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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수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뿐!’
그게 오크의 방식이다. 동시에 도네투스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오크다운 것이었다.
‘놈을 죽이고, 되돌아간다!’
예언의 전사를 죽이고, 예언을 부순다.
도망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상대가 찰거머리 같은 놈임을 알아차린 지 오래였다.
‘뒤를 보여줘서도 안 되는 인간.’
특히 음흉한 면모를 처음에 보였기에 죽이지 않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욱신.
무엇보다 현재 도네투스의 오른발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고, 뒤이어진 혹사로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고, 애초에 선택지에도 없었다.
그는 오크였다.
“죽어라아악!”
도네투스가 악을 내질렀다. 악을 질러야지만 싸워나갈 수 있었다. 정신은 매 순간 깎여져 나갔다.
후우우웅!
거대한 도끼가 드낙을 쪼갤 듯이 휘둘러졌다.
드낙은 〈강철이 흐르는 강(Steel flowing river)〉으로 막아섰다. 흘리지는 못했는데, 워낙 큰 힘이 깃들어져 있어서 제대로 안 막으면 역으로 당할 뿐이었다.
‘피하거나 회피하려 한다면 리치에 파묻히고, 흘리려고 한다면 그대로 몸에 도끼가 박힌다.’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 작은 힘으로 천근을 고꾸라뜨리는 힘이라는 것은 먹질을 하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반푼이들의 망상에 불과했다.
세상 편하게 살려고 발악하는 놈들이 지니는 영양가 없는 헛소리다.
큰 힘을 상대로 편하게 막고 싶은 놈을 기다리는 건 허무한 죽음뿐이다.
카앙!
‘지랄도 개지랄이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꼈다. 동시에 〈전초극의 오른팔〉이 이놈을 상대로는 사용되지 않는 것도 드낙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녹색 도끼와 중립신이 손을 놓고 말들이 싸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콜로세움의 노예 검투사가 된 기분이었다.
주르륵!
드낙의 몸이 붕 떠서 두서 걸음 밀려났다. 흙이 피와 뒤섞인 진창이었기에 가능한 수법이었다. 환경을 이용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처럼 무인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다.’
도네투스의 힘을 고스란히 받는다는 것은 피해를 반드시 입는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피해를 좀 입더라도 그 힘에 편승하는 게 옳은 방법이었다.
흘리지 못한다면 그 즉시 몸에 도끼가 박힐 것이다. 드낙은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크아아아악!!!!!”
다친 오른발로 땅을 내디딘 도네투스가 입이 찢어질 정도로 고함을 내질렀다. 어찌나 발악하는지 목에 핏대가 서 있었고, 바짝 마른 기관지에서 피가 나와서 입에서 철내음과 피냄새가 진득하게 피어올라 도네투스의 코를 마비시켰다.
‘광전사 새끼.’
이상하게 비틀린 오른발을 무식하게 굴리는 모습은 드낙의 기를 질리게 하였다. 평범한 광전사라면 그 거센 파도를 가르며 고요한 태풍의 눈에 도달하여 그 목을 취했겠지만, 도네투스가 만들어내는 맹공(猛攻)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다치고, 한 치를 가르는 것만으로도 부상을 각오해야 했다.
드낙이 도네투스에게 근접하면 할수록 동귀어진(同歸於盡)의 그림이 만들어지는 꼴이었다. 그런 그림 속에서 승기를 잡는 것은 당연히 체력이 좋고, 덩치도 좋은 도네투스였다.
‘거기에 어울려 줄 수 없지.’
타투를 사용해서 체력을 소진하지도 않은 채로 드낙은 고슴도치처럼 웅크리며 수비를 두껍게 만들었다.
기술적으로 도네투스는 결코 드낙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물론 무조건 수비만 하지 않았다. 불파겐 중급 비전인 〈이강(肄講)〉을 사용하며 도네투스가 하는 일에 훼방을 놓았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는 말처럼 공격하지 않는 상대는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마음 편하게 공격만 할 수 있다면, 마음에 여유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헛수를 넣든, 흙을 발로 차올리든 상대를 반드시 견제해야 했다.
후웅!
큰 도끼를 껑충 뛰며 막자마자 도네투스의 앞발차기가 정확하게 드낙의 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무슨 발 길이가 이렇게 길어!’
고작 스친 것뿐임에도 드낙이 휘청거렸다. 몸의 통제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아얄타!”
도네투스가 승리를 확신하고 덤벼들었다.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고, 긴 리치를 지닌 도네투스였기에 거침없었다. 허나 드낙의 몸이 회복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괴이할 정도로 빠르게 몸의 통제권을 가져가는 모습에 도네투스의 눈에 경악스러움이 깃들었다. 마치 트롤을 상대하는 기분마저 엄습했다.
쐐액!
〈에이너 클린제(Einer Klinge, 하나의 검)〉
몸집이 큰 도네투스는 자연히 드낙보다 위에 있었으므로 상단 찌르기가 물 흐르듯이 이루어졌다.
“그아압!”
놀라운 동체 시력을 지닌 도네투스는 검 끝이 휘어지며 자신의 목을 긁듯이 움직이는 모습에 기겁하며 도끼 손잡이의 잡고 있던 왼손을 쭈욱 밀며 단번에 자신의 몸쪽으로 당겼다.
힘이 대단해서 도끼가 단번에 회수되며 검과 부딪치며 불똥이 크게 튀었다.
‘젠장할!’
드낙이 욕을 했다. 무시무시한 무기 회수력이었다. 인간에게는 중병기를 넘어선 대형 병기를 저렇게 빠르게 회수하는 모습은 사기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드낙의 비전이 끊겼다.
퉁겨진 롱소드에 깃들어진 도네투스의 힘에 오른팔이 하늘로 향했기 때문이다.
상단에서 중단.
중단에서 하단.
높이에 차이를 주며 눈이 그 움직임에 익숙하게 만들면서 단번에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려 찌르는 것이 핵심인 에이너 클린제가 첫 타부터 도네투스의 힘에 끊긴 것이다.
‘놈은 아직도 건재하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오크의 터프함은 믿기지 않는 모습만 계속 드낙에게 보여주었다. 총알 수십발을 맞고도 움직이는 사람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위축된 드낙이 뒤로 물러가며 거리를 더욱 벌렸다.
그 눈에 갈등이 서렸다.
‘마법은···’
마법이라도 사용하고 싶었지만 〈간략화〉하여 바로 발현할 수 있는 마법은 흑마법 뿐이었다.
검은 불꽃은 결코 보여주면 안 된다.
“그아아아!”
이미 지나칠 정도로 흥분한 도네투스는 황소처럼 날뛰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드낙을 깎아냈다. 결국, 드낙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데굴데굴!
“쥐새끼 같은 놈!”
드낙은 도네투스의 공격을 꼴사납게 구르면서 피했다. 진흙이 질척하게 묻어나왔고, 불쾌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수해서라도 도네투스와의 정면충돌은 겁이 나는 일이었다. 그만큼 도네투스는 인간이 대적하기에 힘든 태풍이나 다름없었다.
‘호흡을 무너뜨려야 해!’
촤악!
그 사이에 왼손에 흙을 쥐어서 상대의 눈에 뿌렸다.
도네투스는 그런 잡기술에 농락당하지 않았는데, 고통과 흥분으로 정신이 바짝 세워져 있어서였다. 결국 드낙은 도네투스의 맹렬함을 피하지 않고, 누르기로 마음먹었다.
한다면 하는 놈이 드낙이었다. 순식간에 공세를 펼쳤다.
요리조리!
양발을 이용해서 사정없이 도네투스의 주위를 돌았다. 도네투스가 계속 오른쪽으로 몸을 돌게 하였다.
“크으!”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모습은 실로 간악했다. 하지만 드낙 또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었다. 도네투스 또한 드낙이 계속 똑같은 방향으로 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도네투스가 열세로 보였다. 움직임이 수동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오른발을 다쳤기 때문에 드낙이 싸움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쉬익! 쉬쉭! 솩!
경쾌하고 가벼운 소리가 드낙의 검에서 쏟아져나왔다.
‘손목을 잘라내야 한다.’
변화의 묘리와 빠름의 묘리를 통해서 가볍게 도네투스를 건드렸다. 도네투스의 오른손목을 잘라내려고 부단히 도네투스의 주의력을 여기저기 퍼뜨리려고 노력했다.
따다다당!
도네투스는 드낙이 다시 적극적으로 움직이자 멈추어서서 도끼로 능숙하게 검을 막아냈다. 드낙이 두 번 휘두를 때, 한 번 움직이는 꼴이었지만 몸쪽으로 도끼를 끌어오면서 생기는 거리감을 이용해서 착실하게 막았다.
300합이 넘어가면서도 서로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드낙은 도네투스를 죽일 수가 없었는데, 중립신의 의지 때문이었다. 중립신과 협력하고 사실 약간 을의 입장인 것이 드낙이었다. 결국, 도네투스에게 결정타를 날릴 수 없었다.
물론, 날린다면 동귀어진이 되는 그림이 나왔기에 승부수를 띄우지 못했다.
반면 도네투스 또한 드낙을 죽일 수가 없었다.
‘놈은 전사가 아니다.’
구질구질하고 썩은 내를 풀풀 풍기는 잡놈이었다. 저런 놈이 어떻게 저런 힘을 지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격 속에 깃들어진 세파리아스의 편린을 도네투스는 느꼈기 때문에 더욱 배신감이 컸다. 드낙의 검술 속에 깃든 흉포한 야수의 어금니가 보일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다.
그 흉흉함과는 다르게 도망자의 싸움법을 하고 있어서였다.
“싸워라!”
도네투스는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이 외치기 시작했다. 서서히 몸이 지치고 있었다. 오른발이 뭉개지고 나서 300합을 겨루었으니 아무리 대단한 타투를 지니고, 대단한 체력을 지니고 있어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지쳤다!’
한순간이었다. 도네투스가 호흡이 거칠어지자마자 드낙의 검이 움직였다. 그 뒤로 강하게(强) 올려치며 승부수를 띄우는 척했고, 현란하게(變) 좌우를 흔들었고 이내 혜성처럼 체중이 실린 채 무겁게(重) 검이 내려쳐 졌다.
3가지의 묘리가 드낙의 손에서 쏘아졌고, 중단에서 상단으로, 상단에서 좌우 그리고 벼락처럼 내려치기는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이 있었다.
생명체의 시각이 지닌 단점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위로 움직이고, 좌우를 흔든 다음에 아래로 움직였기에 거리감각을 최대한으로 어그러뜨리고 적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검술의 정수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 〈시야의 현혹〉과 〈익숙함의 변형〉이었다.
지친 도네투스의 집중력은 결코 이 정수를 받아내지 못했다. 세파리아스라는 걸출한 기사에게 검을 하사받고, 대련하며 전투력을 쌓아온 드낙과 야생에서 자라온 도네투스는 교육 환경 자체가 달랐다.
서걱!
그대로 도네투스의 오른손목이 날아가며 큰 도끼가 쿵 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어찌나 무거운 도끼인지 날이 움푹 땅에 박혔다.
팡!
드낙은 한 걸음 물러서며 말끔하게 검을 허공에 털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항복하···”
피를 쏟아내는 도네투스에게 드낙이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도네투스는 몸으로 드낙을 덮쳐서 넘어뜨렸다. 아무리 날고 긴다 하는 드낙이라도 오른손목을 날려 보낼 정도로 접근한 상태였다.
그대로 서로 뒹굴었다. 드낙이 여기서 잘한 것은 세파리아스와 질척한 대련을 많이 하며 손에서 검을 절대 놓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개새끼가!’
드낙이 분노하며 검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몸이 구르고 있었고, 시야도 엉망진창이라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고수라도 자신의 상태가 어찌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운에 맞길 수밖에 없고, 기술도 말끔하지 못했다.
싸악!
도네투스의 볼이 크게 베였다. 피가 쏟아져나왔지만 도네투스는 오히려 웃었다.
퍽!
그대로 박치기를 했다. 드낙의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다. 코뼈가 부러지고, 앞니가 뽑혔다. 드낙의 주먹이 엇비슷하게 도네투스의 턱을 후려쳤다.
“그아아아!”
도네투스가 양손을 들어 올려 그대로 내려쳤다. 가슴을 보호하던 전신갑주가 움푹 들어갔다. 제국 전신갑주였기에 금방 복원될 것이지만, 당장 폐가 짓눌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폐에 충격이 오자 드낙의 숨이 턱 막혔다. 그 사이에도 둘은 서로 주먹질을 오갔다. 그곳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경험한 것은 도네투스였다. 팔이 길었기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었고,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기에 중력의 도움도 얻었으며 더욱 편했다.
벌러덩!
드낙이 왼발에 힘을 주며 도네투스를 들어 올렸다.
“끄으으아아아아!!!!”
도네투스의 체중이 오른발을 짓누르자 그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퍽퍽 드낙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드낙의 눈썹이 찢기고, 눈알이 푹 패이며 손톱에 베여서 눈에서 피가 왈칵 흘러나왔다.
입에서도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도네투스를 넘어뜨린 드낙이 버둥거리며 놓았던 검을 움켜쥐며 일어섰다. 동시에 신성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으윽!’
시야가 크게 흔들리며 현기증이 그를 덮쳤다. 왼쪽 시야가 차단되자 왼쪽으로 엎어졌다. 진창이 된 진흙에서 서둘러 일어났지만 도네투스의 몸이 다시 한 번 드낙을 덮쳐서 넘어뜨렸다.
“컥!”
땅이 등이 부딪치며 큰 충격이 드낙의 전신을 흔들었다. 하지만 도네투스는 그 공격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심장에 정확하게 드낙의 롱소드가 박혀있었다. 드낙이 노린 것은 아니었다. 도네투스가 몸을 던지면서 그 힘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롱소드가 그 가슴을 찔렀다. 재수 없게 뼈 사이로 직행해서 심장을 찔렀다.
드낙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제국을 막아서며 이를 견제하게 될 도네투스의 죽음은 막을 수 없었다. 신성력을 그에게 준다? 보는 눈이 반드시 있을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드낙이 검을 뽑았다.
울컥!
도네투스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 대(大)자로 뻗었다. 한 호흡 뒤에 쓰러진 도네투스의 입에 피가 다시 한 번 크게 튀어나오며 그대로 절명했다.
‘X됐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드낙은 두려움을 가졌다.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느꼈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철썩!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손으로 뺨을 치며 드낙이 서둘러 아직도 싸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신성력과 트롤의 재생력이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정신없이 오크를 죽여나갔다. 도망치는 오크는 한 마리도 없었다. 동시에 죽어가는 오크의 숫자만큼 죽어가는 인간도 많았다.
수많은 생명이 죽어갔고, 오크의 소리가 사라졌을 때 남은 인간의 숫자는 고작 3천에 불과했다.
전투의 결과는 공멸(共滅)이었다.
북부는 더는 전쟁을 이어나갈 수 없었으며, 영토를 지킬 힘마저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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