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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드낙은 서둘러 움직였다. 새벽 수련마저도 하지 않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실로 기사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와이번! 와이번! 드래곤 나이트!’
군침마저 돌 정도였다. 특히나 와이번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검은색 와이번은 진짜 멋있었고, 한국인 남자 특유의 갬~성과 딱 맞아떨어졌다.
검은색 중형 세단보다도 멋진 것이 검은색 와이번이었다. 연비가 나쁘던 4금융 5곳에서 돈을 빌려 할부로 타던 일단 지르는 것이 남자의 로망 아닌가.
잔뜩 흥분한 상태로 드낙은 새벽녘에 〈검은 비늘 와이번(Black Scale Wyvern)〉을 획득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성질 급하게 드낙이 소리쳤다.
“카이야!”
새하얀 까마귀가 단번에 하늘 높이 솟구쳐올랐고, 드낙 위를 두 바퀴 선회하더니 이내 방향을 잡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분명히 살아있어. 시체가 없으니까.’
도네투스가 죽었기 때문에 와이번은 오크 주술사를 죽이고 다시 야생으로, 저 드넓은 백설산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상처를 입고 있었고, 휴식했다고 해도 전투를 여러 번 치렀기에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사냥하거나 휴식도 하면서 향할 것으로 여겨졌기에 쫓아갈 만했다.
“히힝!”
말이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드낙이 고함을 질렀다.
“뭐 하는가! 문을 열어라!”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건방진!’
열이 났지만 속으로 참았다.
드낙이 말을 여러 필 데리고 대로를 달렸음에도 병사들이 성문을 열지 않자 드낙이 고함을 질렀다. 투구를 쓰고 있었기에 선임 병사로 보이는 자가 다가와서 공손하게 말했다.
“성문이 열리는 시간도 아닐뿐더러, 기사님의 존함을 알지 못해서 열지 않았습니다.”
“드낙 불파겐이다. 성문을 열어라.”
“예. 혹, 어디로 가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분명 묻는 귀족들이 많을 것입니다.”
병사의 말에 드낙은 짧게 대답했다.
“드래곤 오크 라이더가 타고 다니던 와이번을 추격하려고 한다. 오크의 손에 돌아갈 수는 없지 않겠느냐.”
“예! 성~문! 열, 엇!”
병사가 독특하게 말을 끊으며 외쳤다. 어둠 속에서 적군의 첩자가 성문을 열라고 지시할 수도 있었기에 그렇게 외치는 것에도 운율의 암호가 깃들어있었다.
끄그그긍!
성문이 열리자마자 드낙이 그대로 빠져나갔다. 살짝 날개를 펼쳐서 바람을 막으며 내려오며 속도를 늦추던 카이야가 다시 몸을 기울더니 속도를 높였다.
“가자!”
드낙의 말에 말들이 서로 대답하며 달려나갔다.
반나절을 내달려서 겨우 와이번과 만날 수 있었다.
‘개쩐다.’
작은 바위로 이루어진 언덕에서 오크들이 데려온 것으로 보이는 산멧돼지를 뜯어먹고 있었다. 산멧돼지의 꼬리에는 붉은 천이 묶여 있었는데, 죽으면서 흘린 오물로 천의 색이 변색되어있었다.
콰드득!
뼈를 부수며 그대로 입안으로 털어 넣는 와이번의 모습에 드낙이 미소 지었다.
그 강함! 존재감!
그의 등판에 있는 혼란무도의 타투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고, 검은 비늘 와이번의 흉흉한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기세를 뿜지 않았음에도 와이번은 존재감이 대단했다.
“식사를 마저 끝내라.”
“크르르···”
와이번은 대답하듯이 으르렁거리며 다시 산멧돼지를 뜯어먹었다. 드낙은 그 사이에 와이번의 주위를 한 번 돌았다. 제대로 길들었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혼란무도의 타투와 조련술의 업은 서로 상생(相生)하는 면이 있었기에 도네투스보다 강력한 제어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바로 와이번에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진짜 용처럼 보여서였다. 또, 와이번의 모습을 거리를 두고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길다.’
몸길이는 못해도 7m는 되어 보였다. 몸길이에 비해서 폭이 좁아 보여서 매우 날렵해 보였지만, 7m짜리 몸길이가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다.
몸을 돌리며 꼬리치기만 해도 집들이 무너질 것이다.
날개는 접혀 있어서 어느 정도로 긴지는 알 수 없었다. 드낙의 시선이 와이번의 두 발로 향했다.
와이번의 발은 누가 봐도 흉악했다. 어찌나 긴지 간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내려찍는다면 탱크조차도 관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못해도 50cm는 넘어 보이는데. 거의 공룡이네.’
멀리서 봤음에도 뒷발은 특히나 굵고 두툼한 게 너무 잘 보였다. 길쭉한 몸을 지녔기에 이에 대비되어 더 굵게 느껴졌다.
와이번 발의 형태는 독수리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크기 자체가 차원이 다르게 컸다. 호랑이의 발과 비교해도 더 두꺼울지도 몰랐다. 발가락은 4개에 달했다.
‘잡히면 다 으깨버릴 것 같은데.’
사람은 물론이고 몬스터의 두개골도 부술 수 있어 보였다.
“가만히 있어!”
드낙의 말에 와이번이 혓바닥으로 이빨을 구석구석 핥다가 멈칫했다.
녹색 도끼가 빚은 〈혼란무도의 타투〉와 중립신이 새로 빚어서 드낙에게 스며들도록 만든 〈혼란무도의 타투〉는 신이 달랐기에 그 효과도 미묘하게 달랐다.
녹색 도끼는 와이번의 자유를 높이고, 도네투스와의 협력을 하도록 했다면, 중립신은 맹목적인 목줄을 와이번의 목에 채운 것과 같았다.
전략가가 좋아하는 것은 확정적인 수치와도 같이 고정된 값을 지닌 요소들이었다. 중립신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검은 비늘 와이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드낙이 원할 때, 목숨이라도 버리도록 강한 강제력에 지배당했다.
‘잘 먹히네.’
드낙이 와이번에게 다가가서 오른손의 강철 글러브를 벗고, 맨손으로 피부를 만져보았다. 촉촉했고, 피부에 닿자마자 마비된 것처럼 감각이 이상해졌다.
‘피부에 독이 있네.’
그제야 드낙의 눈에 도네투스가 탈 수 있도록 털가죽이 여러 겹 걸쳐져 있는 게 보였다. 와이번의 덩치와 거대한 발톱에 미처 보지 못했고, 검은색 털가죽이라 눈에 확 들어오지 않은 탓도 있었다.
털가죽의 위에는 등자가 놓여 있었고, 강하게 묶여 있었다. 이 등자 또한 검은색이었다. 드낙은 곧바로 등자에 올랐다. 시야가 단번에 높아졌다.
“가자!”
말은 버리고, 와이번을 타고 드낙이 날아올랐다.
“우와앗!”
드낙은 압도적인 속도감에 오금이 저리는 걸 느꼈다. 창문 없는 비행기에 올라탄 기분이다. 하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짜릿했다.
초저녁에 시작된 비행은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쿠웅!
무너진 폐허에 내려앉은 와이번에서 내린 드낙은 병사들을 기다렸다. 성벽에 있던 병사가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일으켰기에 곧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 뻔했다.
“보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어둠. 반딧불조차도 환하게 보일 때가 있으니.
아무리 어둠이 커도 작은 빛은 꺼트릴 수 없음이다.”
드낙이 주문을 읊으며 토끼 똥 같은 작은 푸른색의 빛을 곳곳에 퍼뜨렸다. 그리고 투구를 벗었다.
“불파겐 자작님 아니십니까. 그 와이번은 대체 무엇입니까?”
몽펠리에의 기사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는 드낙을 크게 대접하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북부는 무너졌고, 기댈 곳은 불파겐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헉헉!”
뒤로 헐떡거리는 병사들이 3명 있었다. 그 뒤로 속속들이 병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드낙은 기사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내가 길들였소. 와이번에게 접근하지 말라 하고, 먹을 것이나 좀 내어주었으면 하는데, 부탁 좀 하겠소.”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드낙의 부탁에 기사가 어려움 없이 대답했다. 이곳에서는 드낙이 철저한 갑이었다. 그런 갑이 형식적으로라도 부탁조로 말하니 오히려 감사할 지경이었다.
와이번을 뒤로 하고, 드낙이 내성으로 들어섰다. 그가 방을 하나 얻어서 뜨거운 물에 씻고 나오자마자 아크온이 가장 먼저 드낙의 방을 방문했다.
‘서로 순번을 정해놓았겠지.’
“몸은 괜찮나?”
“어디서 들었지? 이제 괜찮다.”
인간의 몸으로 하늘로 솟아올라 와이번에게 상처를 준 대가는 컸다. 하지만 아크온의 혈통은 상당했고, 하루 만에 떨쳐 일어났다.
“공에 대해서 이야기는 잘 되었어?”
“킹슬레이가 와야지 제대로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그저 쓸데없는 말에 불과해.”
엄청난 인명피해를 겪은 것이 몽펠리에고 파이룬이었다. 이실레아와 팬크리스 영지군도 이곳에서 일어난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킹슬레이를 챙겨주겠다고?’
드낙의 표정이 변하자 아크온이 웃었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킹슬레이는 확전(擴戰)을 원하게 될 것이다. 북부의 절반이 오크에게 빼앗겼지만, 그걸 되찾으려고 하게 되겠지.”
“그걸 막는다고? 왜?”
“백금 왕가가 재미를 보기 때문이다. 보급은 언제나 문제지.”
오크 4만을 털어먹은 전투다. 사방팔방으로 승리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나갈 것이고, 백금왕가의 입지는 낮아질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부에 있는 마신장의 던전으로 공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킹슬레이가 백금 왕가의 지원을 받아들일까?”
“적어도 군대를 일으켜서 여기까지 와놓고 큰 소득 없이 돌아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드낙이 혀를 찼다.
‘그놈의 자존심이란.’
남들이 하는 거 일단은 다 따라 해보고 싶은 심리나 다름없었다. 누가 해외여행 갔다 오면 왠지 자기도 가야 할 것 같고, 누가 결혼했다 하면 자기도 서둘러 결혼해야 할 것 같고. 그런 심리나 다름없었다.
같은 전쟁을 경험했지만, 공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킹슬레이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오크 주력이 박살 났으니, 해볼 만하다고 여기겠지. 불 보듯 뻔해.”
단단히 가드를 올린 놈보다는 한 번 다운 된 놈이 더 쉬워 보이는 법이었다. 그런 킹슬레이를 막기 위해서는 거래가 필요했다.
“아쉽지는 않나 봐?”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리가. 이 방법이 가장 좋아서 하는 것뿐이다.”
아크온이 따라놓은 술을 마셨다. 드낙도 거기에 맞춰서 술을 입에 대었다.
“만약 킹슬레이가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흐흐. 내가 왜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겠어?”
킹슬레이를 설득하기 위해 드낙이 나서야 한다는 소리였다.
‘흠. 백금 왕가가 민심에서 멀어지는 것이니, 나쁘지 않다.’
안 그래도 재수 없는 놈들이다. 다른 곳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백금 왕가를 쥐어박고 싶었다. 그것을 잘 노린 생각이었다. 왜 아크온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생각이야.’
드낙이 원하는 그림을 대신 그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백금 왕가는 어떻게 나올 것 같냐?”
“흥. 제대로 검을 휘두르지도 못하는 놈들이야. 지원이나 많이 해주는 것으로 끝내겠지.”
아크온은 그렇게 말하며 술잔을 들며 드낙에게 흔들며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원하는 걸 말해 봐. 킹슬레이나 다른 가문들이 모였을 때 그들도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어?”
아크온 몽펠리에는 드낙이 원하는 것을 다른 가문에게 말하면서 자신들의 입지 또한 늘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낙의 최측근 노릇을 대신하고, 그 위세를 통해 이득을 보는 것이다.
“북부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드낙은 딱히 자신들의 영토조차 못 지키게 된 북부에게 요구할 것이 없었다. 한다면 정치적인 요구였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우군인 북부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했다.
“우리 대신 오크가 건재하다는 것이 보여줬으니, 괜찮지. 북부의 저력도 충분히 느꼈을 것이고.”
좋은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게 몽펠리에의 상황이었다. 백금 왕가를 협박해서 더 뜯어내기에는 여력이 부족했고 낙엽은 보름 내로 다 떨어져 나가고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드낙 또한 진짜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팔다리 잘린 놈에게 검을 쥐여주는 꼴이었다.
“영토를 잃은 7가문은 어떻게 되지?”
“살아남은 영지에서 장원을 받으며 힘을 키우도록 해야겠지.”
그 말에 드낙이 잘 됐다 싶어서 아크온에게 부탁했다.
“그들과 자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뭘 하려고?”
드낙은 어깨를 으쓱했다.
“동부는 빈 땅이 많으니까.”
아크온이 반문했다.
“동부가 그럴 땅이 있나?”
이 시대의 지도는 영향력에 따라서 그 크기가 결정되곤 했다. 제대로 된 척도가 없어서였고 발을 직접 걸어 거리를 측정하는 자가 없어서였다.
조선의 지도에 일본이 작게 그려진 것과 같은 이치였다.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한 번 자리를 만들어줘.”
몽펠리에가 주선을 한다면, 일처리가 더욱 빠를 것이다.
‘처우가 안 좋으면 결국 남부의 재력에 하나, 둘 넘어가겠지.’
‘친북부 성향을 지닌 드낙이 더 낫다.’
“좋아. 그렇게 해보지.”
아크온이 호탕하게 말했다. 7가문에게 선택지를 하나 더 주는 것은 몽펠리에에게 나쁜 것이 아니었다. 부담감도 줄어들 것이고, 킹슬레이에 붙을 가능성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도 장원보다 더 큰 땅을 얻을 수 있었다.
일석삼조였다.
‘중요한 안건은 모두 처리했다.’
킹슬레이에 대한 처우. 백금 왕가에 대한 대응. 자신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드낙의 태도. 살아남은 북부의 가문이 짊어져야할 〈북부 7가문〉에 대한 것.
술병을 하나 더 딴 아크온이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와이번은 대체 어떻게 길들인 거야? 배울 수 있는 건가?”
가장 흥미가 나는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와이번을 죽도록 패니까 말을 듣더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와이번이 무슨 짐승이야?”
자정이 넘도록 술자리가 길어졌다.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우정을 확인했다.
적어도 몽펠리에가 불파겐에게 칼을 겨누거나 그 반대가 아니라면 그 우정은 끝까지 갈지도 몰랐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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