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 <-- -->
〈족장 도네투스〉.
쌍둥이라는 태생으로 오크 사회에서 쫓겨날 위기를 겪은 자였다. 물론 그가 욕심을 버리면 오크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재능이 뛰어나서였다.
그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어린 나이에 히드라를 죽이러 떠났으며, 운이 겹쳐서 성공하게 된다. 〈녹색 도끼의 선택〉이 있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오크 사회는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오크 사회는 그 대신에 동생과 함께 그를 추방하게 되고, 도네투스는 동생과 함께 마을에서 나온다. 강한 힘이 있었지만, 많은 오크를 죽이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도망친다.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인간들과의 분쟁을 겪고 다시 한 번 백설산맥으로 향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동족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켜 대전사에 오른다.
대전사가 될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홀로 수행하며 주술의 끝을 보려고 한 괴짜 오크 주술사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긴가민가했고 이 선택이 맞는지 묻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주술사는 엉뚱하게도 〈오크의 가을〉을 열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된다.
도네투스는 기분이 상하여 그를 죽이게 된다. 이 일은 평생 그를 괴롭히게 된다.
결국 도네투스는 주술사를 죽인 과오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거대한 침공전을 계획하게 되며 〈족장〉에 오른다. 녹색 도끼를 기쁘게 하려고 규모가 큰 투쟁을 시작했다. 물론 예언을 쳐부수고 살기 위한 것도 있었다.
형과 다르게 싸움질을 제대로 못 하는 그의 동생 아만투스는 이제 오크 나무를 키우는 삶을 살며 아내도 맞이했다.
쌍둥이 동생과는 다르게 도네투스의 삶은 오로지 투쟁뿐이었다. 모든 것에 대한 투쟁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거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사회에 투쟁한 경험은 그 어떤 오크도 해보지 않은 투쟁이었고, 그의 큰 재산이었다.
이제 이 괴물을 인간이 감당해야 했다.
오른팔에만 있던 7마리의 히드라 머리가 입을 쩍 벌리며 도네투스의 전신으로 퍼지며 밀도가 낮아졌다. 단순히 오른팔에 그 힘을 집중시키기보다는 전신으로 퍼져서 부담 없이 타투의 힘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쾅!
“윽!”
도네투스가 1열의 방패병이 지닌 방패를 발로 걷어차자 방패가 우그러들고, 방패병이 뒤로 튕겨지듯이 날아가며 창병과 도끼수가 뒤로 밀렸다. 한 걸음 내디딜 공간이 그대로 생기자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이야!”
앞과 좌우에 있던 창병 3명이 창을 찔렀다. 방패병이 당하는 것을 봤기에 화력이 집중되었지만, 도네투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후우웅!
거대한 도끼가 횡으로 휘둘러졌다. 창대가 도끼와 함께 낙엽처럼 튕겼고, 창병들의 머리가 투구째로 머리통이 잘리며 뇌수가 터져나갔다. 선홍빛의 피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입을 뻐끔거리다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진다. 무릎부터 땅에 박고, 머리가 진창이 된 땅에 푹하고 집어넣어 졌다. 엉덩이가 하늘로 솟아나 있었는데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전쟁터에서의 죽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 누구도 곱게 죽을 수 없었다.
“아악!”
창병의 지원을 받지 않는 좌우의 방패병이 오크 전사에게 방패를 빼앗기거나, 투구가 잡아당겨 지고 피떡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툭.
머리카락과 함께 살이 통째로 뜯긴 것이 도네투스의 앞에 뒹굴었다. 도네투스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도끼날에 묻어있는 뇌수를 어깨에 두른 가죽으로 닦았다.
뿌드득!
팔이 역으로 분질러지고, 방패병의 머리가 척수와 함께 주르륵 끌려 나왔다. 그것을 마치 전리품으로 삼듯이 목에 걸었다. 인간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함이었다.
정글에 놓인 사람이 고릴라에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끔찍했다. 악력, 힘, 덩치. 모든 것에서 차이가 크게 나는 것과 같았다. 어린이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뱀을 후려치며 장난치는 것처럼도 보였다.
“모여라! 앞으로 나아가라!”
도네투스가 소리쳤다.
“아얄타!”
“그하아아아!!!”
고함을 지르고, 승리를 외치는 오크 전사들이 너도나도 도네투스가 뚫어놓은 곳으로 몰려들었다. 주위 오크들의 무분별한 방향성이 바로 잡히며 도네투스를 따라갔다.
도네투스의 카리스마도 있었지만, 쉬운 길이라서 더 인기가 많았다. 방패병도 죽고, 창병이 머리가 반으로 갈린 곳은 무기를 휘두르기 좋게 공간이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죽기 살기로 방어하는 인간들이 단단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척.
도네투스가 어깨에 큰 도끼를 걸쳤다. 그의 앞으로 오크 전사들이 앞으로 나아가며 3열에 있는 방패병과 다시 한 번 부딪쳤다.
피가 낭자하고, 인간들은 이번에도 버텨냈다. 중앙을 맡은 파이룬의 정규병들은 1열의 방패병과 2열의 창병 혹은 도끼수가 끔찍하게 죽었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야말로 사람들을 지키는 가장 최전선에 선 전사들이다!!!”
기사들의 외침이 병사들의 귀에 파고들어 왔다. 절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전선이 굳어지기도 전에 도네투스가 다시 한 번 3열의 방패병에게 몸을 들이밀었다. 앞에 오크 전사가 있었기에 발을 찰 리치는 나오지 않았다.
콰아앙!
도네투스의 큰 도끼가 방패째로 방패병을 때렸다. 방패는 우그러들고, 방패가 방패병의 얼굴을 후려쳤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방패병이 힘없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넘어진 방패병을 발로 내려찍으면서 도네투스가 3열로 진입했다.
“하압!”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염구가 도네투스를 노리며 기사가 병사들의 사이에 숨어있다가 달려들었다. 완벽한 시차를 노린 공격이었다.
콰드득!
강철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꿰뚫리는 소리가 났다.
기사는 소리조차도 못 질렀다. 투구에 정확하게 박힌 작은 투척 도끼 때문이었다. 낚시에 걸린 붕어처럼 입만 달달 떨었다. 헛바람 소리가 났지만, 전쟁터의 거친 소음 속에 파묻혔다.
귀신처럼 쏘아진 작은 투척 도끼는 다른 오크 전사들의 것보다 아주 작았고, 마치 암기처럼 여겨졌다.
풀썩!
쓰러지는 기사를 앞에 두고, 도네투스는 뒤로 한 걸음 움직이며 화염구를 도끼의 옆면으로 막았다.
화드드득!
불똥이 튀기며 사방으로 퍼지면서 사그라들었다. 인간 병사들이 빠르게 도네투스가 만들었던 공간을 메꾸었지만, 다시 한 번 그에게 박살이 났다. 허무할 정도로 신체능력에서 차이가 심했다.
꽈악!
쓰러진 기사에게서 작은 투척 도끼를 회수하며 다시 혁대에 걸었다. 소리조차 잘 나지 않는 것이 작은 투척 도끼(小)였다.
용도에 맞게, 상황에 맞게 쓰는 것이 그가 가진 세 자루의 크기가 서로 다른 투척 도끼였다.
“대전사를 막아라!”
기사들 또한 홀로 인간들의 진형에 들어와서 닥치는 대로 살육하는 도네투스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기사들은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코 본능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병사들이 죽어도 인내심을 가지고 3명 혹은 5명이 되면 함께 덤볐다. 그 이상은 있어 봤자 방해만 될 뿐이고, 구경만 할 뿐이었다.
“억!”
창병이 찌른 창을 손으로 잡아서 당기자 창병이 창을 놓았다. 그 창대를 그대로 휘둘러서 달려드는 기사들을 때렸다. 힘이 강하고, 창이 만들어내는 긴 원심력에 깃든 힘으로 기사들이 태풍에 휩쓸리듯 무너졌다.
창을 피한 기사는 뒤이어서 내려 찍히는 큰 도끼에 오른 어깨를 내어줘야 했다. 피하기에는 너무나도 빨랐고, 거대했다. 회피했음에도 어깨가 사라지고, 심장이 조각나버렸다.
“······”
주르륵.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기사가 오른쪽으로 픽 쓰러졌다. 어깨부터 시작해서 심장까지 도끼로 조각났기에 단시간에 대량의 피가 쏟아져나와서 웅덩이를 만들어냈다.
철퍽!
그 웅덩이를 거칠게 밟으며 도네투스가 그대로 전진했다. 그 누구도 도네투스를 막지 못했다.
기사의 마법 중에 유도 능력이 있는 마법은 도네투스를 타격했지만 도끼의 큰 면에 막히기 바빴고, 그게 아니라면 몸으로 때웠다. 히드라의 타투는 단순히 히드라의 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의 마법 저항력마저도 도네투스에게 부여했다.
단점이라면 유익한 주술의 효과를 도네투스도 적게 받는다는 점이었다.
병사도, 기사도 땅에 쓰러지며 순식간에 24열까지 돌파당하자 중앙은 난전으로 치달았다. 도네투스가 물꼬를 트고, 그 틈으로 오크 전사들이 난입했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중앙의 진형에 균열이 생겼다.
아주 큰, 벼락과도 같은 한 줄기가 단단히 막혀있던 인간의 진형을 뚫어냈다.
“그, 크악!”
오크가 병사들에게 죽기도 했다. 난전이란 건 그런 것이다.
“거걱.”
오크 전사들에게 둘러싸인 창병의 턱이 뜯겼다. 어미 잃은 애처럼 팔을 버둥거리다가 피를 뿜으며 목이 썰렸다.
“끝까지! 끝까지 싸우자! 파이룬의 용사들아!!!”
와아아아아!!
기사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기사는 이에 호응을 해주는 병사를 보호하다가 투척 도끼에 등을 맞아 땅에 넘어져 밟히기도 했고, 오크 전사가 던진 투척 도끼가 뒤편으로 날아가며 다른 오크 전사의 목에 박히기도 했다.
난전(亂戰).
당연히 난전에서는 오크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이 도네투스의 손에 분쇄될 때, 드낙은 겨우 우익을 뭉치게 하였고 〈불릿 발레아르〉와 만날 수 있었다.
“중앙이 난전으로 치달았는데, 이길 수 있겠소?”
드낙이 불릿 경에게 물었다. 확신 내지는 가능성을 보고 들어가고 싶었다. 바빠도 자신이 밟을 돌을 확인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음···”
반백이 된 불릿 경은 난색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에 드낙이 고함을 질렀다.
“빨리 말하시오! 그저 그대의 의견을 묻는 것뿐이고, 책임은 내가 지겠소!”
“좌익의 상황이 어떤지에 따라 다르오.”
“무너진 좌익이 이번 전투를 좌우한다?”
드낙이 믿기 힘들어하며 반문하자 불릿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못해도 3천만 남아있다면, 한 번 해볼 만 할 것이오. 헌데, 대규모 마법을 한 번 더 쓰실 수 있으시오?”
“못하오.”
드낙은 단칼에 불릿 경의 기대심을 잘라냈다. 고르곤 심장은 만능이 아니고, 애초에 〈심장〉이었다. 심장을 과부하 시키는 짓거리는 여러 번 할 것이 못 되었다.
“그대가 보기에 좌익은 어찌할 것 같소.”
“성기사들이 향했고, 중앙이 난전을 못 이기고, 뒤로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니 감히 오크들에게 덤비지 못할 것이오. 아무리 〈투구걸이의 기사〉라도 살아남은 병사를 개죽음시키지는 못할 것이오.”
“그는 꽤 병사를 아끼니까.”
드낙의 말에 불릿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이 많은 지휘관이 겐 쟝이라는 기사였다.
그렇기에 불릿은 좌익이 병사를 수습하고 그대로 내뺄 것으로 보았다. 중앙이 난전으로 변한 이상 더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했다.
인간의 패배였다.
회전(會戰)은 그러한 것이다. 무너지면 끝이고, 재정비를 할 수 없었다. 몇 명이 남았고, 모으면 능히 한 번 더 해볼 것이라는 생각은 무지하고,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햇병아리 지휘관이나 생각할 법한 생각이었다.
‘겐 쟝이 불파겐의 2차 지원군 깃대를 잡았구나.’
게제라스가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남은 자원 중에 지휘관으로 쓸 법한 자는 겐 쟝 뿐이었다. 예상했던 바는 아니었다. 겐 쟝과 많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해서였다.
‘병신같이 왜 그렇게 목욕탕에 집착했었지?’
사람이 먼저거늘, 드낙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후회스러웠다.
“불파겐 자작. 어떻게 하고 싶으시오?”
“어쩌고 말고, 길게이 왕자 전하가 중앙에서 후퇴하는데, 다른 방도가 있소? 밀어 넣어야지.”
드낙은 그가 가장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불릿 경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는데, 드낙이 이렇게 자신의 등을 잘 긁어준 적이 없어서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건가?’
정치력까지 좋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그럴 리가. 게제라스 총관이 우선순위를 점찍어준 걸 수도 있다.’
불릿 경이 머리를 굴렸다.
“좌익은 반드시 우리를 도와줄 것이오.”
드낙은 확신했다. 불릿 경에게서 〈성기사〉들이 좌익으로 투입되었음을 전해 들어서였다.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면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것이 신전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숭고한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릴 겐 쟝이 아니었다.
“중앙을 돕는다! 난전을 지우기 위해서는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
곳곳에서 명령이 울려 퍼졌다. 드낙은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홀로 앞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와아아아아!!!!
맹장(猛將)과 함께하는 병사들은 기세가 바짝 올랐다. 호랑이의 기세를 등에 업은 여우처럼 자신이 범(虎)이 된 것처럼 달려나갔다.
잡졸로도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 맹장이었다. 홀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용맹한 장수가 드낙이었다.
========== 작품 후기 ==========
5874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딱지 100개 당첨자는 날으는펭귄님이십니다.