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40화 (539/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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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중립신의 표정을 살폈는데 무감정 그 자체였다. 그런 모습에도 드낙은 절대 안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명거리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임회피는 현대인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중에서도 가장 으뜸에 있는 과목이었다. 책임을 회피할 줄 모르면 고생만 하다가 욕은 욕대로 먹기 쉽다. 자기 자리도 못 지키기 쉽다.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오크의 생태, 그 성격과 특징을 생각하면 도네투스를 굴복하게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마치 인간이 강아지에게 굴복하는 것과 같았다.

양아치가 어제까지 빵셔틀로 쓰던 놈에게 진정으로 굴복한다? 이성적으로는 가능해도 감성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오크는 감성적인 종족이었다. 그들은 현실에서 망가져도 굴복하지 않을 터였다.

도네투스의 발악을 보며 드낙은 그것을 깨달았다. 와이번을 타고 있지 않은 오크를 죽이는 일은 쉬웠지만, 오크를 죽이지 않고 굴복시키는 일은 어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드낙에게 중립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드낙이 가려워하는 것을 먼저 긁어주는 노련함을 보였다.

“전초극의 오른팔이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녹색 도끼〉라 불리는 오크신 때문이다.”

드낙이 오크를 많이 죽이면서 자연스럽게 녹색 도끼는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드낙이라는 인간 개체가 중립신의 챔피언이라서였다. 녹색 도끼의 입장에서는 웬 신의 꼭두각시가 자신의 아들과 딸을 죽이고 있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왜 녹색도끼는 손을 직접 쓰지 않았습니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드낙이 묻자 중립신이 간단히 대답했고,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

“오크 때문이지.”

화가 났다고 해도 녹색 도끼는 스스로의 힘으로 드낙을 죽이지 않았고, 중립신의 개입에 어느 정도의 압박을 넣는 것으로 끝냈다.

모순적인 행보였다.

“모든 것이 오크 때문이다. 녹색 도끼는 그에 맞춰준 것이다.”

오크는 자존심이 높았기에 녹색 도끼라는 아버지의 손을 빌렸다는 걸 알게 되면 큰 자괴감에 빠지고, 자존심이 상할 것이 뻔해서였다.

자존심 높고, 독립한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 압박하여 승진시켜주는 꼴이었다. 대쪽같은 아들을 둔 녹색 도끼였다.

또한, 수많은 차원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오크라서 많은 힘을 집중할 수도 없었다.

설명을 들은 드낙은 고개를 자연스럽게 끄덕였다. 그 또한 오크가 어떤 놈들인지 잘 알았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었다. 세계 멸망의 위기 속에서도 적당히 타협은 하겠지만 그 속에서도 개인플레이를 할 놈들이 오크라는 놈들이었다.

‘그래도 위험한 거 아닌가?’

드낙은 걱정이 엄습했다. 중립신의 권능조차도 무력화시킬 정도다.

매우 위협적인 힘이다.

“녹색 도끼가 그렇게 오크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때에 따라서 위험한 것 아닙니까?”

신답지 않은 게 녹색 도끼였다. 들어보니 보통 팔불출이 아니었다. 또한 기괴한 사랑이었다.

이에 대해서 중립신은 확실하게 답을 내어주었다.

“그는 오크에게 사랑을 베풀지만, 오크들의 생각을 먼저 위에 올려둔다. 거기에 정복욕 또한 없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녹색 도끼는 차원계를 정복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스스로의 생각보다는 오크를 먼저 생각하는 면모가 강했다. 그덕에 오크가 설사 멸망하더라도 그 길을 끝까지 지켜보고, 상대가 사기를 치면 적당히 견제하는 것에 그쳤다.

오크의 혼은 죽어서 그 업과 함께 녹색 도끼에 돌아가기 때문에 오크가 죽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그 업의 고리만 건들지 않는다면 녹색 도끼가 현신(現身)할 일은 없다.”

드낙은 그 말을 듣고 결국 신이 존재하는 알고리즘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업의 고리〉.

인신이건 오크신이건 결국 종족신의 개념으로 보였고, 그곳에서 항상 언급되는 것이 업이었다. 죽으면 개체가 쌓은 업은 신에게 돌아가고, 그것은 신의 힘이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마신장(魔神將)이고, 마신(魔神)이다.”

“마신은 정복욕이 있습니까?”

“그런 경우도 있었고, 아닌 예도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신이 마신이다.”

중립신조차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마신 성현이라는 신이었다.

“드워프와 마신장이 공멸하면 좋겠지만, 평범한 오우거가 아니니 힘들지도 모른다.”

꿀꺽.

드낙은 마른침을 삼켰다. 보통 오우거라면 〈오거 야크트(Oger Jagd, 오우거 사냥)〉가 있다. 하지만 〈마신장(魔神將) 오우거(Ogre) 발라쿠(ballakeu)〉의 신장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소문으로는 보통 오우거의 2배~3배로 10미터~20미터나 된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오우거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릇의 붕괴까지 겪고 있는 발라쿠였기에 가능한 덩치였다.

드낙은 그것을 토벌해야 할 때가 올 수 있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10~20m짜리 오우거를 어떻게 잡아.’

보통 신장이 6m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드낙의 신장은 이제 고작 190cm를 넘어섰다. 어른과 아기가 주먹다짐을 하는 꼴이었다.

드낙은 살짝 중립신의 눈치를 보았다. 이렇게 말을 해보니 화가 나지 않은 듯했고, 그냥 덮으려는 듯이 보였다.

‘궁금하고, 걱정된다.’

물론 드낙은 그냥 덮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도 중립신과 함께 한 배를 탄 사람이었다. 대계가 틀어졌으면 어찌 되는지 알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살기는 싫었다.

‘이제는 물어봐도 괜찮은 관계 아닌가?’

드낙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중립신이 그 기색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하고픈 말이 있다면 말하라. 나의 챔피언아.”

“예? 아···”

드낙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득과 손해를 파악했다.

‘중립신이 그냥 덮고 싶으면 덮어주는 게 그에게 좋기는 하겠지.’

그게 드낙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가? 경쟁자도 없는데 점수를 따봤자 소용이 없었다. 더군다나 오크를 그렇게 죽였음에도 도네투스가 지닌 중요한 타투 두 개를 먹은 게 전부였다.

오히려 중립신이 드낙을 잘 챙겨줘야 했다.

“드래곤 오크 라이더가 제 손에 죽었고, 대계가 무너졌는데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다.”

그 말에 중립신은 막힘없이 입을 열었다.

“그대는 대계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그저 큰 계획이라고 생각하느냐?”

“큰 그림 같은 게 아닙니까? 대국적으로 본다든가···”

썩 나쁘지 않은 대답이었다. 동시에 핵심에 한 다리 걸치는 반쪽짜리 대답이기도 했다.

소위 전략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들이 그럴싸하게 대단하게 보는 시선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인식이기도 했다.

“현실은 예측하기가 힘들다. 당장 1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이 변할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예. 맞습니다.”

드낙은 맞장구를 쳐주었다. 중립신이 가지고 있는 대계(大計)가 어떤 것인지 들을 기회였다.

“이번 전쟁만 봐도 그렇다. 토치라이트 가문의 입장에서 네가 자신들을 도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가?”

“아닙니다.”

“오크보다 인간들이 더 넓게 흩어져버려 뭉치지 못한 것을 오크들이 노리고 한 일이던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통나무를 끌어안고 날아오면서까지 빠르게 전투에 참여하리라 예상한 자가 있는가?”

“없습니다.”

“그렇다. 없다. 누구나 예견하고 예언하며 앞을 내다본다고 해도 웃기는 소리지.”

중립신이 딱 잘라서 말했다.

“녹색 도끼의 힘을 빌려서 예언한 주술사들도 단편적인 과정과 결과만을 들었을 뿐이다. 또한 변수는 언제나 변화를 일으킨다.”

도네투스는 예언 때문에라도 예언을 부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그의 죽음으로 향했다.

결과론적으로는 예언대로 이루어졌지만, 과정은 결코 처음의 예언과 달랐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나조차도 후의 일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계는 존재한다.”

“······”

드낙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가지고 있는 전략의 재능은 인간의 이해를 아득하게 뛰어넘었고, 그 스스로 그것을 말한다고 한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과정이 변하고, 결과가 비틀려도 결국에는 대계는 성공하게 된다는 말이다.”

한 번 더 중립신이 설명해줬지만 드낙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전략이라기보다는···운명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운명을 짜내는 전략이라니?’

“어째서 그렇습니까? 전략이라는 것은 수립하고 제대로 이어져 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전략은 모래로 쌓은 성과 같다. 하나라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무너지는 전략이라니, 말해봤자 입이 아프다.”

제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패배한다면 삼류의 전략이다. 운조차 못 이기고, 역전의 기회를 잡을 실력도 없는 전략가들의 말로다.

드낙은 중립신의 말에 다른 질문을 했다.

“허면, 실력이나 운으로 기회를 잡고 어떻게든 굴러가게 것이 전략입니까?”

“그것 또한 우습다. 운이 안 따라주면 그림을 망칠 뿐이고, 기회를 잡아도 일희(一喜)에 그칠 것이기 때문에 한 번의 전투를 위해 고민하는 전술가의 마음가짐과 다를 바 없으니,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톱니바퀴처럼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가는 전략도 아니고.

운이나 기회를 잡는 전략도 아니다.

“그럼 대계는 무슨 전략입니까?”

“여기에서는 패배하고, 저기에서는 승리하고 그것이 엮인 실타래를 풀려면 얼마나 힘들겠느냐. 그러니 애초에 승패에 연연해 하지 않고, 이기고 지고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잡는 것이야말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드낙은 중립신의 말에 손자병법의 말이 생각났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라고 했나. 그런 말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드래곤 오크 라이드를 죽이건 말건 하등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상관이야 있겠지. 왜 없겠는가. 오크는 규합력을 잃었고, 서로 경계하며 자신이 속한 부락만의 성장을 원할 것이다. 규합된 국가의 모습은 다시 보기 힘들게 될 터다.”

부락 사회와 국가 사회는 현격한 국력의 차이가 있었다.

이것이 만들어내는 태풍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제국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중립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 애초에 그런 과정은 크게 상관이 없다.”

중립신은 한 호흡을 쉬며 드낙이 이해할 수 있게 말했다.

“뛰어난 전략가는 항상 차선책이 있겠지. 대계는 끝없이 변화하여 상황에 맞게 움직일 것이다.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의 과정이 무너져서 대계를 파기해야 한다면 그 대계를 설계한 자가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어떤 돌발상황에서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내가 만든 대계다.”

이런 일로 무너질 그림이라면 중립신은 그저 도박판에서 올인을 외치며 일어선 정신 나간 도박꾼일 뿐이다.

운을 탓하기보다는 그 운에서 벗어나고.

실력을 탓하기보다는 그 실력이 만들어내는 결과조차도 과정으로 삼으며.

흐르는 세상에 맞춰서 언제든지 그에 맞춰갈 수 있는 전략.

그것이 중립신이 만든 대계라는 전략이었다.

그제서야 드낙이 중립신의 대계가 지닌 힘을 깨달았다.

‘미친.’

소름이 돋았다.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 안에 있는 손오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말을 하는 중립신이 대단히 오만해 보였고 동시에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사기꾼〉 같았기 때문이다. 왠지 〈거짓말〉 같았다. 드낙의 〈촉〉이 꿈틀거렸다.

믿지 못하는 드낙을 보며 중립신이 말했다.

“믿지 못하는구나.”

“아닙니다. 믿습니다!”

중립신이 손을 들어 올려 저었다.

“그대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챔피언으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

“만약 내가 백금 왕가를 겨울에 몰락시키고, 남부 왕국을 귀족정으로 다시 세우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하겠느냐?”

“예?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점령해도 그곳을 채울 수가 없었다. 엄청난 반대가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고 남부 왕국은 갈가리 찢길 터였다.

그 대단하다고 칭송받던 젊은 왕, 알렉산더 대왕조차도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자마자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아무리 강하고 강하다 한들 국가를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소문 하나만으로도 전쟁이 일어난다.

“좋다. 그렇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드낙이 냉큼 말을 바꾸었다. 하지만 중립신은 그런 드낙에게 단언했다.

“그대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다고 여겨서 하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 너는 세상의 움직임에 따라서 늦든 빠르든 플래티넘 왕가를 멸문하게 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검은 꿈에서의 일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드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결국 중립신이 말하는 바는 아무리 자신이 발악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지금까지 얼핏얼핏 보여주던 중립신의 의심스러운 모습 때문에 드낙은 마음이 갑갑해지는 걸 느꼈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도 중립신이 그에 대처할 수 있다면···’

애초에 부딪치는 의미가 없다.

중립신이 말하는 최고의 전략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말하는 운명과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은 반대로 드낙에게 운명과 대적할 수 있겠냐는 소리와 같았다. 그게 얼마나 큰 용기를 지녀야하는지 드낙은 알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경고와도 같았고, 그렇기에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두려울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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