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536화 (53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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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不滅者)가 중보병을 한다면 실로 성기사들과 같을 것이다.

오크 전사의 투척 도끼에 성기사의 동맥이 단번에 그어졌다. 피가 쏟아져나왔다. 쏟아지는 피 사이로 황금빛이 얼핏 보였지만 그 빛마저도 피에 스며들어 갔다. 놀라운 제어력이었다.

“그르르르, 아아아아아!!!!”

입에서 피거품을 쏟아내던 성기사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 눈에는 분노라는 감정 하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신앙에 대한 믿음만이 가득했다.

성기사가 외치는 고함 속에는 오크에 대한 증오 한 자락 없었고, 이 지옥 같은 곳에 들어선 인간들에 대한 구슬픈 울음소리와 같았다.

길쭉하고 얇은 진형을 지닌 성기사 1천 명의 진형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신성력은 빠르게 소진되어갔다.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오크 전사들의 공격력은 대단했다.

〈성전대(聖戰隊)〉 소속의 성기사 1천 명은 3천 명에 달하는 불파겐 병사들을 살리는 데 공헌했다.

이것은 엄청난 전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로 위업(偉業)이라고 불릴만했다. 도망치는 상황이라면 10분에 1만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닌 것이 오크 전사들이었다.

안 좋은 진형을 새로 만드는 사이에 1만 명의 파이룬 정규병이 죽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크를 상대로 3천 명을 살린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 수 있었다.

쿵쾅!

발로 성기사의 무릎을 걷어차고, 도끼로 성기사의 팔뚝을 내려친다. 하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성기사들이 만든 인간성벽이었다.

오크 전사들의 폭주기관차 같은 질주와 돌격을 성기사들은 피로. 신성력으로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성기사들만 좌익을 살린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 성기사들의 진형은 잘 버텼지만, 희망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얇은 진형은 전술적으로 죽은 군대나 다름없었다. 1만의 정병(精兵)도 전술에 따라서 잡졸로 변하기 쉽다.

그 얄팍한 전술을 두껍게 만든 것은 성기사들 덕분에 도망쳤던 불파겐의 병사들이었다.

‘창피하게 도망이나 치고!’

“찔러! 찔러!”

아이! 야!

창이 뒤로 한 번 가고, 다음 구령에 단번에 앞으로 리듬을 서로 맞추어서 찔러졌다. 창병이 서로 조밀하게 있을뿐더러, 3개월 미만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그렇게 고함을 지르며 합을 맞춰야 했다.

이들이 2열, 3열을 만들어주었고, 단단한 진형이 만들어지면서 성기사들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깡!

오크 전사가 던진 투척 도끼가 튀어나온 창에 부딪혀서 땅에 박혔다. 창병과 오크 전사의 눈이 마주쳤다. 흉흉한 오크 전사의 눈을 병사는 똑바로 바라보았는데, 성기사라는 든든한 방패가 있어서였다.

‘됐다! 전선이 굳어졌다!’

겐 쟝의 마음에 뜨끈한 불이 지펴졌다. 절망 속에서 마주한 빛이었고, 추위 속에서 만난 모닥불이었다.

‘누구보다도 희생적인 면모가 좌익을 살렸다.’

죽어야지만 좌익이 다시 전투력을 얻을 수 있었다. 모순적이고, 역설적이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망치는 사람이 어찌 죽을 생각을 할까? 살고 싶은 생각뿐일 것이다.

그 공포를 바꾸어 용기로 만든 것이 성기사들이었다.

시작은 성기사였고, 그것을 받쳐주고 작전을 성공하게 한 것은 불파겐의 병사가 도와줘서였다.

‘기적이지.’

도망치는 병사가 되돌아가서 다시 싸운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은 군대의 병사를 모두 휘어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중간간부가 존재해야 했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원이 풍부하고, 군대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는 기적이 필요했다. 남부는 할 수 있어도 북부는 하지 못했다.

쉬익, 퍼걱!

겐 쟝의 장창이 오크 전사의 목젖을 옆으로 꿰어버리며, 뽑혔다.

와아아아!!

그 호쾌한 한 방에 주위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자 겐 쟝은 또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투구걸이의 기사〉가 보여주는 살상력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성기사들 사이로 쏘아지는 장창은 오크의 목과 머리에서 반드시 피를 봤다.

어째서 겐 쟝이 큰 명성을 손에 쥐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불파겐의 이름 아래 있었지만, 너무 숨어서 지낸 면이 존재했다.

때가 되자 〈성기사 케이슨〉이 고함을 질렀다.

“서서히 물러나시오! 살아있는 자는 모두 살렸소! 이제 빠져야 할 때요!”

성기사 중에 살아남은 자는 900명 남짓. 어마어마한 탱킹력을 지녔지만 그 유지력은 약했는데, 신성력이 바닥나면 다른 인간과 다를 바가 없어서였다. 신성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더 이상의 급격한 소모를 감당할 수 없었다.

‘사방이 오크고, 중앙은 난전이 되어버렸어. 진짜 끝이다.’

케이슨의 눈에는 오크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중앙에서의 승기를 완전히 잡은 것이 오크들이었다.

동시에 중앙은 파이룬의 정예병들과 기사들이 있었다. 연합군의 주력이나 다름없는 군대가 난전으로 치달아 패색이 짙으니 승리가 멀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도망치게 나둬라! 강철의 전사도 몇 없다! 도네투스가 우릴 부르고 있다!”

오크들은 단단한 좌익이 전장에서 물러나기 시작하자, 도네투스의 부름에 응하여 다시 중앙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멈추시오! 멈추시오!!!!”

성기사들이 물러나기 시작하자 〈겐 쟝〉이 서둘러 다가와서 소리쳤다. 그것도 늦었는데, 엉망진창인 병사들의 진형을 제대로 바로 잡기 바빠서였다.

“불파겐 자작님이 참전했소! 오크들을 뛰어넘고 차오르던 불꽃과 땅울림을 보지 않았소! 희망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소.”

그 말은 모두 죽더라도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오직, 드낙 불파겐의 이름값만 믿고 배팅을 해야 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겐 쟝은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

그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설득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는데, 좌익의 시야로는 이미 인간은 패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슨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무엇이 어렵겠소.”

〈성기사 케이슨〉은 언데드 구조물인 〈구울 묘지기〉를 홀로 토벌한 드낙의 무위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평생이 지나도록 잊지 못하는 광경이기도 했다. 물론 그때 싸운 것은 드낙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족(種族)이 낳은 최강의 인간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싸움이었다.

‘그는 할 수 있다. 홀로 전쟁을 뒤바꿀 힘이 있다!’

그 광경을 보고 드낙이 승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겐 쟝은 케이슨이 드낙에 대해 엄청난 평가를 하고 있음에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설득하기 위해서 생각해두었던 수많은 말이 쏙 들어갔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우리는 수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고 많은 이들이 오늘보다 못한 삶을 살아갈 터다! 내 가족, 우리의 다음 세대···! 그리고 메디오인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자!”

함성소리가 아니라 악소리를 내지르며 3천 700여 명의 군세가 달려나갔다.

난전의 중앙을 인간이 앞뒤로 샌드위치 하는 형세가 드디어 만들어졌다.

“그아아아!”

오크 전사의 함성이 퍼져나갔다.

“물러서지 마라! 전우의 피로 살려고 하지 마라!”

베테랑 병사 혹은 기사의 외침이 실낱같이 퍼져나가다가 이내 온갖 소리에 파묻혀서 매장되었다.

“아아악!”

악 소리를 내며 발악하는 인간들은 어디에서나 있었다. 그 버둥거림은 시간에 무색하게

난전 속에서 도네투스는 착실하게 인간을 죽여나갔다. 특히, 뭉쳐있는 인간을 박살 내는데 집중했다. 괴이쩍게도 인간들은 여럿이서 뭉치면 오크 전사를 상대로 잘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스슥. 호다닥!

‘음?’

여유로운 도네투스의 감각에 뭔가가 걸렸다. 경박하게 느껴졌지만, 뭔가가 시선을 잡았고, 감각을 건드렸다.

무시해도 될 것 같았지만, 야생에서 살아가는 오크의 감각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그 감각에 도네투스는 집중할수록 경박함 속에 깃든 지독하게 음흉하고 질척거리는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제대로 된 놈이다.’

실력이 있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났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야수가 먹잇감을 바라보는 감각 또한 도네투스는 느껴야했는데, 실로 불쾌했다. 마치 자신이 〈사냥감〉이 된 듯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버러지 같은 인간이!’

도네투스는 인간을 죽이면서 좌우를 살폈다. 종종 옆으로 갑자기 확 도약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상대가 놀라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짓을 서슴없이 하는 이유는 이 전장에서 자신을 죽일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내 도네투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야 생각난다. 이 감각···!’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오크라면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감각이 엄습했다.

크르르···

처음 부락에서 벗어나 야영을 했을 때, 모닥불의 불빛이 바람에 움직이며 어둠과 빛의 경계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면서 느꼈던 어떤 것. 그것과 닮아있었다.

살랑살랑 움직이면서도 금방 코앞까지 덮쳐올 것만 같은 어둠 속의 존재.

‘〈칼 초노(Khar Chono, 검은 늑대)〉?’

빛과 어둠의 경계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야수가 생각났다.

드낙이 〈깊은 숲의 사냥꾼〉으로 활동하며 터득한 검은 늑대의 수법! 오크는 그 수법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 또한 뛰어난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그게 도네투스의 명줄을 길게 만들었고, 동시에 드낙이 도네투스를 암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냥꾼은 사냥꾼을 알아보는 법이었고, 무리하게 암살을 하려 한다면 역공을 받을 뿐이다. 도네투스가 걸음을 멈추고 제대로 경계심을 가진 그 순간 암살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숲에 있는 느낌이야. 기괴해.’

나무는 물론이고 수풀도 없었지만 오크와 인간이 수풀과 나무처럼 여겨졌다. 전혀 자신을 노리는 놈을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진실로 칼 초노처럼 보였다.

‘쓰읍···감이 좋은 오크네.’

드낙은 도네투스가 멈추어서서 감각을 끌어올리고 경계심을 바짝 올리자 입에서 쓴맛이 났다.

자신의 움직임을 간파한 것만으로도 도네투스는 드낙의 경계를 받을 만 했다. 그 덕에 드낙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결국 암습 실패로 이어졌다.

신중해서 실패한 경우였다.

‘어떻게 좀 쉽게 못 죽일까?’

발로 걷어차는데 강철 방패를 반으로 굽히게 하는 미친 오크를 상대로 정공법을 생각하는 드낙은 이 자리에 없었다. 최대한 쉽게 가고 싶은 것이 드낙이었다.

‘편한 게 최고지.’

드낙이 간사하게 입술을 혀로 핥았다.

5억짜리 집을 사서 8억에 파는 인생이 있다면 누구나 그런 인생을 원할 것이다. 쉽게 돈 버는 만큼 재미난 일도 없고, 쉽게 가는 인생만큼 편한 인생도 없었다.

“그아!”

오크 전사가 드낙이 자신의 뒤에 있자 몸부림을 치며 화들짝 놀랐다. 계란밥을 해먹으려고 계란을 톡하고 깠는데 바퀴벌레가 튀어나와서 허공으로 날아오른 것처럼 펄쩍 뛰었다.

푸우욱!

드낙은 자신의 앞을 가려주던 오크 전사의 기색이 변하자마자 후장에 검을 깊게 쑤셔 넣었다. 경직된 채 머리가 하늘로 바짝 선 오크 전사가 막대기처럼 쓰러졌다.

오물이 묻은 검을 〈비전, 탄력적인 파괴〉로 팡 치지는 못하고 드낙은 왼손으로 땅을 짚으면서 다시 모습을 숨겼다.

쉬익.

짧은 바람 소리. 이 거친 전장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소리였지만 드낙의 청력은 그 소리를 잡아냈다. 드낙의 굽어진 상체가 뒤로 넘어가면서 작은 투척 도끼가 허공을 가르며 지나가 다른 오크 전사의 허벅지에 박혔다.

드낙이 뒤로 물러나며 뱅글 몸을 360도 돌려서 일어났다.

“찾았다. 더러운 인간 놈.”

도네투스가 큰 도끼를 양손으로 쥔 채 드낙을 바라보았다. 드낙은 그대로 옆으로 도망쳤다.

호다닥!

싸우더라도 상대가 멀쩡한 상태에서 맞부딪치긴 싫었다.

같은 천하장사라도 지친 천하장사와 싸우는 게 편했다.

“이 놈!”

도네투스가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방해하는 놈들은 치이고, 엎어지고 뒤로 넘어가거나 왼 주먹에 머리통이 투구째로 함몰되어 고꾸라져야 했다.

“흡!”

숨을 멈추고, 오크 전사의 등을 지나간 드낙이 몸을 팽하고 틀며 롱소드에 원심력을 실으며 오크 전사를 몸으로 밀치고 있는 도네투스를 노렸다.

쐐애애액!!!

음험하게 하단을 노린 것은 당연했다.

많은 이들이 기습을 하면서 욕심쟁이가 되는데 그건 실력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머리로 쏘아지는 단검을 피하는 것보다는 다리를 노리는 단검을 피하는게 더 어려운 법이었다. 눈에서 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짜 암살자는 상대에 따라서 전투방식도 크게 달라진다. 이것이 이류 암살자와 일류 암살자의 차이이기도 했다. 그저 단기전만 노리는 암살자는 결코 일류가 될 수 없었다.

기습으로 한 방을 노리기보다는 기습의 묘리를 더욱 살려 도네투스가 반응하더라도 늦을 수밖에 없도록 그 눈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발목을 노리는 드낙은 일류 암살자 그 자체였다.

기습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모습은 실로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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