 오크 주력 4만을 쳐부수지 말았어야 했다. 2만이 죽건, 3만이 죽건 알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킹슬레이의 이름이 이 〈오크 대침공〉에 큰 전공 하나 남기지 못한 것이다.

아들 하나가 죽었지만, 덤덤한 모습으로 가문의 이익만 생각하는 모습은 실로 독하기 짝이 없어 보였지만, 이것이 북부의 문화였고 귀족 사회의 모습이었다.

인간은 한정적인 명줄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죽는다. 하지만 가문은 계속 역사 속에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문화가 자리 잡았고, 그들 가문원은 가문을 위해 죽을 수 있었다.

그게 귀족의 힘이었다. 동시에 귀족의 약점이기도 했다.

성문은 진작에 열려 있었고, 반 킹슬레이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이들이 마중을 나와서 반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속에는 드낙 또한 있었다.

“불파겐 자작! 엄청난 공을 세웠다고 들었소. 축하하오. 그대에게는 첫 대규모 전쟁이 아닌가? 북부의 멸망을 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드낙은 겸손하게 나왔다. 약간 경직된 모습에 반 킹슬레이의 눈이 빛났다.

‘나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나보군.’

월급을 받는 직장인은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꼼짝도 못 하는 법이다. 원하는 게 있는 자는 그것을 줄 수 있는 자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내 형제의 가문, 에리트레아 영주는 어디에 있나! 하하하!”

킹슬레이는 호탕하게 외치며 서쪽에서 가장 먼저 오크를 맞이한 에리트레아 영주를 찾았다. 그가 킹슬레이의 말을 그대로 들어줬기 때문에 청야 전술을 제대로 펼칠 수 있었고, 재빨리 펼칠 수 있었다.

그것이 킹슬레이의 전력을 아껴주었다.

반드시 챙겨줘야 할 서쪽의 영주였다.

========== 작품 후기 ==========

5772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